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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 갈 것만 같은 나날이 여러날 지속되였다. 무얼 해도 흥겹고 힘든 것도 다 잊은 채 수영이와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나날의 계속이였다.
이 세상은 고달픔으로만 가득 차 있던 것이 아니였구나 하고 바보스럽게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런 기분 나만이 아니라 팀 전체가 다 그런 듯 싶었다.
바우 형도 요즘 신들린 듯 목에 힘 잔뜩 넣어 가지고 다닌다. 비단 천씨 형제들만 일당이 올라서가 아니라 다음 현장에 가면, 즉 한 달만 지나면 자기도 일당 오른다 이거다. 팀장과 이짱이 무슨 수작 부리는지도 모른 채, 자기가 대단해서 일 그렇게 된 것 마냥 틈만 나면 일당 올리던 그 무용담? 을 늘여 놓고 다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알려주든, 혹은 자기 스스로 알게 되든 알게 되겠지만 지금 만큼은 기분 좋아 보였다.
근심했던 안경 형도 이외로 차분했다. 자기는 왜 안 올려주냐고 펄쩍 뛸 상도 싶은데 좀 배운 사람답게, 그 성격답게 이외로 차분했다. 당근 피리아저씨도 내가 언제 수영이를 만날까 하고 그 것만 학수고대 할뿐이다.
팀에 들이 닥치려든 태풍이 슬그머니 꽁지 내렸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한 사람만 예외였으니 바로 팀장이였다. 하루에 만 원씩 생돈 나가는 상황에 얼굴 찌그러 진 것은 물론, 늘쌍 하는 잔 소리도 요즘따라 더 심한 것 같았다.
오늘은 새벽부터 가는 비가 오락가락한다. 수영이를 만나고 싶어도 이번 달 들어 자주 내리는 비에 작업진도가 많이 처져 말미 맡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원래 비 오면 작업중단 되여야 지만 오늘은 바라시작업이기에 비 와도 일 나가야만 했다. 바라시작업이 끝나고, 비도 계속 오게 되면 나머지 작업은 당연히 취소 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당당히 수영이를 만나러 갈 수 있기에 속으로는 비가 계속 더 왔으면 하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가다목수작업에서 골자가 바로 바라시작업 하고 자재 올리기인데 이 두 작업만 빼고 나면 누구라도 다 노가다 일을 할 수 있을만큼 제일 힘든 두가지 일 중 하나가 바라시작업이였다. 그런대로 오늘은 비가 소슬소슬 내려 덜한 편이지만 땡볕이 쨍쨍 내리 쬐는 날이면 바라시작업 말 그대로 고역 그 자체다. 영언지 일언지 모를 명칭에 걸맞지 않게 일 또한 간단하기 그지없어 붙였던 폼 다시 뜯어 내는 작업이라 그저 힘 하나면 충분하다. 힘으로 안되면 깡으로, 깡이 안되면 악으로, 그냥 밀어 부치면 된다.
작업장에 올라 가서 먼저 망치로 핀을 쳐서 빼냈다. 다음 담배 한 대 꼬나 물고 쑤셔 나는 손목을 좀 돌려주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빠루 ( 노가다공구이름인데 설명해도 모를 것이다) 들고 한 장, 한 장 폼을 뜯어 나가기 시작했다. 밤새 왔던 비때문에 고인 바닥물 위로 폼이 창 창 떨어지면서 작업복은 금새 땀과 고인 빗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폼이 떨어져 나가고 콘크리트 굳어 가면서 방출하는 열기에 숨이 컥 컥 막히고, 그렇게 힘든 시간이 흘러 어느새 새참 먹을 때가 된 것 같았다. 참 묵자 하는 이짱 소리에 못주머니를 벗어 놓고 가보니 참 갖고 온 팀장 얼굴표정이 여전히 찌그러진 그대로다. 식구들 또한 모두 땀과 시멘트 가루에 뒤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느라 여념이 없었고....... 빵 하나, 캔음료수 하나 받아 들고 앉아 허기진 배를 달래기 시작했다. 먹었다 쳐도 간에 기별조차 안 가겠지만 이것이라도 먹어 두어야 점심시간이 올 때 까지 두어시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먹다 말고 이짱이 또 슬슬 수작질이다. 아, 행님! 