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8월 부터 불로그를 닫으려 합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서 힘에 부치는 것 같아서요. 이웃하여 주신 여러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문 닫기 전 찾아 뵙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가정에 진정한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펜다곰.
찾아 떠난 길
죽어야 되는 데 죽지도 않고 이러니........... 쯧쯧.. 정말 이 할머니가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인가? 남들 보는데 자신의 처지가 쑥스럽고 주변에 보이는 자신의 자식에 대한 마지막 배려여서 일까? 막상 양노병원에서 들어오면서 죽어야 한다던 넋두리가 없어졌고 나는 괜찮은데 이놈들이 돈을 벌어먹으려고 잡아둔다는 투정이다. 한 아파트 108호에 자매로 김명숙 레지나는 81세로 화장실에서 주저앉으면서 엉덩뼈에 금이 가면서 양노병원에 2개월을 있다 돌아오면서 죽어야 된다는 말 대신 몸에 좋다는 것은 다하는 못 말리는 할머니로 마치 자신의 생명에 연장을 위해선 못 할 짓이 없었다. 소문에는 외아들로 엄마가 병들어도 버스에서 내리다 발을 헛디뎌 사고를 당하여도 찾아오는 일이 없는 불효자식이란 말로 몹쓸 인간처럼 만들어진 동정을 받던 할머니다. 형님이라 부르며 아는 척하는 할머니는 한참 아래인 뜻 한데 잘 아는 사이였다. 시집가기 전 한동네에서 살았다하는데 남편이 좋은 자리 공직에 있으면서 축적으로 갑부 칭호를 듣고 살았다고 했다. 식모와 찬모가 있는 저택으로 부러움을 받는 부인으로 살았다고 하였다. 남편이 한 갑을 못 넘기고 죽자 일찍 유학하여 이곳에서 결혼을 한 아들을 따라 왔고 한국의 재산을 넘겨주면서 버려진 할머니라고 들려준 말이었다. 죽은 남편 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였고 생명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었으니 전 생애를 아들에게 의지한 할머니였다고 했다. 언제나 소문이란 그런 개 아니었겠나.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자비가 상대를 죽음보다 더한 구관지옥으로 보내는 저승사자가 찰싹 부터 자비를 부치 킨다. 잘 한다 잘해. 더 큰 자비를 보여 더욱 불쌍하게 만들어 불효자식을 만들어 버려진 그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 다오! 소문은 듣는 대로의 것이라 생각 없이 소리로 전하여 저 갔다. 아까울 것이 없는 엄마는 전 재산을 아들에게 주고 나서는 “나가 죽으라” 하는 아들들의 확률 50%에 속한 불효자아들로 만들어 버린 재산이었고 며느리도 역시 같은 생각인 나가 되지기를 바라는 14%에 들어가니 합이 64%요 당연하게 버려져야 하는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세상이 미처 눈앞에 보이는 욕심은 삼강오륜은 석기시대 돌칼들과 함께 진열 되어져 있었고 시대를 거슬러 살고 있는 접힌 50년의 세월은 혼과 육의 전쟁으로 시대를 정복 한 살덩어리 인생이 자리한 멸망 전 소돔과고무라로 보여 진 노인들의 세상이다. 노인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물러주고는 죽어지지 않는 생명줄을 잡고 매달리니 자식들도 부모의 무게가 클수록 힘든 세상이다. 현대를 살자니 자식이었던 세월은 역시 접혀져 있었고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 부담으로 오는 부모가 어찌 예쁘기만 하였겠는가? 위로 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노인들은 10불 회비로 몸부림치듯 하는 신앙에 휏 불로 바실 천주교회에서 노인들을 위한 성서학당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제일 반가워한 할머니다. 몇 번이고 개강 날 자를 묻고 또 무고 하던 할머니는 유치원을 처음 가는 아이같이 들떠있었고 아침에 함께 간 학당개강식이었고 갑자기 가까워진 이웃이 되었다. 반장님. 오늘 성서 학당이 없어요? 오늘은 아니죠. 금요일에요. 학당 갈 때 함께 갈 터이니 걱정 마세요. 미사를 보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는 다시 미사를 가는 깜박 거리더니 학당도 거의 매일 갔다가는 학당을 안 한다고 한 밤중에도 찾아와 문을 두드리곤 하였다. 학당 나가는 날자 와는 상관없이 다니더니 쓰던 부엌칼을 도둑맞았다고 새벽에 찾아오면서 침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어젯밤 나린 비로 베란다 꽃잎이 떨어져 흩어져 앙상한 가지에서 무상을 보면서 울리지 않는 전화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기다리는 할머니를 생각하여 보았다. 온통 할머니의 신앙은 학당과 기다리는 자식들의 전화였다. 