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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5/04
 

어느 중국 교포의 고백 / (박춘근 제공)

2007.11.30 09:52 | ▒ 중국조선족문학작품 | 꼬꼬

http://kr.blog.yahoo.com/gogohua/704894 주소복사

어느 중국 교포의 고백..

 

<제공=박춘근>

 

 

 

  우리 중국 조선족들은 오늘날처럼 처량해보기는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이 세상에 성립을 고하면서 우리 조선족들은 그들과 많은 운명을 하였다. 말도 많고 풍파도 많고 위험도 많았던 중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조선 사람이 조선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중국 56개 민족중의 일원으로서 이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망국노의 쓴맛을 맛볼 대로 맛본 부모님 세대들은 중국에서 자기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할 줄 알았다. 부모님 세대들은 고향에서 깨여진 꿈을 중국에서 하나하나 주어모아 키우기 시작하였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그들의 꿈을 누가 공짜로 실현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중국공산당과 공조하면서 신임을 얻어 사회의 직위와 권리를 늘여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소수민족 중 민족간부 비례가 가장 높았고 우리 말 우리글을 배울 수 있는 소학교로부터 대학교까지 구전이  갖추어놓았고 우리 말 신문사, 방송국도 꾸리고 민족 촌, 민족향진, 자치주가 생겨났다.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하에 사라져가던 우리 말, 우리글을 부모님 세대들은 중국이라는 이국에서 새롭게 꽃피워 갔다.

 

  나는 지금 일 글을 쓰면서 우리 부모님 세대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또 그들의 현명한 처사와 먼 앞날을 내다보는 그런 고견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후대들에게 지상낙원을 만들어 주기 위해 부모님 세대들은 피와 땀을 흘렸고 심지어 아까운 생명가지 바쳤다. 뿐만 아니라 한 민족으로서 이 나라에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민족자존심도 심어주었다. 해마다 조선족 촌들을 기본 단위로 운동회를 조직함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 단합하는 모범도 보여 주었다....

 

 지금 우리 중국 조선족들은 오늘날처럼 처량해보기는 없었다.

 

  촌은 황패하고 학교는 무너져 가고 총각들 장가들기 힘들고 가족은 동강나고 빚 때문에 숨어 다니고...

 

 적지 않은 우리 조선족들이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을 한중수교나 “잘 살지만 또 무정한 한국-고국”에서 찾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언제 고국인 한국이나 조선을 원망했던가. 그리고 또 중국을 원망했던가. 원망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원망, 원망만 하다간 원망만 생길 뿐 아무런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그래 모른단 말인가.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에서 물러간 것도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총 들고 나서서 싸웠기 때문이지 집에 앉아 무릎을 치며 넋두리 원망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한중수교 어언10년이 넘었다. 양국 두 정부사이 엄청난 발전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 같은 민족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퇴보를 가져오고 있다. 서로 의심하고 깔보고 비난하고...

 

 조선족의 한 일원으로서 나는 구태여 한국이 어쩌고저쩌고 말하고 싶지 않다. 마치 친구사이 모순이 생겼을 때 먼저 친구에게서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 못을 먼저 찾듯이.

 

 그래서 나는 “한중수교가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설로 오늘날 우리 조선족사회의 모든 불행을 한국에 떠맡기고 싶지 않다. 그런 가설은 다만 독자들을 오도하게 되고 그보다도 우리 조선족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우리 조선족에게 칼을 내들었다. 수술칼도 아니다. 칼날이 예리하지 못하다. 그래서 더 아플지도 모른다.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이 칼을 내들 것이고 결국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이런 칼을 내들어야 할 것이다. 썩은 살을 베여내지 않고는 영원히 새살이 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상식이다. 만약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에 가서 진짜 약만 팔고 가짜 약을 팔지 않았다면...

 

만약 친척방문을 간 조선족이 한국친척에게 정신적인 부담을 주지 않고 기한내로 중국으로 돌아왔다면...

 

 조선족연수생이 말 그대로 연수하고 계약대로 중국으로 돌아왔다면...

 한국에서 조선족들이 조용히 돈벌이에만 전념하고 패거리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이국이라고 외롭다는 핑계로 돈 번다는 우월감으로 고향의 가족을 멀리하고 임시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나 중국의 한국기업에서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이 있다고 미리 통보도 없이 훌쩍 떠나가는 현상이 없었 다면...

 

 같은 민족이라고 믿고 맡기는 거금을 가지고 달아나지 않았다면...

 

 허황한 황금 몽에 외국수속 함네 하고 논을 팔아치우고 빈둥거리며 놀지 않았다면...

 

 외국에서 눈물겹게 벌어 보내온 돈을 마작 판에 화투판에 밀어 넣지 않고 사흘이 멀다하게 식당으로 카라OK로 가지 않았다면...

 

 개혁개방당시 우리 민족의 특색인 김치 짠지를 가지고 도시 진출하던 그 창업정신과 근면을 오늘날까지 보존 발전하였다면...

