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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녀의 나들이©뉴스미션 |
여신의 딜레마 화가 들루크루아의 작품 중에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이 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그림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에서, 유독 우리의 시선을 끄는 한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총알이 빗발치는 치열한 투쟁의 장에서 용감하게 여러 남성 군중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풍만한 유방을 과감히 드러낸 채.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이 여인의 노출에 주목하여 ‘<자유의 여신>은 그 시대의 어머니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젖을 물리듯, 자신의 젖으로 지치고 쓰러진 군중들에게 혁명의 힘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숭고한 여신에게도 개인적인 가정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힘없는 군중들에게는 자신의 젖을 다 물려줬는데, 정작 자신의 자식들에게 물릴 젖이 없다면 그녀는 과연 그 거룩한 지휘를 계속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가치와 사회적인 가치의 대립. 이 문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지만 한 가정의 어머니가 이와 같은 곤경에 처한다면, 아마도 그녀는 극심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자식들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반려자로서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전반적인 상황에 신경을 써야하는 또 다른 살림꾼으로서의 어머니. 여기 이러한 딜레마로 인해 남다른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한 어머니가 있다.
두 아이의 어머니오늘 기자가 만난 홍윤경 씨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일단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두 딸의 어머니이다. 또한 윤경 씨는 현재 이랜드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으로서 노조의 총무와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어머니다. 특히 실제로 만난 그녀는 여러 언론 매체에 비쳐진 것처럼 급진적이고 행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밝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는 “제대로 확인 좀 하지”라고 투덜대면서 남편의 부주의를 탓하는,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윤경 씨와 같이 들어간 그녀의 보금자리는 아늑하면서도 아담한 일반 가정집이었다. 노조 간부의 집이라면 으레 걸려있을 것 같은 전태일 등 노동투쟁 열사의 사진이나 의식화 교육을 위한 사회주의 관련서적은 물론, 과격하고 선동적인 투쟁구호나 격문 같은 것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좁다란 거실에는 그녀의 남편인 박윤관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책상과 책꽂이가 있었고, 그곳은 성서 노트와 회의록 그리고 각종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거실 곳곳에 걸려있는 가족사진들은 ‘노조 간부의 집’이라는 어리석은 편견을 일순간에 해소시켰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영락없는 한 가족의 어머니이자 가정 주부였다.
오전 10시, 일요일이라면 다소 이른 아침 시각에 그녀는 둘째 딸 고은이를 깨우기 시작했다. 이 날 큰딸은 마침 큰집에 있는 상태였고, 식당을 운영하느라 새벽에나 귀가를 하는 남편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일이라 작은 딸과 함께 교회를 가기 위해 지금 깨우는 것이라고 설명하던 그녀는 한바탕 작은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올해 일곱 살이 된 고은이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억지로 깨워놓으면 제 엄마의 눈을 피해 이 방, 저 방으로 숨어들다 또 침대에 몸을 파묻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냈다. “빨리 일어나자 고은아.” 결국 그녀의 달램을 뒤로 하고 엄마의 등에 업혀서 식탁에 앉은 고은이는 이제 반찬을 투정하기 시작한다. “아침 안 먹을래!” 아예 고은이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녀 또한 화가 났는지 “그래, 그럼 먹지마, 엄마 혼자 먹는다.”라고 말하며 딸에게 삐진 듯 혼자서 밥상에 앉는다.