세상에 살아서 감사하게 하는 것은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양노병원에 이웃이 된 회원을 찾으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앉았고 서고 화장실도 부축이해 다닌다. 누워 남의 손을 빌려야 하고 생명줄을 매달고 살고 있는 이웃에서 어제의 모습이 망가지는 순간마다 편히 죽으라고 기도하는 야릇한 저승사자가 될 때도 있다. 아비귀한의 지옥을 벗어나는 홀가분한 기분에 양노원 담벽에 화초나 나무를 본다. 그 자리에서 죽어가는 순간까지 다른 세상을 알길 없을 것이고 물고기도 물속에서 오르면 죽으니 그곳이 전부 아닌가. 헌데 사람들은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갈 수 있는 의지와 힘이 있으면 어디에가 갈 수도 있다는 행복함을 보는 기쁨이었다. 성혁이는 학당을 다니면서 새로운 삶에서 대화 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서로 통하는 영성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기쁨이 있었고 배우는 즐거움이 마치 구슬을 하나씩 끼어 나가는 행복으로 공부 하는 순간은 사는 보람이었다. 일찍이 이렇듯 공부를 하였더라면 크게 성공하였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며 새로운 의욕으로 하고 싶었던 일 들를 시작으로 욕심을 내어 보는 공부였다. 지식이란 쓰는 자가 사악하면 독이 되는 것이고 잘 못 배우면 번뇌와 고통이 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인격인양 생명 없는 글씨에 불과 하다면 지혜는 사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피땀 흘린 대가로 살아서 함께 사는 길동무 일 게다. 지금 이곳에 배우려고 온 사람은 지식이나 상식이 아닌 살아 온 과정에 미처 챙기지 못한 지혜와 슬기로움을 얻어 함께 하려 온 사람들이 아닌가. 학교졸업 후 공부는 상관없는 인생으로 알았던 세월을 새롭게 만들어 활력으로 살려는 지혜로 젊음이 있는 인생을 슬기롭게 만들어 보려는 노인학교 였다. 갇혀진 자신의 세상 밖을 보려 하는 욕구는 자연에서 보게 되면서 보여 지지 않았던 세상을 보게 하는 마음의 눈을 알게 되면서 성직자들과 관광을 함께 하는 축복이 되어져 왔다. 여행에서 고정된 경치 보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놀라운 자연을 통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는 순간이 되였음을 받아드리는 성숙한 모습의 노인들을 만나는 고마움이 있었다. 경찰이 찾아 왔다. 108호 김명숙의 주치의사가 누군 인지 아는가? DR. 임으로 알고 있다. 몇 번 픽업을 하여주었는데 주치의인지는 잘 모른다. 질문과 답은 상식적이였지만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 함께 갔다. 냄새가 복도를 가득 채워 숨쉬기 힘들었다. 2주전 승강기 앞 소파에 정신을 놓고 앉았다. 자매님 어디 다녀오세요? 멀거니 처다 보는 자매를 두고 승강기를 타고 무심히 닫히는 문 짬으로 앉은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생각 하였다. 화장실 입구에 쓰러진 모습은 자매님이었다. 사망 추정시간은 2주정도로 부패한 상태로 짐작된다고 하였다. 냄새로 알게 된 사망이니 없는 자식 보다 더 못한 처지의 호래자식이 되었다. 딸이었다면 달랐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함께한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아들은 라스베가스에서 돌아오고 있으니 5시간 후에나 도착예정이라는 말이다. 남미 선교 회원으로 파나마에 미사를 부탁하였고 할머니 죽음에 관한 사정으로 혼자 살다 죽게 된 사연을 연락하였더니 다 듣고 나서 편히 가신 것 갔습니다. 우리 자매님을 위한 기도를 더 많이 보내드리는 예쁜 이웃으로 보내 주세요. 기억되는 이웃으로 남게 된 사연도 자매라는 칭호가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나 더욱 가깝게 된 성서학당 동문이란 사실이다. 짧았고 안타까웠지만 고인의 마지막 신앙으로 울리지 않던 전화와 마음대로 다니었던 성서학당이었다. 새벽에도 변소가 막혔다고 오고 편지를 들고도 오는 사이의 자매였다. 가슴에 묻힌 분노로 웃음을 잃었고 한 세대를 혼자 산 할머니는 마지막 이웃으로 선택한 자신이 자식 보다 더 못한 이웃으로 보낸 불쌍한 죽음에 앉은 연도 꾼 이었다. 장래를 하시엔다 천주교회에서 지낸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들은 조위금을 들고 찾아간 아들의 집에 도착하면서 주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여 전화로 다시 주소를 확인하고 들어간 집이다. 저택에 차려진 초라한 연도상은 작은 영전사진과 초한자루에 십자가 하나가 있을 뿐이다. 언덕 비탈을 타고 있는 저택들은 서민이 꿈으로 그리는 부유층의 마을이다. 그 흔한 꽃 한 송이 없는 연도를 마치고 차와 떡을 먹고 가라고 붙들었지만 그대로 나왔다. 이렇게 외롭고 쓸쓸 하게 가는 길을 그렇게도 억울에 했었단 말인가?
