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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나라의 컨셉이 숭유억불(崇儒抑佛)이란 것은 중학교만 제대로 나오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교과서 속에 나오는 숭유억불은 단순히 불교를 억압하는 수준정도로만 나와 있는데, 과연 조선시대 불교는 ‘억압’만 받았을까? 이번 회 주제는 조선시대 버림받고, 천대받은 불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불교…그게 어디 사람이 믿을만한 종교냐? 사람이란 게 모여서 나라를 만들고, 자식을 낳아 나라를 영속시켜야 하는 게 사람의 책무인데, 불교 봐봐 금욕(禁慾)이랍시고, 여자를 멀리하니까 2세를 만들지 못하니. 부국강병은 고사하고 나라의 미래 자체를 근심해야 한다니, 이렇게 위험한 종교가 어디 있냐? 가뜩이나 출산률 저하로 머리 아픈데 말야, 그리고 걔네들 하는 것 좀 봐봐. 걔네들이 왕으로 모시는 석가모니를 봐봐. 걔가 뭐 생산한 게 있어? 물 한 모금, 쌀 한 톨 먹어도 다 구걸한 거 아냐? 이런 것들이 계속 성행하다간 나라 절딴 나는 거 금방이야.”
조선이란 나라의 기본개념을 정립한 정도전이 쓴 ‘불씨잡변’이란 책에 나와 있는 불교의 폐단을 대략 간추린 것이다. 불교는 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이비 종교로 간주되었는데,
“호구를 늘리고, 농업을 흥성하게 하고, 군비를 튼튼히 하는 것 등등 수령칠사(守令七事 : 수령이 보임되기 전 승정원에 가서 외워야 했던 기본적인 수령의 임무 일곱가지)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불교를 싸그리 몰아내야 한다!”
이런 현실 속에 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천대받아야 했는데, 천대만 받으면 상관없겠지만 불교에 귀의한 스님들을 무슨 가제트 형사로 바라봤다는 게 문제였다.
“야, 이번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김생원이 해인사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대!”
“진짜야? 사실이야? 좋았어! 그럼 나도 해인사로 가서 공부할 거야!”
예나 지금이나 산사(山寺)는 공부하기 딱 좋은 곳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과거가 어떤 시험이던가? 가문의 운명을 걸고 전력투구하는 인생역전, 로또시험이 아니던가? 이리하여 전국의 유생이란 유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산사(山寺)로 모여드는데,
“야이 빠박이들아! 선비가 절에 왔으면 제대로 대접을 해야 할 거 아냐!”
“이것들이 개념을 바겐세일 해버렸나 본데…나 선비야 선비! 네들 같이 나라를 좀 먹는 놈들이 아니라, 나라 위해 공부하는 선비라고! 선비를 보면, 재깍재깍 튀어 나와서 인사하고, 대접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랬다. 선비들이 산사(山寺)로 몰려오면서부터, 불교의 수난은 가속화 되었는데…그나마 나라에서 상사금지(上寺禁止 : 유생이 절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를 외쳤으나, 지켜졌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약과였으니 고을에 새로운 수령이 부임할라치면,
“어이! 빠박이들…잘 들어, 이번에 새로운 사또가 부임하려고 하니까, 그래 A조 빠박이들은 연장 챙겨서 관아 리모델링 작업 들어갈 준비하고, B조! B조 빠박이들은 사또가 절로 순시 하실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체력단련 들어가. 그리고 C조는 사또가 절에 올라오셔서 파티를 개최할거니까 알아서들 파티 준비해. 알았지? 알았으면 빨랑빨랑 움직여!”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절에서 수양을 닦던 스님들을 동원해서 관아의 목수로 활용하는 건 기본이거니와 예나 지금이나 관광코스로 명산고찰이 인기 있는 건 똑같았던지, 사또나 양반들은 절로의 1박2일 코스 유람을 즐겼던 것이다. 물론, 경비 일체는 절에서 부담하였음은 두말하면 호흡 곤란할 이야기였다.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이 불제자들에게 살생을 강요하는 것과 지로승(指路僧)과 남여승(藍輿僧)으로 차출하는 것이었는데,
“역시…두부는 빠박이들이 만들어야 제맛이라니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두부는 소수의 몇몇만 즐기는 음식이었는데, 두부의 생산을 명령 받은 곳이 바로 ‘절’이었다. 원래는 왕릉에 제사를 올리기 위한 용도로 왕릉 근처의 절에 할당된 것이 점점 확대 되면서 절하면 ‘두부’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었다. 뭐 절에 와서 두부만 먹고 가면 그럭저럭 참고 넘길 만하겠는데, 문제는 절에 와서 닭을 잡아 달라, 은어를 잡아서 꼬치구이를 해 달라 하면서 스님들에게 살생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산을 관광하려면 지로승(指路僧)과 남여승(藍輿僧)이 있어야지? 산사(山寺)에서 수양을 닦으니 산길에 대해선 훤할 터이고, 이것들이 여자를 멀리하고 맑은 공기 쐐고 앉아있으니 힘 하나는 좋을 거 아냐?”
이리하여 산사(山寺)에서 수양을 하던 스님들을 끌어다가 길안내 하는 지로승(指路僧)을 삼고, 양반들이 타는 남여(藍輿 : 뚜껑이 없는 작은가마)를 메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뿐인가? 양반들을 따라왔던 종들과 하인들 역시 스님들을 핍박해 짚신을 내놓으라고 쌩쑈를 하였던 것이다.
“일루와! 네들 짚신 팔아서 먹고 사는 거 다 아니까, 몇 개 내놔! 이것들이 말야 꼭 좋은 말로 하면 안 내놓는다니까! 안내놔? 이걸 그냥 확!”
이리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승려로 산다는 건 말 그대로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으니, 과연 조선시대 불교계는 이 난관을 어찌 헤쳐 나갔을까? 초특급 대하 울트라 종교 사극 ‘사명대사의 실수(?)’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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