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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도 눈굽이 축축히 젖어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한숨을 짓거나 고개를 푹 숙이거나 했다. 털부숭이 곰새끼처럼 생긴 난쟁이 바보 차승렬은 슬픈 기색을 짓는 그 얼굴이 꼭마치 웃고있는것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로련한 배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볕에 그을고 바람에 거칠어진 그 엄한 얼굴에 그렇듯 자연스럽고도 실감적인 슬픔이 어둡게 실려있었던것이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나는 어쩔수없이 비감에 잠겨있었지만 웬 일인지 눈물이 나오질 않고있었다. 녀자들처럼 흐느끼고 소리내여 울지는 못하더라도 눈물은 그들먹이 솟아나야 할것이고 적어도 눈굽은 축축히 젖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도무지 그렇게 되질 않고있었다. 모주석에 대한 감정, 말하자면 《심후한 프로레타리아감정》이 박약하거나 전혀 없기때문에 눈물이 솟아나지 않는것만 같아서 무척 죄스러웠고 눈물없는 얼굴을 남들앞에 보이기 난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기실 이름할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있었다.
(이젠 어떻게 되는건가? 중국은 어떻게 될가?… 모주석이 계셨기에 여직껏 행복하게 살수 있었는데… 혹 자본주의가 복벽되지나 않을가?)
…아득한 창공에서 작열하던 태양이 갑자기 새까만 숯덩어리로 꺼지고있었다. 그리고 별찌처럼 무섭게 떨어져내리고있었다. 내 마음속 우주에, 그 하늘에 떠있던 빨간 《크레용태양》이였다.
소학교 1학년, 여덟살나던 해의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담임녀선생님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독감기에 걸려 시래기처럼 푹 나부라져가지고 선생님 잔등에 뺨을 꼭 붙인채 눈을 감고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몸이 아픈것과는 상관없이 무척 신기하고 아름다운 감동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날 도화시간에 우리는 태양을 그렸다. 선생님이 그린것처럼 동그라미를 정성껏 그리고 그 동그라미에다 빨간 크레용을 칠해넣었다. 더더욱 빨갛게 되라고 자꾸자꾸 칠을 했다.
《태양은 모주석, 우리 맘속에 떠있는 영원한 지지 않는 태양!》
선생님의 말씀이였다.
나는 선생님 등에 업혀서 내 마음속 우주에 떠있는 태양을 분명히 보고있었다. 내가 그린 동그랗고 빨간 《크레용태양》이 찬란한 빛발을 뿌리고있었고 그아래에서 산과 강과 수풀과 오곡이 아름답게 빛나고있었으며 내 생명이 꿈의 신비와 생활의 환희로 가득차있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동화가 깨여진것이다.
어느덧 해가 룡두령너머로 지고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앉아있을것만 같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헛기침을 몇번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오래전부터 굳어진 버릇이였는데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이였다. 아버지는 사뭇 침통한 표정을 짓고서 전에 없었던 연설조로 나왔는데 말은 조리가 없었다. 먼저 한 말을 또 곱씹고 빙빙 둘러서 서에 갔다 동에 갔다 했는데 일부러 중심을 종잡을수 없게 만들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소박하고 식자없는 농촌간부의 격에 맞는것이라 여겨 성심껏 경청했다.
아버지의 《연설》은 대체로 모주석의 태산같은 은덕과 자신의 비통한 심정과 모주석의 유지를 이어받아 《계속혁명》을 할데 대한 내용이였고 마지막으로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저녁후에 담배작업을 완성하자고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헤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담배줄새끼뭉치를 깔고앉아 담배를 새로 말아 붙여물었고 생산대장과 뭔가 심각한 토론을 하고있었다. 인차 저녁식사하러 들어올 기미가 아니것 같았다.
아버지와 정면으로 만나게 될 그 순간이 몹시 두려웠던 나는 은근히 기뻤다. 아버지가 식사하러 늦게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말았으면 했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에 제꺽 저녁을 먹고 담배를 뱆아서 건조실에 다는 야간작업에서 열성을 보이리라 했다. 그러면 아버지도 오늘 담배일에서 뺑소니친 죄를 량해하고 묵과할것이라싶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저녁을 다 지어놓고있었다.
《밥 주우―》
나는 성급히 밥상에 마주앉아 재촉했다.
《아버진 안들어오니? 좀 기다렸다 같이 먹으렴.》
《배고픈데… 먼저 먹개.》
배고픈것도 사실이였다. 그렇지만 조금만 지체해도 아버지가 돌아올것만 같아 속집이 달았다.
《애두, 아버지한테 꾸중 듣지 않나봐라. 그래 점심도 굶고 어디가 있었니?》
어머니가 눈을 한껏 흘기며 나무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정이 넘치는 아버지앞에서 나를 감싸주고 두둔하는 아픈 모성애임을 나는 알고있었다.