부귀영화 간데없다 황천객을 면할 쏘냐 내 몸은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 앞에 등불인걸 하늘을 나는 구름조각 마냥 허무한 생각을 떨치려 하였더니
잉과응보!. 잘 못 된 가르침이 아닐까 현관에서 부터 내려서는 두개의 응접실과 거실이 있었고 식당과 주방은 장식으로 벽돌로 18세기 기사들의 방패모양으로 사자가 두 마리 앞발을 들었고 칼이 바치고 있는 장식을 옆으로 응접실에 마련된 문간 구석의 연도 상이었다. 장식보다 마음이 없는 형식의 제사상은 자매님의 외로웠던 세월은 분노가 타오르는 불꽃이 되었고 까맣게 고개를 숙인 심지는 마음의 응어리로 보여 졌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로 녹아내리는 촛대를 보면서 눈으로 드리는 연도가 되고 말았다. 절대 자식에게 먼저 돈을 주어서는 안 됀 다는 말씀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년 열두달 타양 빛이 한결 같은데 어찌하여 어떤 날이 더 좋은가? 악의 반대편에 선이 있고 죽음의 반대편에는 생명이 있었듯이 재산은 아무에게도 주지 마라 나중에 그것이 이쉬어 후회할 것이다. 너의 꿈은 어리석은 환상의 날개를 달아 오늘의 이 같은 외로운 길을 가야 했던가? 학당에서 배웠던 지혜를 되씹게 하는 연도 상이었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모아 믿고 의지하여 나름대로의 사랑은 하늘의 것으로 창조되어져 갔고 그들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받아드리는 성직자들의 숭고하고 거룩한 진실에 순명하는 모습에 감사 하였다. 바라보는 자신도 그들 속에 중심에 서있는 노인으로 욕먹는 망년된 행동은 없어야 한다고 자신의 세월을 보는 계기로 성서학당으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빠른 세대의 변화에도 조선시대의 여자로 생기는 대로 낳은 자식을 기르는데 일생을 바친 엄마들은 거미마냥 희생으로 길러낸 자식들의 걱정으로 현대를 살고 있으니 비오면 아이스크림 팔고 있는 큰아들 걱정 이고, 해가 나고 더운 날이면 신발을 파는 작은 아들걱정으로 살고 있으니 자나 깨나 자식걱정으로 변한 세상을 살면서 혼자만이 당하는 것 같은 섭섭함 속에 고독한 늙은이로 위로받고 싶어 10불이라는 회비로 자신을 위로하는 할머니들인가 보다. 이들의 아들이요 딸로 오는 성직자들에 대한 사랑은 할머니들에게는 빛 같은 사랑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간 선교사들을 통해 하느님나라에 함께하겠다는 소망을 보게 되어졌다. 해방직후 인간의 수명이 46세였다고 했다. 성혁이는 42살에 태어난 늦둥이로 세상에 왔다. 큰조카도 보다 8개월 빠른 작은 아버지로 말이다. 엄마 17살에 시집가 8남매 생산하니 25년을 우리를 낳고 기르는 세월이었다. 그러니 평균수명 4년을 남긴 여성의 인생엔 오로지 자식이 있었고 생병이었던 시대를 산 엄마는 언제나 늦게 태어난 성혁이가 늦둥이로 고생을 한다는 죄스러워 했던 엄마를 기억한다. 73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막내아들로 효도 못한 죄스러움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단명하였던 시대는 안타까움에 효자들도 많았지만 요즘세대에는 평균 출산율 1.3명으 로 세계에서 제일 적은 생산국이란다. 24년의 세월을 엄마들의 휴가기간으로 받은 행복이니 자기개발로 바빠진 현대 생활에 부모가 보이겠는가. 현대판 고려장 뉴스도 혀를 몇 번 차고 나면 묻혀 버려지는 세상에서 조선시대를 사는 할머니들의 한탄도 납득은 간다. 죽어지지 않는 긴 생명에 할 일들을 찾지 못하였으니 과거에 매달려 섭섭한 현실에서 밀려온 곳이 하느님을 믿고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하는가 보다. 어디를 가나 할머니들이 온통 세상을 차지하여 그 자리를 내어주지를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교회 안에서 자리싸움을 벌리는 세상에 대한 원망은 하느님 앞에 단판 하려 모인 데모군중 마냥 털 세운 고슴도치들 갔었다. 언젠가 T.V에서 자식에게 매 맞고 사는 부모의 통계가 14%라는 요금 탈이 없이 살아 주면 효자란 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세상이다. 부모에게 잘 하는 사람은 천사로 보여 졌고 옆 사람을 위한 작은 정성에는 자신은 없고 그 자리에 평화와 사랑이 흐르는 강으로 만들어 졌던 성서학당을 자부심으로 고마워하였고 자신의 개발을 계기로 시작한 노년세계를 살려 하였나 보다. 