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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문해방탑
도문에서 대표성적인 건물을 들라하면 우선은 도문해관, 친선탑, 해방탑을 들수 있다.해방탑은 쏘련 홍군이 도문을 해방한것을 기념해서 세운 기념탑이다.밑에 동굴이 파여있어 어릴적에 초불을 켜들도 들어가 놀군 했었다.아직도 우리의 어린 손때가 묻어있는 해방탑,거기에는 렬사들의 영혼과 더불어 어린 소년소녀들의 아름다운 추억도 묻겨져있다.

2. 도문시 거리일각 도문은 자그마한 변방도시이다. 예전엔 아주 큰 호수였는데 후에 물이 말라버려서 지금의 도문이 되였다고 한다.그래서인지 높은 층집을 짓지 못한다고 한다. 땅이 비교적 무르기때문이다.거리 량쪽으로는 아담한 층집들이 줄을 맞춰 서있다.번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마다 변화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군 한다.

3. 친구 - 진수
진수와는 유치원때부터 인연을 가지게 되였다.이어 소학교도 같은 반, 중학교는 옆반, 고중 같은 반....원래는 연길토지방산관리국에 있다가 지금은 도문으로 주임으로 발령받았다.

4. 진수의 애마 - 토요타
차를 모습을 좀 폼나게 찍어달라고 해서 올린 사진이다.이젠 차를 모는것이 제법 숙련되여있다.
몇년전 둘이서 차를 몰고 가다가 발동이 죽어버려서 뒤에 택시들이 열몇대가 줄을 지어서 경적을 울려대던 기억이 난다.나도 올해엔 면허증을 따야겠다.

5. 혼인광고사진.
모남, 나이 30세, 미혼, 아릿다운 처녀를 구함.요즘은 인터넷에 자기 사진을 올리는것이 취미라고 한다.하지만 자기는 올릴줄을 몰라서 내보고 올려라고 재촉을 거듭한다. 확실히 잘 생긴 넘이다. 체격도 죽여준다.하지만 살쪘다고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한다.

6. 두만강변
아주 어릴적부터 있은 곳이다. 예전과 달라진것이 있다면 두만강의 물이 많이 줄어버린것이다.이젠 뽀틀르 타려고 해도 별로 흥이 나지 않을것 같다.

7. 배놀이
밑에는 두만강과 가야하가 합하는 합수목쪽이다. 내려가면서 물살이 조금 넓어지긴 하지만 강이라기보다는 넓은 시내물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참대를 엮어서 만든 죽파를 타는 모습...

8. 두만강 일각
사진배경을 위해 만들어진 소품용초가집이다.이젠 농촌에 가서도 이런 집들을 찾아보기 힘들다.점점 세멘트에 갇혀가는 우리들,정겨운 외할머니의 초가집같은 전통가옥이 더는 없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9. 두만강여울소리
비석은 멋지게 새워놓았는데 바로 곁에는 양고기를 구워파는 뀀점이 붙어서있다.살풍경이란것이 이런것을 가리키는것이 아닐가 생각해본다.

10. 도문강공원
두만강공원의 대표성적인 조각상이라 하겠다.하지만 이젠 칠이 다 벗겨지고 아이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춤추고 있다.벌거벗은 아이들,현재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얼른거린다.

11. 도문 월청에 있는 양고기뀀점
도문에서 차를 타고 반시간쯤 가면 월청향이 있다.그곳에 양고기뀀이 이름이 나서 시내에 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 넷은 다섯시반쯤에 도착했는데...우리가 찾은 양고기뀀점에는 벌써 차가 11대가 세워져있었다.

12. 정자
산밑에 닿은 자락에 이렇게 정자를 지어놓았다.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잔을 나누기에는 정말로 좋은 곳인듯싶다.

13. 빼곡이 들어앉은 손님들
오는 길에 대충 세여보니 뀀점이 열집도 넘어있는듯싶었다.내가 사진을 찍는 사이에 지금 보이는 줄에 있는 정자 일곱곳에 손님이 다 들어찼다.
어느 곳이나 이렇게 장사가 잘되면 농민들도 잘 먹고 살겠는데...
그런데 대체 농민들이 자체로 꾸린것인지,어느 돈 많은 시내부자가 꾸린것인지 모르겠다.

14. 양고기양념.
어릴적에 양고기를 먹을때 찍어먹던 양념 그맛대로이다.
참으로 오래만에 느껴보는 추억의 맛이다.
가장 오래 남는것은 시각도 아니고, 청각도 아닌 맛이라고 한다.

15. 콩나물무침, 채지(무우김치)
채지(무우김치)는 연변방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끔씩 터져나오는 연변방언때문에 웃기는 일들도 많군 하다.
하지만 그런 사투리와 방언들도 이젠 점점 젊은 세대들한테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어져오는 우리의 구수한 사투리와 방언들이 영원토록 이어져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17. 국화랑
국화도 소학교 한반, 초중 같은 학교, 고중 같은 반, 대학교도 같은 연변대학, 같이 <불사조>동아리를 뛰였었다.
현재는 도문법원에서 출근하고 있다.
간드러진 웃음소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명년 5월 3일에 결혼한다고 통지한다.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모든것이 다 준비되였는데 아직 신랑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한다.
참 맹랑한 일이 아닐수 없다.

18, 양고기뀀
바로 이맛이다.
이렇게 구워야만 진정 양고기뀀이라 할수 있다.
센 목탄불에 노랗게 구워져가는 양고기...
여러분들, 입안에 지금 침이 고이지 않는가?

19. 연기가 난다!!!!!!!!!!!
제맛이 나는 양고기뀀은 살짝 연기에 그을려야 한다.
너무 센 불에 급하게 구우면 겉만 타고 속은 잘 익지 않는다.
조금 센 불에 자주 돌려주면서 구워야만 제대로 구울수 있다.
보통 몇사람이 가면 꼭 양고기를 잘 굽는 사람이 한사람 있다.
이날, 진수는 양고기를, 난 갈비꼬치를 굽는 일을 책임졌다.
저녁 여덟시가 다되서 다시 도문으로 돌아왔다.
2차로는 호스트바에 들려 포도주에 워드까를 섞은 소위 폭탄주를 커다란 양재기에 하나 소멸했다.
사진기를 차에 두고 내려서 사진을 못찍었다.
3차로는 노래방에 들려서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가락을 뽑았다.
월청으로 가는 길에 고중때 반주임네 집에 들렸었다.
당노병으로 앓고 있는 선생님이시다.
저녁을 먹고 나오라고 성화가 대단했지만 다음번에 들리겠노라하고 나왔다.
요즘 대학입시시험이 곧 다가오는지라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기때문이다.
이제 방학이 되면 그때 다시 시간을 잡아 찾아가겠다고 했다.
넷이서 돈 천원을 모아서 선생님한테 드렸는데 한사코 받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신발을 넣는 덩때우에 올려놓고 나와서 다시 전화를 드렸다.
어서 빨리 병이 완쾌되여서 제자들이랑 술잔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사진속에 빠진 사람이 하나 있는데 우정희이다.
역시 소학교 같은반, 초중 같은 학교, 고중 같은반이였던 친구이다.
현재는 한살반배기 애기엄마이다.
애기를 안고있는 사진도 몇장 찍었는데 월청에서 오는 도중
내가 찍은 사진중에 자기가 들어간 사진을 모두 삭제해버린듯하다.
웬지 사진이 적어졌다했는데....
아무튼 다음번에 사진을 찍어서 보충하려 한다.
좋은 추억이다.
고향에서....
보고싶다, 도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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