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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시대 (11)
괜한 지랄병을 앓는 사이에 어느덧 추석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한 달도 채 안 남은 추석을 기다리며 현장 전체가 들뜬 듯한 분위기다. 모두들 오매불망 명절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듯 싶었다. 추석이 오게 되면 여태 밀렸던 월급도 청산할 것이고 며칠 동안 잠시나마 시름 놓고 푹 쉬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찌는 듯한 여름이 확실히 지났다는 것 그 한 가지 사실만이라도 노가다 일꾼들 숨 트이게 하기엔 충분하다. 그 동안 시간이 제법 꽤 지났고 흐르는 그 시간 속에서 현장에는 변화가 좀 생겼다. 우선 제일 큰 변화를 꼽으라면 '샌님'이라 불리던 얌전한 소장이 딴 곳으로 전출 가고 '불독'이라 불리는 지독한 소장이 새로 부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샌님이라면 선생님이란 것을 머 잘 알 것이고... 그럼 불독이라면? 혹시 모르는 분들 많이 계실 것이다. 영화나 사진 등에서 보노라면 짧다만 두 다리로 부잣집 아줌마들 목줄에 질 질 끌려 다니던, 꼬랑지가 몽톡하고 작고... 코가 납작하기 그지없고... 주둥이 주위가 시커먼...인상이 더럽기로 금방이라도 물 것 같은 그런... 원산지가 영국인 투견용, 호신용의 개다. 한마디로 개다. 그러니 먼저 소장 님을 보고 다시 불독을 떠올려 보면 어떤 넘이 별명을 지었는지 카~ 감탄이 절로 나간다. 우선 딱바라지게 작달막한 체구도 그렇고 납작하다 못해 얼굴에 착 달라붙은 코도 코지만 넓고 큰 입 주위에는 늘 쌍 시커멓게 수염이 뒤덮혀 있었고, 어쩌다 멋 부리느라고 면도하고 나온 날에는 입 주위가 시퍼렇다 못해 다시 시커멓게 보여 누가 불독이고 누가 소장인지 햇갈릴 정도다. 거기다 그 눔의 승질머리는 불독 그 눔의 개 이상이어서 한 번 만이라도 물었다 하면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런 개 같은 승질머리를 소유한 소장 님한테 혹시라도 걸리는 날에는 완전 초상 날이다. 말해도 살랑 살랑, 걸어도 팔랑 팔랑, 벙어리보다도 더 조용하고 새색시보다도 더 얌전하던 샌님소장과 극적으로 대조적인 불독소장은 부임한 날부터 현장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면서 대고 짖어대는 바람에 일군들 심기가 바짝 불편해졌다. 거기다 현장기사들과 간부들까지 합세 해 모두가 눈에 띄게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간부로서 안전을 감독하고 강조하는 응당한 일 이지만도, 지독하게 뜨겁던 여름엔 어디 가 뒤진 듯 도통 보이질 않던 넘들이 나와 설레발 쳐대는 바람에, 가뜩이나 대마치가 많이 나서 뿔따구가 잔뜩 나있는 식구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대마치란 쉬면서 기다린다는 일본말 같은데, 굳이 설명하자면 즉 일하는 날 보다 쉬는 날이 일하는 날보다 많았고 간혹 일하는 날이라도 반나절씩 일하는 경우도 태반사였는데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노가다 말이다. 그러니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웃고 넘길 법한 사소한 일 갖고도 식구들 지네끼리 괜히 서로 으르렁거리기가 일쑤였다. 더우면 더워서 짜증나고 일 못하면 돈 못 벌어 짜증나고, 노가다란 이렇게 단순할 때가 많다. 아침이다. 그전의 날들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또 하나의 평범한 아침. 식구들 모두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어거지로 아침을 먹고 비실 비실 작업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벼락치는 듯한 호통소리가 들려 온다. -모두 동작 그만!!