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요동정벌을 주창하던 정도전이 1차 왕자의 난으로 저세상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고,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도 하늘로 올라가자 양국을 휘감던 전운(戰雲)은 서서히 걷혀 가게 된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자 남은 건 태조의 아버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어이, 조온…너 이번에 명나라 가거든 그노무 이인임 건 좀 어케 되었는지 알아봐봐. 저번에 울 아부지가 명나라 사신놈 한테 한마디 했으니까 대충 고치는 시늉은 했을 거 같은데, 한번 살펴보고, 철자 틀렸으면 고쳐오고…알았지?”
“알겠슴다.”
이리하여 명나라 사신으로 간 조온은 명나라 예부로 향하는데...
“울리 사람…너네나라 이성계, 아 쏘리…너네 나라 이단(李旦)의 아빠가 이인임이라고 알고 있다 해. 같은 ‘이’씨 쓰고, 또 너네 나라 사람이 와서 이단의 아빠가 이인임이라 하지 않았나 해? 우리 쪽 백과사전이랑, 공식문서엔 전부 이인임의 손(son)이 이성계…아니 이단이라고 나와 있다 해.”
“…쉬파 x됐다.”
조온은 부랴부랴 조선으로 달려와 태종에게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보고하기에 이른다.
“이것들이 지금 누굴 정우성 훈련시키는 거야 뭐야? 고치겠다고 했으면 고쳐야지! 전주 이씨를 성주 이씨로 만들면 어쩌겠다는 거야?”
“전하, 아무래도 이게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듯 합니다.”
“정치적 노림수? 그건 또 뭐야?”
“아무래도 조선을 압박할 비장의 카드를 하나 쥐었다는 생각에 계속 이걸로 우리 조선을 압박하려는…대충 그런 컨셉인듯 합니다.”
“이것들이 진짜…안되겠어. 일단 종계변무를 위한 테스크포스팀을 짜고, 당장 명나라로 날려보내. 어이 호조! 아무래도 명나라 떼놈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나가야 겠으니까, 예산 좀 뽑아봐!”
이리하여 태종은 이빈을 사신단의 정사로 내정하게 되는데….
“어이 빈아…잘 들어.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명나라 놈들이 이성계는 이인임 아들이라고 적어놓은 거 지워놓고 와야 해. 안되면 화이트로 지우던가, 아예 종이를 씹어 먹고 와도 돼. 그래도 우리가 천자의 나라로 섬기는 명나라인데, 명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시조를 친원파의 개호로 왕 싸가지 같은 이인임의 자손들이 만든 나라로 기록 했다는 거…이거 개망신이거든? 그리고 내가 우리 조상님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냐?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목숨 걸고 한번 고쳐 보겠습니다!”
“그래그래, 한번 고쳐봐봐. 그리고 내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명나라 쉐이들 뒷돈 엄청 밝히거든? 괜히 떼놈들이라 그러겠냐…. 내가 호조에 특별히 말해서 추진금이랑 진행비, 판공비로 해서 실탄을 넉넉히 준비해 두랬어. 예산에도 올라가지 않는 돈이니까 마음껏 뿌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겠냐? 가서 조선에는 지름신이 있다는 걸 제대로 한번 보여주라고!”
“옛 전하! 신명을 다해 뇌물을 먹이겠사옵니다!”
이리하여 바리바리 뇌물을 싸 짊어진 이빈이 명나라로 출발하게 되는데, 명나라에 도착한 이빈은 그길로 예부로 달려가 예부 상서 이지강을 만나게 된다.
“울리 사람 바쁘다 해.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 해”
“아이, 상서 어른 왜 이러실까나….이거 약소하지만 떡값이나 좀 하시고….”
“…너네 나라는 떡으로 63빌딩 짓는다 해? 뭔 놈의 떡값이 이리 많나 해?”
“우리 민족이 또 떡에 환장한 민족 아니겠습니까? 가래떡, 무지개떡, 백설기, 인절미 등등 종류별로 다 사 드시려면 떡값이 좀 많이 필요하실 겁니다.”
“이거 참, 울리 사람도 떡은 좀 좋아한다해. 먼길 달려와 떡값 준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렇게 떡값 들고 온 이유가 뭔가 해? 기브&테이크인가 해?”
“아유, 눈치가 아주 그냥 9단이시네….”
“이짓도 눈치가 없으면 못한다 해. 같은 공무원이면 다 알만할 터인데, 그래 뭘 원하는가 해?”
