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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스님들의 생활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었으니, 바로 ‘동냥질’이라는 말이다. 양반들에게 수탈당하고, 국가로부터 핍박받던 스님들, 스님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원래 동냥질의 어원은 동령(動令)이라 해서, 고려시대 스님들이 나귀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작은 종을 흔들던 행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양식을 들고 나와 스님들에게 시주를 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동냥질’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거 참, 먹고 살기는 힘들고, 나라에서는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어쩔 수 없군…. 일단 비구니들은 방물장수 외판원으로 컨셉을 바꾸고, 힘쎈 남자 스님들은 두부를 만들던가, 짚신을 엮던가, 정 안되면 종이를 만들어서 팝시다.”
이리하여 비구니들은 화장품과 악세사리를 들고 민간으로 넘어와 방문판매 외판원이 되어야 했고, 남자 스님들은 팔자에도 없는 제지업과 제화업, 식품업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기’였었던 것이다.
자, 문제는 이런 ‘고난의 행군기’가 좀처럼 지나가질 않았다는 것인데,
“이조판서 들었소? 요즘 민간의 아낙들이 절을 무슨 캬바레 들락거리듯이 들어간답디다.”
“아니 이런, 어느 절이 그렇게 물이 좋답니까?”
“이조판서!”
“아…농담, 조크였소, 조크. 음, 그런데 아낙들이 절을 들어가는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이조판서! 생각을 해보시오. 아낙들에게 중문 밖에도 나가지 말라고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여편네들이 저 깊고 깊은 산사(山寺)로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소?”
“허면?”
“절에 불공드리러간다면 웬만하면 집에서 눈감아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그러는데….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불공드리러 갔다가, 남의 씨를 받아서 내려오면 이게 무슨 개스런 상황이요?”
“음, 생각해 보니 그럴수도 있겠구료. 하긴 10년 동안 태기가 없다가, 이번에 우리 손주 며느리도 불공을 드리러 갔다 오더니 덜컥 임신이 되어서…가만! 뭐야 그럼 이거!”
이리하여, 조선시대 ‘경제육전’에는,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은 곧 실절(失節)하여 정조를 잃는 것으로 규정한다!” 라며, ‘절=퇴폐업소’라는 등식을 공식화 하였는데, 경제육전의 뒤를 이어 경국대전에서는 이를 명문화 하였으니, 바로 상사금지법(上寺禁止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단 말야, 절에 올라가지? 올라가면 무조건 장 100대야! 맷집 좋다고 자부하는 아줌마는 걍 미친 척 하고 올라가! 네들 맷집이 쎈 지, 몽둥이 탄성이 쎈 지 한번 시험해 볼 테면 시험해 봐!”
여성들이 어떤 존재들이었던가? 조선시대 불교 신도들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던 그때, 여성신도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던 이 상사금지법은 당시 불교계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되었으니,
“쥐도 도망갈 구멍은 파놓고 몰아야지! 지금 이게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
그랬다. 조선 불교계 거의 문 닫기 직전이었다. 바로 이때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었다.
“왜놈들이 동래성과 부산성을 함락하고 곧장 서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답니다!”
“신립장군이…신립장군이…패했답니다.”
“임금님이 몽진(蒙塵)길에 올랐답니다!”
“경상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답니다!”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전황(戰況)을 들으며, 불교계의 거두인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머리를 굴리게 되었으니,
“야야, 나라가 절딴 나게 생겼는데 우리가 이렇게 불경이나 외우고 있을때냐? 나라가 있은 다음에 종교가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우리한테는 고려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승군(僧軍)이라는 전통도 있잖아.”
“대사님, 근데…우리가 궂이 나서야 합니까? 맨날 중대가리니, 문어대가리니, 빠박이니 하면서 우릴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기껏 나라 찾아 줘봤자. 양반들만 좋은 일 해주는 것 아닙니까!”
“하…이 자식들, 개념을 아예 바겐세일 해 버렸구만. 야이 자식아! 일단 나라가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있는 거야 임마. 나라가 뭘 해줄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나라에 뭘 해줬을까를 생각해 보라는 말도 있잖아 이 자식들아! 그리고, 우리의 원래 목적이 뭐냐? 중생을 구제하는 거 아냐 이 자식아! 중생들이 지금 왜놈들 손에 개죽음을 당하는데, 당장 저 중생들을 구제하는 게 우리의 당면과제 아니겠어? 그리고말야, 만약에 우리가 나서서 전쟁에 이긴다 치자, 양반들이 우리를 예전처럼 그렇게 핍박하겠어? 지들도 우리 덕에 나라 되찾게 되었다는 걸 알면 예전처럼 함부로 우리를 굴리지 못할 거야. 안 그래?”
이리하여 전국 각지에 있던 명산고찰의 스님들이 대거 집결해 ‘승군(僧軍)’을 조직하기에 이르렀으니, 일단 절이란 것이 산에 있었던 고로, 스님들 체력 하나는 끝내줬었고, 산을 배경으로 자라났고, 생활했던 고로 산세에 익숙하였던 것이다. 이런 전차로 사명대사를 위시한 승군들은 산을 의지해 게릴라전을 펼쳤고, 왜군들을 상대로 막대한 전과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봐봐, 된다니까! 우리의 전술은 히딩크식의 체력축구…아니 체력전투다! 홈구장의 잇점을 최대한 살려서 체력으로 계속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다! 왜놈들을 최대한 압박한 다음에 미드필더부터 장악해 들어가는 거야!”
임진왜란 내내 승군(僧軍)들은 특유의 체력과 산을 배경으로 한 빨치산 식 전술로 왜군들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이는 임진왜란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7년에 걸친 전란은 끝이 나게 되었는데…과연 스님들은 그들의 바램처럼 더 이상 핍박받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인가? 초특급 대하 울트라 종교사극 ‘사명대사의 실수(?)’는 다음회로 이어지는데…커밍 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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