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쿵쾅거리는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불독이 쒁 쒁 단김을 뿜으며 이층 사무실에서 파이프로 대충 엮어 만든 간이층계를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뛰어내려 오고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뛰어 오는지 간이층계가 그 딱 바라진 체구의 불독의 하중을 못 받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우쒸! 팀장 얼굴이 갑자기 똥 씹은 얼굴로 되어버렸다. 불독이 요런 꼬라지로 뛰어 올 땐 분명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저 시키 날씨 서늘해지니깐 또 기어나왔네! 이짱이 옆에서 한 술 더 뜬다. 어느새 짤막한 다리로 줄레줄레 서있는 식구들 곁으로 온 불독! 진짜 개처럼 킁킁거리며 식구들 냄새 맡는다. 물기 전에 으르렁거리는 개 마냥 비염이 심한 불독은 욕하기 전에는 꼭 코를 킁킁거리며 정비 해준단다. 그래야 욕이 술 술 잘 나온대나?! -_-;; -이노무시키덜! 군기가 빠져 갖고... 안전모 그 꼴이 그게 뭐냐?! 아직도 지가 현역(現役)인줄로 착각하고 계신다. 하긴 유별나기로 소문난 해병대 출신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우리가 뭐 지 쫄따군가? -와 또 잡아먹지 못해 안달입니껴? 팀장이 아예 잡아드슈 라는 식으로 딴 곳을 보는 척 해서 대신 이짱이 마지못해 응대한다. -여름에는 덥다고 쳐, 내가 봐준다! 허지만 이젠 날씨도 서늘해 졌는데 아직도 안전모 그렇게 쓰고 다녀? 사고나면 니가 책임질래? 아님 팀장이 책임질래? 누구 보름 개 쇠듯 쇠는 꼴 볼래? 불독이 으르렁거린다. -화이바가 어때서예? 다 잘 쓰고 있잖습니껴? 억울하다는 듯 울상인 이짱을 보고 불독이 또 으르렁거린다. -이 꼴통시키! 화이바가 뭐냐? 안전모지! 좋은 우리 말 놔두고 왜 쪽바리 말은 자꾸 써? 니가 쪽바리냐? -화이바가 어디 일본말인교? 영어지... -머시? 영어? 니는 못 알아들으면 다 영어냐? 이짱이 더는 말하기 싫은지 입 다물어버렸다. 일종 무언의 반항이다. 그러자 불독은 제일 만만해 보이는 꺼벙이한테로 다가간다. 삐딱하니 꺼벙이 대가리 위에 얹혀진 안전모에는 빨간 매직으로 '대통령'이란 세 글자가 지 꼴리는 대로 휘갈겨져 있었다. -누가 너보고 안전모에 낙서하라 했어? 머 대통령? 니가 대통령이면 난 영부인이다. 이 눔도 순 또라이구먼... 쯔... 쯔... 글 쓴 꼬라지하곤... 턱끈이나 제대로 매! 여기 저기서 킥킥대기 시작했고 꺼벙이는 금새 입이 부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바우형 앞에 가서 얼굴을 바투 들이댄다. 싫은지 바우형도 고개 외면한다. 괴롭겠지 뭐... 헌데 갑자기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은 왜서일까? 시커먼 입 언저리 제외하면 똑 같은 두 사람! 바우형도 나이 좀 더 들면 입 주위가 시커멓게 되겠지... -이건 또 뭐냐? 아예 턱끈이 없구먼! 이 개념이 없는 시키!! 하고 바우형 안전모를 탁! 내리 갈겼다. 욕은 욕대로 다 하고 때릴 건 다 때리고 나서 불독은 재차 으르렁거린다. -안전모 다시 제대로 착용한다. 실시! 마치 장군으로 진급이라도 한 듯 기고만장이다. 우왕좌왕 모두 안전모 다시 착용하고 턱끈이 아예 없는 바우형마저 새 안전모 교체하고 나서야 식구 모두가 불독의 지독한 魔手에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내가 안 보더라도 안전모 착용 잘하세요~ 하던 인심 좋던 샌님소장과 달리 불독소장은 시정하고 그 과정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다. 지독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다. -씨~ 반시간이나 잡아먹네... 