 

 눈앞의 이익만 보고 어린자식들을 한족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돈을 급급히 향수하는데 쓰지 않고 기술을 배우거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데 쓰였다면...

 

 민족간부들과 민족지식인들이 한중간 민간교류가 활발히 벌어지는 그때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한국인과 사회주의 체제의 조선족들과 있게 될 마찰과 모순에 대한 심도 있게 연구하고 미리 발전방향과 대응책을 내놓았다면...

 

 그리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삶의 지혜와 그 정신,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히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 주위와의 관계를 유연하게 보존하면서 신임을 쌓아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면서 낯 설은 곳에서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배낭을 풀어 살기 좋은 제2고향을 만들어내는 부모님 세대들의 간고분투와 자력갱생하는 정신 그리고 그 어디서나 진공과 방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그 지혜를 이어받았다면 그리고 자기들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발휘함으로서 단점을 미봉할 줄 아는 자아완성의 방법을 이어받았다면 오늘의 불행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 힘냅시다. 오늘의 사회가 아무리 살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고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어찌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그 헐망한 세상과 비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의 운명은 바로 우리들의 손에 쥐여져 있습니다. 마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중국에서 오늘날의 기업을 일떠세웠듯이 우리도 우리들의 내일의 기업을 위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다듬어 진정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국제시민이 되기에 다 함께 노력합니다.

 

 우리들의 가치는 바로 우리들이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우리 민족이 이 세상에서 우수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새봄이 상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군요. 일년지계는 봄에 있고 일일지계는 아침에 있다고 합니다. 새해 아침부터 좋은 하루 되시고 새봄에 품은 아름다운 씨앗이 가을엔 주렁 진 열매를 맺기를 삼가 바랍니다.

                                                     <디스커버리한국사>에서

 

 

 [제공자= 박춘근 소감: 이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의 앞날을 개척하기위해 피와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얼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들도 생존을 위해 금전이 필요 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이 후대를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 단아한 민족 주거지, 교육시설, 민족문화 .... ... 이것을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였습니까. 하여 지금은 많은 조선족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민족의 명맥이 점점 미약해져 감을 느낍니다. 여기에는 후손인 우리들이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지금 국내에 있는 단체나 인사들 중, 그리고 재한 교포들 중 동포사회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자원봉사 하는 분들을 보면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누구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사명감을 가지고 힘을 합쳐서 선조들의 얼을 이어 갑시다. ]  

 

동북아신문

외국에서 본 연변(延邊) ‘불가사의’ / 김범송

2007.06.22 09:09 | ▒ 중국조선족문학작품 | 꼬꼬

http://kr.blog.yahoo.com/gogohua/704812 주소복사

본문은 얼마 전 “연변특색(上·下)”이란 제목으로 본 사이트와 관련 매체에 발표된바 있다. 아래 글 “대한민국 '불가사의'”와 비교하여 한중(韓中)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독자들에게 적은 도움이나마 주고자 제목에 대한 수정과 내용에 대해 약간의 수개를 거쳤음을 밝혀둔다.


1. TV 뉴스는 ‘회의소식’ 프로?

  필자가 환고향해서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가 저녁 여섯시 반에 어김없이 방송되는 (연변)TV 뉴스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약 15분에 걸쳐 방송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절반 이상의 시간을 정부의 각종 회의(會議) 소식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회의가 많은 중국사회특징이자 연변특색으로 TV 인기프로그램인 뉴스프로가 ‘회의소식 프로’로 변한 듯  싶어 여간만 씁쓸하지 않다.  

 

  뉴스프로를 보면서 필자는 소수민족지구로서의 지방특색이 결여되어 있는 아쉬움이 항상 머리 속에 맴돈다. 매일 비슷한 내용으로 된 정부어른들의 회의소식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딜레마 및 서민들의 관심사로 되는 쟁점, 백성의 질고에 대한 정부의 노력(회의만이 아닌 실제 대책 마련) 및 대안을 주축으로 부정부패와 비리를 과감하게 폭로하는 내용도 뉴스로 취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회의에서 토론한 현안들이 기업들의 곤란과 서민들의 난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책이 되어 성과로 나타날 때, 그것이 진정한 뉴스로 될 것이다.


2. 신물 나는 약 광고, 브라운관에 범람

  현재 인터넷의 고도의 발전과 네티즌(누리꾼)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TV는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수민족지구인 연변에도 자기의 민족 언어로 된 텔레비전 방송국이 있다. 하지만 요즘 TV 병폐로서의 광고 남용이 연변 TV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더욱이 연변특색이라고 일컬어지는 약 광고가 하루 종일 브라운관을 메우고 있어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가끔 우리말로 된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려고 해도 사이사이에 끼어 넣는 ‘당장 죽어가는 시늉의 약 광고’ 때문에 기분이 잡쳐 채널을 돌려버릴 때가 많다. 약 광고의 남용은 제약 산업의 ‘흥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시청자의 각도에서는 환자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하며, 마치 모든 연변사람들의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불쾌하기만 하다. TV에 광고가 범람하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가 일쑤다.


