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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 젊은 화가가 방란장이란 카페를 차려 문인인 친구들의 도움과 성원을 받아 가며 영업을 했으나 점점 장사가 되지 않아 빚만 쌓이고 여급 미사에에게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1930년대 한국 예술가의 가난과 무기력을 잘 보여 주고 있는 「방란장주인」에게서 가난과 무기력이 상호 원인이요 결과가 되는 심각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이렇듯 심각한 상황은 마라톤 문장을 만났을 때 적나라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고 박태원은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문장이 끝날 때까지 단 하나의 문장으로 되였다는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 芳 蘭 莊 主 人 》
- 朴 泰 遠
그야 주인의 직업이 직업이라 결코 팔리지 않는 유화(油畵) 나부랭이는 제법 넉넉하게 사면 벽에가 걸려 있어도, 소위 실내장식이라고는 오직 그뿐으로, 원래가 삼백 원 남짓한 돈을 가지고 시작한 장사라, 무어 찻집답게 꾸며 보려야 꾸며질 턱도 없이, 다탁과 의자와 그러한 다방에서의 필수품들가지도 전혀 소박한 것을 취지로, 축음기는 자작(子爵)이 기부한 포터블을 사용하기로 하는 등 모든 것이 그러하였으므로, 물론 그러한 간략한 장치로 무어 어떻게 한밑천 잡아 보겠다든지 하는 그러한 엉뚱한 생각은 꿈에도 먹어 본 일 없었고, 한 동리에 사는 같은 불우한 예술가들에게도, 장사로 하느니보다는 오히려 우리들의 구락부와 같이 이용하고 싶다고 그러한 말을 하여, 그들을 감격시켜 주었던 것이요, 그렇기에 자작은 자기가 수삼 년간 애용하여 온 수제형 축음기와 이십여 매의 흑반 레코드를 자진하여 이 다방에 기부하였던 것이요, 만성(晩成)이는 또 만성이대로 어디서 어떻게 수집하여 두었던 것인지 대소 칠팔 개의 재떨이를 들고 왔던 것이요, 또 한편 수경(水鏡) 선생은 아직도 이 다방의 옥호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 그의 조그만 정원에서 한 분의 난초를 손수 운반하여 가지고 와서 다점의 이름은 방란장(芳蘭莊)이라든 그러한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의하여 주는 등, 이 다방의 탄생에는 그 이면에 이러한 유의 가화미담이 적지 않으나, 그러한 것이야 어떻든, 미술가는 별로 이 장사에 아무러한 자신도 있을 턱 없이, 그저 차 한 잔 팔아 담배 한 갑 사먹고 술 한 잔 팔아 쌀 한 되 사먹고 어떻게 그렇게라도 지낼 수 있었으면 하고, 일종 비장한 생각으로 개업을 하였던 것이, 바로 개업한 그날부터 그것은 참말 너무나 뜻밖의 일로, 낮으로 밤으로 찾아드는 객들이 결코 적지 않아, 대체 이곳의 주민들은 방란장의 무엇을 보고 반해서들 오는 것인지, 아무렇기로서니 그 조금도 어여쁘지 않은, 그리고 또 품도 애교도 없는 미사에 하나를 보러 온다든 그러할 리가 만무하여, 참말 그들의 속을 알 수 없다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새삼스러이 너무나 간소한 점 안을 둘러보기조차 하였던 것이나, 그것은 어쩌면 자작이 지적하였던 바와 같이, 이 지나치게 소박한 다방의 분위기가 도리어 적지않이 이 시외 주민들의 호상(好尙)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것도 분명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모두들 그럴 법하게 고개를 끄떡이었고, 하여튼 무엇 때문에 객이 이 다방을 찾아오는 것이든, 한 사람이라도 더 차를 팔아 주는 데는 아무러한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턱 없이, 만약 참으로 이 동리의 주민들이 질박한 기풍을 애호하는 것이라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를 털어서 상보 한 가지라도 장만한다든 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 화가는 첫달에 남은 돈으로 전부터 은근히 생각하엿던 것과 같이 다탁(茶卓)에 올려놓을 몇 개의 전기 스탠드를 산다든 그러지는 않고, 그날 밤은 다 늦게 가난한 친구들을 이끌어 신주쿠로 스키야키를 먹으러 갔던 것이나, 그것도 이제 와서 생각하여 보면 역시 한때의 덧없는 꿈으로, 어이 된 까닭인지 그 다음달 들어서부터는 날이 지날수록에 영업 성적이 점점 불량하여, 장사에 익숙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새삼스러이 당황하여 가지고, 어쩌면 이 근처에 끽다점이라고는 없다가, 하나 처음으로 생긴 통에 이를테면, 일종 호기심에서들 찾아왔던 것이, 인제는 이미 물리고 만 것인지도 모르겟다고, 만약 그러하다면 장차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그들이 채 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기 전에, 그곳에서 상거(相距)가 이삼십 칸이나 그밖에 더 안되는 철로 둑 너머에가, 일금 일천칠백 원여를 들였다는 동업 '모나미'가 생기자 방란장이 받은 타격은 자못 큰 바가 있어, 그 뒤부터는 어떻게 한때의 농담이 그만 진담으로, 그것은 참말 한 개의 끽다점이기보다는 완연 몇 명 불우한 예술가들의 전용 구락부인 것과 같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돈 없는 몸으로서 모나미와 호화로움을 다툴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래 세상 일이란 결국 되는 대로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라고, 그대로 그래도 이래저래 끌어 온 것이 어언간 2년이나 되어, 속무(俗務)에 어두운 자작 같은 사람은, 하여튼 2년이나 그대로 어떻게 유지하여 온 것이 신통하다고 이제 그대로만 붙들고 앉았으면 당장 아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러한 말을 하기조차 하였던 것이나, 근래에 이르러서 이 다방에 빚쟁이들의 내방은 자못 빈번하여, 자기의 그 동안의 부채라는 것이, 자기 자신 막연하게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깨닫고, 비로소 아연한 요즈음의 그는, 아무러한 낙천가로서도 어찌하는 수 없이, 곧잘 자리에 누워 있는 채, 혼자 속으로 모나미의 하루 수입이 평균 이십 원이나 그렇게는 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사실일 것이나, 자기는 물론 그렇게 많은 수입을 바라는 것은 아니요, 더도 말고 하루에 오 원씩만 들어온 다면 삼오는 십오, 달에 일백오십 원만 있다면, 그야 물론 옹색은 한 대로, 그래도 어떻게 이대로 장사는 하여 가며, 자기와 미사에와 두 식구 입에 풀칠은 하겠구만서도, 아무리 한산한 시외이기로 그래도 명색이 다방이라 하여 놓고, 하루 매상고가 이삼 원이나 그밖에 더 안되니, 그걸 가지고 대체 무슨 수로 반년이나 밀린 집세며, 식료품점 기타에 갚을 빛이며, 거기다 전깃값에, 와사(瓦斯)값에, 또 미사에의 월급에, 하고, 그러한 것들을 모조리 속으로 꼽아 보노라면 다음은 으레 쓰디쓰게 다시는 입맛으로, 참말이지 아무러한 방도라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방란장의 젊은 주인은 저 모르게 엄숙한 표정을 지어도 보는 것이나, 그러면 방도는 대체 무슨 방돈고 하고, 늘 하는 모양으로 잠깐 동안은 숨도 쉬지 않고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보아도, 물론 이제 이르러 새삼스러이 머리에 떠오를 제법 방도라 할 방도가 있을 턱 없이, 문득 뜻하지 않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온갖 빚쟁이들의 천속한 얼굴에, 그는 거의 순간에 눈살을 찌푸리고서, 누구보다도 제일에 그 집주인놈 아니꼬워 볼 수 없다고, 바로 어제도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남의 점에가 버티고 앉아, 무슨 수속을 하겠느니 어쩌느니 하고, 불손한 언사를 희롱하던 것이 생각나서, 무어 밤낮 밑지는 장사를 언제까지든 붙잡고 앉아 무어니무어니 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아주 시원하게 찻집이고 무어고 모두 떠엎어 버리고서 내 알몸 하나만 들고 나선다면, 참말이지 만성이 말마따나, 하다못해 시나소바(중국식 국수) 장수를 하기로서니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느냐고, 그는 거의 흥분이 되어 가지고 얼마 동안은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골몰이었으나, 사실은 말이 그렇지, 그 것도 역시 어려운 노릇이, 혹 자기 혼자라면 어떻게 그렇게라도 길을 찾는 수가 없지 않겠지만, 그러면 그렇게 한 그 뒤에, 돌아갈 집도, 부모도, 형제도, 무엇 하나 가지지 않은 미사에를 대체 자기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고, 하고,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면, 그는 그만 제풀에 풀이 죽어, 사실이지 이 미사에 문제를 해결하여 놓은 뒤가 아니면, 아무러한 방도도 자기에게는 결코 방도일 수가 없다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만한 한숨조차 그의 입술을 새어 나오는 것도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닌 것으로, 원래가 수경 선생집 하녀로 있던 미사에를, 어차피 다방에 젊은 여자가 한 명은 필요하였고, 기왕 쓰는 바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역시 지내 보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좋을 게라고, 그래 사실은 어느 모로 뜯어보든 다방의 여급으로는 적당치 않은 것을, 그 늙은 벗이 천거하는 그대로, 십 원 월급을 정하고 데려다 둔 것이 정작 다방의 사무라는 것은 분망치 않아, 그렇다고 주인 편에서는 아무러한 암시도 한 일은 없었던 것을, 주부도, 하녀도, 있지 않은 집안에, 어느 틈엔가, 저 혼자서 모든 소임을 도맡아 가지고, 아직 독신인 젊은 주인의 신변을 정성껏 돌보아 주는 데는, 정말 미안스러운 일이라고도, 또 고마운 일이라고도, 마음 속에 참말 감사는 하면서도, 지나치게 가난한 몸에 뜻 같이 안 되는 장사는,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어, 그래 정한 월급을 세 갑절 하여 미사에의 노역에 사례하리라고는 오직 그의 마음속에서뿐으로, 그도 그만두고 그나마 십 원씩이나 어쨋든 치러 준 것도 다방을 시작한 뒤 겨우 서너 달이나 그 동안만의 일이요, 그 뒤로는 그저 형편 되는 대로 혹 이 원도 집어 주고 또 혹 삼 원도 쥐어 주고, 그리고 나머지는 새 달에, 새 달에, 하고 온 것이, 그것도 어느 틈엔가 이 년이나 되고 보니, 그것들만 셈쳐 본다더라도 거의 이백 원 돈은 착실히 될 거이나,대체 아무리 순박한 시골 처녀라고는 하지만서도, 어떻게 생겨난 여자기에, 그래도 금전 문제는 부자지간에도 어떻다고 일러 오는 것을, 이제까지 그것을 입밖에 내어 단 한 번 말하여 보기는 커녕, 참말 마음속으로라도 언제 잠시 생각하여 보는 일조차 없는 듯싶어, 그저 한결같이 주인 한 사람만을 위하여 진심으로 일하는 것이, 젊은 예술가에게는 일종 송구스럽기조차 하여 언젠가는 이내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어디 다른 데 일자리를 구하여 볼 마음은 없느냐고, 그러면 자기도, 또 수경 선생도, 힘껏 주선은 하여 보겠노라고, 마주 대하여 앉아서도 거의 외면을 하다시피 하여 간신히 한 말을, 우직한 시골 색시는 어쩌면 자기에게 무슨 크나큰 잘못이라도 있어, 그래 주인의 