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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 (gogo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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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5/04
 

1. 목소리가 강한 주인공, 목소리가 여린 주인공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 연작에서 주인공은 단연 삐삐다. 책을 읽고 나면 삐삐의 당찬 말씨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귀에 앵앵 울린다. 그의 친구인 토미와 아니카는 작두를 타듯 신명나게 퍼붓는 삐삐의 얘기에 가끔 추임새를 넣어 주는데 다소곳한 태도에 모기만한 소리여서 그들의 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삐삐가 큰 목소리로 웅변하고 있는 것은 당대의 모든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다. 학교와 교육 현실의 부조리, 탄압받는 어린이의 인권, 가족 제도의 모순, 다른 성과 문화에 대한 편견 등을 향해 정면으로 나팔을 불고 주먹을 날린다. 삐삐의 애독자들은 전면에 나선 삐삐의 외침 뒷전에 서서 환호한다. 그러나 어릴 때 삐삐를 우러러 본 경험은 자라면서 그의 삶 속에서 힘이 된다. 어떤 부당한 일이 거침없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삐삐였다면 이렇게 했겠지 하면서 불끈 크고 작은 용기를 내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동화의 주인공은 강하고 단단한 존재였다. 외유내강이든 내유외강이든 듬직했고 선명했고 강렬했다. 개인의 역경이나 사회의 장벽 앞에서 굴하지 않고 맞서는 전통 영웅형의 주인공은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존경을 받고 있다. 도발적인 언어로 강도 높은 풍자와 냉소를 구사하는 까칠한 개성의 소유자도 인기가 높았다.

사람들은 왜 강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작은 속삭임을 들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정겨운 틈은 경쟁과 속도에 밀려 사라진 지 오래이며 칼을 겨누어야 할 문제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런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강한 목소리는 동화의 주인공에게 유리한 일이다.

이 시대에 드리워진 나약함에 대한 경계 심리가 작동한 것일 수도 있다. 삶의 터전이 큰 밑그림부터 훼손되고 있으나 우리 힘은 무기력하고 게다가 점점 낱낱이 흩어진다. 따라서 더 나빠지기 전에 강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나 흩어지는 개인들에게 용기를 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현란한 방식으로 이미지와 언어를 쏟아 내는 매체환경도 문제다.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인물이나 충격적인 사건을 배치해서 활자 매체에 어린이들의 눈길을 잡아 두려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예전에 보기 드물었던 조용하고 소심하며 여린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이 작품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주인공의 같은 반 친구쯤으로나 그림자처럼 등장하고 말았을 인물이다. 이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 앞에 섰을 때 대놓고 뭐라 말하지 못하고 가만가만 중얼대거나 몇 마디 툭툭 건드리다가 슬쩍 돌아선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저 줄줄 눈물 흘려 울기도 한다. 아예 말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문제가 큰 목소리로 외칠 줄 알던 주인공이 맞부닥뜨렸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의 깊은 골은 더 깊으며 그 때문에 주인공은 고통을 느끼며 분노하고 저항한다. 다만 저항을 표현하는 방식과 그 볼륨이 다를 뿐이다.

요즘 동화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여리고 작은 목소리 주인공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기가 약하거나 자신감이 없다는 식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들에게는 어떤 소리조차도 내고 싶지 않은 외적인 이유가 있고 큰 소리를 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있다. 함성으로 속생각을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이 얽혀 있기도 하다. 여러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아예 살아남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최근 출간된 몇몇 작품 속에서도 그런 여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2. 떨리는 목소리, 혜원이

김양미의 「멸치」(『털뭉치』, 사계절, 2008)에 나오는 혜원이는 멸치를 좋아하는 3학년이다. 마른 국멸치를 발라먹으며 숙제도 하고 책도 본다. 과자 나부랭이는 거들떠도 안 본다. 하지만 그 나이에 단 것을 철저히 멀리하다니, 그 대신 멸치라니, 설마 진심일까. 무슨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혜원이가 멸치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아이인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혜원이의 아빠는 과자나 사탕 나부랭이를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며, 그런 것 사 주는 것은 애들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고 입에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다. 그의 지극한 아이 사랑은 ‘텔레비전 꺼!’와 같은 권위에 가득 찬 명령으로 나타난다. 그가 열변을 토하느라 흘린 침은 엄마가 깨끗이 닦아야 하며 아이들은 사탕 먹을 시간에 한 자라도 더 배워야 한다. 아빠의 호통에 익숙해진 혜원이가 잘 하는 행동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는 일’이나 ‘안방 쪽을 흘끔 보는 일’이다.

