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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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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 (gogo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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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5/04
 

연변대학 정문


연변대학 학생기숙사


연변대학출판사


연변대학 호텔


연변대학 복지병원


연변대학 종합청사


제2임 연변대학 교장 림민호동상


연변대학 리공학원


연변대학 사범학원


연변대학 음향시청종합교실


 



 

연길:
연길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로서 연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연길시의 총면적은 1,350평방키로메터이고 인구는 39만6천명이다. 그중 조선족이 23만1,3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8.4%를 차지한다.
연길은 청나라가 동북지구를 봉금한 시기에는 <남항위장> 이라고 불리웠으며 후에는 연집강, 연길강이라고 불리웠다. 현재 연집향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것이다. 청나라가 봉금정책을 페지한 다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이주하게 되였다. 연길시가 위치하고있는 지형을 놓고보면 분지로서 지세가 비교적 낮고 주위가 높은데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그리하여 이곳은 늘 <연기가 뒤덮인것이 안개처럼 자욱해> 사람들은 연길을 <연집>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연길은 비교적 일찍 개발된 지역의 하나이다. 당시 조선사람들은 연길을 芝陀所 또는 芝丹城이라고도 하였으며 1907년 이후에는 국자가라고도 했다.
연길시 중심부를 흘러지나는 부르하통하란 강 이름은 녀진어로 버드나무가 무성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1931년 <9.18>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연변을 강점하고 연길에다 <간도성공서>를 설립했다가 후에 <간도시>로 개칭했다. 1952년 길림성 인민정부에서는 연길을 연길시로 개칭했다. 그후 연길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였다.

도문:
도문은 만족어 <투먼써친>에서 유래했다. <투먼>이란 만이란 뜻이고 써친은 강의 원류라는 뜻으로 <투먼써친>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합친다는 뜻이다. 력사기록에 따르면 도문은 <통문(通门)>, <토문(徒门)>, <타만(驼满)>, <도문(图门)>, <토문(土门)>, <두문(豆门)>, <치문(驰门)>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청나라때 도문은 <남항위장>(연길)에 귀속되였으며 188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는 회막동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역전 부근은 우후평이라 불리웠다. 1933년에 돈화---도문철도가 개통되면서 회막동은 시발역이 되였다.
당시까지 도문의 명칭이 통일되지 않아 각계에서 문제가 제기되였고 또한 회막동이라는 명칭이 국제도시의 이름에 부합되지 않았으므로 1933년5월21일 회막동경찰서에서는 9명의 관민대표를 불러 지명개칭에 대한 일을 론의한 결과 6월1일부터 정식으로 도문으로 개칭하기로 했다. 1965년5월에 도문진은 연길현에서 분리되여 주 직할시로 되였다.

화룡:
화룡은 토명으로 화룡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화룡 개발초기 조선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화룡욕(峪)이란 만족어로는 두산이 한 골짜기를 끼고있다는 뜻이다.
화룡은 달라즈, 삼도구라 불리기도 했다.
광서 10년 즉 1884년에 중국과 조선이 서로 래왕하면서 상부지로 개방되였으며 광서 28년(1902년)에는 연길부의 관할하에 귀속되였다. 1910년에 화룡현을 설치하였는데 그 당시 현소재지는 달라즈(지금의 룡정시 지신향)였으며 1940년에는 삼도구로 소재지를 옮겼다. 삼도구란 오늘의 화룡진이다. 옛날의 화룡현은 해란강을 경계로 지금 룡정시에 귀속된 해란강 남부와 화룡시 귀속된 해란강 남부 지역이다. 해란강 북쪽 지역은 연길현이였다. 또 비암산을 경계로 서쪽은 화룡현, 동쪽은 연길현이였다.

훈춘:
훈춘이란 이름은 <금사>에도 나오는데 처음에는 <강물>, <지류> 란 뜻으로 쓰였고 점차 그 뜻이 바뀌여 <성읍>, <변경>, <국경지역>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명나라는 훈춘 일대에다 훈춘위를 설치하였으며 청나라는 강희 53년 즉 1714년에 훈춘협령을 설치했다. 그후 광서 7년에 훈춘부도통을 설치했다. 1905년에 훈춘은 상부지로 개방된 뒤 연훈지방의 중요한 통상구가 되였다. 그래서 문헌에는 <인가가 조밀하고 말이 줄쳐 다닌다>고 기록되여있다. 1931년에 훈춘진이 되였다가 현재는 훈춘시가 되였다.

