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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크레용태양
정세봉
《담배(생엽) 따러 가거라. 오늘… 왕개(王氏)더기다!》
그날 아침에 떨어져내렸던 아버지의 명령은 무척 퉁명스러운것으로 되여있었다. 내 심사를 저울질하는듯한 흘겨보는 그 눈길마저 꼭마치 무서운 적의를 품고있는것만 같았다.
정치대장이였던 아버지는 대체로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들은 일률로 생산대의 일에 베돌이하는 애군으로 여기고있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어느 한 총각이 결혼을 하는것은 인륜대사로서의 경사라는 의미보다는 자유분방하던 망아지가 첫굴레를 쓰는것으로, 《가정》이라는 멍에를 단단히 매는것으로 리해되고있는상싶었다.
그러했던만큼 학교문을 나온지 이태밖에 안되는 나에 대해서도 례외일수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애들보다 더 가혹하게 굴고 일도 더 시키였다. 그 리면에 제 자식을 옳게 길들이려는 뜨거운 부성애가 숨어있었던것이였지만 당시 나는 도무지 그렇게 여겨지질 않았다. 그저 그 눈길이 무서워서 고분고분 순종을 했던것이였다.
그런데 그날만은 알수 없는 불만과 거부감이 가슴속에 끓어올랐다.
(씨― 내가 뭐 계집앤가?…)
대개 녀자들만이 하게 되여있는 담배따기에 나를 보내는데 대한 원망이였지만 실은 그게 아니였다.
(하필 아버지가 정치대장일가? 씨―)
이런 못마땅함이였다.
하긴 그럴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었다. 그날 우리 몇몇 《애군》들은 랑만적이고 즐거운 행동계획, 말하자면 그날 하루의 일과가 따로 약속되여있었던것이다. 그 전날 윤철이, 정호, 광석이네들이 어디에선가 남포약이며 뢰관이며 도화선따위를 얻어와가지고 금비에다 벼겨를 섞어서 큰 가마에다 닦아내여 위력이 센 폭발물을 만들었다. 그걸로 해란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했다. 저수기공사장에 가서 남포군으로 있었다는 윤철이가 폭발약 한방에 물고기 한바께쯔는 떼놓은 당상이라고 불어대였다.
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였던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밤마다 논도랑에 나가 고기발을 놓고서 찍찍이따위 잔고기들을 조금씩 잡고있었던 나였던만큼 그것은 황홀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나두 가자!》
금시 마음이 달아가지고 비위를 썼을 때 나보다 서너살씩 더 먹은 그들 셋은 무척 이외로운듯이 경계하는 눈길로 나를 저울질해보았다.
《그럼… 심부름 잘해야 해, 알았어?》
윤철이가 마침내 짐짓 눈을 부릅떠보였다.
나는 그들한테서 코흘리개 취급을 당하는것이 언짢았지만 《심부름군》이라는 조건부를 쾌히 응낙하였던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마을뒤로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얼어붙은듯 뜨락에 서서 망설이고있었다. 고기잡이 하러 줄행랑을 놓으려니까 일에서 뺑소니 친 죄를 짓고 아버지를 다시 대할 그 순간이 겁났다. 그렇지만 또 담배따러 가자니 도무지 마음이 그쪽으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곧바로 그럴 즈음에 담배따러 가는 처녀들이 재잘대며 지나가고있었다. 그속에는 집체호의 희애도 끼여있었다. 희애는 영화구경이나 가듯이 화장을 진하게 하였는데 쪼각달처럼 휘우듬히 그린 까만 눈섭아래 동그란 두눈이 유난히도 맑아보였다.
희애는 다른 처녀들 몰래 나에게 정겨운 추파를 보내주고있었다. 그 눈길은 분명히 이렇게 속삭이고있었다.
《담배따러 가겠지? 나도 이렇게 가요. 석호와 함께 일하면 난 즐거워. 가자요. 빨리!》
나는 문뜩 《부끄러운 일》이 떠올랐다. 언젠가 꿈자리속에서 희애의 탐스러운 알몸뚱이를 뜨겁게 껴안고 정사를 치르어보았던 그 일이였다.
나는 가슴이 세차게 뛰놀고있었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였다. 희애의 그 정찬 시선에는 열아홉살 애숭이총각의 마음을 단즙에 젖게 하는 강렬한 유혹력이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기이하게도 줄행랑을 놓으리라는 심술궂은 결단이 내 마음속에 굳어지고있었다. 희애의 신비한 유혹이 나를 반대방향으로 밀어던지는 강한 척력으로 되였던것인데 거기에 또한 참으로 미묘한 까닭이 있었다.
