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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무언가 벌레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감촉이었고, 꼭 그런 움직임이었어요. 저는 순간적으로 그 비닐 주머니를 방바닥에 떨어뜨렸어요. 그러자 그것들이 스스로 비닐을 찢고 나오더군요.
네, 그것들이었어요. 저는 똑똑히 봤어요. 그것은 작은 사람들이었어요. 밀랍으로 만들어진 작은 병사들이었죠. 저마다 등에는 소총 같은 것을 둘러메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 동네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G.I. 유격대' 그 비슷한 이름의 미니어처 세트에 들어 있는 작고 단단한 병사들과 똑같이 생긴 군인들이었어요. 수없이 많았죠. 수백 명쯤 되었을 거예요. 그것들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다가 곧 제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방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침대 밑으로, 책상 밑으로, 싱크대 밑 어두운 구석으로.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이상한가요? 하지만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스르륵 하고 저마다 위치로 달려들어갔다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죠. 네, 그것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청동을 녹인 액체가 스며들듯이, 불을 켠 방안에서 흠칫 놀란 바퀴벌레 떼가 어둠을 찾아 달려들어가듯이, 그것들은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순간에 소리도 없이 제 방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어요.
꿈을 꾼 게 아니냐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눈앞에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차라리 꿈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나았어요. 소리도 지를 수 없었죠. 저는 아무에게도 그 일을 말할 수 없었어요. 사실 오른쪽 눈이 이렇게 변해 버린 뒤로 저는 제 주위의 사람들을 대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칫하면 그들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들은 제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제 곁에 있었고 저는 그게 고마웠습니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제 선에서 해결하고 조용히 지내는 게 좋겠다고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피로하고 약해져서 눈을 뜬 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비닐 주머니를 복도 끝 쓰레기통에 밀어 넣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다시 단단한 현실이 저를 지탱해 줄 테니까요.
하지만 꿈은 그날 밤에 찾아왔습니다.
예전에도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을까요? 분명히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꿈을 꾸지 않고 지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꾸었던 꿈이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누군가가 꿈 얘기를 하며 정말 현실 같아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고 말하면, 그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라는 자각만 밀려왔지요.
하지만 그날 밤의 꿈은 정말 선명했어요. 첫 섹스의 기억처럼, 처음으로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처럼 선명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밤새워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밤새 걷고 있었지만 지치거나 피곤하지는 않았어요. 서해였던 것 같아요. 검푸른 어둠이 주위 모든 것을 삼켜 버린 동안에는 바로 눈앞까지 철썩이며 밀려왔던 파도가, 어김없이 떠오른 아침 해가 하늘을 따스한 붉은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할 때쯤에는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선까지 밀려나 있었으니까요.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 마라톤 결승선처럼 아련하게 저만치에 있었어요. 저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개펄로 들어가 질척거리는 진흙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바다의 밑바닥이 드러나 있었어요. 파도가 지나간 곳에 세월처럼 주름살이 남았더군요. 작은 조가비들이 밤새 기어간 흔적들 위로 푸른 해초들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문득 바지가 더러워졌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허리를 굽혀 뒤를 돌아보니, 역시 더러워져 있더군요. 투덜거리며 몸을 펴는데 무언가가 눈을 잡아끌었습니다.
그것은 제 바로 눈앞 개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푸른 불가사리였어요. 별처럼 다섯 갈래로 뻗어나간 다리 위에 얼굴처럼 선명하게 붉은 점들이 뿌려져 있었지요. 한쪽 다리 끝이 뒤집혀 있었어요. 말씀드리자면 저는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그 전에는 살아 있는 불가사리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었어요. 백과사전이나 TV 프로그램에서 언뜻언뜻 스치며 보았을 뿐이었죠. 처음으로 본 그 별 모양의 생명체는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워 보였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할까요. 저는 고개를 숙여 조금 더 자세하게 그것을 들여다보았죠.
그렇게 몇 분을 있었을까요. 저는 갑자기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죠. 그 미끌미끌한 생명체는 바다 밑바닥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푸르고 아름다웠어요. 그건 하늘에 있어야 하는 존재였어요. 밤이면 지상을 내려다보며 빛을 내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땅에 있었어요. 바닷물이 들어오려면 한나절을 더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슬퍼서 소리내어 울며 그 불가사리를 젖은 진흙 위에서 가만히 떼어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그것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정확한 비율로 다리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몸통 전체가 작은 단추만한 크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빛깔이 검은색으로 변했어요. 그 아름답던 푸른색은 금세 사라져 버렸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까맣게 타들어간 심지처럼 작고 단단하게 변해 버린 그것은, 더 이상 완전무결하지는 않았지만 훨씬 강해 보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것은 제 손바닥에서 천천히 움직이더니 팔을 타고 어깨를 기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저는 두려웠지만 감히 숨소리도 내지 못했지요. 그렇게 하면 어쩐지 불경스러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튼튼한 빨판으로 제 얼굴에 기어오른 그것은, 제 오른쪽 눈꺼풀에 매달리더니 다음 순간 눈동자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어요.