하지만 혜원이의 머릿속에는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고 좋은 누나가 되고 싶고 화목한 가족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 혜원이가 선택한 일은 ‘멸치를 좋아하는 일’이다. 혜원이에게 멸치는 짜도 맛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몰라도 그냥 맛있다. 똥이 잘 발라질 것 같은 멸치를 보면 절로 군침이 나올 정도다. 멸치를 먹으면 아빠가 야단을 치지 않기 때문이다. 혜원이는 아빠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시킨 대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동생에게만 조금씩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그것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만 소곤거린다.

그런 혜원이가 시식하는 기분으로 동네 시장에서 멸치 한 주먹을 집어 들었다가 큰 봉변을 당한다. 멸치 도둑으로 몰린 것이다. 가뜩이나 멸치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판에 3학년짜리 아이가 멸치에 군침이 돌아서 좀 먹어보려고 했다는 말이 통할 리 없다. 주인은 펄펄 뛰고 혜원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멸치를 좋아한다고.

“뭐? 멸치만 좋아해? 너 간뎅이가 부었구나. 훔친 멸치 빨리 내놔!”
(중략)
“거짓말치고 있네. 빨리 앞장 서. 한 대 더 맞기 전에.”(『털뭉치』, 89쪽)


혜원이의 진심은 어른의 귀에서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 혜원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집 전화번호를 대고 시장에서 쫓겨나온다. 집에 돌아와 자신이 어버이날 선물한 효자손으로 한바탕 두드려 맞고 찾아간 놀이터에서 동생 동우에게 겨우 털어놓는 혜원의 속마음은 말이 아니라 눈물로 먼저 터져 나온다. 그것도 소리 나지 않는 눈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린다. 몸은 아빠가 시킨 대로 멸치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혜원이가 주인인 혜원이의 마음만큼은 아빠의 훈육대로 되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흘리는 혜원이의 눈물은 그런 마음이 최초로 분출되는 신호다. 그 분출은 소리가 없기에 더 서럽고 거세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잘 가르치겠다면서,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묻지 않는 어른 앞에서 어린이는 입을 잃어 버린다. 이 경우 입은 오직 대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훈련된 대답은 말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입은 몸에서 사라진 기관이나 다름없다. 요즘 애들은 말이 많아서 도리어 탈이라고 반박하는 어른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되짚어 보자. 아이들은 말이 줄었다. 얼마나 많은 혜원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가.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부모 욕심은 아이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진행된다. 소통을 무시할 때면 아무리 현명한 주장도 봉건적인 통제와 다름없는 폭력이 된다. 하물며 지금은 과거에 비해 더욱 첨예한 경쟁 시대가 아닌가. 경쟁 논리의 속도전에서 진지한 소통이 한가한 얘기로 취급되는 한 우리 곁에서 혜원이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3. 말 못하는 삼례와 말 없이 알아듣는 경학이

양연주의 『자라나는 돌』(바람의아이들, 2008)은 말을 하지 않는 경학이와 말을 하지 못하는 삼례의 우정 이야기이다. 교통사고로 엄마 아빠를 동시에 잃은 경학이는 말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 아이다. 충격으로 마음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경학이가 집중하는 것은 오직 ‘인체’에 관한 책뿐이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경학이에게 몸은 유일한 관심의 대상이다.

이 집에는 목소리가 아주 큰 두 사람이 사는데 경학이 할머니와 삼례 엄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얘기를 일곱 번씩 해도 질리지 않고 수다를 떤다. 아들 며느리를 동시에 잃은 경학이 할머니와 어려운 형편에 심장 이식 받은 딸을 홀로 키우는 삼례 엄마에게 말은 자기 치유의 통로다. 목소리라도 크게 내어서 가슴속 한을 씻어 내리는 것이다.