우락부락한 마을의 총각들은 웬 일인지 희애를 《바람쟁이》라고 부르고있었다. 특히 윤철이가 더 그러는것 같았다. 나는 몇번 그가 희애를 《바람쟁이같은게!》 하고 흘겨보는것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분명히 경멸과 적이 같은것이 번뜩이고있었다.
(왜 저럴가? 희애같이 고운 녀잘 저렇게 욕할수 있을가? 미워할수 있을가?… 화장하고 눈섭 그리니 더 고운데. 나는 참말 고운데!… 화장한다고 다 바람쟁이일가? 참말 밉게 보이는걸가?)
나는 좀체로 리해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윤철이가 진짜 사내대장부인지 몰라. 사내대장부는 응당히 저래야 하는건지 몰라!… 남자라면 나같이 녀잘 고와하면 안되는것이 아닐가?)
그럴적마다 꿈속에서 저지른 《부끄러운 일》이 떠오르군 했다. 나는 스스로 얼굴을 붉히면서 윤철이한테 거의 선망과 존경 같은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될수 없는, 도저히 그럴수가 없을것만 같은 자신을 고민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희애의 유혹따위를 무시할수 있는, 말하자면 윤철이의 그것과도 같은 사내대장부의 자신감과 오기가 치솟아올랐던것이였다.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고기잡이를 가고싶은, 일체를 압도하는 그 욕망에서 유발된것이였지만은.
(희애는 서운해하겠지!… 그리고 날 원망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굴리면서 논두렁을 타고 슬금슬금 룡두산쪽으로 줄행랑을 놓은 나는 분명히 신바람이 나있었다.
버들방천을 꿰지르고 구룡천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룡두산밑에 다달았을 때 윤철이네들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우리는 산을 넘어 굴레벗은 말들마냥 해란강으로 줄달음쳤다.
그날 우리는 고기를 잡지 못하였다. 수심이 깊고 어마어마하게 소용돌이치는 물굽이를 찾아 《폭발물》을 두번 던져넣었으나 헛탕을 쳤고 마지막 하나는 불발탄이였다.
희떱게 호언장담을 하던 윤철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눈을 꺼벅거리고있는 꼴은 웃음을 참을수 없게 했다. 웃지 않으려니까 더구나 견딜수 없이 터져나왔다.
《에이씨― 투신자살이다!》
자기도 맹랑했던지 윤철이는 자살하는 시늉으로 물에 풍덩 뛰여드는것이여서 우리 셋은 땔땔 구을러가며 허리 부러지게 웃었다.
그러다가 청개구리처럼 물에 첨벙첨벙 뛰여들어서 물장구를 치며 자맥질하며 기껏 놀았다. 배가 출출해지자 산에 올라와 메돼지들처럼 옥수수밭에 들어서 잘 여문 이삭들을 따서 구워먹고는 따가운 초가을 해볕아래에 누워서 한잠씩 늘어지게 잤다.
깨였을 때는 해가 서천에 퍽 기울어져있었다. 우리는 무척 만족스런 기분으로 즐겁게 귀로에 올랐다.
고개를 넘어 산을 내려와가지고 구룡천 외나무다리를 건너서부터 익살스런 광석이가 앞장에 서서 손으로 박자를 쳐가며 노래를 선창했다. 우리도 따라 불렀다.
대해항행은 키잡이의 힘
만물생장은 태양의 힘
이슬 맞아 오곡 푸르고
모택동사상은 불멸의 태양
……
이어서 또 이런 노래를 불렀다.
경애하는 모주석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
만수무강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두수의 노래를 다시다시 반복을 해가며 목청껏 제창을 했다. 즐거운 기분대로 노래의 내용과 정감에는 상관없이 땅을 구르며 거의 장난으로 불렀던것이다.
《가만! …가만히 있어 좀…》
정호가 갑자기 손저어 제지시켜서야 우리는 노래부르기를 그쳤다.
《들어봐, 저게 무슨 음악이야?》
정호가 하는대로 우리는 걸음을 뚝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렸다.
비감스럽고 장중한 악곡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드넓은 공간을 무겁게 휘저으며 쭉― 깔려흐르고있었다.