3. 적은 월급, 많은 부조 돈

  사회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인생에서 많은 경조사를 피해갈 수 없고 경조상문(慶弔相問)은 인지상정이다. 현재 연변에서 경조사에 사용되는 부조금이 일인당 1차에 사용하는 금액이 대개 100~200원으로 보통사이에는 100원, 가까운 사이에는 200원 이상이다. 연변 공무원의 월급이 인민폐로 1000~2000원이라고 할 때, 이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돈이며, 한사람이 평균 매달 5~10차의 경조사에 참가한다 해도 월급의 대부분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필자는 연변에 갈 때마다 고향의 잘못된 관행에 시달리는 친구들의 딱한 처지에 동정이 가면서도 난해한 면도 없지 않다. 오전에 화장터에 갔다가 정심은 고인의 망혼을 위로하는 애상주(哀喪酒)를 마셔야 하고, 저녁에는 친지의 경사에 참가하여 축배주를 마셔야 하는 그들의 일상이 퍽 힘들어 보인다. 현재 연변에는 각종 부조금의 명목과 형식이 갈수록 늘어나고 그 금액도 증가되는 추세다.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는 우리로서는 좀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삶의 방식, 검소한 생활스타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 가고 생각한다.


4. 기업은 부도, 술집 · 노래방은 호경기

  현재 연변의 대부분 기업들은 불경기에 처해 있고 부도(不渡)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많은 기업들에서 월급을 제때에 지불하지 못하고 있으며, 100% 월급을 기한을 넘기지 않고 지불하는 동시에 보너스를 챙겨주는 기업은 많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연변의 일부 지방은 ‘전국 빈곤현시’로 지정되어 세금 등 면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고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기업은 불경기고 월급은 제대로 지불되지 않지만 술집과 노래방은 항상 고객으로 차고 넘치고 있다는 점이다.

 

  명절이나 주말이 되면 노래방은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 할 정도로 호황(好況)을 누리고 있고, 고급술집의 가격은 대도시에 비해서도 손색없을 정도로 가격이 비싸지만 언제나 손님들로 만원(滿員)이다. 고소비의 경제내원의 하나는 정부관원들의 공금으로 된 술집초대이며, 또 다른 원천은 외국에서 피땀으로 벌어온 외화(外貨) 수입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술집초대에 비해 외자유치는 부진하며,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벌어온 외화가 기업투자 및 재테크에 이용되지 않고 주로 부동산 및 고소비·사치비로 탕진된다는 점이다.


5. 출국 붐으로 이어지는 ‘이향배정(離鄕背井)’

  최근 10여 년간 연변에는 출국 붐이 지속되면서 갖은 수단과 편법을 동원되었고 집을 저당 잡히고 비싼 고리대금을 꾸어서 비용을 장만하며, 출국을 위해서라면 위장결혼도 서슴없고 진짜이혼이 될 수 있는 가짜이혼도 주저하지 않는 기현상이 비일비재하였다. 난해한 것은 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3류 공민’ 대접을 받는 불법체류와 떠돌이 · 품팔이, 또한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3D 업종의 편고지역을 마다하지 않으며, 낯설고 외로운 이역에서의 갖은 인격무시와 기시를 감수하고 이향배정(離鄕背井)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실업과 정리해고를 당한 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족과의 이별의 아픔과 고역을 감내하고 떠나는 ‘아버지’의 출국행은 갸륵하며, 부모님을 잘 모시고 점점 늘어나는 자식들의 학비마련을 위해 결연히 고달픈 외국행을 선택한 ‘어머니’의 정신은 가상하다고 할 수 있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벌어온 것이 부(富)를 축적하는 달러라면 유득유실(有得有失)로 장기간의 이별로 인해 부부의 금슬은 사라졌으며, 부모의 사랑을 잃은 어린 자식들의 타락과 방황 및 그들이 받은 마음속의 상처는 ‘달러의 힘’으로만 씻을 수 없다는 점이다.


6. 황폐해지는 농촌은 노약자 ‘천국’

  개혁개방 이후 농촌 잉여 노동력의 도시진출 붐이 일어남에 따라 농촌의 젊은 층들이 인근도시나 연해지역으로 대량 진출하였으며, 최근에는 출국 붐이 연변에 유행됨에 따라 노무송출 등의 방식으로 외국에 달러벌이로 떠난 농촌에는 젊은이가 적고 노약자들만 남아있는 황폐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표징으로 인구감소에 따른 학생 내원의 부족으로 농촌학교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농촌은 점차 노인들의 세상인 ‘양로원’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위장결혼이 유행되어 가짜이혼이 성행하고 있고 홀아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처녀들의 도시진출과 국제결혼이 늘어남에 따라 농촌에는 결혼 못한 노총각들이 증가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금세기말이면 연변의 인구가 20만 이하로 감소, 명실 공히 노약자 ‘천국’으로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농촌인구의 유실은 농촌 황폐화 현상을 초래하였고, 도시의 인구과잉과 환경위생 및 치안상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의 농촌정책에 대한 변화와 개혁, 그리고 농민에 대한 정책상의 지원과 각종 인센티브 실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이다.