날씨도 껄쩍지근한데 우리 수박이나 한 통 사 묵읍시다. 아침 때 보다는 좀 풀렸던 팀장 얼굴이 다시 사정없이 찌그러져 간다. 가뜩이나 천씨 형제들 땜시 하루에 돈 만 원 그냥 마이너스 되는 팀장이라 이 제안이 마음에 들리는 없고 한데, 식구들 좀 먹었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지갑에서 만 원 짜리 시퍼런 배추잎 한 장 꺼내 들고 꺼벙이! 얼음보다도 더 차거운 수박 한 통 사 온다. 실시! 그 한 마디에 휘리릭! 낚아 채듯 어느새 돈 받아 들고 사타구니에 비파소리 나도록 자취 감춘 꺼벙이! 한심하다는 듯 평소답지 않은 그 모습에 한참이나 멍하니 보던 팀장이 중얼거린다. 일 좀 그렇게 해보지! 그러더니 괜한 심술에 한 마디 또 던진다. 쓰불! 이 넘 일도 비위 약하면 못해 못해 먹겠네! 왠 일이냐 하듯 식구들의 시선 팀장한테 쏠리고 아니 글쎄, 아래 층에서 네모도 (역시 자재이름이다. 아래부터 모를 말이 다시 또 등장하면 그냥 노가다용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노가다판에는 이렇 듯 유래조차 알 수 없는 말들이 버젓이, 많이도 떠 돌아 다닌다.) 를 뽑고 있는데 어떤 넘이 똥 싸 놓았지 머야! 하는 말에 아, 그랬었구나 라고 하듯 식구들 흥취 잃고 다시 먹던 간식 계속해서 우적우적 먹어 조진다. 이렇듯 김이 물물 나는 실물을 코 앞에 들이대기 전까지는 절대도 무감각한 우리 식구들이다.
이런 드러운 넘들! 라고 판정하기 전, 여러분들은 우리 고충을 이해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갑자기 그런 신호가 온다 치자. 신사답게 화장실에 가서 처리하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먼저 22층에서 바람처럼 아래로 여섯 층을 뛰여 내려가 호이스트 카라는 작업용승강기를 호출 해 타고 다시 땅바닥까지 도착해야 할 것이고, 그 동안 손을 엉덩이에 갖다대고 몸을 배배 꼬는 당신을 변태 넘 바라 보듯 보는 호이스트 카 운전아줌마의 따가운 시선도 감수 해야 할 것이고 땅에 닿는 순간, 다시 백 미터 넘는 간이이동화장실까지 전력 질주하다 보면 십상팔구 바지에 싸 뭉개기는 딱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넘이 아, 내가 정확히 오 분 후에 나가겠소 하고 미리 메시지 보내는 것도 아니기에 우리 노가다식구들은 그냥 작업장 아래 층에, 사람 눈만 없으면 그냥 싸 재낄 수 밖에 없는 비참하다 못해 암담한 현실이다.
듣든 말든 계속 주절 주절 늘여 놓는 팀장 말에 팀에서 비위가 가장 약한 나와 안경 형이 먼저 백기 들었다. 다 못 먹은 간식, 바닥에 팽겨치고 물 따라 먹는 우리 둘을 약간 동정하듯 이짱이 측은한? 눈길로 바라 본다. 씨, 네모도 뽑아 던지니 똥이 잠겼던 물이 몸에 확 튀는 것 있지 라고 하는 말에 속이 더더욱 욱씬거린다. 식구들 또한 불만이 슬슬 드러 내기 시작하고, 그 넘, 굵기도 어지간히 굵어야지 하는 말에 드디여 식구들 분통이 터져버렸다. 아, 행님. 수박 한 통 산게 그리도 배 아픔니껴? 차라리 묵지 말라고 하소 하고 식구들 대신해 한 마디 하는 이짱을 니는 그리도 깨끗하냐 하는 기색으로 힐끗 바라본다. 행님도 평소 자주 싸지 않았어예? 다시 한 마디 더 하는 이짱 말에 내는 그 아래아래아래.......아래 층에서 쌌다, 우짤래? 하고 팀장이 어린애마냥 맞 받아 치고 그렇게 둘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헐레벌떡 꺼벙이 넘 수박 사들고 뛰여왔다.
오더니 천하제일먹보답게 작업용나이프로 수박을 쩍! 쩍! 꼭 지 생긴 얼굴모양으로 갈라서 놓고 권할 새도 없이 큰 넘으로 하나 냉큼 집어든다. 넙죽 넙죽 씹더니 투루루루~ 수박씨를 연발총마냥 내 뱉더니 또 하나 집어든다. 먹는데만큼 확실히 도가 튼 넘이다. 방금 오갔던 말을 어느새 다 까먹고 식구들 손이 어느새 우르르 쪼개진 수박으로 향하고 안 먹는다고 팀장만 괜히 오기 부린다. 그런 것 따위엔 신경 끄고 어느새 수박 한 통 게눈 감추듯 없애고 식구들 다시 작업 재개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은근슬쩍 자리 뜨려는 꺼벙이 넘 귀를 어느새 비트는 팀장, 거스름 돈 안 내놔? 하는 말에 멋쩍은 듯 히히 하고 꺼벙이 넘 천원짜리 두 장을 꺼내 팀장 손 위에 올려 놓는다.