이윽고 새하얗고 기름이 도는 쌀밥이 상우에 올려졌다. 저녁에 이밥을 먹는 일은 퍽 드물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식량이 떨어져서 국가창고로부터 《반소량》을 내여다 먹는 형편이였다. 그것도 입쌀이 아니고 강냉이낟알이여서 아침과 점심 두끼는 그래도 입쌀이 약간 섞인 강냉이밥이였지만 저녁 한끼는 줄기차게 풋강냉이를 삶아먹었던것인데 감격스럽게도 쌀밥이다.
나는 반찬과 국을 다 갖추어놓길 기다릴 사이도 없이 넋없이 퍼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을 몇숟가락 떠먹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인차 따라들어왔던것이다.
바당에 들어서는 아버지를 어망간에 쳐다본 나는 무서운 순간을 금시 예감하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버지의 흘겨보는, 적의를 품은듯한 눈길에는 질책의 빛이 가득했다. 버릇 가르치려고 단단히 윽벼르고 들어온 기세였다.
《아아새끼, 심통 편하다!》
하지만 나는 죽여줍시사 하고 묵묵히 수저만 놀리였다.
《아직도 밥 퍼먹구있어?》
뒤미처 떨어진 벽력같은 소리였다.
순간 나는 격렬하게 끓어오르는 피를 화끈 얼굴에 느끼며 번쩍 고개를 쳐들어 아버지를 직시했다. 시선과 시선이 무섭게 대결하는 순간 나는 아버지한테 량해의 뜻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였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반발심이 속에서 솟구쳐올랐다. 나는 수저를 집어던지듯 덜렁 놓고 일어섰고 방문을 걷어차고 뛰여나왔던것이다.
어머니가 뛰쫓아나와서 한사코 따라붙으며 뭔가 설득시키려 애쓰고있었다.
《얘, 석호야, 그런게 아니구… 내 말 좀 들어라. 아버지가 오늘 그런 일 있었단다. 충연이 그 애가 담배단 묶는 일을 시켰더니 짐작없이 크게 묶어놔서 툭툭 터지지 않았겠니. 아버지가 꾸중 좀 하니 걔가 뭐라고 하겠니. 글쎄 제 아들은 일 안시키고 어쩌고… 그러니 네 아버진들 듣기 좋겠느냐? 그러지 말구 들어가 반성해라. 아버지앞에… 밥두 먹구.》
물론 도리가 있는 말이였다. 그렇지만 나의 귀에 그런 말들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격론리에는 합리한것일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도저히 먹혀들수 없는것이였다.
오늘같은 범상치 않은 날에 모주석께서 서거하신 지금 이 시각에 내 마음도 그지없이 슬프고 아픈데… 불안스럽고 답답한데… 그로 해서 또한 일에서 뺑소니친 못된 소행이 더욱 뉘우쳐지고 괴로운데… 그래서 밤작업에 열성을 보이려고 마음먹었던것인데… 아버지가 량해해주고 묵과해주면 내 스스로가 더욱 감동을 받고 헴이 들텐데… 더욱 아버질 존경할텐데!… 그렇게 되면 그게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아주 철없는 아이로 보고있지. 지각머리 없는 사람구실 못할 놈으로 여기는거야. 그래서 짐승처럼 길들이려고 하는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에 대한 반기를 쳐들고 야심적인 대항을 선언하며 어머니를 뿌리치고서 마을뒤로 들어갔다. 질정없는 걸음을 걸으며 윤철이를 찾아갈가? 어느 동무네 집에 갈가? 했으나 다 내키지 않았다.
미구하여 나는 마을을 벗어져서 대돌뚝우를 걷고있었다. 머리를 수그리고 기분없이 할 일없는 사람처럼 걷는듯 마는듯한 행보였다. 풀대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대로 쑥잎을 주르르 훑어서는 화가 난듯이 홱 쥐여뿌리기도 했으며 버들회초리로 잡초들을 후려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서 마침내 초막에 이르렀다. 밤마다 고기발을 놓으려 왔던 곳이였고 고기발을 지키느라 내가 손수 세워놓은 고깔모자 모양의 초막이였다. 마을로부터 초막까지는 약 2리 정도의 거리였고 이삭이 패여서 여물기 시작한 논벌이 그사이에 뉘연히 펼쳐져있었다.
어느덧 박모(薄暮)의 으스름이 마을과 논벌에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초막앞 대돌뚝우에 주질러 앉아서 어둠이 깃을 펴는 마을과 논밭과 우중충한 산과 먼 하늘을 울적히 바라보고있다가 초막안에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다.