이빈은 자신이 명나라에 온 자초지종을 다 설명하게 되는데….
“알았다 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떡값 먹은 김에 다 해결해 주겠다 해.”
명나라 예부 상서 이지강은 그길로 황제에게 달려가 주청을 올리게 되는데,
“조선 개국 태조 이성계는 이인임의 자식이 아니라 합니다. 조선 놈들도 몸이 달아 뻔질나게 울리나라 찾아오는데, 이쯤해서 한번 봐주는 게 어떻습니까?”
이리하여 이빈은 보무도 당당히 조선으로 귀국해 귀국 기자회견을 가지게 된다.
“역시 떡값의 위력…은 아니고, 여하튼 저의 뼈를 깍는 노력 덕분에 황제가 ‘앞으로는 이인임의 후손으로 기록하지 말고, 조선이 원하는 대로 기록해 주어라’라고 윤허하였습니다.”
이빈의 보고에 조선 조정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종계변무 논쟁은 끝이 난 것 처럼 보였는데…그러나! 불씨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으니, 초특급 대하 울트라 역사 족보 사극 ‘국운(國運)을 걸고 싸운 족보전쟁!’은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
조선시대 족보(族譜)가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자신의 가계(家繼)가 양반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자신의 뿌리를 수록한 혈통서와 같은 종교! 조선시대 이 족보에 대한 집착은 지금의 관점으론 상상을 불허할 정도인데, 만약 이 족보가 잘못 기재되었다면 기분이 어떠할까?
그것도 일반 양반층이 아니라 왕실의 족보가 잘못되었다면 말이다. 조선 개국과 동시에 터진 이 희대의 족보 오기(誤記)사건…. 그후 조선 역사 400년을 면면히 흘러 가면서 조선 외교사 최대의 쟁점이 되었던 종계변무(宗系辨誣)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보자!
때는 1390년 고려의 운명이 서산에 뉘엿뉘엿 저무는 해처럼 저물어 가는 그 시점, 반(反)이성계파는 나라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 대충 짐작을 하고 있던 그때….
“이제 패 더 돌려봤자 계산 안 나와. 이성계 이노무 시키가 다 쓸어가 버렸으니…. 확 엎어버릴 수도 없고, 이대로 나라를 뺏기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야이 자식아!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야! 벌써 포기하면 어떡해?”
“지금 상황에서 어쩌라고? 광박에 피박에… 약도 다 깨졌고….”
“아직 우리한테는 쑈당이 남아 있어.”
쑈당? 그랬다. 고려말 반(反)이성계파는 명나라를 끌어들여 이성계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마지막 쑈당을 걸려고 했었던 것이다. 이런 계획하에 명나라로 망명(?)한 인물들이 바로 윤이(尹彛)와 이초(李初)였는데, 이들은 명나라로 망명한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성계에 대한 별별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성계 그놈이 말이죠. 겉으로는 명나라 만세, 명나라 짱! 이렇게 외치지만, 속으로는 요동정벌을 하겠다고 별별 개삽질을 다하는 놈이거덩요. 그놈 똘마니 중에 정도전이란 놈이 있는데, 그놈이 참 무서운 놈이에요.”
“울리 사람 이성계 괜찮게 봤다 해. 그놈 생긴 건 무식해 보여도 원나라 싫어하고, 울리 명나라 좋아한다 해.”
“맞슴다. 원래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이성계 그놈은 이인임 아들이라니까요. 이인임이 어떤 놈인지 아시죠? 친원반명파의 대표주자 아닙니까? 이성계 이놈 자식이 지네 아부지 소원 들어주겠다고, 명나라에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니까요.”
“그런데 왜 이인임 아들이 아닌 척하는 건가 해?”
“아이 참 답답하시네…. 지금 만약 이인임 아들이랍시고, 명나라 치겠다면 당장 정권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일단 정권 잡은 담에 그 담에 움직인다니까요. 이인임, 이성계…성씨도 똑같지 않슴까?”
윤이와 이초의 이런 구라빨이 명나라 조정을 뒤흔들던 그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온 조반과 왕방은 황급히 이 사실을 이성계에게 보고하게 되는데,
“윤이, 이초 이 개노무 시키들! 이제 하다하다 안되니까 내 아부지를 바꿔? 뭐? 이인임과 내가 성씨가 같아? 이 개노무 시키들! 이인임은 성주 이씨고, 나는 전주 이씨란 건 온 고려사람들이 다 알어 이 개노무 자식들아! 이 시키들을 그냥 확!”