왕청:
왕청은 력사상 하나의 역참에 불과했다. 그것은 너무 편벽하여 개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였다. 이 지역은 지형이 군대를 주둔시켜 수비하는데 유리했으며 변경의 요충지였다.
왕청이란 녀진어의 <보루>를 의미하는 왕친(旺饮)의 음역인데 본래 뜻은 <가죽이 두꺼운 돼지>라는 뜻이다. 몇년간 자란 돼지는 가죽이 두꺼워 쉽게 파렬되지 않으므로 <보루>라는 뜻으로 파생된것이다. 또한 재산이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는 뜻도 나타내고있다.
청나라 선통 6년인 1902년에 왕청에 현을 설치하고 하순참이란 곳에 소재지를 두었다가 후에 지금의 배초구로 옮겼다. 1935년 목도선 철도가 개통된후 대두천 즉 오늘의 왕청진으로 소재지를 옮기였다.

룡정:
룡정은 조선족들이 이주해온 력사가 아주 긴 고장이다. 19세기 7, 80년대에 조선사람들이 이주해와 살면서 이곳을 룡드레촌이라 불렀다. 룡정은 조선 회령으로 드나드는 륙도구의 산골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한족들은 이곳을 륙도구라 부르기도 했다.
룡정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우물에서 룡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고 하여 룡정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1900년부터 청정부에서는 륙도구와 룡정촌 두가지 지명을 함께 <9.18>이후 정식으로 룡정촌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1907년 일제는 룡정촌에다 <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했으며 1909년 11울에 간도총령사관으로 개칭했다. 청정부는 이곳에 상부국을 건립하였고 1913년에 중화민국정부에서는 연길현을 설치했다.

돈화:
돈화는 오도리성 혹은 아크돈이라고 불리웠는데 만족어로 <바람어구> 혹은 <견고하다>는 뜻이다. 돈화는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다. 돈화는 옛 도읍지로서 일찍 698년에 발해국은 여기다 도읍을 정했다. 청나라가 연변지구에 대한 봉금정책을 실시할 때 돈회는 액목 혁라좌령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후에는 황실의 사냥터로 되였다. 돈화는 청나라 광서년간인 1880년에 현으로 되였다. 돈화현의 제1임 현장이였던 조돈성의 말에 의하면 <돈화는 풍속에 의해 이름을 지운것인데 덕으로 다스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1914년에 연길도에 속했다가 1929년에 길림성에 귀속되였고 1958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관할에 귀속되였다.

-= IMAGE 1 =-

진달래그룹인지 갸네들이 부른 노래 같습니다.

1952 년 9 월 3 일에 성립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의 최대조선족 집거지로서 국내에서 제일 처음으로 민족 구역자치를 실시한 지방입니다 . 산하에 연길 , 훈춘 , 돈화 , 용정 , 도문 , 화룡 6 개 시와 안도 , 왕청 2 개 현이 있고 총인구는 218.5 만명이고 한족 , 조선족 , 만족 , 회족 등 20 개 민족이 있는데 그중 조선족 인구가 85.9 만 명으로 39.3% 를 점합니다 . 통계에 따르면 조선반도 외의 조선족이 전 세계에 약 500 만 명 있는데 중국에 200 만 명 있고 나머지는 러시아 , 일본 , 미국 , 캐나다 , 오스트레일리아 , 홍콩 , 마카오 등 나라와 지역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 연변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은 상기 국가와 지역의 조선족들과 양호한 천연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

    변강 근해 - 특수한 지리적 우세 길림성 동부에 위치해 있는 연변은 러시아의 프리모스키 (Primoskiy) 와 인접해 있고 남쪽은 조선의 함경북도 , 양강도와 두만강을 사이두고 있어 중국 , 러시아 , 조선의 3 국 접경지대일 뿐더러 바다와도 가까이 있어 동북아시아의 《금삼각》으로 불리웁니다 . 변경선의 총 길이는 755.2 킬로 미터인데 그 중 중조 변경선이 522.5 킬로미터이고 중러 변경선이 232.7 킬로미터입니다 . 길림 , 흑룡강 , 요녕 3 개 성의 광활한 오지에 있는 연변은 중국 동북의 내 외 교류를 추진하는 주요한 “ 창구 ” 이고 동북아시아지역 경제 , 인구 , 지리 3 개 중심의 교차점으로서 아시아 , 유럽 , 아메리카 해륙 운수를 연결하는 중추 위치에 있습니다 .