짠돌이 팀장은 우거지상이 되어버렸다. 허벌나게 망치를 휘둘러도 작업시간이 모자라는 판국에 욕 얻어먹느라 반시간이나 잡아먹었으니 팀장 배 아픈 건 당연지사다. -씨~ 오늘 작업 반대가리 밖에 안되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오늘 배당 받은 작업할당량이 오전 밖에 안되기에 어떻게 하든 오전 내로 작업 마쳐야 일군들 수당을 반으로 지급해줄 수 있지만 행여 라도 늦어 오후까지 미룬다면, 단 한 시간이라도 미루게 된다면 연장수당을 더 지급해야 할 상황이다. 계속 찡찡대는 팀장을 보다 못해 이짱이 한 마디 쏘아 부친다. -여편네들처럼 뭘 찡찡대는교, 짜증난다 아인교! -맞어 맞어, 찡찡거릴바엔 불독 확 받아버리는 편이 낮지무... 옆에서도 왁자지껄 이짱 편을 들어준다. 식구들하곤 화 못 내겠고 그렇다고 불독을 받아 버릴 위인은 더 안되는 지라 자기한테만 만만한 이짱을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팀장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단념하고 식구들 뒤를 따라 현장으로 올라갔다. 작업량이 많으면 힘들어 싫고 작업량이 적거나 없으면 돈 못 번다고 짜증나는 노가다, 팀장도 식구들 비위 맞추기란 어지간히 쉬운 일이 아니란다. 이렇게 저렇게 툴툴거리는 식구들 달래려고 팀장이 날일(임시 남의 밑에서 떼우는 일) 찾아보려 오전부터 자리 비운 어느날, 이짱이 식구들을 거느리고 컨테이너에서 막걸리 추렴을 해댔다. 팀장이 있었으면 어림반푼도 없는 일! 말로는 추석이 열흘도 안 남아서 한턱 쏜대나? 핑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추석 열흘 전이 무슨 날이냐? 지가 먹고 싶으니깐 날 만드는 거지 뭐... 여하튼 팀장도 없겠다, 외상으로 해먹는 주제에 함바장부에 팀장이름으로 달아 놓고 점심 대낮부터 모두들 막걸리를 먹어재꼈다. 이짱은 꼭 지가 사는 양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낸다. 나중에 다 알면 배 아픈 건 팀장이겠지... 이짱과 둘은 또 식구들 앞에서 보란듯이 티격태격 할 테고, 허지만 그냥 먹어 주는 우리야 무슨 상관이냐? 총대는 어차피 이짱이 멜꺼니깐. 하루 배부르고 등 따스면 하루 보내는 거다. 구래, 묵자! 마니마니 묵자!
수난시대(12)
게걸스럽게도 제일 많이 들이 켠 꺼벙이와 욕심사납게 제일 많이 원 샷 해 버린 이짱이 뒷수습은 나 모른다 는 식으로 먼저 나가떨어지고 나머지 식구들은 약삭빠르게 컨테이너 밖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 좀 지나면 이짱하고 꺼벙이가 비몽사몽간에 컨테이너 바닥을 헤엄치듯 뒹굴어 다닐 테니, 어차피 더 앉아 있지도 못 할거고 벌려놨던 막걸리 판 치우기는 더더욱 싫은 식구들이다. 그 바람에 컨테이너에는 평소에 쫌 수줍고-_-;;(그냥 그렇다 하셈) 쫌 마음 여린-_-;;(계속하여 꾹 참으삼) 나 밖에 안 남았다. ......!!! 먼 뜻이냐고? 허~참! 내가 술판 치우게 생겼소이다! 먹어 주느라고, 수다 떠느라고 입만 부지런히 놀리다 만 자리에는 빈 막걸리 병하고 안주 담았던 접시하고 나무젓가락들만 수북히 남아 있을 뿐. 같이 먹긴 먹었다만 다 먹고 난 뒤끝에 혼자 다시 보니 나하곤 상관없듯 추접스럽기 짝 없다. -돼지들 집단회식 했나? 오라지게도 조져 먹었네! 내는 니들 마누라냐? 투덜거리면서도 술상을 치웠다. 상이라 해봤자 바닥에 깐 여러 장의 신문지가 전부이니 그냥 한꺼번에 뭉뚱그려 컨테이너 출입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소각로에 처넣으면 그만인데, 약 오르는 건 이놈들이 날 하인 취급한다는 것이다. 밖에 앉아 있던 식구들이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술상! 버리러 가는 나를 바라보아서 심술이 더 꼬인다. -멀 보소? 대신 치워 줄라꼬? 하고 부르튼 소리 한 마디 하니까 식구들은 후다닥 딴청 다시 피운다. 혹시라도 지한테 불똥 튕길까봐. 이런 노랑쥐들!! 