이러한 모녀 사이의 옥신각신하는 사소한 반찬 공방 끝에 결국 계란 프라이로 타협을 봤다. 오랜 시간 투정의 결과치고는 다소 소박한 메뉴다. 그제야 ‘고은이 엄마’도 화가 풀렸는지 웃는 얼굴로 “엄마가 잘라줄게”라고 말하면서 딸이 먹기 좋게 계란 프라이를 잘라준다. 언론에서 항상 과격하게만 보였던 그녀도 자신의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조심스럽고 온화한 어머니였다.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기자는 집을 둘러봤다. 책으로 둘러싸인 5평 남짓의 거실은 마치 작은 도서관 같았다. 그런데 유독 거실 서재에서 눈에 띄는 편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큰딸 진솔이가 작년 10월 9일에 엄마에게 보낸 편지였다. 윤경 씨는 편지를 슬며시 쥐면서 “그 때는 제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였고, 이 편지를 옥중에서 받아서 읽었을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팠어요.”라고 말한다. 삐뚤삐뚤한 글씨 사이로 ‘엄마 보고 싶어’ 라는 글귀가 가장 선명히 보였다.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어린 진솔이가 엄마가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은, 진솔이와 그 딸의 어머니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솔이는 맏딸답게 오히려 밝고 명랑하게 옥중에서 고생하는 엄마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마도 딸의 이러한 태도가 그녀의 소신과 신념에 힘을 불어넣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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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솔이의 편지©뉴스미션 |
어머니의 기도식사를 끝마친 후 우리는 같이 윤경 씨 가족이 다니는 교회로 향했다. 교회로 가는 내내 7살 고은이는 어린 소녀답게 이리저리 거리를 뛰어다녔다. “애들이 참 밝아 보이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윤경 씨는 “그래서 제가 참 고마워요.”라는 긍정의 대답과 함께, “그래도 딸들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미안해요. 특히 다소 성격이 예민한 큰 딸 진솔이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더욱 크답니다.”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제 해가 갈수록 머리가 굵어지는 진솔이가 행여나 제가 하는 활동에 반감을 표시하거나,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자기 엄마와 같이 보낸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을까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교회는 ‘평화의교회’라는 아담한 교회였다. 새해 첫 주일예배를 맞아 이날 목사님의 말씀은 ‘힘들더라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는 내용의, 다소 교과서적인 설교였다. 그러나 현재 어렵기만 한 이랜드 노조의 상황과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는 어쩌면 이 말이 가장 필요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기도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절실해 보였고, 예배 내내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기독교 기업인 이랜드와 노조의 갈등이 자칫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대립’ 정도로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비기독교를 대표하는 노조의 핵심간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하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윤경 씨는 “박성수 회장이 믿는 하나님과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이 다를 뿐이죠.”이라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노조의 투쟁은 그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지, 종교적 차원의 갈등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뜻이다.
예배 막바지에 그녀의 남편인 박윤관 씨가 교회에 도착했다. 이랜드 노조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이 다정한 부부는 다른 교인들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예배를 마쳤다. 예배가 끝난 후, 같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교회 안에 마련된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 날의 점심 메뉴는 맑은 국물의 국수였다. “더 드세요, 더 드세요.”라고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권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오랜만의 여유와 웃음을 볼 수 있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이 교회의 집사이기도 한 고은이 엄마가 신자들에게 말을 꺼냈다. 교회의 헌금과 재정에 관한 것들이었다.
“여선교회는 재정도 탄탄하고 돈도 잘 걷히는데, 왜 남선교회는 돈이 안 모일까요?” 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는 교회 재정 상태를 정리한 조그마한 수첩을 보여주면서 “자, 보세요. 어머, 남선교회는 한 번도 안냈네.”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닥달을 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마저 그곳의 살림을 꾸리고 있는 윤경 씨를 보니, 천상 그녀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의 투쟁하지만 이런 온화한 분위기도 잠시, 윤경 씨는 같이 교회를 다니는 이랜드 노조위원들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교회의 아이들을 챙기고 각 가정의 대소사에 대해 다른 학부모와 함께 활발히 수다를 떨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랜드 노조 사무국장으로서의 또 다른 그녀가 등장한 것이다.