    풍부한 자원 - 상대적 자원 우세 전주 토지 총 면적은 4.27 만평방 킬로미터이고 지형은 산지 , 구릉 , 분지로 3 개 경사도를 이루는데 기본상에서 여덟개 산 , 한개 강 , 절반이 초목이고 절반이 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삼림 피복율은 78.2% 에 달하고 삼림 면적은 347.2 헥타르 , 입목 축적량은 3.26 억 입방미터 , 임지가 농업용지 총면적의 87% 를 점하여 주요한 삼림지역으로 되고 있습니다 . 인구당 토지 소유 면적은 27.43 무 , 인구당 경작지 소유 면적은 3.7 무로서 전국과 전 성 수준보다 높습니다 . 경내에서 이미 50 여 종의 금속광산과 40 여 종의 비금속광산을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서 이미 탐사해낸 석탄 저장량은 10 여 억톤 , 석유 저장량은 1 억여톤에 달합니다 .

    크고 작은 하류가 487 갈래 있고 물 에너지 이론 저장량은 140 여만 킬로와트이고 이미 34 개 소형발전소를 세웠는데 물 에너지 실제 이용량은 4.7 만 킬로와트입니다 . 1500 여 종의 야생 경제식물과 200 여 종의 야생 경제동물이 있고 산량이 풍부한 인삼 , 녹용 , 수달피 등은 《동북의 세가지 보물》로 불리우고 사과배 , 잎담배와 아마는 국내외에 소문이 높습니다 . 특유한 장백산의 자연경치와 두만강 변경 특색 및 조선족 민속《한개 산과 강 , 마을》관광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경제 실력의 증강 - 뚜렷한 발전 우세 연변은 장백산의 풍부한 자연자원에 의거하여 본 지역의 독특한 우세 산업을 형성하였는데 주로 길림오동약업주식유한회사 , 장춘고신화강약업주식유한회사 , 길림역원약업주식유한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의약산업 ; 연길담배공장 , 북경회원음료식품그룹연변유한회사 , 할빈맥주 ( 연길 ) 유한회사와 항주와하하음료그룹회사연변분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식품 산업 ; 연변석현백록제지업주식유한회사 , 길림신명제지업유한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제지업 ; 연변임업그룹유한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임산 공업 ; 훈춘발전유한책임회사 , 훈춘자금광업유한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원 광산산업 등입니다 . 농업재배업구성에 대한 전략성적인 조정을 거쳐 일반 양식작물의 비중은 하강되고 공예작물 및 고효능 작물의 비중은 상승되었으며 지방특색이 있는농산물기지를 건설했고 효과성 농업 , 녹색 농업 , 외화벌이 농업은 부단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 대외경제무역은 이미 경제발전의 주요 지주 산업으로 되었는데 2004 년의 수출 규모는 3.5 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외국 노무송출 인원의 노임수입은 7 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

    문화 교육에 대한 중시 - 우월한 인재 우세 이미 전국 211 공사에 든 연변대학은 농학 , 의학 , 이공 등 7 개의 학원으로 이루어진 민족특색이 있는 종합 대학으로서 재교 대학생은 근 2 만명이고 산업발전에서 수요하는 인재의 거대한 저장고입니다 . 전국 평균 만 명 당 소유하고 있는 대학전문학교 이상 학력인원수는 304 명으로 전국과 전 성의 평균 수준보다 높고 노동자의 자질은 국내 동류 지역보다 높습니다 .

???   우대 정책 - 특유한 정책 우세 연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동북노공업기지 진흥정책 , 서부대개발정책 및 변강 소수민족지역정책을 향수하는 지역으로서 토지 양도 , 재정 세수 , 융자 , 수출가공구역 , 수출과 변경지역 시장무역 , 재산권 판매와 임대 , 봉사 , 보호 및 대상 중개인 장려 등 면에서 모두 정도부동하게 우대합니다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올해 겨울...

연변대학 <불사조> 풍물패 동아리후배들이 겨울합숙을 진행했던 곳이였다.

이쯤에는 길림에 있을적이였다.

연태에서 달려오는 흥철이랑 만나서 같이 여기까지 차를 장장 열시간정도 타고 왔다.

너무나 후더운 인심과 너무나 편안한 마을이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가보다.

열심히 풍물훈련을 진행한 후배들, 그리고 사부님으로 왔던 <살찐 제동이>...

다시 한번 가고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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