“장군, 너무 글케 열내지 마십시오. 저것들도 오죽 답답했음 그렇겠습니까? 명나라 애들도 윤이랑 이초가 날린 뻐꾸기가 구라란 걸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이쯤해서 우리 측에서 사람을 보내 사실을 말하면 대충 수습될 겁니다.”
정도전의 의견을 들은 이성계, 그 길로 정도전과 한상질을 ‘변호사들’로 선임하여 명나라로 보내게 되는데,
“울리 사람 1, 3, 5, 7, 9로 보지 말라 해. 그런 개구라에 속을 정도로 머리 나쁘지 않다 해. 딱 보니 윤이와 이초란 놈들 냄새가 폴폴 나는 게 아무리 봐도 사짜라 해. 그래서 귀양보냈다 해. 너네 나라 너무 쫄지 말라 해. 우리는 이성계 믿는다 해. 그러니까 빨리 가서 쿠데타마저 마무리해라 해. 아, 그리고 전두환처럼 사람 너무 많이 때려잡지 말라 해. 명나라는 반명 구호가 나오는 정권은 인정 안 한다 해.”
사건은 이리하여 쿠데타 전야의 막간의 에피소드 정도로 끝난 듯 보였는데… 정도전과 한상질이 고려로 돌아온 이후, 이성계는 다시 심기일전해 쿠데타를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였던가? 조선 개국 후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보이게 되는데,
“그까이 거 명나라 떼놈들이 계속 시비 걸면 한번 엎어버립시다! 조선 애들이 원래 깡다구 빼면 시체 아닙니까?”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명나라에서는 부랴부랴 사신을 급파하게 되는데….
“잘 들으라 해, 이인임의 아들인 이성계… 너 그러면 안 된다 해. 딱 보니까 너 왕 하면 안될 놈 같다 해. 만약 더 까불면 확 엎어버린다 해!”
명 태조의 선전포고였다. 이때 조선조정은 발칵 뒤집혀졌는데, 선전포고도 선전포고 였지만, 이성계의 아빠가 이인임이라는 말에 더 기겁하였던 것이다.
“누굴 개호로 자식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나! 왕 가오가 있지. 어디, 명나라 사신 잘들어…. 툭 까놓고 말할게. 우리 명나라 쳐들어갈 생각 없거덩? 그거 내가 보장할게. 그런데 말야 내가 기분이 상당히 껄적지근한데, 내 아부지가 이인임이라고? 이 자식들이 말야. 누굴 족보 없는 놈 만들 일 있어? 그거 잘못된 거거덩? 울 아부지 이름은 이 자字 춘字 되시는 분이거덩? 이자춘 말야… 일단 이거부터 고쳐라. 알았지?”
과연 조선은 이성계의 아버지를 이인임에서 이자춘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초특급 대하 울트라 역사 사극 ‘국운(國運)을 걸고 싸운 족보전쟁!’은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
‘오두가단 차발불가단(吾頭可斷此髮不可斷)’이란 말…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구절이다. 단발령에 항의하는 최익현의 상소문 중 가장 유명한 대목이 아니던가? 이 구절과 함께 쌍으로 나오는 것이 효경의 ‘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훼상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毁傷孝之始也)’라는 구절이다. 이 말인즉슨 효도의 시작은 제 몸을 아끼는 것부터인데, 어찌 부모가 물려준 몸을 함부로 해한다는 것인가? 그러니 내 목을 칠 수는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절대 자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최익현의 상소문을 발췌해 국정교과서에 싣고, 이걸 배우던 그때 우리도 효도하기 위해 머리를 자를 수 없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국어선생님께 말하다 한대 맞았던 기억… 독자 여러분도 한번쯤 보거나, 듣거나, 행했을 것이다. 자, 이 대목에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그럼,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상투를 틀기만 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을까?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머리카락에 관한 이야기다.
“흐미 더운 거… 삼복도 다 지나갔는데, 뭔 날씨가 이리도 덥댜? 나사인지, 너트인지 하는 데서 100년 만에 더위가 온다고 설레발친 게 사실인가 봐.”
“울나라 기상청은 아니라고 하던디….”
“어이구… 그나저나 이노무 상투를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네. 날도 더워 죽겠구먼, 이게 무슨 짓이래? 우리가 무슨 로커도 아니고 말야… 머리를 이렇게 길으니 머리통이 완전히 압력밭솥이야. 홍진사, 너는 좋겠다. 머리가 대머리라… 얼마나 좋냐? 시원하겠다. 바람 잘 통하겠다. 나는 머리에 땀띠 나게 생겼어.”