그런데 이 인간 들 하고 있는 일 들 이라곤 참 나... 따스한 오후 햇볕의 애무에 피리 아저씨는 이미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였고 안경형은 나무꼬챙이로 땅에다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고, 두툼한 입술과 대조적으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나불대기 좋아하는 바우형은 천씨형제들한테 지하고 붙어사는 아줌마 얘기를 주절대고 있었다. 한심한 건 손으로 턱 고이고 진지한 유치원생 마냥 바우형 말을 경청하고 있는 천씨 형제들. 한심하기 짝 없다. 이 형제들은 하나가 맹하면 다른 하나라도 좀 약빨라야 하는데... 아쉽게도 어쩜 둘 다 똑 같이 맹하다. 그건 그렇고 근데 이 아저씨들 배불리 먹었으면 각자 지 굴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여? 뭔 시간 목 비탈아 죽이기 시합이라도 붙었나 씨! 지 먹은 술상도 안 치우는 노랑쥐들이... 왜 여기서 개기지? 괜한 심술에 바우형한테 다가가서 시비 걸었다. -대포(막걸리)도 한 잔 거하게 빨았으니... 얼른 집에 가. 아줌마 기다리다 목 빠질라. 그 말에 자지러지는 천씨형제들. -밤 열두시가 되여야 퇴근인데... 말끝을 흐리던 바우형이 입맛 다신다. 하긴 그런 생각 안 할 바우형 일까봐? -대단하시구랴! 집에 가선 밤늦게까지 야간하고, 낮에는 X 빠지게 망치 휘두르고. 힘남아 돌아 참으로 존경스럽구먼! 그 말에 더 자지러지는 천씨형제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농담 속에 까칠한 가시를 느꼈는지 더는 대꾸를 안 하는 바우형, 이제야 심술 좀 풀리는 듯 싶어 마지막 쐐기 한 번 더 박았다. -남의 아줌마 데꼬 사니 조아?!! ...... -니느 딴 여자하고 안 잤어? 바우형도 더는 못 참겠다 이거다. -미안해서 어쩌지, 난 홀몸이라 가책 같은 걸 못 느끼고 사는데... 흐흐... -가책은 또 머니? 눈치코치 없이 천씨네 동생이 불쑥 대화를 끊었다. 갑자기 말이 막혔다. 억이 막혔다. 바부텡이, 말이나 하지 말지, 니가 맹한 줄도 모르게... -니도 딴 여자하고 잤냐? 머라 대꾸하기도 전에 여태 말 없던 안경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 왔다. 느낌이 이상하다. -글마는 꼬추가 안 달렸나?! 바우형의 볼 부은 소리다. 그 소리에 식구들은 오랜만 에 통쾌하게 웃어줬다. &%^%#$^$% -_-;;; 무료하기 짝 없는 인생들이여! ...... -난 바우 같은 놈들만 그런 짓거리 하는가 했는데... 웃음이 끊기 기다려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안경형이 말을 이었다. -머시? 내가 어때서?...... 쓰벌!!! 벌떡 자리를 차고 튕겨 일어난 바우형, 가뜩이나 열 받은 차에 분풀이 대상을 잘 잡았다 이거다. 멱살 틀어잡은 손에는 울퉁불퉁 핏줄이 솟아올랐고, 눈에는 어느새 살기가 번뜩인다. 넘 오바하는게 아녀? 원래부터 서로 犬猿之間이라 그대로 나두면 큰 일 벌릴 것만 같았고, 나의 실언때문에 뒤가 켕기여 얼른 두 사람 뜯어 말렸다. -웃자고 한 소린데 왜들이래? 그럼 내가 민망 하자나. 이쯤에서 그만두소, 나도 화 제법 낼 줄 아는 사람이라오! 그 말에 앙앙불락이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바우형은 물러섰다. 나이가 바우형보다 어린 탓에 다소 저돌적인 내면을 갖고 있는 나하곤 될 수 있는 한 마찰을 피하는 바우형이다. -술 잘 먹었으면 얼른 집 에들 가여, 있어 봤자 재밋는 일은 없을 거여. 말 마치고는 계속하여 바우형을 째려보는 안경형을 끌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씨, 가자! 그냥 가기가 그렇고 그런지 컨테이너 벽을 꽝! 하고 걷어차곤 바우형은 천씨형제들을 휘몰아 집으로 가버렸다. 그 소리에 움찔 ! 그제야 선잠에서 완전히 깨여난 피리아저씨는 그새 뭔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눈만 올롱해졌다.