그에 비해 두 아이는 말이 없다. 경학이는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으려 한다. 할머니는 ‘말귀를 알아들어야 사람’이라고 호통 치지만 경학이는 이 세상에 듣고 싶은 말이 별로 없어서 듣지 않는다. 삼례는 태어나기 전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은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말이란 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경학이가 소통의 도구로 말을 사용하는 것은 삼례와 마음을 열게 되면서부터다. 삼례는 ‘어버버’ 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귀가 없어도 들을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이다. 그동안 듣지 않았던 삼례와 강아지 누렁이의 마음을 알아듣기 위해 경학이는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의 일은 무엇이든 ‘입에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삼례와 경학이의 입과 귀를 틔워 준 것은 심장이었다. 삼례는 경학이 아버지가 기증한 심장을 지니고 살아가는 아이였다. 어떤 면에서 경학이와 하나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외롭게 남겨진 경학이에게 삼례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처럼 듣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이었던 게다. 삼례와 마음의 대화를 나누면서 경학이는 책에서 눈을 들어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또 경학이는 종종 삼례의 입이 되어 주기 위해서 부지런히 입을 연다.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소리 나는 말과 소리 나지 않는 마음속 말이 있다. 말 없는 두 주인공이 나오는 이 작품 안에서 우리는 물리적인 소리만이 마음의 통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삼례와 경학이의 우정은 삼례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어도 경학이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소통의 단계에 이른다. 사실 이 단계가 되면 다시, 소리 나는 말 따위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말소리가 별로 나오지 않는 이 작품이 어떤 웅변으로 가득 찬 작품보다 묵묵한 감동을 안겨 주는 것은 말소리를 넘어서는 소통의 힘을 삼례와 경학이가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자라나는 돌’인 것은 의미가 깊다. 경학이가 말했지만 우리 몸에서 가장 단단한 돌은 ‘이’이다. 경학이와 삼례는 두 종류의 돌을 키운다. 그 하나는 둘이 마음을 모아 화분에 심고 물을 주는 ‘하얀 돌’이다. 동시에 둘의 입 안에 놓인 하얀 돌, ‘말’을 키운다. 그 돌이 자란다는 것은 둘 사이 소통의 힘, 우정이 자라나는 것과 같다.

4. 속으로 씩씩대는 현이

하은경의 『안녕, 스퐁나무』(문학동네, 2007)의 주인공 현이는 5학년이다. 현이는 말이 없는 어린이는 아니지만 남에게 던지는 말보다 혼잣말을 더 많이 하고 그 혼잣말이 현이 감정에 더 가깝다. 사실 사춘기 무렵이 다 그렇다. 겉으로 하는 말은 내가 드러내고 싶은 마음속 진실보다 더 강하게 튀어나오거나 더 움츠러들거나 해서 마음을 잘 대변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은 입 안에서 웅얼거릴 때가 많다. 현이 모습이 꼭 그렇다.

현이는 기가 죽거나 드세어지기를 반복한다. 아빠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해서 엄마한테 쫓겨났고 엄마는 그런 아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다. 현이 스스로 자기는 다 크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와 아빠는 자신들의 문제를 헤쳐 나가느라 현이는 안중에도 없고 주위 사람들마저 ‘현이는 다 컸’으니 걱정 없다고 여긴다. 아빠도 울고 엄마도 울어 대니 우울해 죽겠는데 어디 가서 속시원히 울 수도 없다. 이런 판국이니 ‘겁쟁이고 솔직히 좀 마마보이이고 고소공포증도 있는’ 현이는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갑자기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나도 살아야 하니까 돈 벌 궁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마음에 둔 게 있으면 겉으로 치고 박고 나와도 모자랄 나이에 속으로 씩씩대면서 엄마와 아빠 앞길에까지 훈수를 둬야 하는 게 현이 처지다. 그런 처지 때문에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생각은 많지만 그 말에 내가 사랑하는 어른들이 상처받고 말기 때문에 차마 입 열어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철없는 어른과 그를 이해해야 하는 어린이의 구도는 그 전에도 몇몇 동화에서 나온 적이 있지만 이 작품에서 현이는 무척 독립적으로 보인다. 책의 말미에 현이는 아버지 앞에서 엄마 아빠의 아들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박현’으로서 잘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 선언은 자기 자신과 나눈 오랜 대화 끝에 나온 것이다. 현이에게 속으로 씩씩대는 과정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었다.