눈에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어떻게 그렇게라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인지, 순간에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원래 구변이라고는 없는 여자가, 금방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준비 아래, 한참을 더듬거리며,그저 뜻모를 사과를 하여, 경력 적은 화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놓았으므로, 그래, 그는 다시 그러한 유의 말을 미사에 앞에서 꺼내어 보지 못하고, 생각 끝에 무슨 묘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마침 목욕탕에서 그와 만났을 때, 그 일을 상세히 보고하고서, 나이 많은 이의 의견을 물었더니, 그는 또 어떻게 생각을 하고 하는 말인지, 무어니무어니 할 것이 아니라, 아주 이 기회에 둘이서 결혼을 하라고, 자기는 애초부터 그러한 것을 생각하였었고, 그리고 또 그것은 아름다운 인연에 틀림없다고, 만약 그기 직접 말을 꺼내는 것이 거북하기라도 하다면, 자기가 아주 이 길로라도 미사에를 만나 보고 작정을 하여 주마고, 혼자서 모든 일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렇게 한 바탕을 서두르는 통에, 젊은 미술가는 거의 소녀와 같이 얼굴조차 붉히고, 그것만은 한사하고 말리면서, 문득 어쩌면 수경 선생이 자기와 미사에와 사이에, 무슨 의혹이라도 가지고 그러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그러한 것에 새삼스러이 생각이 미치자, 그는 그제야 다 늦게 당황하여 가지고, 만약 인격이 원만한 수경 선생으로서도, 자기들에게 그러한 유의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동리의 경박한 무리들의 입에는,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별의별 소리가 모두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또다시 얼굴이 귓바퀴가지 빨개졌던 것이나, 이제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설혹 그러한 말들이 생겨 났다더라도 그것은 어쩌는 수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 사실 젊은 남녀만 단둘이 그렇게도 오랜 동안을 한집안에가 맞붙어 살아오면서 그들의 순결이 그래도 유지되었으리라고는, 그러한 것을 믿는 사람이 어쩌면 도리어 괴이할지도 모르나 역시 사실이란 어찌하는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혹은 자기가 미사에에게 애정이라든, 욕정이라든,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기 전에, 우선 그렇게 쉽사리는 갚아질 듯싶지 않은 너무나 큰 부챌ㄹ 그에게 졌던 까닭에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를 대하는 때마다 마음 속의 짐은 무거워, 그래 무슨 다른 잡스러운 생각을 먹어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나, 그러한 것이야 사실 어떻든, 이제 이르러서는 설사 그에게 지불할 그 동안의 급료 전액으 준비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치러 주었을 그뿐으루 어디로든 가라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고, 또 미사에도 그러면 그러겠노라고, 선선히 나가 버릴 듯도 싶지 않아, 생각이 어떻게 이러한 곳에까지 미치니까, 다음은 필연적으로, 그러면 대체 이 여자는, 그 자신, 자기 장래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것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고, 그는 그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았으나, 아무래도 미사에에게는 그러한 방침이니, 계획이니, 하는 거이 전혀 없는 듯도 싶어, 그러한 것은 마치 자기의 주인이나 또는 수경 선생이 가르쳐 줄 것으로, 자기는 그들이 하라는 그대로 하여 가기만 하면 그만일 것같이 어째 꼭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 그렇게 되고 보니 이것은 바로 어디 마땅한 곳이라도 있어, 그의 혼처를 정하여 준다든 그러기라도 하지 않으면, 혹은 한평생을 자기가 데리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될런지도 모르겠다고, 사태는 뜻밖으로 커지어 그는 얼마동안을 아연히 천장만 우러러보았던 것이나, 문득, 만약에 미사에로서 아무런 이의도 없는 것이라 하면, 무어 일을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주 이 기호에 둘이 결혼을 하여 버리는 것이 좋지나 않을까, 그래 가지고 새로이 자기으 나아갈 길을 개척한다든 하는 밖에는 아무 다른 도리가 없지나 낳을까 하고, 언젠가 목욕탕에서의 수경 선생 말이 생각나서, 그야 미사에는 오직 소학을 마쳤을 그뿐으로, 결코 총명하지도, 어여쁘지도 않았으나,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도리어 그러한 여자가 아내로서 가장 적당한 것일지도 몰랐고, 남이야 어떻든간에 이 여자는 저어도 자기 한 사람을 능히 행복되게 하여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그는 어느 틈엔가, 미사에가 가지고 있는 온갖 미덕을 속으로 외쳐 보았던 것이나, 하지만, 그러면 자기도 그를 또한 행복되게 하여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그러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여 보았을 때, 그는 새삼스러이 그렇게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자기 자신이 느껴졌고, 어제 왔던 집주인의 자못 강경하던 그 태도로 미루어, 어쩌면 내일로라도 집을 내어놓고, 갈 곳 없는 몸이 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그러한 자기가, 잠시라도 미사에와 결혼을 하느니, 그래 가지고 어쩌느니, 하고, 그러한 꿈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이, 스스로 어이없어 픽 자조에 가까운 웃음을 웃어 보고는, 어느 틈엔가 방안이 어두워 온 것에 새삼스러이 놀라, 그제야 자리를 떠나서 게으르게 아래로 내려와 보니, 점에는 미사에가 혼자 앉아 있을 뿐으로, 오늘은 밤에나 들를 생각인지 자작도, 만성이도, 와 있지 않은 점 안이 좀더 쓸쓸하여, 그는 세수도 안 한 채, 그대로, 미사에에게 단장을 내어 달래서, 그것을 휘저으며, 황혼의 그곳 벌판을 한참이나 산책하다가, 문득 일주일 이상이나 수경 선생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 생각나서 또 무어 소설이라도 시작한 것일까, 하고, 그의 집으로 발길을 향하며, 문득 자기가 그나마 찻집이라고 붙잡고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이미 완전히 게으름에 익숙하고, 화필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아니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그리다운 그림을 단 한 장이라도 그리지는 못할지도 모르겟다고, 그러한 자기 몸에 비겨, 무어니무어니 하여도, 우선 의식 걱정이 없이, 정돈된 방 안에 고요히 있어, 얼마든 자기 예술에 정진할 수 있는 수경 선생의 처지를 한없이 큰 행복인 거나 같이 부러워도 하였으나, 그가 정작 늙은 벗의 집 검은 판장 밖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또 어찌 된 까닭인지, 그의 부인이 히스테리라고 그것은 소문으로 그도 들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자기의 두 눈으로 본 그 광경이란 참으로 해괴하기 짝이 없어, 무엇이라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며, 무엇이든 손에 닿는 대로 팽개치고, 깨뜨리고, 찢고, 하는 중년 부인의 광태 앞에 수경 선생은 완전히 위축되어, 연해 무엇인지 사과를 하여 가며, 그 광란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모양이, 장지는 닫히어 있어도 역시 여자의 소행인 듯싶은 그 찢어지고, 부러지고, 한 틈으로 너무나 역력히 보여, 방랑장의 젊은 주인은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거의 달음질을 쳐서 그곳을 떠나며, 문득,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그의 전신에, 느꼈다......
(『시와 소설』, 19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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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 그대에게 쓴 한 통의 편지 그들의 연애편지가 당신의 기억을 부른다!
흩날리는 벚꽃처럼 달콤하거나, 한잔의 투명한 소주처럼 아릿한 사랑의 추억들……
김훈, 하성란, 함정임, 마광수, 김동리, 이문재, 박상우 등
우리 시대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연애편지를 공개한다
소설가이자 문창과 교수인 김다은이 기획한 『작가들의 연애편지』는 문인들로 하여금 서랍 속에 꼭꼭 숨겨뒀던 편지를 꺼내게 하고, 서간문이란 오래되고도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실험하게 하여 ‘연애편지’라는 소중한 유산을 한자리에 모으기까지 무려 삼 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하기에 공개조차 금기시됐던 연애편지는 어렵게 세상의 빛을 본 만큼 더욱 귀하고 귀하게 읽힌다. http://cfs5.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ENNb3hAZnM1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y5qcGc=&filename=3.jpg')"> 김훈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억들” (pp. 197~199에서) 사랑은 형체가 없어, 정의할 수도 한데 가둘 수도 없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 말하고, 언제부터 사랑이 시작됐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소설가 김훈은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의 기록을 들췄다. 오랜 시간 품어왔으나 여전히 홀연한 사랑,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http://cfs4.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ENNb3hAZnM0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C5qcGc=&filename=0.jpg')">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마을의 곡릉천(曲陵川)은 파주 평야를 구불구불 흘러서 한강 하구에 닿는다. 여름내 그 물가에 나와서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생각의 나라에는 길이 없어서 생각은 겉돌고 헤매었다. 생각은 생각되어지지 않았고, 생각되어지지 않은 생각은 아프고 슬펐다.