수난시대(13)
컨테이너로 끌고 들어 와서 아직도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있는 안경형을 자리에 눌러 앉혔다. 뭘 잘했다고...... -형, 요즘 먼가 좀 심각해 보여. 왜 그려? 이런~ 대꾸조차 안 한다.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계속 따지진 않았지만 컨테이너에 좀 더 붙잡아 두었다가 보낼 작정이었다. 괜히 보냈다간 길에서 바우형하고 맞띄우기라도 한다면... 안경형은 낼 다리 부러진 안경을 쓰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씩씩 한참이나 단김을 뿜어대던 안경형이 베개 하나 집어들고 구석을 파고 눕는다. 눈 감은 상태에서 안경을 벗어서 손 쭉 뻗어 머리 위 쪽 바닥에 정성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이제 뭐든지 다 귀찮은 듯 숨쉬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컨테이너 안에서 난 이젠 또 혼자가 되어버렸다. 심드렁~ 딱히 해야 할 일 생각나지 않는다. 기웃~ 밖을 내다보니 피리아저씨는 컨테이너 벽에 기대앉아 다시 선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냥 컨테이너 벽에 등을 대고 그렇게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랑가랑 벽을 타고 피리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가 느껴진다. 벽 사이 두고 피리아저씨와 등 맞대고 앉아 자고 있는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외 딱히 할 일이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다. 갑자기 형용 못할 그 무엇인가 가슴 꽉 메운다. 갈데 없고 오라고 하는데 없는 나 역시 무료하고 따분한 인생 아닌가. 슬그머니 슬퍼질려고 한다. 마음을 가라앉힐려고 계속하여 자고있는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척 없는 안경형은 그냥 없던 셈치고... 남은 두 넘은 뭐가 그렇게도 만사태평인지... 아까는 정신 없어 제대로 못 봤지만 조용해진 지금 다시 보니 컨테이너 안은 가히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막걸리 쉬여버린 듯한 야리꾸리한 냄새가 방안을 요동하는 와중에도 이짱과 꺼벙이는 용케 팬티바람에 큰 대자로 쫙 뻗어 있었다. 한 넘은 사각 한 넘은 삼각, 뒹굴 뒹글, 여기 저기 쓰윽 쓰윽 긁어 주면서, 차마 눈뜨곤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막걸리나 소주 등등 이런 주류제품은 그냥 마개를 따고 냄새만 맡아보면 그런 대로 맡아 줄 만한 냄새지만 어떻게도 인간의 배속을 돌아 나오면 이렇게도 고약할 수가 있는지...... 인간하고는 달라 파리류의 더러운 것 좋아하는 곤충들은 이런 고약한 냄새를 즐기는 것 같았다. 할 일 없이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디선가 시퍼런 똥파리 한 마리가 윙~ 꺼벙이 입 언저리에 사뿐 내려앉는다. 착지(着地)자세가 좋고... 착면(着面)이라 해야 정확한가? -_-;; 흐음~ 꺼벙이넘 손 얼굴로 한 번 올라오더니 철썩! 지아비 죽인 웬수놈 패 듯 지 싸대기를 날린다. 마이 아프겠다! 그렇게 맞고도 깨여 나지 않는다는 그 자체도 희한하기 그지없다. 앵! 화다닥 놀란 파리가 잽싸게 이짱 쪽으로 몸 숨겼다가 다시 꺼벙이넘 입 언저리에 돌아온다. 