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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올라오는 조운선(漕運船)의 길목을 딱 가로막고는, 시시때때로 나라의 재정을 위협하였던 태안반도 근처의 천수만!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저놈의 안면읍 때문에 내가 홧병이 도진다니까! 저걸 그냥…아휴….”
“전하… 심기를 바로 하십시오. 세금이야 또 걷으면 되는 것이고, 제가 이번에 내려가 개선책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말만이라도 고맙다, 김육(金堉)아…. 너만 믿는다.”
이리하여 충청도 관찰사로 내려간 김육. 김육은 충청도의 오점(?)으로 자리잡은 태안반도로 향하게 된다.
“음… 조운선이 외해(外海)로 돌아가믄 안되는 겨?”
“일단은 외해로 빠지믄, 태풍이 몰아치면 꼼짝없이 타이타닉을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웬만하믄 연근해를 돌아서 움직이게 됩니다.”
“흠… 그럼, 걍 연근해를 돌면 되잖아?”
“그것이… 거시기, 교과서에도 실려 있듯이 서해는 전 세계가 알아주는 리아스식 해안이라서…. 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꾸불꾸불하게 암초가 많아서 뱃길따라 움직이다간 암초에 걸리거나 해서 배가 뒤집혀 버림다.”
“태풍을 피하자니, 꼼짝없이 암초에 걸리는구만.”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격이라…. 아예 태안반도 안쪽으로, 섬 안쪽으로 움직이면, 안전하게 움직일 터인데….”
“야야, 그럼 태안반도 안쪽으로 움직이면 되잖아? 이름도 맘에 드는데? 안면(安眠)이라…. 편안하게 조수가 쉰다는 뜻이냐?”
“예… 저쪽 안은 말 그대로 호수죠 뭐…. 태안반도가 파도를 다 막아주고 있어서 조수도 쉬어가는… 물길로서는 딱 좋은 곳이죠.”
“그럼 거기로 가면 되잖아.”
“거시기… 태안반도 안쪽으로 가면 걍 길이 막혀버려서요. 한마디로 삽질하는 짓이죠.”
“흠… 야야, 그런데 저기 어디냐? 저기… 그래, 저쪽에 ×만하게 붙어 있는 땅.”
“아… 저기가 남면하고 창기리를 이어주는 덴데, 코딱지만하죠? 저기만 뚫으면 외해랑 연결되는데… 아쉽죠?”
“아쉽긴 개뿔이 아쉬워? 안되면 뚫으면 되잖아!”
“예? 뚫다뇨? 코 파는 것도 아닌데….”
“이 자식이… 야, 방금 전에 네가 말했잖아! 남면하고 창기리를 사이만 뚫으면 외해랑 연결된다고! 딱하니 봐도 저기가 제일 얇아 보이잖아!”
이리하여 충청도 관찰사 김육은 파나마 운하사업, 수에즈 운하사업에 비견(?)되는 안면도 운하사업을 일으키려고 마음먹게 되는데….
“저기 남면하고 창기리 사이를 뚫어버리면 외해랑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거잖아! 저기만 뚫으면 조운선이 타이타닉 2탄 찍을 필요없이 안전 빵으로 서울로 올라갈 수 있어! 어때? 한번 해볼 만하지?”
“저기… 그런데 주민들이 과연 좋아할까요? 졸지에 섬마을 사람이 되는 건데….”
“이 자식이…까라면 까는 거지 뭔 말이 글케 많어? 지들이 나서봤자 백성이지…. 나라가 큰일 한다는데 어디서 개겨?”
“저기… 관찰사 어른, 이게 또 안면읍 사람들이 방폐장 건설 때문에 한번 휘꺼덕한 적도 있고…. 그러니까설라무네 분위기 봐 가면서….”
“죽을래? 나라에서 걷는 세금이 물고기 밥이 되는 시추에이션이 일요일날 낮에 재방송하는 것처럼 리플레이되는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냐?”
이리하여 김육은 그 길로 ‘안면도 섬 만들기 프로젝트’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가 인조 16년 1638년의 일이었다.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걷은 세금을 좀더 안전하게 운반시켜야겠다는 절체절명의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안반도에 살던 육지 사람들, 안면읍 사람들은 졸지에 안면도(安眠島) 사람들이 되게 되었으니….
“아이고, 관찰사 어른… 저희들은 어찌 살라고요? 그래도 육지 사람이라고 좋아했는데, 졸지에 섬사람이 되라니요…. 저희들은 앞으로 어찌 살라는 겁니까?”
“시끄러! 큰일을 하다보면 희생도 따르고 하는 거야! 당장 나라의 세금이 물고기 밥이 되는 마당인데, 네들이 그 세금 다 물어낼 거야?”
결국 김육은 남면과 창기리 사이를 뚫어 안면읍을 안면도로 바꿔 버리게 된다.
“역쉬! 김육 이놈 자식, 뭔가 일 낼 줄 알았다니까? 애가 말야. 똘똘하게 생긴 게, 생긴 거부터가 맘에 들었어. 이 자식 확 승진시켜 버리자고!”
“맞습니다 전하! 조선왕조 3백년의 우환을 일거에 해결한 김육에게 포상을 내리셔야 합니다.”
김육 덕분으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올라오던 조운선은 난파 걱정 없이 안전하게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으니, 조정은 말 그대로 앓던 이를 쏙 뺀 느낌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수천년 동안을 육지 사람으로 살던 안면읍 사람들은 세금을 좀더 안전하게 운반해야겠다는 사소한(?) 이유로 졸지에 섬사람이 되어버렸으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었을까? 이런 그들의 원한이 해결된 것은 1968년 안면도에 연륙교를 놓으면서였다.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큰 섬이었던 안면도가 3백여년 만에 다시 육지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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