7. 정심술상초대로 붐비는 고급식당

  현재 연변경제가 부진하고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점 특히 고급식당의 경기는 호경기로 항상 손님들로 붐비고 있으며, 호화식당의 고급룸은 정심에도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님들로 만원이다. 이는 중국 및 연변에서 정심초대술상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며, 정심술상초대는 중국특유의 현상이자 연변특색으로 외국인들에게 가장 불가사의하고 납득이 안 되는 점이다. 그리고 주안상이 풍성하고 연회시간이 긴데 대해서는 연변에 가본 국내외의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혀를 찰 정도이다.

 

  전국 빈곤현시로 지정되어 나라의 혜택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연변어른(고위공직자)들의 여유와 관대함은 알아줘야 할 것이다. 퍼런 대낮에 큰소리로 떠들면서 대취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공직자 부패가 왜서 최근 중국정부의 부패척결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외국투자기업들의 (현지)곤란 해결과 서비스는 뒷전이지만 상급어른이나 이해(利害)관계인에 대한 풍성한 초대는 전국에서도 으뜸가는 수준이다. 인민의 공복이며 부모관(父母管)으로 불리는 정부관원들의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8. 흥정하는 택시요금, 고향이미지 실추

  연변의 또 다른 ‘불가사의’는 거리마다 택시가 넘쳐나고 (소형)택시가 주요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主고객이 조선족들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연변의 수부인 연길시를 놓고 보면 일반적으로 시내 안에서는 5원(한화 약 600원)을 받고 시외를 벗어나면 10원을 받는데, 택시요금이 때와 장소 및 고객에 의해 흥정이 되며, 따라서 수시로 변동된다. 최근 연변정부에서 거금을 들려 택시미터 시스템을 인입하였지만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기사와 고객 모두가 이 시스템의 사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택시미터에 표시된 금액을 택시요금의 기준으로 하지 않고 기사와 고객이 택시요금을 놓고 흥정하는 것은 중국의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연길시의 진풍경이며 연변특색으로 불가사의한 사회현상이다. 연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택시요금 흥정 현상에 대해 정부의 중시와 대책이 소요되며, 아울러 문화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교통도덕 및 룰(Rule)을 준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택시 서비스는 그 도시와 시민들의 문명정도를 엿볼 수 있는 창구이자 평가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9. 싼 고향産보다 비싼 타향産이 인기?

  필자는 가끔 고향에 가면 친구들로부터 다방(茶房)에 초대받는데, 그 가격이 일반 음식점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조용하고 우아한 환경으로 인해 면담장소로 제격이다. 보통 다방에서는 연변산인 BC 맥주는 5원이지만 외지에서 들여온 맥주는 10원에 판다. 필자가 친구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맛이 진한 BC 맥주를 요구하면 친구들은 ‘수준이 떨어진다’면서 기어코 비싼(10원) 할빈(哈尔滨) 맥주나 청도(青岛) 맥주를 청하는데, 난해하고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편 친구들의 성의를 무시하기도 그렇고 입향수속(入鄕隨俗, 고향에 가면 고향의 습관을 따른다는 뜻)이 또한 예의인지라 부득이 따르기는 하지만 주머니 사정도 변변치 않은 그들이 고향産을 무시하고 타향의 비싼 맥주를 선호, 그것을 성의 있는 초대(?)로 간주하는지 여간만 난해하지 않다. 반면 대부분의 북경인들은 값싸고 도수(56도)가 높은 지방특산 이과두(二鍋頭)와 연경(燕京) 맥주를 즐겨 마시며, 애국심이 강한 한국인들은 국산 소주와 맥주를 선호한다. 현재 고소비와 사치가 팽배한 연변으로서는 중국인의 검소하고 실리적인 면과 한국인의 신토불이의 정신 및 애향심(愛鄕心)을 따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0. 불친절한 공무원, 최악의 서비스

  공직자 부패와 더불어 공무원의 불친절한 서비스는 현재 중국사회에 만연된 병폐이자 연변사회의 폐단이기도 하다. 모종 면에서 보면 공무원의 친절여부와 서비스 정도는 그 사회의 문명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며, 문명사회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준이 된다. 현재 연변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이 가장 큰 불만으로 공무원들의 불친절한 서비스가 거론되며, 연변에 다녀온 외국인들이 가장 불만적이고 악평(惡評)하는 것이 바로 연변사회에 만연된 불친절한 공무원의 최악의 서비스다.