비 줄기가 점점 더 실해진다. 이 상황 이대로 계속 유지하면 오후는 자동휴식 될상 싶어 코노래가 어느새 흥얼흥얼 나온다. 아니다 다를까, 바라시작업 끝났어도 그칠 내색 없는 비에 팀장이 실망하여 오후 쉬자 라고 한다. 얼싸 좋다 싶어 한 달음에 함바에 가서 밥 먹고 샤워했다. 옷 갈아 입고 스킨로션 바르고 향수까지 뿌려대는 내가 이상한듯 식구들 보는 눈치 심상치 않다. 그런데 수영이한테 전화하니 오후 여섯 시 쯤 맞추어 오라고 해서 한 풀 죽었다. 괜히 좋아 한듯 싶었다.
배가 불렀겠다 비도 마침 잘 오고 해서 식구들 또 판 벌이기 시작한다. 술 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직도 꽤 많이 남은 시간 떼우려고 싫은대로 옆에서 구경했다. 이짱이 주축되여 팀장하고 바우 형하고 천씨 형제들, 그리고 피리아저씨간의 피 튀는 혈전? 이 시작되였다. 이때가 되면 모두 낯에 철판 깔고 안면 몰수다. 목에 핏대 세우고 언성이 슬슬 높아 갈 무렵, 뒤 돈 짧은 바우 형의 참패로 판은 일찌감치 싱겁게 끝나버렸다. 늘 그래 왔듯, 꺼벙이 넘 소주에다 지가 좋아하는 막걸리에다 안주거리 받아와서 도박판은 자연스레 술판으로 이어졌다. 술값 따느라 고생했다고, 옆에서 응원하느라 고생했다고 모두 돼지머리고기에다 한 잔씩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술이 되자 여태 말 없던 안경 형이 심오하게 한 마디 물음 던진다. 모두들 사랑이란 머라고 생각하나? 그 말에 머긴 머야. 여자 남자 이불 속에서 옹야 옹야 하는 거지 하고 바우 형 생긴것 답게 대꾸해서 흐아~ 모두 웃음보 터졌다. 한심스럽다는 듯 입만 다시는 안경형, 막걸리 몇 잔에 더러 맛간 꺼벙이 넘도 옆에서 히죽 히죽, 장가 가던 날 떠 올리는지 피리아저씨도 흐뭇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 해싸? 하는 이짱의 물음에 우리 마누라 말이여, 금방 한국에 왔을 땐 전화만 하면 보고 싶다니, 신체건강 조심하라느니 하더니 이젠 전화기 들기 바쁘게 돈 소리 아니요? 좀 아프다고 하면 남자로 생겨 갔고 엄살만 부린다 하고, 아무래도 바람 난 것 같애 하고 표정이 더 심각해진다. 약간만 수상쩍다 싶으면 의례 바람나지 않았나 하고 의심하는 이 노가다판 풍속처럼 아마 집에 있는 안경 형 마누라도 그런 생각일 것이다. 돈 깍지가 좀만 늦게 도착해도 이 인간 딴 살림 차리 않나 하고 말이다. 그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던 모르던,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런 같은 아픔은 누구나 안고 사는 것 같다. 이 쓰불 넘이 괜히 쓸데 없는 소리 해 갔고, 술 맛 잃어지게 하고 바우 형이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모두 한 잔씩 하자고 하는 말에 다시 술잔들 잡고 주~욱! 들이킨다. 그래, 시름 잊는데는 술이 최고다.
기분도 그렇고 시간도 되고 해서 노트북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따라나선 피리아저씨, 내 손에 십만 원 짜리 수표 한 장 억지로 넣어준다. 수고비로 주라고. 안 받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무래도 갔다 와서 수영이 돈 안 받았다고 다시 돌려 주는 편이 나을 듯 싶어 그냥 받아 넣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시름 놓은 듯 손을 흔들어 주는 피리아저씨, 그 왜소한 모습에 어느덧 고향에 계시는 부모자식 생각이 떠 올라 가슴이 찡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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