“이 자식이… 너 인마 지금 가진 자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거냐? 누군 대머리고, 누군 머리카락 있다 이거지? 야, 이 자식아. 나는 머리 안 시원해도 좋거든? 머리에 땀띠가 나도 머리카락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10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에 상투 튼 양반네들은 머리에 스팀 청소기를 하나씩 달고 사는 꼴이었다. 이런 더위에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대머리 아저씨들이었는데, 대머리들은 원래 주변머리를 가지런히 말아 올려서 정수리 부분에다가 상투를 틀었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대머리가 더 유리했던 것인데,
“정 더우면, 어디 가서 탁족이나 하면서 지내던가.”
“지금 탁족이 문제야? 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 머리통이 노랗게 익으려 하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부득불 상투머리를 고집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상투머리를 고집하긴 하였다. 문제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것인데,
“어이 박생원, 박씨 아저씨… 너 ‘패션조선 21’ 이번호 안 봤냐?”
“패션조선21? 넌 패션잡지도 보냐?”
“하, 이 자식 봐라… 사랑받는 현대 선비족이 되기 위해서는 인마 패션은 기본이야… 베이직, 스펠링 불러줘? 이번 여름 특집호에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배코친 상투머리’가 나왔잖아! 나야 대머리… 아니, 머리숱이 적은 놈이라 상관없지만, 너처럼 머리숱 많은 놈은 꼭 봐야 하는 거잖아 인마!”
“배코 친다고? 배코가 뭐야? 배에 코가 달렸어?”
“이 자식이 패션 트렌드에 대해선 아예 꽝이구먼? 올여름 최고 유행하는 지단 스타일 머리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 지단도 불란서 국내에 복귀한 마당에, 네가 지금 지단 스타일 배코 상투를 모르면 그게 말이 되냐?”
“야이 자식아 좀 알아 드시기 쉽게 씹어서 이야기 해주면 안 되냐? 패션잡지 하나 보고 되게 생색이야.”
“하, 너 그럼 지금까지 진짜 오리지널 상투를 하고 다닌 거였어? 얼씨구 진짜네? 진짜 상투네?”
“상투에 진짜 상투가 있고, 가짜 상투가 있냐?”
“야 인마, 보통 뚜껑 까고 상투 틀잖아! 속알머리 박박 밀어내고…그게 배코 치는 거잖아! 그런 다음에 주변머리 돌려서 상투를 트는 거잖아.”
“… 진짜냐?”
“너, 바보 아냐? 이 더위에 그럼 쌩으로 상투를 그대로 트냐? 괜히 지단이 속알머리 없는 머리로 돌아다니는 지 아냐? 다 그게 깊은 뜻이 있는 거야 인마.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다들 속알머리는 파고, 주변머리 올려서 상투 틀었을 거다!”
7년을 끌었던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끝을 맺은 조선의 조정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논의하게 이르렀다.
“아, 그 빠박이들… 아니, 중… 아니 스님들 말이죠. 장난 아니게 잘 싸우던데요? 괜히 소림사가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그렇죠? 그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승군(僧軍) 불러다가 성을 쌓을 정도였으니까….”
“그뿐입니까? 사명대사는 왜놈들 나라로 건너가 풍신수길의 뒤를 이은 덕천가강과 협상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덤으로 조선 백성 3,500명도 데려오고… 빠박이… 아니 중… 아니 스님들 아니었으면 조선은 절딴이 나도 진작에 절딴이 났을 겁니다.”
이런 우호적인 평가 덕분에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조선의 불교계는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게 되었다.
“우리가 임진왜란 때 얼마나 날렸는데… 조정 놈들, 양반 놈들 다 도망가 있는 동안 불교계가 안 일어났다면 조선은 이미 거덜났다니까!”
“이제 우리 불교계도 큰소리치면서 사는 거야? 흑흑… 정말 길고 긴 200년이었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만,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 아니 중답게 살아갈 수 있겠다.”
조선 불교계가 이런 김칫국(?)을 마시던 그때, 조정에서는 전혀 다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바로 ‘승병 활용을 위한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그것이었다.
“에또, 그래설라무네… 지난 임진년과 정유년의 난리 때 빠박이들… 아니 중들이 나서서 세운 공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런 중들의 전투력을 발견한 이상, 이걸 놀려먹기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전투병이 없어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국인데, 이런 애들을 놀린다는 거, 이거 국가적 손실입니다!”
