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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2007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바벨>은 천제음악인 구스타보 산타 오라라에게 돌아가는 작곡 한부분에서만 수상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메히꼬출신 감독인 이냐루투 감독은 3번째의 영화 이 <바벨>로 세계적인 명감독이 되였으며 이색적인 소재로 세계를 놀라게한 그의 천재적인 관찰력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영화는 142분이라는 다소 길었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경이와 슬픔, 그리고 말못할 답답함과 고통을 마주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다들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듯싶다.
그럼 영화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 자체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부 보여주고 있는, 4개의 분리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소통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였다.
첫 번째 이야기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된 발단이 되는 총에 의한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모로코에서 목축업을 하는 집안의 두 아들이 염소떼들을 자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가 라이플총을 구입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 총을 이용해 염소들을 지키던 아이들은 심심한 틈을 이용해 버스 맞추기 내기를 하다가 실제로 버스를 맞춰버린다. 그 일로 인해 그들이 쏜 총탄은 결과적으로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비춰준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될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총을 함부로 쏘기까지의 과정이다. 내용을 보면 그저 아이들의 장난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동생 유세프와 형 아흐메드가 갖고 있는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세프는 어린 나이에도 놀지 못하고 가족의 일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이 싫고, 아흐메드는 동생이 누나의 몸을 몰래 훔쳐본다는 사실이 싫다. 그래서 그들간에 소통이 단절되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자신들의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결국 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문제의 원인이 된 총을 부수는 행동을 통해 유세프가 혼자만의 길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손을 들고 형을 살려달라며 간절히 외치면서.
두 번째 이야기는 유세프가 쏜 총을 맞은 미국인 부부의 이야기다. 서로 간의 이해가 힘들어진 갈등 탓에 대화가 단절되고 그 틈을 타 모로코로 여행을 온 미국인 부부 수잔과 리차드. 버스를 타고 모로코 어느 지방을 이동하던 중, 수잔이 갑작스럽게 어디서 날아온 줄도 모르는 총탄을 맞게 되고 그런 그녀를 치료하려 리차드가 온갖 노력을 다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런 와중에 수잔을 모로코의 한 마을로 잠시 옮기는데, 그 곳에 있는 모두가 그들에게 잘 해주려하지만 리차드와 수잔은 그런 이방인들을 쉽게 믿지 못한다. 미국 대사관에 먼저 연락하여 도움을 청한 리차드는 그 때문에 엄청난 국가적 분쟁으로 일이 커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고,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한 것 때문에 정작 필요한 구급차조차 오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좌절하고 만다. 시간이 지나 결국 그들에게 헬기가 오게 되고 수잔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다. 이 이야기에선 리차드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믿지 못하고 거칠게 대응하던 리차드가 서서히 모로코 인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장면과 극한 상황에서의 대화를 통해 수잔과 문제를 해결해내는 장면이 그렇다. 병원에서 가족들과 전화하는 리차드가 울음을 토해내며 그동안 맺혔던 응어리를 뿜어내는 장면도 브래드 피트의 빛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리차드와 수잔의 아이들을 돌보는 멕시코인 가정부 아멜리아의 이야기다. 아들의 결혼식 날에도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아멜리아는 고민 끝에 멕시코로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의 경우엔 미국에서 멕시코로 국경을 넘어 아이들을 데려가는 행동이 결국 문제로 발생한다. 예민해진 국제 정세에도 불구하고 아멜리아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술에 취한 상태로 국경을 넘으려뎐 조카 산티아고는 경찰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엑셀을 밟아 도망친다. 그로 인해 오도가도 못 하고 국경 근처 사막에 갇혀버린 아멜리아와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롭게 그려진다. 그들은 특별히 잘못이라 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국경 관리자와의 소통이 어긋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가 가져온 절망감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만다. 결국 경찰에 의해 구조되지만 아멜리아가 국경 근처 사막에서 홀로 걸어 다니며 도와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밝은 색감의 화면과 그녀의 속마음이 대비되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일본에서 펼쳐진다. 이 이야기에선 아예 처음부터 일반인들처럼 소통이 어려운 농아 여학생 치에코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특별한 말없이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녀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배구 심판이나, 벙어리라고 괴물 취급하는 남자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와도 그녀가 원하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이나 답답해한다. 그리고 치에코는 마지막 방법을 택하듯 아버지를 찾아온 경찰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옷을 벗고 나체로 다가감으로써 그녀가 느끼는 절박함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홀로 남겨진 고독감을 느끼는 클럽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카메라가 비춰질 땐 그녀의 입장처럼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그녀가 느끼는 고독감을 한 층 더 잘 와 닿게 그리고 있다. 바벨(BABEL)’은 성서에 등장하는 탑의 이름이다. 바벨이 있기 전까지는 태초부터 인간의 언어는 하나였다. 어느 날 인간은 하늘에 도전이라도 하듯 높은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이는 신의 분노를 사고, 그 결과 인간의 언어는 여러 갈래로 혼잡해져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바벨탑은 언어의 차이로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과연 언어의 차이만으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길을 가다 외국인을 만나도 손짓 발짓으로 어느 정도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바벨탑 역시, 서로 목적이 같았다면 바디 랭귀지로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바벨>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서로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생명보단 국제 관계와 범죄 소탕을 우선시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 가장 원초적인 몸으로 소통하려 하는 소녀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어쩌면 <바벨>은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이 아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 만나도 '소통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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