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족보(族譜)가 가지는 의미는 남달랐다. 자신의 가계(家繼)가 양반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자신의 뿌리를 수록한 혈통서와 같은 종교! 조선시대 이 족보에 대한 집착은 지금의 관점으론 상상을 불허할 정도인데, 만약 이 족보가 잘못 기재되었다면 기분이 어떠할까?
그것도 일반 양반층이 아니라 왕실의 족보가 잘못되었다면 말이다. 조선 개국과 동시에 터진 이 희대의 족보 오기(誤記)사건…. 그후 조선 역사 400년을 면면히 흘러 가면서 조선 외교사 최대의 쟁점이 되었던 종계변무(宗系辨誣)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보자!
때는 1390년 고려의 운명이 서산에 뉘엿뉘엿 저무는 해처럼 저물어 가는 그 시점, 반(反)이성계파는 나라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 대충 짐작을 하고 있던 그때….
“이제 패 더 돌려봤자 계산 안 나와. 이성계 이노무 시키가 다 쓸어가 버렸으니…. 확 엎어버릴 수도 없고, 이대로 나라를 뺏기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야이 자식아!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야! 벌써 포기하면 어떡해?”
“지금 상황에서 어쩌라고? 광박에 피박에… 약도 다 깨졌고….”
“아직 우리한테는 쑈당이 남아 있어.”
쑈당? 그랬다. 고려말 반(反)이성계파는 명나라를 끌어들여 이성계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마지막 쑈당을 걸려고 했었던 것이다. 이런 계획하에 명나라로 망명(?)한 인물들이 바로 윤이(尹彛)와 이초(李初)였는데, 이들은 명나라로 망명한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성계에 대한 별별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성계 그놈이 말이죠. 겉으로는 명나라 만세, 명나라 짱! 이렇게 외치지만, 속으로는 요동정벌을 하겠다고 별별 개삽질을 다하는 놈이거덩요. 그놈 똘마니 중에 정도전이란 놈이 있는데, 그놈이 참 무서운 놈이에요.”
“울리 사람 이성계 괜찮게 봤다 해. 그놈 생긴 건 무식해 보여도 원나라 싫어하고, 울리 명나라 좋아한다 해.”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놈 정권만 잡으면 당장 요동 쳐들어온다니까요. 그놈이 공양왕의 친척이거든요. 공양왕이 왕씨가 아니에요. 공양왕은 이씨라니까요.”
“정말 공양왕은 이씨라 해?”
“맞슴다. 원래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이성계 그놈은 이인임 아들이라니까요. 이인임이 어떤 놈인지 아시죠? 친원반명파의 대표주자 아닙니까? 이성계 이놈 자식이 지네 아부지 소원 들어주겠다고, 명나라에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니까요.”
“그런데 왜 이인임 아들이 아닌 척하는 건가 해?”
“아이 참 답답하시네…. 지금 만약 이인임 아들이랍시고, 명나라 치겠다면 당장 정권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일단 정권 잡은 담에 그 담에 움직인다니까요. 이인임, 이성계…성씨도 똑같지 않슴까?”
윤이와 이초의 이런 구라빨이 명나라 조정을 뒤흔들던 그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온 조반과 왕방은 황급히 이 사실을 이성계에게 보고하게 되는데,
“윤이, 이초 이 개노무 시키들! 이제 하다하다 안되니까 내 아부지를 바꿔? 뭐? 이인임과 내가 성씨가 같아? 이 개노무 시키들! 이인임은 성주 이씨고, 나는 전주 이씨란 건 온 고려사람들이 다 알어 이 개노무 자식들아! 이 시키들을 그냥 확!”
“장군, 너무 글케 열내지 마십시오. 저것들도 오죽 답답했음 그렇겠습니까? 명나라 애들도 윤이랑 이초가 날린 뻐꾸기가 구라란 걸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이쯤해서 우리 측에서 사람을 보내 사실을 말하면 대충 수습될 겁니다.”
정도전의 의견을 들은 이성계, 그 길로 정도전과 한상질을 ‘변호사들’로 선임하여 명나라로 보내게 되는데,
“울리 사람 1, 3, 5, 7, 9로 보지 말라 해. 그런 개구라에 속을 정도로 머리 나쁘지 않다 해. 딱 보니 윤이와 이초란 놈들 냄새가 폴폴 나는 게 아무리 봐도 사짜라 해. 그래서 귀양보냈다 해. 너네 나라 너무 쫄지 말라 해. 우리는 이성계 믿는다 해. 그러니까 빨리 가서 쿠데타마저 마무리해라 해. 아, 그리고 전두환처럼 사람 너무 많이 때려잡지 말라 해. 명나라는 반명 구호가 나오는 정권은 인정 안 한다 해.”
사건은 이리하여 쿠데타 전야의 막간의 에피소드 정도로 끝난 듯 보였는데… 정도전과 한상질이 고려로 돌아온 이후, 이성계는 다시 심기일전해 쿠데타를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 하였던가? 조선 개국 후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보이게 되는데,
“그까이 거 명나라 떼놈들이 계속 시비 걸면 한번 엎어버립시다! 조선 애들이 원래 깡다구 빼면 시체 아닙니까?”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명나라에서는 부랴부랴 사신을 급파하게 되는데….
“잘 들으라 해, 이인임의 아들인 이성계… 너 그러면 안 된다 해. 딱 보니까 너 왕 하면 안될 놈 같다 해. 만약 더 까불면 확 엎어버린다 해!”
명 태조의 선전포고였다. 이때 조선조정은 발칵 뒤집혀졌는데, 선전포고도 선전포고 였지만, 이성계의 아빠가 이인임이라는 말에 더 기겁하였던 것이다.
“누굴 개호로 자식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나! 왕 가오가 있지. 어디, 명나라 사신 잘들어…. 툭 까놓고 말할게. 우리 명나라 쳐들어갈 생각 없거덩? 그거 내가 보장할게. 그런데 말야 내가 기분이 상당히 껄적지근한데, 내 아부지가 이인임이라고? 이 자식들이 말야. 누굴 족보 없는 놈 만들 일 있어? 그거 잘못된 거거덩? 울 아부지 이름은 이 자字 춘字 되시는 분이거덩? 이자춘 말야… 일단 이거부터 고쳐라. 알았지?”
과연 조선은 이성계의 아버지를 이인임에서 이자춘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초특급 대하 울트라 역사 사극 ‘국운(國運)을 걸고 싸운 족보전쟁!’은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