  예컨대 국외 항공사와 공항의 친절한 서비스와 현저하게 대조되는 것이 바로 연길공항의 혼잡과 공항인원들의 불친절한 서비스다. 그리고 고객들의 저축한 돈으로 생존하는 은행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는 더욱 난해하다. 은행창구와 고객 사이를 가로막는 ‘벽 창문’을 바라보면 교도소 수감 중인 죄수와 면회자 사이에 가로 막힌 철창문이 연상된다. 고객과 은행 간의 불신임만 초래하는 이러한 ‘벽 창문’은 이웃나라 한국에는 없다. 필자는 최근 연변정부가 추진하는 ‘연성환경’ 건설이 한낱 아름다운 슬로건(標語)에 머물지 말고 효과적으로 추진되어, 연변의 이미지 개선과 문명사회 발전에 큰 기여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상술한 사회문제와 사회병폐들은 우리 연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최근 들어 정부와 서민들의 공동노력으로 많이 해결되고 치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실추된 연변의 대외이미지를 만회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연변, 아름다운 연변을 건설하려면, 정부의 관련 해결책 마련과 정책 추진, 문명시민으로서의 자질 제고 및 전체사회의 노력이 진일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SCK포럼


 

연변은 간다
― 연변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 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등짝에 실려 왔는데
문화혁명 때 주아바이4) 랑 한번 덜컥 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 배추처럼 파릇파릇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골목에서 무우짠지랑 같이 약간 소문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랭면발처럼 쫙쫙 뻗어나갔는데
전국적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 게 연변이였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타고 한국 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동경, 북쪽으로 하바롭쓰끼
그리고 사이판, 샌프란시스코에 파리 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인들 연변이 없을쏘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려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 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 있으니
이젠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헷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료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

한국 언론,이러면 우린 못 봅니다 / 방홍국

2007.02.08 09:02 | ▒ 중국조선족문학작품 | 꼬꼬

http://kr.blog.yahoo.com/gogohua/703490 주소복사

한국 언론,이러면 우린 못 봅니다

방홍국



요즘 한국 텔레비와 신문들
해도해도 너무 합니다
이러면 우린 
보고 싶어도 못 봅니다
아니,보기 싫어 집니다
“이건 아니잖아!이건 아니잖아!”

愛國 愛族은 좋지만
이런식의 애국 애족은 안 됩니다
남의 역사 남의 나라 남의 민족성을 
왜곡하고 폄하하고 흠집내는
이런식의 애국 애족은 자칫
害國 害族이 될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로사돼
남을 욕하지 마라
남 또한 너를 욕할지어니

일본은 자기보다 잘 사는게 시샘나 싫고
중국은 자기 뒤를 바짝 추격하는게 힘들어서 싫고
미국은 자기를 자꾸 짓 누르는것 같아 억울해서 싫고
…….
이래 저래
떨어져선 살수 없는 
크고 중요한 나라들 다 싫으면
어디한번 
달나라에 가서 고구려를 건국하시지요

요즘 한국 기자들,젊은 사람들
참 속이 편하시겠어요
하고 싶은 말은 
옳든 그르든 
다 하고 살어서
참 속이 편하시겠어요

하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하던가요
주위 사람들을 되는대로 말하고 욕하고
그래도 되던가요
사람들이 
응 그래 너 잘났다
그러고 잠자코만 있던가요

주위 사람에 대해서도
말은 조심조심 골라서 해야 하거늘
어찌 한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섣뿔리 말을 뱉을수가 있겠습니까

중국이 그리 우숩게 여겨집디까
연개소문,주몽,대조영…에서
수천 수백년전 중국의 역사와 역사인물들을 
21세기 한국 젊은이들 조롱거리로 왜곡해도
별 반응 없으니까
이번엔 중국땅에서
중국의 장백산은
우리의 백두산이다
그러는 젊은이들이 
자랑스러워 집디까

그러는게 아니다
너희들 애국의 마음은 가상타만
그러는게 아니다
그랬어야지요
그러는 어른들의 말씀을 전했어야지요

이것 보시오
한국이  중국에 
이래라 저래라 해도 됩니까
이래라 저래라 할수 있습니까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하지 마라
비행장을 장백산 서쪽에 건설치 마라
학교이름을 장백산으로 고치지 마라…
그러니 그리 하던 가요

동북은 동북이 아니고 만주이며
먼 예날에는 한국조상들의 땅이었으니
역사를 바로 써라
그러니 그리 하던 가요

말은 되는 말을 하고
되는 말일지라도 되게 말하셔야지
안 되는 말을 하고
되는 말도 되지 않게 말하니
시시비비는 눈덩이 처럼 커져서
언제 그 눈덩이에 깔리지나 않을가 념려 스럽습니다

사람이 많다 보면
중국을 싫어하고 곡해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중국을 좋아하고 옳바로 보는 이들이 많을 터여서
텔레비와 신문에 나와서 소리쳐도
좋아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큰것이 의당하거늘
어찌하여
싫어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더 큰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또한 과실이 주렁주렁 많이 열리다 보면
어쩌다 못 생기고 벌레 먹은 알알이 있음은 면키 어려운 법
양양 중국의 수많은 좋은 것에는 눈감아 버리고
못 된것에 확대경을 들이대서는 소리지르니
그 눈을 어찌 맑고 밝은 눈이라 하겠습니까

얼마전 한국의 한 어른이
중국 할빈에 와서
독립투사들을 도와준 흑룡강성 인민들에 감사한다
머리를 숙인적이 있습니다.