“야~병조판서, 너 간만에 개념 충만한 토킹을 날리는구나. 오케이 바로 저거라니까! 저런 창의적인 발상, 아주 좋아! 자자, 다들 중들을 활용할 방안을 말해봐.”
“에, 그러니까… 중들을 상근 예비역이나 공익근무로 돌리는 건 어떻습니까?”
“어이 이조판서!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십니까? 우리나라 중들이 어디 보통 중입니까? 소림사같이 사짜 냄새 폴폴 풍기는 애들이 아니라. 100% 오리지널 전투중들이 아닙니까? 임진왜란 때 걔네들이 날고 기는 거 못봤음까? 걔네들은 무조건 철책! GOP로 때려 넣어야 합니다!”
“흠… 이런 건 어떻습니까? 원래 중들이 산이랑 친하지 않습니까? 걔네들 보면 주로 산에 짱박혀서 도닦고 앉아 있으니까, 일단 산에는 정통하죠. 임진왜란 때도 이걸 무기로 게릴라전을 펼치지 않았슴까?”
“그래서?”
“뭐…얘네들 보면, 여자도 멀리하고 맑은 공기 쐬고 지내느라 힘도 좋고 하니까, 평시 때엔 벙커나 산성 같은 전투공병의 임무를 주고, 산성 다 쌓고 나면 산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야, 그거 굿 아이디어인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 승군(僧軍)을 국가에서 먹이고, 입혀야 하는 거 아냐? 가뜩이나 재정도 쪼들리는데….”
“아이 전하~ 걔네들을 왜 먹이고 입힙니까? 걔네들 사는 데가 어딥니까? 바로 절 아닙니까? 절은 또 어디 있음까? 바로 산에 있죠.”
“이 자식이, 지금 스무고개해? 결론만 빨랑빨랑 말 안할래?”
“그러니까 중들을 방위로 만들자, 뭐 그런 취지의 발언입니다.”
“방위?”
“네, 일단 산성 쌓을 때 그 옆에 절을 만들어서 절에서 출퇴근하며 산성을 쌓고, 산성 다 쌓으면 절에서 출퇴근시키면서 산성을 방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의 뭐 손 안대고 코풀자는 시추에이션이지요.”
“야! 그거 엑설런트 한데? 바로 시행하자고!”
이리하여 조선 조정은 서울의 외곽 방어선인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증축할 때 스님들을 총동원해 산성을 쌓게 만들더니, 산성을 다 쌓자 스님들을 데려다가 성의 방어를 맡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것이 의승(義僧)이라는 승군 조직체였다. 이 의승은 전국에 있는 스님들이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교대로 산성 방어에 투입되어야 했다. 만약 이 의승에 들어가지 못하겠다면 대신 돈을 냈어야 했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근처에 절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명대사… 좋은 의미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덤으로 탄압받던 불교계의 탈출구를 모색하기 위해 거국적으로 승군을 조직하고 이끌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으니….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워도 돌아오는 건 탄압과 멸시·박해밖에 없다는 사실…. 8·15 광복절을 맞이한 독립군들의 심정이 바로 이러하지 않았을까?
조선 시대 스님들의 생활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었으니, 바로 ‘동냥질’이라는 말이다. 양반들에게 수탈당하고, 국가로부터 핍박받던 스님들, 스님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원래 동냥질의 어원은 동령(動令)이라 해서, 고려시대 스님들이 나귀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작은 종을 흔들던 행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양식을 들고 나와 스님들에게 시주를 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동냥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거 참, 먹고 살기는 힘들고, 나라에서는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어쩔 수 없군…. 일단 비구니들은 방물장수 외판원으로 컨셉을 바꾸고, 힘쎈 남자 스님들은 두부를 만들던가, 짚신을 엮던가, 정 안되면 종이를 만들어서 팝시다.”
이리하여 비구니들은 화장품과 악세사리를 들고 민간으로 넘어와 방문판매 외판원이 되어야 했고, 남자 스님들은 팔자에도 없는 제지업과 제화업, 식품업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기’였었던 것이다.
자, 문제는 이런 ‘고난의 행군기’가 좀처럼 지나가질 않았다는 것인데,
“이조판서 들었소? 요즘 민간의 아낙들이 절을 무슨 캬바레 들락거리듯이 들어간답디다.”
“아니 이런, 어느 절이 그렇게 물이 좋답니까?”
“이조판서!”