자연의 이치가 서로 다른 차이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된 것 마냥 각자의 개성과 고집이 모여 하나가 되는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위로였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자신에 삶의 가치를 느끼었던 현실은 행복이었다. 파나마에 신학생 3명이 현지에서 공부하고 그들 속에 평생을 그곳에서 죽겠다는 각오라고 한다. 현지를 직접 보려고 후원회원들이 다녀왔다. 적은 도시에 외곽지역이 시내 변두리로 우범지대로 한 낮에도 피해가는 지역이라 했다. 파나마 전기를 공급하는 변전소를 담으로 한 변두리니 지형적으로 낙후된 곳임을 집작하게 하는 곳이다. 노숙자들의 거주지가 된 데는 건물은 비어져 패가로 건물들은 창틀 없이 버려 진 데에 서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 1964년도의 전성기를 끝으로 버려진 이곳은 노숙자의 삶의 터전으로 그들을 속에 일어나는 마약 상들의 장사 터이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하루건너 총 맞는 사건도 뉴스거리가 안 되는 보통일들로 알려진 곳이니 피해가는 우범지대로 이곳으로 한인 김무웅 이나시오 신부가 임명되었단다. 선교사가 가는 곳이 평화가 있고 풍요로운 땅이 있겠는가? 부라질 외곽에 버려지듯 한 수녀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선교사들의 고통에 가슴 저렸던 기억이 있다. 은인을 만나는 기쁨을 위해 하루를 버스로 나와 만나고 가는 수녀님은 그들 속에 함께 하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저 촛불로 살며 당나귀로 들어가는 산간 마을에 산다고 했다. 화장실이 없는 버스여행에 변소가야 할 일이 두려워 전날부터 물을 못 마시고 하루를 굶고 나왔다 돌아갈 때도 역시 갈증과 목마름의 고통을 마음의 위로와 기쁨으로 참고 다녀간다는 수녀님들, 돼지 기르고 닭 기르며 농사짓는 수녀님들도, 신부님들도 모두 선교의 길에는 죽음 보다 힘든 어려움이 있으니 말이다. 한 알의 씨앗을 심기위해 갔다. 뜻 이전에 두려움이 앞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적인 욕구가 먼저였다고 고백 하는 김이나시오 신부였단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 아침미사는 살아 남기위한 것이 이라면 저녁 미사는 감사를 드리는 기도로 드리며 친구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현실에서 노숙자들 속 깊게 들어갔고 반가움에 손짓으로 파드레(pader)거지 왕초가 되기까지 2년의 세월이 갔다고 했다. 신자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은 부임 3개월 만에 이래도 죽고 가만있어도 죽을 것이니 주님의 길에서 죽으리라!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 져 하면 살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죽기를 각오 하고 나면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서 사라진 노숙자들이었다. 분심으로 미사를 마쳤고 거리로 찾아 나서게 된 거지 왕 이었다. 한 부락을 지나 비여 진 창고 옆으로 이주한 거지들이 그대로 성당주변에 있으면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의논 한 결과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고마움에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식사하는 무료급식을 시작하였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움직인다 했다. 후원회를 돕고 있던 할머니들은 밑반찬을 만들고 용돈을 털어 부식을 마련하여 배로 보내는 일을 시작하였다. 마침. 한인 신자인 장 베드로가 선박회사 근무로 나와 있어 운임은 주님이 지불하게 되고 보니 허접쓰레기 까지 할마니들의 사랑이 전달되어져 갔다. 김신부님은 용기와 위로가 되었고 후원회 회원은 보람이 되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 갔다. 