어렵사리 가까워 진
중국과 한국의 관계입니다

아직도 훨씬 더 가까워 져야할
중국과 한국의 관계 입니다

돈으로서 가까워진 사이
이제 마음으로 더 가까워 져야 할 때입니다

마음이 가까우면
돈으로도 가까워 질 것이요
마음으로 멀어지면
가깝던 돈관계도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서로
상대를 이쁘게 보려고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우린 서로
상대의 발뒤꿈치 조차 이쁘게 볼수 있는
아량을 지녀야 합니다.


방홍국
------------
남개대학 졸업.
연변주통전부 해외련락처 처장.
fanghg@hanmail.net

남자들도 눈굽이 축축히 젖어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한숨을 짓거나 고개를 푹 숙이거나 했다. 털부숭이 곰새끼처럼 생긴 난쟁이 바보 차승렬은 슬픈 기색을 짓는 그 얼굴이 꼭마치 웃고있는것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로련한 배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볕에 그을고 바람에 거칠어진 그 엄한 얼굴에 그렇듯 자연스럽고도 실감적인 슬픔이 어둡게 실려있었던것이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나는 어쩔수없이 비감에 잠겨있었지만 웬 일인지 눈물이 나오질 않고있었다. 녀자들처럼 흐느끼고 소리내여 울지는 못하더라도 눈물은 그들먹이 솟아나야 할것이고 적어도 눈굽은 축축히 젖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도무지 그렇게 되질 않고있었다. 모주석에 대한 감정, 말하자면 《심후한 프로레타리아감정》이 박약하거나 전혀 없기때문에 눈물이 솟아나지 않는것만 같아서 무척 죄스러웠고 눈물없는 얼굴을 남들앞에 보이기 난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기실 이름할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있었다.


    (이젠 어떻게 되는건가? 중국은 어떻게 될가?… 모주석이 계셨기에 여직껏 행복하게 살수 있었는데… 혹 자본주의가 복벽되지나 않을가?)


    …아득한 창공에서 작열하던 태양이 갑자기 새까만 숯덩어리로 꺼지고있었다. 그리고 별찌처럼 무섭게 떨어져내리고있었다. 내 마음속 우주에, 그 하늘에 떠있던 빨간 《크레용태양》이였다.


    소학교 1학년, 여덟살나던 해의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담임녀선생님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독감기에 걸려 시래기처럼 푹 나부라져가지고 선생님 잔등에 뺨을 꼭 붙인채 눈을 감고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몸이 아픈것과는 상관없이 무척 신기하고 아름다운 감동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날 도화시간에 우리는 태양을 그렸다. 선생님이 그린것처럼 동그라미를 정성껏 그리고 그 동그라미에다 빨간 크레용을 칠해넣었다. 더더욱 빨갛게 되라고 자꾸자꾸 칠을 했다.


    《태양은 모주석, 우리 맘속에 떠있는 영원한 지지 않는 태양!》


    선생님의 말씀이였다.


    나는 선생님 등에 업혀서 내 마음속 우주에 떠있는 태양을 분명히 보고있었다. 내가 그린 동그랗고 빨간 《크레용태양》이 찬란한 빛발을 뿌리고있었고 그아래에서 산과 강과 수풀과 오곡이 아름답게 빛나고있었으며 내 생명이 꿈의 신비와 생활의 환희로 가득차있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동화가 깨여진것이다.


    어느덧 해가 룡두령너머로 지고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앉아있을것만 같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헛기침을 몇번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오래전부터 굳어진 버릇이였는데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이였다. 아버지는 사뭇 침통한 표정을 짓고서 전에 없었던 연설조로 나왔는데 말은 조리가 없었다. 먼저 한 말을 또 곱씹고 빙빙 둘러서 서에 갔다 동에 갔다 했는데 일부러 중심을 종잡을수 없게 만들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소박하고 식자없는 농촌간부의 격에 맞는것이라 여겨 성심껏 경청했다.


    아버지의 《연설》은 대체로 모주석의 태산같은 은덕과 자신의 비통한 심정과 모주석의 유지를 이어받아 《계속혁명》을 할데 대한 내용이였고 마지막으로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저녁후에 담배작업을 완성하자고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헤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담배줄새끼뭉치를 깔고앉아 담배를 새로 말아 붙여물었고 생산대장과 뭔가 심각한 토론을 하고있었다. 인차 저녁식사하러 들어올 기미가 아니것 같았다.


    아버지와 정면으로 만나게 될 그 순간이 몹시 두려웠던 나는 은근히 기뻤다. 아버지가 식사하러 늦게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말았으면 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제꺽 저녁을 먹고 담배를 뱆아서 건조실에 다는 야간작업에서 열성을 보이리라 했다. 그러면 아버지도 오늘 담배일에서 뺑소니친 죄를 량해하고 묵과할것이라싶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저녁을 다 지어놓고있었다.


    《밥 주우―》


    나는 성급히 밥상에 마주앉아 재촉했다.