바다는 멀어서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이 그 물가에 와 닿는다. 김포반도와 강화도 너머의 밀물과 썰물이 이 내륙 하천을 깊이 품어서 양안(兩岸)의 갯벌은 늘 젖어 있다. 밀물을 따라서 내륙으로 향하는 숭어떼들이 수면 위로 치솟고 호기심 많은 바다의 새들이 거기까지 물을 따라 날아와 갯벌을 쑤신다. 그 작은 물줄기는 바다의 추억으로 젖어서 겨우 기신기신 흐른다. 보이지 않는 바다가 그 물줄기를 당겨서 데려가고 밀어서 채우는데, 물 빠진 갯벌은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서정주의 「격포우중」에서)와도 같이 젖어서 질퍽거린다. 저녁 썰물에 물고기들이 바다로 돌아가고 어두워지는 숲으로 새들이 날아가면 빈약한 물줄기는 낮게 내려앉아 겨우 이어가는데, 먼 것들로부터의 기별은 젖은 뻘 속에서 질척거리면서 저녁의 빛으로 사윈다.
가을은 칼로 치듯이 왔다. 가을이 왔는데, 물가의 메뚜기들은 대가리가 굵어졌고 굵은 대가리가 여름내 햇볕에 그을려 누렇게 변해 있었다. 메뚜기 대가리에도 가을은 칼로 치듯이 왔다. 그것들도 생로병사가 있어서 이 가을에 땅 위의 모든 메뚜기들은 죽어야 하리. 그 물가에서 온 여름을 혼자서 놀았다. 놀았다기보다는 주저앉아 있었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벌은 가르쳐 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었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사랑’의 메모장을 열어보니 ‘너’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언제 적은 글자인지는 기억이 없다. ‘너’ 아랫줄에 너는 이인칭인가 삼인칭인가, 라는 낙서도 적혀 있다. ‘정맥’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다. ‘너’와 ‘정맥’을 합쳐서 ‘너의 정맥’이라고 쓸 때, 온몸의 힘이 빠져서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름’이라는 글자 밑에는 이름과 부름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라고도 적혀 있다. 치타, 백곰, 얼룩말, 부엉이 같은 말을 걸 수 없는 동물들의 이름도 들어 있다. 이 안쓰러운 단어 몇 개를 징검다리로 늘어놓고 닿을 수 없는 저편으로 건너가려 했던 모양인데, 나는 무참해서 메모장을 덮는다. 하성란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pp. 15~17에서) 때로 연애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오는 태풍에 마주한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위태롭다. 태풍이 휘돌고 간 자리는 난장처럼 심란하고, 멍울처럼 뼈아프다. 시간이 정지한 고궁 안에서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는 그녀는 시간을 놓쳐버린 여린 아이와 같다. 돌풍처럼 스쳐간 그에게 끝내 이별을 고하는 소설가 하성란의 연애편지. 지금, 당신의 사랑은 태풍이 지나가는 위태로운 순간에 처해 있진 않습니까!
http://cfs5.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ENNb3hAZnM1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C5qcGc=&filename=0.jpg')"> H씨. H씨는 왜 느닷없이 내게 그런 편지를 보낸 거냐고 꾸중조로 저에게 말했지만 그냥 그것은 연상 작용처럼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냥 어느 날 저녁 H씨가 몹시도 보고 싶었습니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지난주 내내 제 방은 태풍의 전조들이 보였지요. 어떤 사람의 경우 열정이니 정염이니 하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리미로 잘 다려 옷걸이에 걸어놓은 듯한 세탁물이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의 사랑은 상상되지 않습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이런저런 일로 띄엄띄엄 만날 때마다 H씨도 저에게 그런 인상을 받았을 줄 압니다. 저의 경우 열정과 정염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겸연쩍어 속에 담고 있기에 너무도 불편합니다. 제 몸에 난 마개들을 열고 터져 나올 듯합니다. 장난이라니요, 제가 왜 H씨를 상대로 장난을 하겠습니까.
돌풍은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부딪히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어디선가 읽은 듯합니다. 돌풍이 분 시간은 기껏해야 삼사 분, 오륙 분. 그 짧은 사이에 지난밤의 평화는 깨졌고 모두가 잠든 사이에 바람이 누군가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를 채갔습니다. 그런 대기 변화처럼 제 심정을 읽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잠자는 사이, 제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H씨의 답장은 너무도 냉랭했습니다. 짧은 네 줄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혹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하고 행간에 숨긴 마음은 없었나. H씨는 장난을 친 어린아이를 나무라는 듯 말하더군요. 흙장난 하지 마.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났어요. 그러면서 H씨는 몇 해 전 여름, 같이 산에 가자고 했던 그 말은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편지를 맺었습니다.
어제 혼자 덕수궁 뜰을 걸었습니다. 해질녘이라 사위는 어둑신해졌지요.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어린 제가 보였습니다. 덕수궁은 어릴 적부터 자주 오던 곳입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을 뿐더러 중학교 문예반 선생님은 토요일이면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셨더랬지요. 토요일이면 덕수궁 잔디밭에는 젊은 연인들로 꽉 차고는 했지요. 그때는 그렇게 넓던 곳이 이제는 너무도 좁아 뜰을 두 번이나 돌았는데도 마음이 정리되질 않았습니다. 소쿠리처럼 봄바람이 제 몸을 통과했지요.
뉴스에서 돌풍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돌풍은 상가의 간판을 떨어뜨리고 가로수를 뿌리째 뽑아놓았다는군요. 하지만 어디에도 돌풍에 날아간 강아지 이야기는 없네요.
토요일 한 시. 창덕궁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창덕궁은 덕수궁보다 넓으니 걷다보면 이 마음이 진정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상우 “첫 번째 연애편지에 대하여” (pp. 21~22, pp. 28~29에서) 거뭇한 코밑과 굵직한 저음, 변해가는 몸처럼 어느 날부터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교실로 들어선 젊고 아름다운 여선생님만 보면, 왜 그리 침은 바짝바짝 마르고, 가슴은 선뜩선뜩 무너지는지……. 중고등학교 시절, 여선생님을 첫사랑으로 품었던 남학생은 사뭇 많을 것이다. 열다섯의 나이에 사랑을 느낀 여선생님께 삼십 년의 세월이 흘러 진심을 고백하는 소설가 박상우의 편지. 선생님, 지금도 그때처럼 고운 모습이신지요? 정말 보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께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제 나이 열여섯에 선생님께 보낸 넉 장짜리 장문의 편지가 저에게는 지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쓴 연애편지였습니다. 그것을 쓰던 당시의 설레던 감정이 엊그제의 일처럼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목이 바작바작 타들어가고, 뺨과 귓불이 달아올라 편지를 다 쓰고도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때…… 그게 벌써 삼십 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가 다니던 시골중학교 영어교사로 첫 발령을 받아오시던 때가 1972년 3월이었습니다. 그해 제 나이는 열다섯이었고 선생님은 스물셋이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아 온 선생님 모습을 뵙고 저는 당시에 주가를 날리던 올리비에 허시라는 여배우를 떠올렸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밝은 표정과 긴 생머리가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흰 치아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는 모습, 가끔씩 쓸어 올리는 긴 머리를 지켜보노라면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저의 어린 가슴이 선뜩선뜩하게 무너져 내리는 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 늦은 가을 밤, 그동안 선생님과 주고받은 엄청난 분량의 편지를 하숙집 마당에서 불태우는 것으로 저는 혼자만의 첫사랑을 정리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는 더 이상 선생님과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선생님의 서울 집주소만 달랑 들고 마포구 합정동 일대를 정신없이 돌아다닌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과 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볼 때마다 혹시 홍완희 선생님 아니신가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명동의 미도파 백화점 앞길을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선생님 모습을 꿈에서 보고 깨어나 멍하니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는 웃으며 지나간 시절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과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이 저의 현실 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중학교 이 학년이었을 때 선생님께서 제 앞에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제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맹훈련을 하듯 진지한 열정으로 편지를 쓰던 경험은 오늘날 제가 소설을 쓰는 열정과 하등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제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주시기 위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동화 속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함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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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무언가 벌레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감촉이었고, 꼭 그런 움직임이었어요. 저는 순간적으로 그 비닐 주머니를 방바닥에 떨어뜨렸어요. 그러자 그것들이 스스로 비닐을 찢고 나오더군요.
네, 그것들이었어요. 저는 똑똑히 봤어요. 그것은 작은 사람들이었어요. 밀랍으로 만들어진 작은 병사들이었죠. 저마다 등에는 소총 같은 것을 둘러메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 동네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G.I. 유격대' 그 비슷한 이름의 미니어처 세트에 들어 있는 작고 단단한 병사들과 똑같이 생긴 군인들이었어요. 수없이 많았죠. 수백 명쯤 되었을 거예요. 그것들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다가 곧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방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침대 밑으로, 책상 밑으로, 싱크대 밑 어두운 구석으로.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이상한가요? 하지만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스르륵 하고 저마다 위치로 달려들어갔다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죠. 네, 그것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청동을 녹인 액체가 스며들듯이, 불을 켠 방안에서 흠칫 놀란 바퀴벌레 떼가 어둠을 찾아 달려들어가듯이, 그것들은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순간에 소리도 없이 제 방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어요.