오늘을 마련하기 위해 15년 전 과테말라에서의 만남이 인연을 만들 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다 큰일을 하리라 하는 생각은 주변의 천사들을 찾았고 목적을 위한 사랑은 엄청난 치욕으로 무참하게 인간의 것으로 되돌려 지고서야 하늘의 뜻은 내 생각과 내 뜻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우치는 어리석음에 부끄러움의 세월이 되어졌다. 새장 속에 스스로 날라든 새처럼 두려움이 컸고 목적을 잃어버린 고장 난 나침판에 의존한 항해사처럼 위험을 느끼며 마음의 평화가 깨져갔고 불안한 세월이 되었다. 대리만족이란 말을 새롭게 생각하면서 회원들 중심에 서있는 자신을 보게 되면서 자신도 남의 고통과 희생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져 들었다.
참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와서 보란다. 7년의 공들인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아!? 공들였단 기간이 한 일이 없다. 몇 번 부식을 날랐다 해서? 회원들과 함께한 자기만족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지으며 아니라 생각하였다. 국제선교회 답게 작년에 미안마에서 찾아 온 망명길에 오른 스님이 누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군정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체포와 살해의 명이 떨어졌고 알프스를 넘어 미국에 오게 된 사연은 길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인연과 업이라 했다. 전생의 업으로 만들어진 인연은 김신부님과 깊었다고 한다. 김신부님의 도움으로 지금 이곳에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미안마 스님이었다. 미사에도 참석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논문도 쓰는 재미있는 스님이시다. 한국말도 영어도 구사하는 실력가로 나와는 절친한 사이로 서로을 인정하는 스님이다. 작은 소원에도 불교에서는 3000배라는 고행의 예식을 반복 하거든. 거저 얻어진 것도 아니고 공들인 세월이잖아. 그리고 시작이 동생이 소원이라고 하지 않았어? 미안마 스님이 날 만나서 가란다. 지금 가는 길이 당신의 남은 생애 크게 보이는 것이 불교에서나 통할 일로 나와는 상관없었지만 전혀 무시하기엔 힘든 유혹이 되었다. 목적이 없는 여행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처음 가는 파나마니 호기심도 관광도 있어야 할 여행에 의미를 잃은 자신을 몇 번씩 일깨워 보려 하는 노력은 기도였다. 와서 보라하였고 가서 그 길을 찾으라 하신 스님의 충고도 도착 첫 날 부터 신경을 쓰는 야릇한 여행이 되어 지고 말았다. 학사님들과 한방을 쓰게 된 나는 성전을 둘러보았고 성체 조배실이 마음을 끌었다. 그림자 마냥 정성을 다하는 모습과 그들의 생활에 충실한 모습과 적극적인 삶에 자극받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희생을 보며 부끄러움을 보개 되었다. 신학생들은 신부님이 안 계신 외지의 공소에 공소예절을 위해 파견되어져 있었고 두 명만이 있었다. 과테말라 경험이 어찌 남미전체를 말 할 수 있으랴. 폐루 손 신부님의 책을 보면서 선교의 위험과 반란군이 찾아든 한밤중의 수녀님 방, 주님이 아니시면 힘든 상황을 본적이 있다. 아직 벌거숭이로 정글에 사는 원주민이 있다는 곳. 교회는 있고 신자가 없는 곳. 가난이 죄악으로 변한 운명. 350년의 세월을 빼앗긴 말살된 자기들의 삶. 이것이 중남미의 공통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학생들이 이런 지역으로 하느님의 일꾼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성유 축성 대미사로 대주교님 미사에 가기 위해 일행은 시내로 나갔다. 관광지로 파나마 역사를 만든 운화와 식민지 당시의 고도가 전부인 작은 도시었다. 1750년의 성전이니 350년을 살아온 대성전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물로 그 세월만이 관광의 맥을 이은 대성당이었다. 성유 봉헌은 스패인 의상과 원주민들의 의상으로 봉헌되는 거창한 예식에 전국에서 모인 사제와 수녀님들을 만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되었다. 