    《아버진 안들어오니? 좀 기다렸다 같이 먹으렴.》


    《배고픈데… 먼저 먹개.》


    배고픈것도 사실이였다. 그렇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아버지가 돌아올것만 같아 속집이 달았다.


    《애두, 아버지한테 꾸중 듣지 않나봐라. 그래 점심도 굶고 어디가 있었니?》


    어머니가 눈을 한껏 흘기며 나무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정이 넘치는 아버지앞에서 나를 감싸주고 두둔하는 아픈 모성애임을 나는 알고있었다.


    이윽고 새하얗고 기름이 도는 쌀밥이 상우에 올려졌다. 저녁에 이밥을 먹는 일은 퍽 드물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식량이 떨어져서 국가창고로부터 《반소량》을 내여다 먹는 형편이였다. 그것도 입쌀이 아니고 강냉이낟알이여서 아침과 점심 두끼는 그래도 입쌀이 약간 섞인 강냉이밥이였지만 저녁 한끼는 줄기차게 풋강냉이를 삶아먹었던것인데 감격스럽게도 쌀밥이다.


    나는 반찬과 국을 다 갖추어놓길 기다릴 사이도 없이 넋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을 몇숟가락 떠먹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인차 따라들어왔던것이다.


    바당에 들어서는 아버지를 어망간에 쳐다본 나는 무서운 순간을 금시 예감하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흘겨보는, 적의를 품은듯한 눈길에는 질책의 빛이 가득했다. 버릇 가르치려고 단단히 윽벼르고 들어온 기세였다.


    《아아새끼, 심통 편하다!》


    하지만 나는 죽여줍시사 하고 묵묵히 수저만 놀리였다.


    《아직도 밥 퍼먹구있어?》


    뒤미처 떨어진 벽력같은 소리였다.


    순간 나는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피를 화끈 얼굴에 느끼며 번쩍 고개를 쳐들어 아버지를 직시했다. 시선과 시선이 무섭게 대결하는 순간 나는 아버지한테 량해의 뜻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였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반발심이 속에서 솟구쳐올랐다. 나는 수저를 집어던지듯 덜렁 놓고 일어섰고 방문을 걷어차고 뛰여나왔던것이다.


    어머니가 뛰쫓아나와서 한사코 따라붙으며 뭔가 설득시키려 애쓰고있었다.


    《얘, 석호야, 그런게 아니구… 내 말 좀 들어라. 아버지가 오늘 그런 일 있었단다. 충연이 그 애가 담배단 묶는 일을 시켰더니 짐작없이 크게 묶어놔서 툭툭 터지지 않았겠니. 아버지가 꾸중 좀 하니 걔가 뭐라고 하겠니. 글쎄 제 아들은 일 안시키고 어쩌고… 그러니 네 아버진들 듣기 좋겠느냐? 그러지 말구 들어가 반성해라. 아버지앞에… 밥두 먹구.》


    물론 도리가 있는 말이였다. 그렇지만 나의 귀에 그런 말들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격론리에는 합리한것일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도저히 먹혀들수 없는것이였다.


    오늘같은 범상치 않은 날에 모주석께서 서거하신 지금 이 시각에 내 마음도 그지없이 슬프고 아픈데… 불안스럽고 답답한데… 그로 해서 또한 일에서 뺑소니친 못된 소행이 더욱 뉘우쳐지고 괴로운데… 그래서 밤작업에 열성을 보이려고 마음먹었던것인데… 아버지가 량해해주고 묵과해주면 내 스스로가 더욱 감동을 받고 헴이 들텐데… 더욱 아버질 존경할텐데!… 그렇게 되면 그게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아주 철없는 아이로 보고있지. 지각머리 없는 사람구실 못할 놈으로 여기는거야. 그래서 짐승처럼 길들이려고 하는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에 대한 반기를 쳐들고 야심적인 대항을 선언하며 어머니를 뿌리치고서 마을뒤로 들어갔다. 질정없는 걸음을 걸으며 윤철이를 찾아갈가? 어느 동무네 집에 갈가? 했으나 다 내키지 않았다.


    미구하여 나는 마을을 벗어져서 대돌뚝우를 걷고있었다. 머리를 수그리고 기분없이 할 일없는 사람처럼 걷는듯 마는듯한 행보였다. 풀대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대로 쑥잎을 주르르 훑어서는 화가 난듯이 홱 쥐여뿌리기도 했으며 버들회초리로 잡초들을 후려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서 마침내 초막에 이르렀다. 밤마다 고기발을 놓으려 왔던 곳이였고 고기발을 지키느라 내가 손수 세워놓은 고깔모자 모양의 초막이였다. 마을로부터 초막까지는 약 2리 정도의 거리였고 이삭이 패여서 여물기 시작한 논벌이 그사이에 뉘연히 펼쳐져있었다.


    어느덧 박모(薄暮)의 으스름이 마을과 논벌에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초막앞 대돌뚝우에 주질러 앉아서 어둠이 깃을 펴는 마을과 논밭과 우중충한 산과 먼 하늘을 울적히 바라보고있다가 초막안에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다. 