제 눈이 다시 불타오르고, 눈물이 다시 흐르고 있었습니다. 눈에서 길고 날카로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어마어마한 통증이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어요. 아픔과 함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왔지요.
문득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고 누구로부터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었어요. 문득, 저는 더 이상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살고 있었어요. 더 이상 꿈꾸지도 않고, 가슴 아프게 원하지도 않고, 실수를 하지도 않고, 미움으로 끓어올라 잠 못 드는 일도 없이 살고 있었어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요.
구체적인 무언가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저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때의 느낌을 다시 떠올려 보곤 했지만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 덩어리의 생각이었어요. 술 취한 밤에 밀려드는 서러움 같은 막연함, 디테일이 없이 몇 개의 희미한 선들로만 이루어진 스케치와도 같은 문장들이었죠. 그러나 그 문장들이 저를 견딜 수 없게 했지요. 저는 불을 켜고 침대에 일어나 앉아 슬픔으로 몸을 떨며 울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을 때, 사라락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그것들이 침대를 기어오르고 있었어요. 몇 시간 전 제 침대 밑으로, 책상 밑으로, 싱크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던 그것들이 어느새 다시 기어나와 있었습니다. 구보를 하는 것처럼 규칙적인 동작이었죠. 그것들은 조를 이루어 여러 방향에서 저에게 다가오고 있었어요. 저는 비명을 지르며 팔로 쓸어버리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저는 쓰러졌고 그것들은 제 오른쪽 눈꺼풀에 한꺼번에 달라붙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두려웠던 건 그것들이 한꺼번에 총을 쏘아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모든 병사가 등에 소총을 둘러메고 있었으니까요. 작은 총이었지만, 제 눈을 멀게 만들기엔 충분한 무기였죠. 하지만 그러지 않더군요. 일단 눈꺼풀을 장악한 그것들은 단지 붉게 변한 제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작은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개의 작은 입술들이 저를 애무하듯 쪽쪽 빨아대며 눈물을 들이마시고 있었어요. 저는 무섭고 흥분됐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죠. 그러자 신기하게도 눈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눈물이 다 마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픈 생각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지요. 저는 이 모든 것이 아주 길게 이어지는 악몽의 한 부분인 양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점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때였습니다. 제 오른쪽 눈이 발광하듯, 발악하듯 다시 쓰라리게 아파 온 것은. 아아악! 저는 팔을 휘두르며 다시 일어나 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자 툭, 하고 무릎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제 눈에서 튀어나온 검은 불가사리였어요.
그것은 임무를 끝내고 열을 정돈하고 있던 작은 병사들 쪽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기어가더니, 그것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제 동공이라고만 알고 있던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어요. 그 작은 것은 다섯 개의 작은 다리를 한번에 모아 밀랍 병사들을 끌어안았다가, 숨이 끊어질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몸을 조이고는 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침대 시트 위에 가루처럼 부서진 밀랍 조각들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지요.
곧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전장에서 여러 해를 겪은, 숙련된 병사들이 보여주는 대형으로 그것들은 빠르게 움직였지요. 그리고 사정없이 총을 쏘아댔습니다. 탕탕탕탕탕. 총소리가 제 방을 뒤흔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달려오지는 않았지요. 아마 누군가가 들었더라도 TV를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저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그 검고 작은 생명체는 곧 죽을 것처럼 보였어요.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어요. 병사들은 수백 명이었고 물컹물컹한 그것의 몸은 총알을 막아내기에는 너무 부드러웠습니다. 사실 이미 죽어가고 있었지요. 총에 맞은 자리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검은 체액이 쏟아져 나와 흐르고 있었습니다. 곧 죽겠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이쯤에서 끝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어요. 어찌 됐건 그 검은 동물은 저를 너무나 아프게 하고 있었으니까요. 반면 병사들은 저를 위협하거나 공격하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를 치료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요. 어쩌면 저는 그 짧은 단말마의 순간에, 그것들과 약간의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네, 그것들 안에는 저와 같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요.