삐삐가 외친 독립이 ‘어른의 지나친 개입과 억압’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면 그에 비해 현이의 독립은 참 쓸쓸한 것이다. 독립을 방해하는 대상도 분명치 않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다니는 경찰이나 동네 어른들도 없다. 그저 어른들이 자신의 문제에 골몰해 있는 사이에 스스르 이루어 내고 마는 철저히 외로운 과정이다. 물론 현이의 아빠가 여행을 다니면서 현이의 말에 잠시 귀기울여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현이의 말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을 뿐 현이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이의 독립 과정을 지켜보면서 삐삐 이후 100년이 흐르면서 시대가 참 개인적인 형태로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든 이야기를 나누든 딛고 일어서든 다 개인의 몫인 세상인 것이다.

작품 안에서 현이의 말에 유일하게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신이 누나다. 신이 누나는 자신도 독립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현이의 독립을 지원한다. 여기서 가족보다, 국가나 제도보다, 동료가 더 중요한 의사소통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수평적 관계가 수직적 관계를 압도한다고 할까. 현이는 동료의 지원에 힘입어 조금씩 성장해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혼잣말을 하면서 외로운 독립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독립을 지켜보고 격려하기엔 어른들의 삶은 너무 각박하고 어수선하며 그들 자신도 지쳐 있기에 말이다. 말이 없어지는 우리 아이들 가슴속에서 얼마나 많은 혼잣말이 자라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현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5. 여린 목소리의 힘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에서 연일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광우병 문제에서 비롯된 이 시위는 이제 사회 전반의 곪은 부분을 터뜨리면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 촛불시위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이제 어린이를 갓 벗어난 현이 같은 소년 소녀들이었다. 어른들이 망설이고 있을 때 그들은 거리에 나왔다. 철없이 자라나 소리없이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분노하고 이렇게 많이 거리에 쏟아져 나올 줄 몰랐다고 어른들은 놀란다.

앞장서서 외치는 것이 삐삐의 힘이었다면 지금 촛불시위에 쏟아져 나온 소년 소녀들은 소리 없는 것의 힘을 보여준다. 촛불은 소리가 없다. 그들도 소리가 없었다. 가방을 몇 개 바꾸어 들고 학원으로 등을 떠밀리면서 ‘밥 먹었니’, ‘숙제 했니’, ‘가방 쌌니’라는 말에 ‘예’와 ‘아니요’로 대답할 권리밖에 없었던 그 아이들은 입만 쑥 내밀어도 머리에 빗질만 몇 번 더 해도 ‘사춘긴가 봐, 반항하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배우게 될 것인지, 자신들이 무엇을 먹게 되는지 설명해 준 사람도 의논해 온 사람도 없었다. 소통의 길이 가로막힌 아이들이 택한 길은 자신들의 여린 목소리를 소리 없이 모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광화문 거리에는 혜원이도 있고 경학이도 있고 현이도 있다. 삐삐처럼 당당하게 외치는 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배울 방법도 없었던 그들이기에 피켓을 들고 촛불을 든다. 하지만 그 촛불의 소리는 어떤 함성보다도 크다. 우리는 오늘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입을 막으며 키운 아이들이 내지르는 여린 목소리의 거대한 힘을 보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
김지은│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심리 철학과 철학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동화 작가이며 철학자로, ‘어린이를 위한 철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바람 속 바람」이 당선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평론 「어린이의 도덕, 어른의 도덕」 등도 발표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
털뭉치 / 김양미 창작동화집, 정문주 그림 / 사계절
안녕, 스퐁나무 / 하은경 글, 이형진 그림 / 문학동네
자라나는 돌 / 양연주 지음, 전종문 그림 / 바람의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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