“아…농담, 조크였소, 조크. 음, 그런데 아낙들이 절을 들어가는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이조판서! 생각을 해보시오. 아낙들에게 중문 밖에도 나가지 말라고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여편네들이 저 깊고 깊은 산사(山寺)로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소?”
“허면?”
“절에 불공드리러간다면 웬만하면 집에서 눈감아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그러는데….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불공드리러 갔다가, 남의 씨를 받아서 내려오면 이게 무슨 개스런 상황이요?”
“음, 생각해 보니 그럴수도 있겠구료. 하긴 10년 동안 태기가 없다가, 이번에 우리 손주 며느리도 불공을 드리러 갔다 오더니 덜컥 임신이 되어서…가만! 뭐야 그럼 이거!”
이리하여, 조선시대 ‘경제육전’에는,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은 곧 실절(失節)하여 정조를 잃는 것으로 규정한다!” 라며, ‘절=퇴폐업소’라는 등식을 공식화 하였는데, 경제육전의 뒤를 이어 경국대전에서는 이를 명문화 하였으니, 바로 상사금지법(上寺禁止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말야, 절에 올라가지? 올라가면 무조건 장 100대야! 맷집 좋다고 자부하는 아줌마는 걍 미친 척 하고 올라가! 네들 맷집이 쎈 지, 몽둥이 탄성이 쎈 지 한번 시험해 볼 테면 시험해 봐!”
여성들이 어떤 존재들이었던가? 조선시대 불교 신도들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그때, 여성신도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이 상사금지법은 당시 불교계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되었으니,
“쥐도 도망갈 구멍은 파놓고 몰아야지! 지금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
그랬다. 조선 불교계 거의 문 닫기 직전이었다. 바로 이때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었다.
“왜놈들이 동래성과 부산성을 함락하고 곧장 서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답니다!”
“신립장군이…신립장군이…패했답니다.”
“임금님이 몽진(蒙塵)길에 올랐답니다!”
“경상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답니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전황(戰況)을 들으며, 불교계의 거두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머리를 굴리게 되었으니,
“야야, 나라가 절딴 나게 생겼는데 우리가 이렇게 불경이나 외우고 있을때냐? 나라가 있은 다음에 종교가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우리한테는 고려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승군(僧軍)이라는 전통도 있잖아.”
“대사님, 근데…우리가 궂이 나서야 합니까? 맨날 중대가리니, 문어대가리니, 빠박이니 하면서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기껏 나라 찾아 줘봤자. 양반들만 좋은 일 해주는 것 아닙니까!”
“하…이 자식들, 개념을 아예 바겐세일 해 버렸구만. 야이 자식아! 일단 나라가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있는 거야 임마. 나라가 뭘 해줄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나라에 뭘 해줬을까를 생각해 보라는 말도 있잖아 이 자식들아! 그리고, 우리의 원래 목적이 뭐냐? 중생을 구제하는 거 아냐 이 자식아! 중생들이 지금 왜놈들 손에 개죽음을 당하는데, 당장 저 중생들을 구제하는 게 우리의 당면과제 아니겠어? 그리고말야, 만약에 우리가 나서서 전쟁에 이긴다 치자, 양반들이 우리를 예전처럼 그렇게 핍박하겠어? 지들도 우리 덕에 나라 되찾게 되었다는 걸 알면 예전처럼 함부로 우리를 굴리지 못할 거야. 안 그래?”
이리하여 전국 각지에 있던 명산고찰의 스님들이 대거 집결해 ‘승군(僧軍)’을 조직하기에 이르렀으니, 일단 절이란 것이 산에 있었던 고로, 스님들 체력 하나는 끝내줬었고, 산을 배경으로 자라났고, 생활했던 고로 산세에 익숙하였던 것이다. 이런 전차로 사명대사를 위시한 승군들은 산을 의지해 게릴라전을 펼쳤고, 왜군들을 상대로 막대한 전과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봐봐, 된다니까! 우리의 전술은 히딩크식의 체력축구…아니 체력전투다! 홈구장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서 체력으로 계속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다! 왜놈들을 최대한 압박한 다음에 미드필더부터 장악해 들어가는 거야!”
임진왜란 내내 승군(僧軍)들은 특유의 체력과 산을 배경으로 한 빨치산 식 전술로 왜군들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이는 임진왜란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7년에 걸친 전란은 끝이 나게 되었는데…과연 스님들은 그들의 바램처럼 더 이상 핍박받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인가? 초특급 대하 울트라 종교사극 ‘사명대사의 실수(?)’는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