꿈을 꾼 게 아니냐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눈앞에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차라리 꿈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나았어요. 소리도 지를 수 없었죠. 저는 아무에게도 그 일을 말할 수 없었어요. 사실 오른쪽 눈이 이렇게 변해 버린 뒤로 저는 제 주위의 사람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칫하면 그들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들은 제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제 곁에 있었고 저는 그게 고마웠습니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제 선에서 해결하고 조용히 지내는 게 좋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피로하고 약해져서 눈을 뜬 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비닐 주머니를 복도 끝 쓰레기통에 밀어 넣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다시 단단한 현실이 저를 지탱해 줄 테니까요.
하지만 꿈은 그날 밤에 찾아왔습니다.
예전에도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을까요? 분명히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꿈을 꾸지 않고 지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꾸었던 꿈이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누군가가 꿈 얘기를 하며 정말 현실 같아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고 말하면, 그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라는 자각만 밀려왔지요.
하지만 그날 밤의 꿈은 정말 선명했어요. 첫 섹스의 기억처럼, 처음으로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처럼 선명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밤새워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밤새 걷고 있었지만 지치거나 피곤하지는 않았어요. 서해였던 것 같아요. 검푸른 어둠이 주위 모든 것을 삼켜 버린 동안에는 바로 눈앞까지 철썩이며 밀려왔던 파도가, 어김없이 떠오른 아침 해가 하늘을 따스한 붉은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할 때쯤에는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선까지 밀려나 있었으니까요.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 마라톤 결승선처럼 아련하게 저만치에 있었어요. 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개펄로 들어가 질척거리는 진흙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바다의 밑바닥이 드러나 있었어요. 파도가 지나간 곳에 세월처럼 주름살이 남았더군요. 작은 조가비들이 밤새 기어간 흔적들 위로 푸른 해초들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문득 바지가 더러워졌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허리를 굽혀 뒤를 돌아보니, 역시 더러워져 있더군요. 투덜거리며 몸을 펴는데 무언가가 눈을 잡아끌었습니다.
그것은 제 바로 눈앞 개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푸른 불가사리였어요. 별처럼 다섯 갈래로 뻗어나간 다리 위에 얼굴처럼 선명하게 붉은 점들이 뿌려져 있었지요. 한쪽 다리 끝이 뒤집혀 있었어요. 말씀드리자면 저는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그 전에는 살아 있는 불가사리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었어요. 백과사전이나 TV 프로그램에서 언뜻언뜻 스치며 보았을 뿐이었죠. 처음으로 본 그 별 모양의 생명체는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워 보였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할까요. 저는 고개를 숙여 조금 더 자세하게 그것을 들여다보았죠.
그렇게 몇 분을 있었을까요. 저는 갑자기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죠. 그 미끌미끌한 생명체는 바다 밑바닥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푸르고 아름다웠어요. 그건 하늘에 있어야 하는 존재였어요. 밤이면 지상을 내려다보며 빛을 내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땅에 있었어요. 바닷물이 들어오려면 한나절을 더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슬퍼서 소리내어 울며 그 불가사리를 젖은 진흙 위에서 가만히 떼어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그것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정확한 비율로 다리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몸통 전체가 작은 단추만한 크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빛깔이 검은색으로 변했어요. 그 아름답던 푸른색은 금세 사라져 버렸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까맣게 타들어간 심지처럼 작고 단단하게 변해 버린 그것은, 더 이상 완전무결하지는 않았지만 훨씬 강해 보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것은 제 손바닥에서 천천히 움직이더니 팔을 타고 어깨를 기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저는 두려웠지만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지요. 그렇게 하면 어쩐지 불경스러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튼튼한 빨판으로 제 얼굴에 기어오른 그것은, 제 오른쪽 눈꺼풀에 매달리더니 다음 순간 눈동자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어요.
제 눈이 다시 불타오르고, 눈물이 다시 흐르고 있었습니다. 눈에서 길고 날카로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마어마한 통증이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어요. 아픔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지요.
문득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누구로부터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었어요. 문득, 저는 더 이상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살고 있었어요. 더 이상 꿈꾸지도 않고, 가슴 아프게 원하지도 않고, 실수를 하지도 않고, 미움으로 끓어올라 잠 못 드는 일도 없이 살고 있었어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요.
구체적인 무언가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저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때의 느낌을 다시 떠올려 보곤 했지만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덩어리의 생각이었어요. 술 취한 밤에 밀려드는 서러움 같은 막연함, 디테일이 없이 몇 개의 희미한 선들로만 이루어진 스케치와도 같은 문장들이었죠. 그러나 그 문장들이 저를 견딜 수 없게 했지요. 저는 불을 켜고 침대에 일어나 앉아 슬픔으로 몸을 떨며 울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을 때, 사라락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것들이 침대를 기어오르고 있었어요. 몇 시간 전 제 침대 밑으로, 책상 밑으로, 싱크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던 그것들이 어느새 다시 기어나와 있었습니다. 구보를 하는 것처럼 규칙적인 동작이었죠. 그것들은 조를 이루어 여러 방향에서 저에게 다가오고 있었어요. 저는 비명을 지르며 팔로 쓸어버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저는 쓰러졌고 그것들은 제 오른쪽 눈꺼풀에 한꺼번에 달라붙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두려웠던 건 그것들이 한꺼번에 총을 쏘아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모든 병사가 등에 소총을 둘러메고 있었으니까요. 작은 총이었지만, 제 눈을 멀게 만들기엔 충분한 무기였죠. 하지만 그러지 않더군요. 일단 눈꺼풀을 장악한 그것들은 단지 붉게 변한 제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작은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개의 작은 입술들이 저를 애무하듯 쪽쪽 빨아대며 눈물을 들이마시고 있었어요. 저는 무섭고 흥분됐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죠. 그러자 신기하게도 눈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눈물이 다 마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픈 생각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지요. 저는 이 모든 것이 아주 길게 이어지는 악몽의 한 부분인 양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점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때였습니다. 제 오른쪽 눈이 발광하듯, 발악하듯 다시 쓰라리게 아파 온 것은. 아아악! 저는 팔을 휘두르며 다시 일어나 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자 툭, 하고 무릎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제 눈에서 튀어나온 검은 불가사리였어요.
그것은 임무를 끝내고 열을 정돈하고 있던 작은 병사들 쪽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기어가더니, 그것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제 동공이라고만 알고 있던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어요. 그 작은 것은 다섯 개의 작은 다리를 한번에 모아 밀랍 병사들을 끌어안았다가, 숨이 끊어질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몸을 조이고는 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침대 시트 위에 가루처럼 부서진 밀랍 조각들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지요.
곧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전장에서 여러 해를 겪은, 숙련된 병사들이 보여주는 대형으로 그것들은 빠르게 움직였지요. 그리고 사정없이 총을 쏘아댔습니다. 탕탕탕탕탕. 총소리가 제 방을 뒤흔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달려오지는 않았지요. 아마 누군가가 들었더라도 TV를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저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그 검고 작은 생명체는 곧 죽을 것처럼 보였어요.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어요. 병사들은 수백 명이었고 물컹물컹한 그것의 몸은 총알을 막아내기에는 너무 부드러웠습니다. 사실 이미 죽어가고 있었지요. 총에 맞은 자리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검은 체액이 쏟아져 나와 흐르고 있었습니다. 곧 죽겠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이쯤에서 끝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어요. 어찌 됐건 그 검은 동물은 저를 너무나 아프게 하고 있었으니까요. 반면 병사들은 저를 위협하거나 공격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를 치료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어쩌면 저는 그 짧은 단말마의 순간에, 그것들과 약간의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네, 그것들 안에는 저와 같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요.
그러나 그 순간 꿈에서 저를 사로잡았던 그 슬픔의 감정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달콤한 아름다움처럼 제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무언가 바닷물처럼 짭조름한 것이 얼굴로 치받쳐 올랐고, 젖어 늘어진 해초처럼 연하고 미약한 것들이 심장을 휘감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조가비들이 기어가는 속도로, 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발을 치켜들어, 병사들을 밟아 부수기 시작했지요.
맨발에 따끔따끔하게 밀랍 조각들이 박히는 게 느껴졌어요. 아마도 피가 흐르고 있었겠지요. 그래도 저는 눈을 꼭 감은 채 그것들을 계속해서 밟아 없애버렸습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안도감도 밀려왔어요. 네, 그런 종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물론 전 자해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뭐랄까요, 한 명의 병사가 부서져 없어질 때마다 어쩐지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자신에 대해 말이지요.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저에게 총구를 들이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좀 당황한 것 같아 보였지요. 밀랍 얼굴들은 작아서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같은 편에게 총질을 당한 듯한 당혹감이 대열 전체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삼분의 일 정도 병력이 손실되었을 때, 그것들은 싸움을 그만두고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방 구석구석, 자신들이 기어나왔던 그 어둠 속으로 감쪽같이 다시 스며들었지요.