상대적 약자인 노조는 시간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조직의 구심점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노조 현실이 사무국장의 눈에는 안타깝기만 하다. 그들의 농성은 끝이 보이질 않고, 타결 또한 이루어질지 미지수다. 시간이 갈수록 회사는 노조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고 뉴코아 노조의 복귀와 같은, 사측에 유리한 구체적인 결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어둡기만 한 노조의 현실에서 윤경 씨는 무엇 때문에 투쟁을 계속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그녀는 “제가 사무국장인데 제가 안하면 누가 하겠어요? 안하는 것보단 분명히 낫기 때문에 참고 하는 거죠”라며 자신감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한 번 버텨보라고 해보세요,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대응책과 계획이 다 마련되어 있답니다. 걱정마세요”라고 말했다. 비록 그녀의 시어머니마저 반대를 하고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적당히 웃으면서 타협점을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온건한 남편의 입장에도 그녀는 오히려 “에이,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라며 은근히 자신의 신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이 투쟁을 ‘하나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여태껏 그렇게 해왔고, 지금보다 더 어려운 적도 많았어요. 이 정도쯤은 이미 예상한 건데요.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가야죠.”라는 그녀의 말에서 우리는 ‘이랜드 노조의 어머니’로서의 면모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나온 ‘평화의교회 집사’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이미 식당에 나갔고, 막내 딸 고은이는 친구 집에 갔다고 했다. 보통 일반 노조원들은 일주일 중에 월요일 하루를 쉬는 것이 원칙이지만, 간부인 그녀에게 휴일은 없다. 다만, 1월의 첫째 주 일요일은 연말 결산을 해야 하고, 각 매장의 판매점을 점거하면서 농성을 하는 ‘선점 시위’가 있는 날이라 집에서 작업을 해도 된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다시 그녀의 집에 가니, 또 다른 노조원이 서류 뭉치를 한 아름 안고 윤경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따라와.”라는 지휘와 함께 또 다시 사무국장으로서의 무거운 업무가 시작된 것이다. 결산 장부를 책상에 펼쳐놓고 두 대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또한 경찰에 자신들의 전화가 도청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전화도 매우 조심스럽게 받는 모습이었다. “간부의 집이라면 거의 도청이 된다고 봐야겠죠”라며 사무국장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롭게 미소를 짓기까지 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업무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무국장은 “그냥 하루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네요. 특히 두 딸들과 함께요.”라고 대답했다. 밖에서는 노조의 선두에 서서, 여자가 하기에는 벅찬 일들을 소화하고 다소 과격해 보이는 노조 사무국장도, 자신의 가정에서는 가족들과 소소한 여유를 즐기고 싶은 평범한 주부이자 두 딸의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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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기도©뉴스미션 |
강인한 봉선화가 되기 위해 ‘재앙은 가장 약한 나라의 가장 약한 국민들에게만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다, 약자와 강자와의 갈등은 항상 약자에게는 재앙으로, 강자에게는 생채기 정도로만 다가온다. 겉으로 보이기에 항상 강해보이는 노조 사무국장도, ‘가족’이라는 공간에서는 ‘홍윤경’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가진 평범한 여성이었다. 마치 가수 현철 아저씨의 노래처럼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 같은 그녀. 어쩌면 이런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그녀는 억지로 강해 보이려 애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어 보이기만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특히, 딸 고은이와 함께 교회로 가는 내내 윤경 씨는 그 여유로움과 행복감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만큼은 사무국장이 아니라 ‘진솔이와 고은이의 엄마’만이 그녀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절대자에게 진심어린 기도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독실한 기독교의 신자의 면모 또한 볼 수 있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럴 때마다 윤경 씨는 예전처럼 자신의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구할 것이다.
두 딸의 어머니이자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야만 하는 가장으로서의 그녀,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기득권에 과감히 저항하는, 이랜드 노조의 사무국장으로서의 그녀. 이 딜레마는 해결이 어렵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옥중에서 받은 진솔이의 편지의 내용처럼, 진솔이와 고은이의 엄마는 가족을 믿고 또한 딸들이 자신에게 그러한 것처럼 그들에게서 행복을 찾는다.
취재 말미에 그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딴 것은 없어요. 제 가족이 있어서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거죠. 기자분은 그렇지 않나요?” 그 해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절실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분명히 자신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