꺼벙이넘 손 다시 올라오고 잔재주 부리 듯 파리가 이쪽 저쪽 손 피해 날라다니고, 그렇게 한참의 실랑이 끝에 꺼벙이넘 볼따구는 시뻘겋게 부어 올랐다.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넘들이 더러 살고 있다. 人數는 많지 않아도, 머리가 지독하게도 나쁜데 몸 움직이기도 지독하게 싫어 하는 넘들! 약간 미안스럽게 꺼벙이넘은 이 부류에 속한다고 난 단정지을 수 있었다. 함 일어나 확실하게 마무리지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이것 두 말려야 하남? 금방 바우형과 안경형을 말렸었는데... ㅠ.ㅠ 우쒸!!! 하고 꺼벙이넘 벌떡 일어난다. 끝내 못 참겠던 모양! 내 오늘 이거...! 하더니 구석에 있던 신문지 여러 장을 확 말아 쥐곤 똥파리 쫓아 컨테이너 안에서 마구 날뛴다. 쿵쾅쿵쾅, 가뜩이나 비좁은 컨테이너 안은 게거품 문 꺼벙이넘 때문에 더더욱 비좁아 보인다. 이짱과 안경형 밟기라도 할까봐 마음 졸이고 꺼벙이넘 쫓아 보고 있는데, -물어 죽여! 물어 죽여!! 확 으깨물어 버려!!! 하고 어느새 이짱이 눈도 안 뜨고 일어나 앉아 악 쓰고있었다. 하긴 뜨나 안 뜨나 똑 같은 뱁새눈 더 떠 봐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이 넘도 꺼벙이넘한테 뒤질세라 입에 게거품 물고 악 쓴다. 쌍 (雙)으로... 참 가관이다. 니들 때문에 내가 다 챙피해! 우울해지려던 기분 사뭇 없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조물주가 싫어진다. 먼 험한 꼴 더 당할려고 이런 세상 만들어냈는지? 기술 믿고 휘두르는 신문지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빠져 다니던 똥파리가 이젠 재미없당! 하고 창문 밖으로 홀랑 나가버리고 약 오를 대로 오른 꺼벙이넘은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파리가 도망 간 창문 쪽을 계속하여 노려본다. 그 즈음 창문에는 또 뭔 일인지 몰라 올롱해진 눈을 가진 피리아저씨의 얼굴이 붙어있다. 막걸리 X나 처먹더니 힘 솟나? 아님 컨테이너하고 불공대천의 웬수를 지었나? 는 기색이 역력하다. -피리행님, 간만에 오겹살에 쐬주나 한 잔 빨러 갑시데이! 라고 하는 이짱의 말에 순간적으로 얼굴 기색이 확 변하는 꺼벙이넘, 막걸리에 먹으면 더 좋은디... 하고 헤벌레. 피리아저씨도 덩달아 헤벌레. 간만은 먼 얼어죽을 간만! 사흘이 멀다하게 쑤셔먹곤! 팬티 안에 손을 넣어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긁으면서 꺼벙이넘한테 다가오던 이짱이 손 빼내더니 꽁꽁 꺼벙이넘 꿀밤 몇 대 때린다. 팬티 안에 넣고 쓱쌱 긁던 손으로 말이다. -일마는 진짜 산만하데이. 이 사각팬티도 산만하고, 니미 생긴 것뚜 산만하고, 생각하고 사는 그 자체가 산만하데이. 그래두 좋댄다. 어느새 외출복을 걸치고 출입문 쪽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어이, 안갈끼가? 하고 또 아까 그 긁던 손으로 어깨를 툭 툭 친다. -손 안치워? 씨! 소리 함 꽥 지르니 좋으면서 하고 입을 삐쭉, 다시 안경형을 지끈 밟아준다. -니는 안가? 아무 반응 없다. 진짜 뒤진긴가? 하고 입을 또 한 번 삐죽 하곤 외출복으로 갈아입더니 무작정 내 팔을 잡아끈다. -꼭 오겹살 먹어야 돼? 지겹지도 않아? 그 말에 그 집 밖에 외상 안 되는 줄 뻔히 알믄시롬 하고 뻔뻔스레 대답한다. 저녁은 먹어야겠지 하고 따라 나섰다. 기다렸다는 듯 피리아저씨와 꺼벙이넘 따라 붙는다. ...... 믿긴 어렵겠지만 우린 이렇게 산다. 진짜 이렇게 산다.