저는 검은 체액을 흘리며 널브러져 있는 작은 불가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지쳐 보였어요. 저는 그것을 손바닥에 쥔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것은 제 오른쪽 눈동자 속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그 뒤로도 몇 번인가 같은 일이 반복되었지요. 선생님, 제 얘기가 지루하신 건 아니겠지요? 제 눈을 보고 계시지 않으니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찌 됐건 저는 그 뒤로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졌어요. 전에는 조금도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못했던 일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고, 그럴 때마다 눈동자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쓰려 오기 시작했지요. 누군가에게 밤새워 편지를 썼던 일, 이제는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일, 저와 상관없다고 생각되어 만나지 않게 된 오랜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등을 두드렸던 일, 그리고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 시를 쓰면서도 혼자 기쁨과 충만한 만족감에 젖어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시간이 차례로 떠오르면서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눈물을 흘렸고, 그것들은 마치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제 방 구석구석의 어둠 속에서 기어나와 제 눈물을 빨아마셨고, 그럴 때마다 제 눈에서 튀어나온 검은 불가사리가 저를 대신해 그것들과 싸웠습니다. 싸움은 늘 불리했지만 이 작은 동물은 언제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요. 선생님, 불가사리에 대해 잘 아시나요? 이것들은 다리를 잘라내도 놀라운 생명력으로 곧 새로운 다리를 재생산하지요. 한번은 총에 심하게 맞아 몸이 두 조각으로 찢어져 버렸습니다. 저는 그때야말로 졌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대신, 그건 두 마리가 되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전 이렇게 양쪽 눈동자에 하나씩 검은 별을 갖게 되었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제가 함께 싸우는 일은 불가능해졌는데, 그 놀라운 병사들이 제 몸 속에 살게 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가 잠든 사이, 코와 귀를 통해 제 몸 안으로 기어들어간 것이겠지요. 눈물을 흘릴 때마다 받아마시기 위해 그것들이 기어나오는 장소는, 다름 아닌 제 코와 귀였으니까요. 상상하기 힘드시겠지만 그건 두 배로 기분 나쁘고 두 배로 고통스러운 일이랍니다.
그것들은 이제 제가 집을 떠나 있는 한나절 동안도 안심할 수 없는지, 하루 종일 제 몸 속에 함께 살며 제가 슬픔을 느끼거나 잊었던 것들을 떠올리지 않도록 감시한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저는 다시 예전의 상태로 어느 정도 돌아갔습니다. 슬픈 기억이 떠오르면 고개를 흔들어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지요. 슬픔을 하루 종일 달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는 눈물을 흘릴 테고, 그러면 다시 고통스러운 싸움이 벌어지니까요. 고통을 구태여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선생님도 아마 저였다면,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이제 저는 그것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저는 계속 살아가야 했어요. 고통은 최소한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이 검은 불가사리들은 웬만해선 제 눈에서 튀어나오지 않아요. 그저 천천히 눈동자 속에서 회전하며 저를 아프게 할 뿐이죠.
하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도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남자친구, 친구들과 직장 동료에게 저는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으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죽음에 가장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저랍니다. 그들은 모두 저를 점점 두려워했고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물론 시선은 여전히 피한 채였지요. 화를 내기도 했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충고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는 말은 모두 같았어요. '그것들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이제 그만 떼어내 버려.' 몇몇은 저를 큰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나 봐요. 제가 모르는 무언가를 그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오히려 이것들이 점점 온순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느끼기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어떻게 눈을 맞추지도 않고 그걸 알 수 있었을까요? 하여간 제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저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설명할 수가 없어요. 제가 정말 그들 모두를 죽인 걸까요? 그들의 설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기억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 많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매번 손으로 그들의 목을 졸랐다는 그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저에게는 그런 힘이 없으니까요.
제 안에는 저만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일상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작은 병사들이 있다고요. 네,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불가사리들이 제게 필요한 것만큼이나 저에게 필요한 존재들이었지요. 최선을 다해 제가 고통을 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무리 혼란스러울 때에도 이성을 잃지는 않았어요. 비록 몇 번 정신을 잃었고, 그래서 깨어나 보면 제 곁에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있긴 했지만,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기억해요. 두려웠어요. 두려워서 도망쳤죠. 위안을 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매번 같았죠. 제가 가는 곳마다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만두게 할 누군가가 필요했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그들을 죽인 건 제 눈에 들어 있는 이것들이었을까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작고 불쌍한 두 마리의 동물들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는 걸까요?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두 눈 속에 박혀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데 말이에요. 더 이상 가슴이 시려올 정도로 푸르게 빛나지도 못하고, 마치 타다 남은 심지처럼 검고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것들인데 말이에요.
제 말을 믿지 않으신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부탁드려요. 저는 어쩌면 이곳을 나가지 못할지도, 그래서 다시는 대답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답니다. 선생님, 불가사리들은 죽지 않는대요. 계속해서 다시 살아날 따름이지요. 그렇다면 저는 평생 이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저는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알고 싶어요. 다시 한 번만 제 눈을 들여다봐 주실 순 없나요? 이것들이 정말 그렇게 끔찍한 존재인지, 제가 이것들을 키우고 있었던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는지 한 번만 더 보고 말씀해 주세요. 그래 주실 순 없나요?
<끝>
출처: 조인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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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가사리- 지하
…여기 앉으면 되나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기분이 어떠냐고요? 네, 아주 좋아요. 왜냐하면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났으니까요. 그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선생님이 이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시라고요. 자기들끼리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들은 제가 듣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지만요. 제가 미쳤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어제는 제 앞에서 그러더군요. 만약 정신이상으로 판명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사형, 하늘이 도우셔서 운이 엄청나게 좋아도 최소한 종신형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선생님이 저를 미쳤다고 판정해 주시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인가 봐요. 참, 우습죠. 그러지 못하면 저는 죽을 수도 있다니. 미친 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니.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잘 알아요. 지금 노트에 '다어증'이라고 쓰고 계시죠? 말이 정상보다 훨씬 많아지는 증상 말이에요. 대학교 때 심리학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서 대충 알거든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지금 전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한 상태예요. 보통 이런 상황에선 미친 사람들은 의사가 무슨 질문을 해도 잘 대답하지 않죠? 눈을 맞추지도 않고, 자기 얘기를 하지도 않죠? 아뇨, 이건 영화에서 본 거예요. 하하. 그러면 의사가 말하잖아요. 이거 보세요 누구 씨,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열어야 해요.
하지만 전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니, 저는 누구보다 할 얘기가 많아요. 미친 사람의 불안 때문에 나타나는 다어증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할 수 없지만 저는 미치지 않았고, 미치지 않은 상태로 살아서 이곳을 나가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제 얘기를 선생님이 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의 마지막 희망이시잖아요.
잠깐만요.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아주 중요한 부탁이에요. 선생님, 잠깐만 제 눈을 똑바로 봐 주시겠어요? 그렇게 피하지 마시고요. 조금만 더요.
네, 됐어요. 지금 본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사실은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만 지금 대답을 듣고 싶진 않아요. 제 얘기가 끝나면, 그때 말씀해 주세요. 다시 말하는데 부탁드려요. 잊지 말아 주세요.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네, 그 일이오. 그 일이 일어난 건 1월 초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어요. 춥고 건조한 날이었죠. 십 년 만에 찾아온 따뜻한 겨울이라고 언론에서 연신 보도를 해댄 지 한 달이나 됐지만 추웠어요. 날씨가 발악을 하고 있었죠. 마치 헤어진 연인에게 자신이 잊혀졌다는 걸 인정 못 하는 젊은 여자처럼요.
춥고 건조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눈이 아파 왔을 때 콘택트렌즈 부작용이 또 도졌구나 하고 생각했죠. 오른쪽 눈에 빡빡한 이물감이 처음으로 느껴졌을 때 말이에요. 잊을 만하면 일 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일시적인 고질병이었거든요. 남자친구와 영화관에 들어가 아홉시 반 영화표를 예매했는데 눈이 시큰시큰 아려 와서 화장실에 들어가 끼고 있던 콘택트렌즈를 빼냈죠. 대신 안경을 꺼내 쓴 후, 거울 속에 비친 오른쪽 눈동자를 천천히 점검했어요. 만일에 대비해 안구 충혈을 막아 주는 안약을 충분히 집어넣기도 했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오른쪽 눈동자에는 약간의 붉은 기운이 감돌았을 뿐 특별한 전조는 없었거든요.
남자친구는 어, 안경이야? 그저 그렇게 말했을 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어요. 제 남자친구요? 이제 사귄 지 이 년이 좀 지났어요. ……살아 있다면 이 년 육 개월쯤 되었겠네요. 요즘 같아서는 오래된 커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네, 조금은 권태로워질 법도 할 만한 시기에 아슬아슬 걸쳐 있었어요. 그는 더 이상 저와의 첫 키스나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전 더 이상 그에게 눈물을 머금어 가며 한 자 한 자 눌러쓴 편지를 건네지 않았어요. 제가 헝클어진 머릿결이나 부스스한 옷차림새를 하고 있어도 그는 더 이상 불평하지도 주의 깊게 관찰하지도 않았죠. 물론 처음엔 안 그랬지만요. 그렇다고 우울하다거나 슬프지는 않았어요.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나 있었으니까. 그 사람, 저를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랬고요. 한때는 사춘기 소녀처럼 그런 일에 체념하고 절망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니까 달라지더군요. 우린 더 이상 서로에게 매 순간이 찬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사실이 딱히 가슴을 찢는 아픔으로 다가오지도 않았죠. 익숙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시기였다고 할까요.