《추도곡 아냐. 저게?》
광석이가 약간 경악하며 자기의 판단을 확증하려는듯이 다시 귀를 기울렸다.
《누가 죽었겠다. 중앙위원쯤…》
윤철이는 대수롭지 않게 오히려 흥미로운듯이 말했다.
누군가 큰 인물이 별세한것만 같은 예감은 나한테도 들었다. 대대사무실앞에 높이 걸어놓은 확성기나발에서 비장한 추도곡이 저렇게 줄기차게 흘러나온 전례가 없었던 까닭이였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걸음을 빨리했다. 남북으로 쭉 뻗은 신작로를 가로건늘 때 정호가 또 새로운 발견을 했다.
《반기가 걸렸구나! 저걸 봐. 사무실앞에…》
대대사무실 창문앞에 붉은 기발이 흡사 묵념을 하듯이 숙연히 숙어져서 걸려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반기라는것을 보았다.
비장한 추도곡 멜로디가 갑자기 뚝― 멎었다. 이어서 중앙인민방송국의 남성아나운서의 사뭇 침중한 육성이 우리모두를 숨죽이게 했다. 그 시각에야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그 무서운 뉴스를 접하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맑스―레닌주의자이시며 위대한 프로레타리아혁명가이시며 위대한 도사이시며 중국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모택동동지… 서거!…
우리는 고개를 젖히고 높이 걸려있는 확성기나발을 일제히 쳐다보며 인형들처럼 멍하니 굳어져버렸다. 가슴속에 억장이 무너지면서 얼굴이 무섭게 질리여왔다.
(모주석이 어찌?… 모주석도 서거할수 있단 말인가!)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우주속의 《십장생(十?生)》과 더불어 길이길이 만수무강하리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통념과 확신이 우리의 머리속에서 드디여 돌사태처럼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였다. 그것이 신화였음을, 신화였기에 깨여지는것임을 우리들의 두뇌가 번개처럼 터득하는 순간이였던것이다.
우리는 급기야 황황히 마을길에 접어들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거세여지는 호흡을 의식하며 묵묵히 걸음을 재우치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의 충격적인 얼굴들과 온 마을을 휩싸고있을 분위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각, 온 나라 민중이 숨쉬고있을 그 사변적인 분위기속에서 나는 한시급히 몸과 마음을 투척시키고싶었다. 거기에서 소외되고싶지 않았다.
과연 마을 북쪽에 주르르 지어져있는 건조실앞 넓은 공지에 마을사람들이 모여있는것이 금방 보였다. 그때 불쑥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려지면서 오늘 담배따기이에서 뺑소니친 죄책감이 가슴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죄를 지었기에 더구나 저 장소에 가야 하며 비통과 숭엄한 분위기속에서 소외되여서는 안된다고 절실히 느껴지고있었다.
나는 윤철이네들과 함께 불명예의 지각생처럼 마음을 조이며 슬그머니 한쪽 귀퉁이에 가 앉았다.
얼핏 일별해보니 온 마을의 남녀로소가 다 모인것 같았다. 회의에 오라면 두세번씩 찾아다니며 일러도 오지 않던 사원들까지도 이 충격적인 시간에는 저절로 가장 값진 자각성을 보인것이였다. 이 나라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의 최저의 한도를 그들은 분명히 깨닫고있었고 자기도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그런 눈물겨운 자아(自我)를 남들한테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확인시키고싶어서 땀내나는 사대육신을 이끌고 이 애도의 현장에 나온것이였다.
건조실벽앞에 연단처럼 놓여있는 낡은 테블우에서 라지오방송이 계속되고있었다.
…다시금 추도곡이 흘러나오고있었다. 그 심히 비장하고 애조를 담은 멜로디는 사람들의 가슴속을 훑으며 휘저으며 뒤흔들어놓으며 고요한 공간을 누비고있었다.
흐느낌소리와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고있었다. 아주머니들과 처녀들이 치우쳐 흐느끼고 울었다. 몇몇 처녀들은 손등을 눈언저리에 붙이고서 사내애들한테 얻어맞은 계집애들처럼 소리내여 엉엉 울고있었다. 거기에 희애도 있었는데 그녀는 흐느끼지도 소리내여 울지도 않았으나 이미 몹시 울었던 모양으로 눈두덩이 붉어져있었다. 어망결에 나와 눈길이 마주치자 희애는 고개를 푹 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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