밑자리에 지면과 뜨게 널판자를 괴여깔고 그우에다 비닐박막과 깨끗한 가마니를 두잎 폈으나 허리에 랭기가 느껴지고있었다. 점점 허리가 시려왔지만 그렇건 말건 눈을 꿈 감고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밤은 여기에서 이렇게 지새우리라 했다. 솜옷 생각이 났으나 홑옷맵시로 뛰쳐나온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맵시로는 차디찬 새벽기온에 견디기 어려우리라 생각되면서도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런 고초쯤은 달갑게 겪으리라 했다. 오히려 그 어떤 혹경에 육신을 던져넣고서 한껏 시달림을 당하고 아픔을 겪고 불맞은 짐승처럼 신음하고싶은 무모한 충동이 일어나고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슴아파하겠지. 적어도 마음이 편안치는 못하겠지… 짐승도 제 새끼는 고와한다는데…)
이런 고육지책으로 아버지를 굴복시키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완명(?冥)한 관념과 습벽을 고쳐주리라 했다.
그러자 까닭모르게 서러워지고있었다. 아버지가 지금 제 아들이 이런 외로움을 겪고있는줄 모르고있으리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서러움에 금시 격렬한 오열로 터져올랐다. 나는 엎르려서 한참이나 그렇게 설음을 쏟아내다가 울음에 지쳐버린 아이처럼 잠속에 빠져들고있었다.
한덩이의 뿌리깊은 구심점(求心?)― 마음속에 웅크리고있는 악성종양과도 같은 정체모를 응어리, 좀처럼 풀길없는 불안과 괴로움의 응어리를 품은채 나는 깊은 수면의 바다속에 끝없이 침몰돼가고있었다.
뜻밖의 충격적인 사변―모주석서거―로 인발된, 인제 세상은 어떻게 되여지는걸가? 이런 의혹과 우리들이 여태껏 영위해온 즐거운 삶과 질서가 송두리채 뒤흔들릴것만 같은 불안과 자기 개인보다는 나라와 민족이 일조에 기둥을 잃은것만 같은 그런 한없는 허전한 괴로움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나는 누군가의 무척 끈질긴 애무를 꿈속에서처럼 느끼였다. 보드랍고 따스한 손길이 나의 뺨과 목을 애모쁘게 어루만지고있었다. 나는 분명히 취할듯이 그윽한 분냄새를 맡고있었고 녀자의 신비한 체취를 의식하고있었다.
《깨여나요, 석호… 이렇게 열이 심한데… 어서요!》
희애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따스한 손으로 내 가슴을 애무하는듯 흔드는듯하며 속삭이였다.
《으―으―응!―》
가냘픈 앓음소리가 급기야 내 목구멍에서 토해져나왔다.
이어서 머리가 빠개지는듯한 두통과 허리에 찬 랭수를 끼얹는듯한 심한 오한이 느껴져왔다. 내 몸뚱아리는 연신 단숨을 급촉하게 뿜어내며 병든 짐승처럼 신음하고있었다. 신열에 들뜬 육체에서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뭉쳐져있는 좀체로 떼쳐버릴수 없는 응어리, 그 괴로움의 응어리가 주고있는 가슴속 상처에서 내질러지는 신음이였다.
《몹시 아파요? 석호… 자꾸만 앓음소릴 했어요. 약 먹구 땀 내얄텐데… 이제 돌아가요 응?… 괴롭다고 몸 상하면 되나요? 나도 괴로운데… 웬 일인지 몰라. 괴로와! 흑…》
희애의 묵중한 웃몸이 나의 가슴우에 실려오고있었고 그녀의 달콤한 뺨이 비비는듯 마는듯 내 얼굴에 밀착되여왔다. 그녀의 눈물에 내 뺨에 감촉되고있었다.
나는 신열에 들떠서, 괴로움에 허우적거리며 꿈속에서처럼 희애의 몸뚱이를 껴안았다. 어딘가 뜨끈뜨끈한 열도속에 투척이 되여 뼈속까지 스며든 내 몸의 한기를 녹여내고싶은 그리고 가슴속에 뭉쳐져있는 괴로움의 응어리를 격렬한 몸부림으로 풀어버리고싶은 절박한 욕망에 휘말려서 내 몸뚱아리는 무섭게 전률하고있었다.
어느 사이 두입술이 뜨겁게 포개여졌다. 마치 두개의 탐욕스런 흡반처럼 들어붙어서 연신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오래도록 짓이기고있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화로불처럼 뜨끈뜨끈한 희애의 육체속으로, 그 신비의 늪속으로 아무런 수치심도 일말(一沫)의 죄의식도 없이 헤덤비며 조금은 란폭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나의 온몸이 빨려들어가고있었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육신과 령혼을 불사른 끝에, 스러져가는 감동의 여파와 함께 온몸의 기력이 쭉― 빠져나가던 그 순간에 나는 또다시 빨간 《크레용태양》을 떠올렸던것이다.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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