수난시대(14)
소주 기울이며 아까 바우형하고 안경형 얘기를 해줬더니 안경 마누라 바람났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는 이짱, 남의 일이라 쉽게 대답하넹 하고 맞받아 치니, 이짱 왈: -멀리 떨어지면 정나미두 떨어진데이. 차암~ 그럴 법도 같수다. 말 없이 한참 술잔 오가다가 이짱이 의미심장하게 몇 마디 더 엮는다. -요즘 말이데이, 일도 스산하게 없지, 공사도 막바지라 모두 신경 날카로롭데이. -요론 때가 억수로 사고가 많이 생긴데이, 그쟈? -그라니까 딴 사람은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 만 이라도 정신 바짝 추술리자, 으이! -꼭 사고 날 것만 같애, 불안하다. ...... 며칠 후, 그러니까 추석 나흘 전, 예언처럼 이짱의 말은 적중했다. 그 날 아침 먹을 때, 마주 앉아 밥 먹던 이짱이 불쑥 어제 불독은 왜 니를 찾던? 하고 말 건네 왔다. 아, 추석 쇠곤 현장에서 불법(불법체류자들을 말함-본인 같은 부류!)을 싹 쓸어버린다고 겁주데 하고 대답하니 먹던 숟가락 식탁에 탁! 내던졌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이거지. 현장 반 이상이 불법인데 다 보내곤 어쩐다는기가? 이짱의 말이다. 가뜩이나 불독의 말 땜에 언짢은데, 생각해서 하는 이짱의 말이라도 좋게 들릴 리는 없고 해서 괜히 그럼 내가 구여? 하고 실없는 소릴 하니 니나 내나 다 노가다개목수 아이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뭐 새삼스레... 하루 이틀 개목수었나? 자꾸 말하면 머 달라지남? -어쩔기가, 니는? 밥 남은 걸 버리러 가는 데까지 이짱이 따라와서 조른다. 어쩌긴? 그런 소릴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닌데. 7년 내내 귀 못 박힐 정도로 들어서 새롭지가 않아. -그럼 안가는거네. 흐~ 생각 잘했다 이거다. -현장에서 안 쓴다고 하면 딴 자리 찾고, 돌아다니다 잡히면 집 가면 그만이여. 별~ -딴 자린 또 뭘? 팀장이 일거리 따 왔는데. 추석 쇠고 같이 가. 같이 가자... 응...? 하면서 작업장으로 향할 때까지 뒤꽁무니 졸졸 따라온다. 하도 귀찮아 이걸 하고 홱 돌아보니 이런! 이짱 뒤에는 꺼벙이넘까지 졸졸 딸려온다. -저 시킨 또 머여? 도망갈까 둘씩이나 따라다녀? 하니 이짱도 뒤돌아 보곤 금새 이마 찌푸린다. -저 얼라가 아침부터 다방타령 하고 자빠졌네. 문디자슥이... -머 다방? 아침부터 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그 말에 누가 아니래? 뒤골 땡긴다, 쳐죽일 넘! 하고 꺼벙이넘 한 대 패준다. 웬만하면 함 데꼬 가 하니 돈은 니가 낼래? 해서 씨, 더 이상 응대 않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뒤에선 허엉~ 허엉~ 하고 코소리 내는 꺼벙이를 이짱이 문디자슥, 니땜에 저 형 화났다 하고 또 한 대 패준다. 하여간 둘러대긴 잘 둘러대요. 완전 삐진 꺼벙이, 우리 둘 앞서 휑휑 걸어 갔고 뒤에선 이짱의 약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니미 뿡이다! ...... 그리고 그 뒤로 약 한 시간 후, 어이없게도 꺼벙이는 현장에서 사고死 당했다. 이짱과 꺼벙이가 아침부터 다른 목수팀에 지원가고 팀장이 밖으로 일 보러 나간 뒤, 나머지 일꾼들 데리고 작업 중이던 나에게 팀장이 꺼벙이가 사고 났다는 전화를 해왔다. 사고났다는 그 말은 거의 죽었다는 그 뜻, 그 자체다. 너무도 갑작스레 들이닥쳐, 내려 가더라도 연장 챙겨 갖고 내려가라는 팀장의 전화는 까맣게 잊었다. 뭔 정신에 사고 난 곳까지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고 난 곳은 바로 우리가 일하던 옆 건물 1층바닥, 검고 붉은 피 한 대야는 족히 뿌려진 듯한 바닥 그 가운데서 꺼벙이는 마지막 숨을 톺고 있었고, 더 가까이 가 보니 오히려 찢어진 이마는 예상보다 많이 깨끗했다. 어디서 이 많은 피가 흘렀나? 작업복 바지가랭이도 많이 찢어졌던데... 