그 사람 팔을 붙잡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어요. 영화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잊혀진 슈퍼히어로 가족이 부활하는 얘기였어요. 신나고 통쾌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었죠. 아, 보셨다고요?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저는 그 장면이 제일 좋았는데. 왜, 주인공이 사실은 슈퍼맨 뺨치는 초능력 영웅인데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사무실에 처박혀서 서류더미에 묻혀 있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주인공의 커다란 엉덩이에 비해 앉아 있는 의자가 너무 작아서 참 많이 웃었던 게 기억나요. 정말이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이 웃었어요. 몸 구석구석의 아드레날린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짜내 터뜨려 주는 것 같았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정말로 눈이 튀어나와 버리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안경알을 덮어 다 흐려지게 만들고도 남아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바지 위로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남자친구는 많이 당황했어요. 처음엔 제가 무언가에 감동해서 우는 줄 알았나 봐요. 재미있는 영화 보고 왜 울어?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이미 제 눈은 불타는 것처럼 아픈 상태였어요. 마치 모세혈관들이 한꺼번에 터져 버린 것 같았죠. 아마 눈동자 전체가 새빨갰을 거예요. 정상적인 눈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으니까. 그 사람 부축을 받아 집까지 겨우 돌아왔어요. 그리고 안약을 조금 더 넣고 잠이 들었죠. 웃으라고 만든 영화 보고 눈물이 쏟아지다니 참 웃기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영화,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해요. 요즘 세상에서 슈퍼히어로는 좋은 직업이 아니잖아요. 안정적이지도 못하고 지나치게 위험하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안과에 들렀어요. 의사 선생님은 예상대로 콘택트렌즈 부작용이라는 처방을 내리더군요. 그리고 일 년에 몇 번씩 들를 때마다 늘어놓던 설교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했어요. 양초 비슷하게 생긴 고체 안약을 눈에 넣고 열치료를 잠깐 받은 뒤에, 거즈를 대고 안대를 단단하게 고정시켰어요. 일 주일간 절대로 떼지 말라고 하더군요. 눈을 쉬게 해야 한다면서, 너무 많은 걸 보려고 하지 말라고요. 제 눈이 특히 민감한 편인데, 너무 많은 걸 보려고 시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던가요.
선생님은 아마 지금쯤 되는 타이밍에 한 번 묻고 싶으시겠죠? 공상과학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고요. 아뇨, 전 그다지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한 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중독돼 버릴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 그런 영화들은 피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 종류의 책들도 읽은 적 없어요. 아마 읽었더라면 이제부터 들려드릴 얘기를 좀더 그럴 듯하게 꾸며낼 수 있을 텐데. 그런데 그럴 수가 없어요. 제가 좀더 상상력이 풍부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렇게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 일은 실제로 제게 일어났던 일이라고요.
그날 아침 초인종이 울렸을 때, 저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침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어요. 두 번인가 초인종이 울렸죠. 겨우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시 반이었어요. 누군가가 찾아올 만한 시간은 아니었죠.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을 때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리더군요. 몸을 일으켜 휘청거리면서 현관으로 다가갔죠. 누구냐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어요. 현관문에 난 구멍으로 밖을 봐도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문을 열었더니 문 앞에 뭔가 놓여 있었어요. 소포처럼 보이는 상자였죠. 누런 소포지로 포장돼 있었고 가로세로 삼십 센티미터, 높이 이십 센티미터 정도? 수신인 부분에 제 이름과 주소가 깨끗한 흰색 종이에 프린트되어 오려붙어져 있었어요. 발신인 자리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았고요.
이상했어요. 소포를 보낼 사람 따위는 없었거든요. 친구? 전 직장 동료? 그것도 아니면 언젠지도 모르게 응모했던 온라인 이벤트 당첨 상품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발신인이 될 만한 사람이 없어서 전 아무 생각 없이 단단히 포장되어 있는 소포지를 북 찢어냈죠.
흰종이 상자 하나가 나왔어요. 시험 삼아 흔들어 보니 사라락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마치 쌀알이나 모래알 같은 작은 알갱이가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은 소리였죠.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다시 매끌매끌하고 두툼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어요.
스니커즈 초코바, 처음엔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딱 그 크기였죠. 스니커즈 덕용포장 정도 되는 크기의, 불투명한 비닐로 포장된 무언가였어요. 정말이지 처음엔 누군가가 초콜릿을 선물로 보낸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안에는 무언가 작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고 겉에는 딱 한 문장밖에 씌어 있지 않았어요. ……네, 맞아요. 영문으로 그렇게 인쇄가 되어 있었어요.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혹시 아세요? 그거, 노래 제목이기도 해요, 플레시보라는 그룹의. 참 이상했죠. 그 곡, 제가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거든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가도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곤 했어요.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멋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쩐지 이런 게 연상되잖아요. 신은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혹시 성서에 나오는 말이던가?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요. 참, 전 신을 믿지는 않아요. 교회에 몇 번 나가 보긴 했지만.
어쨌든 그 소포는 이상했어요. 제가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 제목이 적힌,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으면서 흔들어 보면 사락사락 소리가 나는 비닐 주머니라니. 꼭 저를 잘 아는 누군가가 보낸 짓궂은 깜짝 선물 같았죠. 요즘엔 그런 이벤트 선물 같은 거, 제작도 해주잖아요. 하지만 문제는 제게 그런 선물을 보낼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전 일단 보낸 사람이 밝혀질 때까지 그걸 뜯어보지 않기로 했죠. 한편으론 더럭 겁이 나기도 했고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게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전 그걸 책상 서랍 맨 아래 칸에 넣어 두었어요. 그러고는 곧 잊어버렸죠. 그게 눈의 통증이 시작되기 약 한 달쯤 전의 일이었어요
……잠깐 물 한 잔만 마시고 계속해도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목이 말랐거든요. 선생님은 참 친절하시네요. 하긴 그러니까 이 일을 하시겠지만요. 지금까지 이 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 누구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어요. 하긴 미친 사람 얘기로 들리겠죠. 제가 생각해도 조금은 미친 소리 같다는 거 잘 알아요. 선생님, 그런데요, 제가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이세요? 제가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같이 보이나요? 아뇨,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제 말은, 제 얼굴에 그런 무언가가 드러나는지 궁금해서요. 거울을 보지 않은 지 오래됐거든요. 이곳에는 거울이 없으니까, 제가 어떤 얼굴인지 확인한 지도 꽤 오래됐네요. 어쩌면 그게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 말씀드렸죠? 아, 안대요. 일주일이 지나서 안대를 풀었어요. 통증은 처음보다 훨씬 덜해졌지만 그때까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었죠.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안대를 감싸고 있던 반창고를 쥐고,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떼어냈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오랫동안 빛이 차단되어 있었으니까. 방 안의 밝은 조명을 대하자 아주 미세한 통증이 밀려왔어요. 그러다가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전 거울에 비친 오른쪽 눈동자를 들여다보았어요.
선생님, 선생님도 지금 보고 계시죠, 제 눈을요. 지금은 양쪽 눈이 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오른쪽에서 시작된 거예요. 네, 검은 별이 눈에 박혀 있었어요. 검은 별이오. 정확히 말하자면, 동공이 다섯 갈래로 뻗어나간 별 모양으로 변해 있었죠. 그때부터 이런 모양이 된 거예요. 이런 거 보신 적 없을 거예요. 그렇죠? 별 모양이라지만 사실 좀 웃겨요. 너무 전형적이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루할 때 연습장 한 귀퉁이에 볼펜으로 쓱쓱 그려 넣곤 하는, 정말이지 너무 별처럼 생긴 별 모양이니까요. 오죽하면 제가 거울을 보고 처음엔 놀라서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엔 막 웃었겠어요. 이건 뭘까, 농담의 한 종류인가? 하지만 대체 누가 이런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실명도 아니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눈동자가 별로 변하다니요. 사랑에 빠진 순정만화 캐릭터도 아니고 말이에요. 믿을 수 없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어서 찬물로 세수를 몇 번이나 한 뒤에도 눈에 박힌 별은 그대로였어요. 무슨 이유가 있었든 과정은 이미 끝난 상태였어요. 결과만이 남아 있었죠.
다행이었던 건 시력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거예요. 더 이상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앞을 보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었죠. 그냥 어느 날 한쪽 눈동자가 별로 변해 버린 것뿐이었어요. 하지만 저도 사람인 이상, 두렵고 무서워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제 전화를 받은 그는 무슨 소리냐면서 당장 저희 집으로 달려왔죠. 그런데 현관문을 열어 주자 들어온 그가 저를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뭐라고 해야 할까? 안색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그의 그런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죠. 그는 제 눈에서 시선을 돌리더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내일 병원에 가. 치료를 받아. 수술하라고 하면 받아.' 그는 수술비가 모자라면 빌려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여전히 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말이죠. 그래서 전 알았다고 했죠. 그리고 그는 평소와 같이 저와 시간을 보냈죠. 섹스를 하고, TV를 보고,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그러고는 돌아갔죠. 이상하게 들리세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랍니다. 별다른 일은 없었어요. 그냥 제 한쪽 눈이 별로 변해 버린 것밖에는. 이렇게 말하면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그 순간에는 어쩐지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랄까…… 울거나 소리지르면서 '내 눈이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넌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하는 거야?'라고 말해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공기 중에 있었어요. 마치 나쁜 꿈을 꾸다가 가위에 눌렸을 때처럼, 말을 해야겠는데 무언가가 성대를 붙잡고 그 단어가 튀어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죠. 정말이지 이상했어요. 이상했지만 저는 웃었어요. 그리고 섹스를 하면서는 기뻐서 신음을 했고, 밥을 먹으면서는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상태를 설명하기가 힘들군요. 하지만 그럴 때도 있지 않나요? 선생님은 그럴 때가 없으세요? 상황이 악화하는 게 두려워서 스스로의 끔찍함을 눌러 버릴 때가요. 사람들의 눈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정하려는 자기 마음이 무서워질 때 말이에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말이에요.
돌아갈 때 보니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더군요. 어쨌거나 그날은 그렇게 흘러갔어요. 그날 밤, 저는 땀을 많이 흘리며 잠을 설쳤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열이 펄펄 끓고 있더군요. 어차피 병원에 가볼 생각이었기에 저는 회사에 병가를 내고 일주일 전에 갔던 안과에 다시 찾아갔지요.
