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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생과 함께
사진첩을 뒤져보아도 내가 이십여년을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하고 찍은 사진이 얼마 없다.
이것은 대학교 2학년때라고 생각된다.
동생은 이때 고중 1학년이였고...
방학에 집에 왔다가 어렵사리 찍은 사진이다.
지금까지 있는 사진중에 유일하게 낡은 집이 비교적 환하게 보이는 사진이다.
사진에서 기와지붕을 올린것이 집이고 금방 아래 벽돌색이 보이게 자그마하게 붙어있는것은
부엌칸이였다. 그 아래로 파란 비닐로 지붕을 쓰운것은 창고였고 제일 왼켠에 보이는 자그마한 양철로 만든 굴뚝이 보이는것은 할머니가 꾸렸던 <파마집>이였다.
나무판자를 더덕더덕 박아놓은것은 석탄을 담아두는 곳이다.
당시 <명성파마>집이라고 꾸렸는데 할머니는 그당시 도문에서도 이름있는 배터랑수준급 현대말로는 미용사라고 해야 하나???

2. 어머니가 해준 밥.
주말에 호주머니에 돈이 말라버려서 집으로 돌아갔을때라고 기억된다.
아마 대학교 1학년때인듯 싶다.
반찬은 돼지고기장졸임에 갓 김치움에서 꺼내온 시원한 배추김치...
두사발을 후딱 해치웠던 기억이 난다.
옆에 보이는 단수(이불장... 단수는 연변사투리인지, 아니면 일본어에서 파생된것인지 모르겠다.)
이밖에 저 찌그러든 밥상도 꽤나 나이를 먹은 밥상이다.
아마 저때 나이가 70은 넘었을것으로 기억된다.
 3. 동생이랑...
우리 집은 정지칸과 웃방으로 이루어졌고 집가운데 기둥이 하나 있다.
옛날 일본식을 본따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을 해서 그때 당시 50여원을 내고 구입한 집이라고 한다.
나도 동생도 태여나서 이 집에서 커갔고 이 집에서 추억을 키웠다.
저기 보이는 티비는 브랜드가 소니...
십여년을 우리 식구를 위해 아무말없이 헌신적으로 봉사하다가
3년전 합선으로 인해 끝내 세상을 마감하고 말았다.
밑에 있는 받침책상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왼켠에 보이는 파란 탁상등도 아직 건재하고 있으며 가끔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 제일 오른켠 책상은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
어릴적 그림책들과 잡동사니가 저 책상서랍을 꼴똑 채웠었는데....

4. 動遷에 의해 낡은 집은 없어졌다.
그때는 대학교 4학년으로 기억되는데....
연길에서 도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슥한 밤이였다. 사전에 예고없이 집으로 찾아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페허속에 한쪽 집벽만이 외롭게 서있는것이다. 집을 허물어버린다는 소식을 불과 며칠전에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진척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큰고모네 집에 전화를 하니 모든 식구들이 거기에 있었다. 어제 금방 집을 다 허물어버렸다고 했다. 이튿날 다시 한번 옛 집터에 와보고는 그후로 6년이 넘도록 다시 가보지 못했다.
 5. 다방으로 변해있는 옛 집터
우리 집 앞에 있던 층집은 아직까지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우뚝 서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금수동목욕탕>도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듯 했다.
지금 다방이라고 써놓은곳이 바로 제일 우에 사진에 보이는 우리 낡은 집이 있던 곳이다.
이십여년을 살아왔던,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고생했던 부모님들의 온갖 로고와 고초들이 담겨있는,
나의 동년과 소년, 그리고 젊은 피가 끓어넘쳤고 친구들의 발길에 다슬었던,
이젠 옛 기억속에나마 어렴풋이 남겨있는 집...
다시 그 마당에 서서 하늘에 별을 헤보고 싶지만
이젠 그것마저 사치가 되여버려
나는 먼곳에 우두커니 서서
마음속으로 그때의 정취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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