너무도 큰 충격이다. 재해사례는 안전교육 때 수도 없이 많이 듣고 봐 왔지만 이렇게도 가까이에서, 너무나도 돌발적으로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서 일어나 나 포함한 모든 식구들이 경직되다 못해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했다. 시체는 예전에도 더러 봐왔지만 죽어가는 사람 지켜보는 건 살아오다 처음이다. 꺼벙이와 좀 떨어진 곳에 쭈크리고 앉아 있던 이짱이 넋 나간 눈으로 경직된 우릴 멍~ 바라보고 있었고, 성깔 같았으면 길길이 날뛰고도 남을 불독이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게 이짱 옆에 붙어 앉아있었다. 그래도 역시 눈만은 초점 잃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 주위엔 현장간부들과 기사들이 서성거리면서 지들끼리 머라 쑥덕대고 있었다. 행님은? 하고 이짱이 간간이 물어온다. 곧 들어온다던데 하고 대답하니 한 숨만 푸욱~, 다시 머릴 틀어쥔다. -사고 났으면 바로 조치 해줘야지, 왜 이렇게 방치 해 두고 있어? 하고 떨리는 가슴 가까스로 진정하며 꺼벙이한테로 다가가려는 찰나, 손대지마! 하고 누군가 소릴 버럭 지른다. 돌아보니 원청 안전담당 부장이다. 머여? 왜? 하는 내 목소리는 분명 톤이 버럭 높아졌다. 무서운 느낌 감출려고 한 것도 있지만 사고 당한 꺼벙이 일이 괜히 역증난다. -119 올 때 까진 손대지 마요, 법이랍니다. 하고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다. 이런 판국에는 감히 누구가 누구한테 큰소리 칠 형편이 안된다. 누가 지금 제 정신일까? 몇 넘이나 제 정신에 이런 곳에 서있었을까? 물러나요 하는 부장의 말에 하는 수 없이 물러섰지만 속으로는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계속 뇌리를 때린다. 머 이런 개똥같은 법이 다 있어? 물러나면서 보니 꺼벙이 눈에선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듯한 표정이 씌여 있었다. 꼭 그런 표정 같았다. 숨 완전 거뒀나? ...... 팀의 식구들인가? 하는 부장의 말에 예 하고 겨우 대답하는 이짱, 살아있는 니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다 불쌍하다, 살아남아서 죽음을 느낄 수 있기에. -좀 있다 사고경위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니 다 숙소에들 가 계십시오. 여기서 정신사납게 돌아다니질 말고. 한 사람씩 부를테니 그때 사무실로 와요. 부장의 부탁에 홀연 정신 든 듯 모두 숙소로 발길 돌렸다. 눈동자가 안돌아 가는 걸 보니 다들 충격이 진짜 대단한 모양이다. 팀장이 오길 기다리며 모두 침묵한 채, 컨테이너 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이따금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소리가 줄담배로 인한 지독한 내음과 뒤섞여 컨테이너를 꽉 메우고 있었다. 식구들 둘러보았다. 모두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꺼벙이가 쓰러진 자리에 여기 있던 사람 그 누구라도 대신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가능성에 모두들 속으로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꺼벙이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그 가능성에 떨고 있을 것이다. 끝내는 이런 꼴 볼려고 내가 7년 씩이나 여기 눌러 있었나? 어제 저녁 불독이 하던 얘기가 떠오른다. -집 갈 때가 됐어! 망할! 정말 집 갈 때가 되었나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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