외국에서 모인 선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발을 씻어준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떠나야 했다. 내가 한 것처럼 하고 낮은 사람으로 섬기라 하였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가르침과 순명으로 뜻을 받아드렸던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다. 석가모니는 고행으로 5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죽음에 이르러 나는 “아무 말도 한 말이 없다” 하시고 살아서 이치를 깨달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고 35세의 나이로 동쪽을 벼개 삼아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한 말이 없다 . 직접 부디 치고 고통을 통해 깨우침을 통하라 하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였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는 첫 말이 “행복해라.” 마지막 말이 다 “이루었다” 로 죽으심을 당하였다. 과테말라에서 주님의 상여가 나갈 때 안티과에 거리는 톱밥으로 놀랄만한 카펫을 만들어 깔았고 그 위로 주님의 시신이 가는 세계적인 예식이 있어 본 적이 있었다. 십자가의 길을 아파트를 찾아다니는 예식은 처음 만나게 되였다. 여성부대에는 남자가 따르지 못하는 십자가의 길은 성모님과 거리의 여인들의 슬픔에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의 죄를 위해 울라 하신 말씀을 묵상하니 나는 따라 갈 엄두도 못 냈다. 남자들은 실물만 한 십자가를 5명이 질머지고 가는 길에 밤에 이루어지는 위험으로 또 좌설 되었고 청년들을 따라간 길에 나선 시자가의 길이 었다. 그 길 위에 지난날의 세월을 다시 찾아 밟아 보는 기도와 미사성제였다. 할머니들의 힘이 그대로 살아 있는 현장에 오늘의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착각에 놀랐고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 왔다. 신부님. 고생하셨습니다. 성공하셨어요. 선교사의 성공은 보여 지는 것이 아니죠. 외지 숲속에서 목숨을 건 그들 앞에서는 부끄러운 일이지요. 배고픈 사람보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먹으라고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죠. 대통령의 금일봉으로 2500불이 도착 되였고 정부기관 및 경찰학교에서도 협찬이 이루어지는 무덤제대 축성에 참석하였고 시신을 모신 상여가 성전을 떠나 100명이 의해 운반되는 꽃상여 뒤를 따르는 상주들과 앞에선 천사들과 당시의 병사들로 재현한 뒤를 따랐다. 무덤 제대로 경찰학생 100명이 나열된 가운데 무덤제대는 화려한 장식으로 안치되는 모습에 2000년 전 그날을 사는 기분이었다.
못 박으시오! 못 박으시오 ! 나는 소리를 질러 댔고 한 팔을 덜어 돌을 던졌으며 뼈가 들어난 상처에 침을 뱉고 구경거리로 조롱 하지는 않았던가? 망부활 무덤제대는 잘 만들어져 있었고 이날 신자들의 신앙을 무덤에 고하는 행사로 3위를 기리는 3곳의 성당. 12사도를 기억하는 12곳의 성당. 14처의 고통과 수난을 기억하는 14곳의 성당을 찾아다니는 예절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무덤제대가 화려하게 만들어져야 많은 신자들이 찾기에 정성을 드려 3년을 일 등을 한 이곳 무덤제대다. 분주한 움직임에 겨란 들은 색동바구니에 담겨졌고 전 신자를 먹도록 많은 케이크가 부활절이다. 신도들은 250여명으로 성전을 가득 채웠고 성가대들은 주님을 찬양하는 잔치 집이었다. 주변에서 보낸 케익과 계란으로 부활절을 함께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다. 나는 주님께 살아 있을 날 가야 할 길을 물었고 대답을 기다린다. 응답을 오늘도 귀 기울려 들어 보려 한다.
관광으로 찾아간 대신학교는 8년 과정으로 총 삭사 57명중 한국 신학생이 7명이었다. 이 영광을 7년을 함께한 자매님들과 고인이 되신 분들께 돌리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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