나이 많은 의사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몇 분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제 눈을 바라보았어요. 그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저는 조금 미안해졌습니다. 홀쭉하게 말라서 군살이 없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노끈으로 제 눈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죠. 그리고 눈을 돌렸을 때, 그는 다시는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보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어요. '여기서는 고칠 수가 없어요. 큰 병원에서는, 거기서는 또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마 결과는 같을 겁니다.' 저는 불끈 화가 치솟았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꼴을 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요, 저는 아직 젊단 말이에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하지만 무언가가 제 입술을 붙들었어요. 분명히 해결책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수술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을 수가 없더군요. 일 년에 몇 번 들르지 않는 병원이었지만 저는 그 나이 든 의사에게 일종의 신뢰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코 거짓으로 환자를 위로하거나 반대로 두려움을 품게 만들어 치료비를 우려내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제 눈에 들어 있는 이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그를 그렇게 어렵고 두렵게 만든다면, 아마도 없애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제가 가난하냐고요? 글쎄요. 오래 전에는 아주 가난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렇지 않게 됐어요. 대학을 마치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고, 꼬박꼬박 적금을 붓고, 독립한 뒤 집을 조금씩 넓혀 갔고 부모님에게도 매달 많은 돈을 보내드리고 있으니까요. 직장 생활도 아주 좋았어요. 모두 제가 없으면 일을 하지 못했죠. 무슨 일을 했냐고요? 사람들의 자서전을 썼어요. 대기업 사장들이 가장 많고, 젊은 나이에 무너지기 직전의 사업을 물려받아 크게 키워 성공한, 신문 지면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이렇게 말하면 좀 쑥스럽지만, 전 그들의 인생을 멋진 문장으로 포장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실제로 그들은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제 역할은 그것을 약간 더 멋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제 인생은, 아무리 멋진 문장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어떤 한계 이상으로 빛이 날 수는 없잖아요? 선생님도 그렇지 않으세요? 아니, 선생님은 좀 다르시려나? 죄송해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무언가를 그들은 아주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어요. 마치 손가락 튕기듯 말이에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 일은 보수도 높았죠. 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제가 그 직업을 택한 것을 좋아했어요. 물론 저도 좋아했죠.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잠깐만요. 잘 못 알아들었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제가 그런 걸 쓴 적이 있었나요? ……아, 그거요. 대학 시절 신문에 재미 삼아 썼던 거예요. 용케 가지고 계시네요. 정말 여러 가지 것들을 자료로 보관하고 계시군요. 그래요, 말씀하신 대로예요. 그 시절에는 시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누구나 한번은 그렇게 살아갈 때가 있지 않나요?
……그 시 제목이 '불가사리'였어요? 저는 잊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아니, 읽어 주실 필요는 없어요. 죄송한데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네, 알아요. 저 사람들이 따라올 테니 어차피 5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거예요.
어디까지 말씀드렸죠?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잠깐 이것들이 움직였을 뿐이니까요. 저는 괜찮아요. 선생님은 아까부터 계속 제 얼굴을 보지 않고 계시니까 설명해 드릴게요. 이것들은 이따금씩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해요. 다리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거죠. 지금은 15도 정도 돌아가 있을 거예요. 아뇨, 이제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처음엔 마취 없이 눈을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죠. 잠들어 있다가도 종종 깨어나곤 했어요. 눈물은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눈의 흰자위 전체가 붉게 변해서 사람들은 제가 울었다고 생각하곤 하죠. 물론 저를 본 사람들은 다시는 제 눈을 쳐다보지 않게 되지만요.
네, 그들은 저를 다시 쳐다보지 않아요. 문자 그대로 제 눈을 한번 들여다본 사람은, 다시는 저와 눈을 맞추지 못해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그것이 제가 감당해야 할 한 가지 나쁜 일이었어요. 이상했죠. 이상하고 슬펐어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들이 저를 바라보거나 그렇지 않거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거든요. 그들은 전과 다름없이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어요.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었죠. 모두들 조금씩 두려워하는 것 같긴 했어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새롭게 제 영혼을 들여다보아 주는 사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죠. 하지만 따져 보니 전에도 제 영혼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큰 병원에는 가지 않기로 했어요. 그대로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시력은 오히려 더 좋아졌지 뭐예요.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으로만 세상을 보니 안경도 콘택트렌즈도 필요 없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부모님과 친구들과 직장 동료가 차례로 제 눈을 들여다보았어요. 공통된 게 있다면 그들이 그 즉시 그 화제를 피했고,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잘 지냈답니다. 직장에도 계속 나갔고 통증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요.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문득 그 비닐 주머니 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지는요.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던 도중에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어요. 문득 집 책상 서랍 맨 아래 칸에 들어 있는 그 비닐 주머니의 파란 색 포장이 선명하게 눈앞에 다가오면서, 회의 문서의 글자들이 눈앞에서 흐려지기 시작했죠. 저는 그 소포를 받고 석 달 동안이나 그것을 잊은 채 내버려 두었던 거예요.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책상 서랍을 열고 그것을 끄집어냈어요. 그건 제가 넣어둔 대로 그 자리에 있었죠. 그런데 그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어요. 처음 받았을 때처럼 사라락 사라락 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면서, 무언가가 그 안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죠.
선생님,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이게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걸 잘 알아요. 이제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거짓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답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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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우 시인님의 글] 오늘 오후에 우이동 동인( 이생진, 채희문, 홍해리, 임보) 의 25집 -월간 우이시가 아님 - '너의 광기에 감사하라'를 받았습니다. 너의 광기에 감사하라...제목에 마음이 빼앗겨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너의 광기에 감사하라'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유명한 이생진 선생님의 시 제목이기도 합니다. 책머리에 이생진 선생님께서 쓰는 우이동 소리가 있는데 제가 너무나도 공감하는 글이고 그 광기를 제게도 스며들게 하고 싶어서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책을 보고 워드 치는 동안 한 줄 한 줄 머릿속에 새겨 넣으려 애썼습니다. 아래의 이생진 선생님의 글을 읽으시면 시인과 시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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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 미칠 광) 광 (狂)자 앞에 기역(ㄱ)을 더해서 '꽝'하고 싶다. 가끔 시에서 시가 붕괴되는 굉음(轟音)을 듣고 싶다 - 이생진 -
1 나는 시를 쓰는데 광적이다. 하룻밤에 30편, 사흘에 시집 한 권치를 쓸 때가 있다. 물론 그 한 권 양이 단번에 시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90편이 180편 될 때까지 기다렸다 시집 한 권 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일 년 걸릴 수도 있고 이 년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재촉하지는 않는다. 언제고 또 소나기가 올 테니까. 그때 180편을 다시 90편 정도로 줄인다. 이 작업은 소나기를 맞을 때보다 고통스럽다.
2 '전업 시인이라 하던데 월수입이 얼마냐?' 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작년에 월수 5만원이었는데 금년엔 3월이 지나도록 한 푼 못 올렸으니, 작년보다 낮겠다고 했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본다. 시인의 수입을 묻는 사람이 잘못이다. 올 예상으로는 월수 3만원이 안 될 것 같다. 시 한 편에 5만원 치고, 일 년에 일곱 번만 청탁이 와도 연 35만원, 예산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월 100만원은 돼야 시인도 먹고사는데 하며 웃는다. 이때 따르르하고 전화가 걸려왔다. '이 선생님이십니까? 원고를 청탁하고 싶은데요. 산문인데요. 매당 만원 30장입니다.' '시밖에 안씁니다. 산문을 쓰면 시가 고장나니까' 하고 거절했다. 쓰기 싫은 것을 억지로 쓰고 싶지가 않다. 그후로는 시도 산문도 청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나에게 편했다.
3 '선생님 시집은 팔린다는데'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니다. 딱 한 번 있었다. 김포공항 대합실에서 파란 표지의 <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들여다보고 있는 젊은이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성산포를 찾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때 '그거 내가 쓴 것인데'하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쑥스러워서 그만뒀다. 모르는 이가 내 시집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독자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가 인상적이었다느니,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生과 死가 손을 놓지 않아/서로 떨어질 수 없다
성산포에 와서/ 자살 한 번 못하고 돌아가는 비열/구기구기 두었다가/ 휴지로 쓸 것인가
이런 데서는 공감했다느니 하는 전화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이 구절이다. '자살 한 번 못하고 돌아가는 비열 구기구기 두었다가 휴지로 쓸 것인가' 이것 때문에 죽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월수(月收) 생각을 가로막기 일쑤다. 제발 그 짓은 말았으면.
4 어느 해던가 12월 31일 저녁, 성산포 청년회관에서 낭송을 하고 났는데 중년 신사 한 분이 다가오며 " 이 선생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어려서 성산포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밖에 나가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며 명함을 건네줬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저는 일출봉에 올라가 자살을 생각하다가 이 구절에서 입술을 깨물고 물 건너갔죠.' 하고 내미는 명함. 외국 상사 대표. 그는 해마다 내게 연하장을 보내줬다. 그런가 하면 끔찍한 일도 있었다. 대량의 수면제를 들고 절벽 갓으로 돌아다니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들킨 실연 당한(?)여자. 그녀는 그 시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마을 교회에서 한달 동안 기도를 드리고 돌아갔다. 내가 그 섬에 갔을 때 그 소녀(?)가 놓고 간 기다란 사연과 두꺼운 성경책을 봤다. 90년대 중반에 나는 5년에 걸쳐 해마다 1월 1일 아침 일출을 맞으며 일출봉 정상에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낭송했는데 한번은 시를 낭송하러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가쁜 숨소리를 누르며 내게로 다가오는 젊은 부부와 어린이가 있었다. 그중 여자가 '선생님, 이 남자는 저의 남편인데요'하며, 30대 남자를 소개하고는 '저희는 선생님 시 때문에 성산포에서 만나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이 애는 저희 아들이고요. 오늘은 저희 가족 셋이 선생님께 세배 드리러 이곳에 온 거예요. 선생님 반가워요.'하며 정중하게 절을 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여서도에서의 일인데 70 노인이 날 보고 뭣하는 사람이냐고 호기심 섞인 의심조로 신분을 묻기에 내 시집을 건네주며 '시 쓰는 사람' 이라고 했더니 그는 내 시집 제목을 보는 즉시 ' 나 같으면 결코 <그리운 바다…> 소리가 안 나와요. 내 입장에서는 <지겨운 바다…>라고 해야, 나는 바다 때문에 내 인생을 망친 걸요'하며 쓴웃음을 쳤다. 왠지 그 사람에게 내 시집이 미안했다. 그런가하면 이런 전화는 경종처럼 울리기도 했다. '저는 그 시집을 들고 성산포에 갔다가 실망했어요. 그 시집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이런 경우 나는 어떻게 그의 전화를 받아야 할지 몰랐다. 어떤 사람은 감동하고 어떤 사람은 실망하고 내가 시를 쓸 때는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책이 되어 갈 곳으로 가고 나니 내 편이 아니라 그쪽 편인 것을 실감했다. 월수 5만원이 문제가 아니다. '이것도 시라고 써'라든가 '먹고 할 일도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더 맥이 빠졌다.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남들은 시인을 보석상으로 아나보다. 그러니 동회에서 시인의 생계를 걱정할 리 없다. 시인의 가난은 시인만이 안다.