    밑자리에 지면과 뜨게 널판자를 괴여깔고 그우에다 비닐박막과 깨끗한 가마니를 두잎 폈으나 허리에 랭기가 느껴지고있었다. 점점 허리가 시려왔지만 그렇건 말건 눈을 꿈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밤은 여기에서 이렇게 지새우리라 했다. 솜옷 생각이 났으나 홑옷맵시로 뛰쳐나온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맵시로는 차디찬 새벽기온에 견디기 어려우리라 생각되면서도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런 고초쯤은 달갑게 겪으리라 했다. 오히려 그 어떤 혹경에 육신을 던져넣고서 한껏 시달림을 당하고 아픔을 겪고 불맞은 짐승처럼 신음하고싶은 무모한 충동이 일어나고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슴아파하겠지. 적어도 마음이 편안치는 못하겠지… 짐승도 제 새끼는 고와한다는데…)


    이런 고육지책으로 아버지를 굴복시키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완명(?冥)한 관념과 습벽을 고쳐주리라 했다.


    그러자 까닭모르게 서러워지고있었다. 아버지가 지금 제 아들이 이런 외로움을 겪고있는줄 모르고있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서러움에 금시 격렬한 오열로 터져올랐다. 나는 엎르려서 한참이나 그렇게 설음을 쏟아내다가 울음에 지쳐버린 아이처럼 잠속에 빠져들고있었다.


    한덩이의 뿌리깊은 구심점(求心?)― 마음속에 웅크리고있는 악성종양과도 같은 정체모를 응어리, 좀처럼 풀길없는 불안과 괴로움의 응어리를 품은채 나는 깊은 수면의 바다속에 끝없이 침몰돼가고있었다.


    뜻밖의 충격적인 사변―모주석서거―로 인발된, 인제 세상은 어떻게 되여지는걸가? 이런 의혹과 우리들이 여태껏 영위해온 즐거운 삶과 질서가 송두리채 뒤흔들릴것만 같은 불안과 자기 개인보다는 나라와 민족이 일조에 기둥을 잃은것만 같은 그런 한없는 허전한 괴로움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나는 누군가의 무척 끈질긴 애무를 꿈속에서처럼 느끼였다. 보드랍고 따스한 손길이 나의 뺨과 목을 애모쁘게 어루만지고있었다. 나는 분명히 취할듯이 그윽한 분냄새를 맡고있었고 녀자의 신비한 체취를 의식하고있었다.


    《깨여나요, 석호… 이렇게 열이 심한데… 어서요!》


    희애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따스한 손으로 내 가슴을 애무하는듯 흔드는듯하며 속삭이였다.


    《으―으―응!―》


    가냘픈 앓음소리가 급기야 내 목구멍에서 토해져나왔다.


    이어서 머리가 빠개지는듯한 두통과 허리에 찬 랭수를 끼얹는듯한 심한 오한이 느껴져왔다. 내 몸뚱아리는 연신 단숨을 급촉하게 뿜어내며  병든 짐승처럼 신음하고있었다. 신열에 들뜬 육체에서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뭉쳐져있는 좀체로 떼쳐버릴수 없는 응어리, 그 괴로움의 응어리가 주고있는 가슴속 상처에서 내질러지는 신음이였다.


    《몹시 아파요? 석호… 자꾸만 앓음소릴 했어요. 약 먹구 땀 내얄텐데… 이제 돌아가요 응?… 괴롭다고 몸 상하면 되나요? 나도 괴로운데… 웬 일인지 몰라. 괴로와! 흑…》


    희애의 묵중한 웃몸이 나의 가슴우에 실려오고있었고 그녀의 달콤한 뺨이 비비는듯 마는듯 내 얼굴에 밀착되여왔다. 그녀의 눈물에 내 뺨에 감촉되고있었다.



 나는 신열에 들떠서, 괴로움에 허우적거리며 꿈속에서처럼 희애의 몸뚱이를 껴안았다. 어딘가 뜨끈뜨끈한 열도속에 투척이 되여 뼈속까지 스며든 내 몸의 한기를 녹여내고싶은 그리고 가슴속에 뭉쳐져있는 괴로움의 응어리를 격렬한 몸부림으로 풀어버리고싶은 절박한 욕망에 휘말려서 내 몸뚱아리는 무섭게 전률하고있었다.


    어느 사이 두입술이 뜨겁게 포개여졌다. 마치 두개의 탐욕스런 흡반처럼 들어붙어서 연신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오래도록 짓이기고있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화로불처럼 뜨끈뜨끈한 희애의 육체속으로, 그 신비의 늪속으로 아무런 수치심도 일말(一沫)의 죄의식도 없이 헤덤비며 조금은 란폭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나의 온몸이 빨려들어가고있었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육신과 령혼을 불사른 끝에, 스러져가는 감동의 여파와 함께 온몸의 기력이 쭉― 빠져나가던 그 순간에 나는 또다시 빨간 《크레용태양》을 떠올렸던것이다.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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