가난한 시인이 펴낸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는다 가난은 영광도 자존도 아니건만 흠모도 희망도 아니건만 가난을 시인의 훈장처럼 달아 주고 참아 가라고 달랜다 저희는 가난에 총질하면서도 가난한 시인 보고는 가난해야 시를 쓰는 것처럼 슬픈 방법으로 위로한다 아무 소리 않고 참는 입에선 시만 나온다
가난을 이야기할 사이 없이 시간이 아까워서 시만 읽는다 가난한 시인이 쓴 시집을 가난한 시인이 사서 읽을 때 서로 형제처럼 동정이 가서 눈물이 시 되어 읽는다
< 바다에 오는 이유> (1972)에서 <가난한 시인> 전문
5 이왕에 그 시집은 날라리가 되었지만 실망보다는 반가움으로 치부해 둔다. 나는 가끔 성산포가 속해 있는 남제주군 군수가 준 금시계를 자랑했다. 이 시계가 노랗기 때문에 금시계라고 착각할 정도다. 때로는 금시계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군민(郡民)수천 명을 모아 놓고 '이 분은 시인인데 우리 군(성산포)에 공로가 많았기 때문에 감사의 표시로 시계와 명예군민증을 수여합니다' 이 때 시를 쓰고 처음 박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이야기하는 독자들 앞에서는 늘 부끄러워했다. 미완성 같은 그런 부족감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시보다 제주도의 상록수와 노란 감귤을 보면, 구시월에 억새꽃과 갯쑥부쟁이꽃을 보면, 4월의 찔레꽃과 5월에서 늦가을로 이어지는 인동초꽃을 보면, 협제와 함덕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면, 다랑쉬오름의 달덩이를 보면, 비자림의 조상목(祖上木)을 보면, 물질하는 할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면, 나는 환상 속에서 눈물을 짜기 일쑤다. 나는 서울에서 시심(詩心)이 고갈되었을 때 배낭을 메고 슬그머니 제주도로 내려간다. 그곳에 가서 시를 훔치는 것이다. 나는 달밤에 돌담을 넘듯 남의 집 담을 넘어 시를 훔치는 도둑놈이다. 이것을 제주도 시인들 앞에서 솔직히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를 처벌하지 않았다. 처벌할 법규가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섬사람들이 공인하는 시를 훔치는 도둑놈이다. 시는 훔치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아무도 없는 달밤에 몰래 집 밖으로 나오기를 좋아한다. '우리 시 훔치러 섬으로 가자'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제주도 일주 도보기행이라는 '광(狂)'을 내세우고. 한 달을 잡았다. 하루에 너댓 시간씩 걸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 이틀 걷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날씨 탓이었다. 날씨가 사흘 맑기가 어려웠고 비바람이 사흘 계속하기도 어려웠다. 비오는 날은 나가지 않고 걸어가면서 쓴 글을 정리했다. 성산포에서 남쪽으로 남원 서귀포 모슬포 한림 제주 조천 구좌 그리고 성산포 이렇게 18일 동안 걸어서야 완전 일주가 됐다. 1999년 3월 11일에 성산포를 출발해서 4월 5일 다시 성산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만 70의 생일을 맞았다. 생일날엔 하루 종일 오름만 올라갔다. 열흘은 더 걸어다닐 것 같았다. 나는 시가 나비처럼 날아오르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나비처럼 시를 맞으려 날아가곤 한다. 시는 어디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쓰고자 하는 시는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도 나비처럼 도망치려 한다. 도망치는 나비를 따라가듯 도망치는 시를 잡아야 한다. 영감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언제고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잘 포착해야 했다. 운동 경기에서만 민첩한 동작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더 예민하고 더 섬세한 촉각으로 찾는 자세 그것은 훈련에서 얻어진다. 운동선수들의 뒤에는 피나는 훈련과 꾸준한 도전이 있듯이, 시인에게도 땀흘리는 경험과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누워서 광맥을 찾는 것과 신발이 닳도록 광맥을 찾아다니며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시도 광맥을 찾듯 찾아다녀야 한다. 그래서 수시로 떠도는 것이다. 여행은 혼자 했을 때 열 편의 시를 쓸 수 있어도, 열 사람이 떼지어 했을 때에는 열 사람 다 한 편의 시를 건지기 어렵다. 시인은 시를 쓸 때도 휴식할 때도 혼자 있는 것이 유리하다. 철저하게 개성 있는 시를 쓰려면 철저한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6 나의 경우 움직여야 시가 생겼다. 시론을 펴면 시가 숨고, 시론을 덮으면 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시론을 쓰는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해한다. 어느 평론가가 '잘된 시는 아니다'라고 했을 때 나도 그 평론을 읽고 '잘된 평론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니다''기다'라고 확인 받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기 때문에 시를 쓴다. 월수 때문에 시를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 시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이다.
7 외로운 섬에 와서 얻어지는 것은 '단순함'이다. 복잡한 지하철을 구별해서 탈 필요가 없고 횡단보도와 신호등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가족사랑 이웃사랑 하는 것을 TV를 통해서 배울 필요가 없고 동백꽃 진달래꽃을 꽃집에 가서 살 필요가 없다. 나서면 꽃밭이요 문을 열면 이웃 정이요 가고 싶은 데로 가면 길이다. 생선가게에 가서 생선을 엎었다 잦혔다 할 필요도 없다. 낚싯대를 담가두면 고기가 문다. '단순화'한 다음에 남는 것이 시다. 그러니 나는 섬에 와서 신선한 시를 낚는 꼴이 된다. 단순해야 시가 잘된다. 의복도 思考도 밥그릇도 단순해야 시가 모여든다.
8 나는 차를 탄 사람보다 걸어 다니는 사람을 존경한다. 예수도 걸어다녔고 원효(元曉)도 걸어다녔고 김삿갓도 걸어다녔다. 이렇게 말하면, '그때야 차(車)가 없으니까 걸었지'할 거다. 당연한 말이다. 그 러나 지금도 걸어 다니는 이가 있다. 원공(圓空) 스님은 20년 동안 한 번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다. 이번에 지리산에서 백두대간 줄기를 걸어가겠다고 절을 나섰다. <바람의 딸> 한비야도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자유전망대까지 걸어가겠다고 집을 나섰다. 시인들이 한 달만 집을 나서도 시가 달라질텐데 하면서 나는 걷는다. 시를 쓰는 정도(正道) 는 길을 올바르게 걷는데 있다. 걸으면 건강해진다. 시인은 누구보다 건강해야 한다.건강해야 시도 건강해진다. 혼자 떠나라. 혼자라야 혼자만의 시를 쓸 수 있다. 우리 모두 어디로 떠나자. 각자의 방향이 서로 다른 데로 떠나자. 다리가 아프면 상상의 오두막집에 들어가 쉬자. 어느 공간이고 시인을 싫어하는 공간은 없다. 시인을 싫어하는 공간은 썩은 공간이지만 시인은 그 썩은 공간을 되살릴 수 있다. 우리 어디로 떠나자. '몰래 떠나자.'이것은 건강할 때 들려오는 유혹의 소리다. 그 소리가 들리는 동안 시인은 행복하다. 시인의 생명은 이 유혹의 소리가 들리는 동안에만 존재한다.
9 시인이거든 ' 시가 옷을 주냐 밥을 주냐' 따지지 말라. 그저 '꽝(狂)' 하고 미쳐버려라. 내 시는 이런 광기에서 얻었지, 월수로 얻은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면 동회에 가 손을 벌리기보다 울어가며 시를 쓰겠다. 가난한 고집도 힘이 된다. 혀를 깨물자, 혀를 깨물었을 때 말은 막혀도 시는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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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狂氣에 감사하라 / 이생진]
그날밤 나는 침실에 없었다 억새밭을 헤치고 바닷가로 나갔고 그것도 부족해서 절벽에 목숨 건 등대처럼 서 있었다 그때 나도 절벽에 목숨을 걸었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지역에서 얻은 시 스무 편 태어난 시에게 타일렀다 이처럼 미쳐서 쓰는 것을 용서하라고 이처럼 미쳐서 쓰는 것을 감사하라고 이처럼 미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라고 이 광기에 체벌을 가하지 않는 세상에 감사하라고 그리고 이혼소송을 걸지 않는 아내에게 감사하라고 세 시 이후는 시계도 탄복했다 시간이 시계를 비워두고 도망쳐 버리는 자유도 인정하라 그것은 모두 언어의 과장이다 그 과장을 용서하라
(발표일자 : 1999년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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