그러나 그 순간 꿈에서 저를 사로잡았던 그 슬픔의 감정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달콤한 아름다움처럼 제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무언가 바닷물처럼 짭조름한 것이 얼굴로 치받쳐 올랐고, 젖어 늘어진 해초처럼 연하고 미약한 것들이 심장을 휘감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조가비들이 기어가는 속도로, 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발을 치켜들어, 병사들을 밟아 부수기 시작했지요.
맨발에 따끔따끔하게 밀랍 조각들이 박히는 게 느껴졌어요. 아마도 피가 흐르고 있었겠지요. 그래도 저는 눈을 꼭 감은 채 그것들을 계속해서 밟아 없애버렸습니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지만 한편으로 안도감도 밀려왔어요. 네, 그런 종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물론 전 자해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뭐랄까요, 한 명의 병사가 부서져 없어질 때마다 어쩐지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자신에 대해 말이지요.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저에게 총구를 들이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좀 당황한 것 같아 보였지요. 밀랍 얼굴들은 작아서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같은 편에게 총질을 당한 듯한 당혹감이 대열 전체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삼분의 일 정도 병력이 손실되었을 때, 그것들은 싸움을 그만두고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방 구석구석, 자신들이 기어나왔던 그 어둠 속으로 감쪽같이 다시 스며들었지요.
저는 검은 체액을 흘리며 널브러져 있는 작은 불가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지쳐 보였어요. 저는 그것을 손바닥에 쥔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것은 제 오른쪽 눈동자 속으로 돌아와 있었어요.
그 뒤로도 몇 번인가 같은 일이 반복되었지요. 선생님, 제 얘기가 지루하신 건 아니겠지요? 제 눈을 보고 계시지 않으니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찌 됐건 저는 그 뒤로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아졌어요. 전에는 조금도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못했던 일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고, 그럴 때마다 눈동자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쓰려 오기 시작했지요. 누군가에게 밤새워 편지를 썼던 일, 이제는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일, 저와 상관없다고 생각되어 만나지 않게 된 오랜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등을 두드렸던 일, 그리고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 시를 쓰면서도 혼자 기쁨과 충만한 만족감에 젖어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시간이 차례로 떠오르면서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눈물을 흘렸고, 그것들은 마치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제 방 구석구석의 어둠 속에서 기어나와 제 눈물을 빨아마셨고, 그럴 때마다 제 눈에서 튀어나온 검은 불가사리가 저를 대신해 그것들과 싸웠습니다. 싸움은 늘 불리했지만 이 작은 동물은 언제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요. 선생님, 불가사리에 대해 잘 아시나요? 이것들은 다리를 잘라내도 놀라운 생명력으로 곧 새로운 다리를 재생산하지요. 한번은 총에 심하게 맞아 몸이 두 조각으로 찢어져 버렸습니다. 저는 그때야말로 졌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대신, 그건 두 마리가 되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전 이렇게 양쪽 눈동자에 하나씩 검은 별을 갖게 되었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제가 함께 싸우는 일은 불가능해졌는데, 그 놀라운 병사들이 제 몸 속에 살게 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제가 잠든 사이, 코와 귀를 통해 제 몸 안으로 기어들어간 것이겠지요. 눈물을 흘릴 때마다 받아마시기 위해 그것들이 기어나오는 장소는, 다름 아닌 제 코와 귀였으니까요. 상상하기 힘드시겠지만 그건 두 배로 기분 나쁘고 두 배로 고통스러운 일이랍니다.
그것들은 이제 제가 집을 떠나 있는 한나절 동안도 안심할 수 없는지, 하루 종일 제 몸 속에 함께 살며 제가 슬픔을 느끼거나 잊었던 것들을 떠올리지 않도록 감시한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저는 다시 예전의 상태로 어느 정도 돌아갔습니다. 슬픈 기억이 떠오르면 고개를 흔들어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지요. 슬픔을 하루 종일 달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는 눈물을 흘릴 테고, 그러면 다시 고통스러운 싸움이 벌어지니까요. 고통을 구태여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선생님도 아마 저였다면,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이제 저는 그것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저는 계속 살아가야 했어요. 고통은 최소한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이 검은 불가사리들은 웬만해선 제 눈에서 튀어나오지 않아요. 그저 천천히 눈동자 속에서 회전하며 저를 아프게 할 뿐이죠.
하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도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남자친구, 친구들과 직장 동료에게 저는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으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죽음에 가장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저랍니다. 그들은 모두 저를 점점 두려워했고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물론 시선은 여전히 피한 채였지요. 화를 내기도 했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충고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는 말은 모두 같았어요. '그것들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이제 그만 떼어내 버려.' 몇몇은 저를 큰 병원에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나 봐요. 제가 모르는 무언가를 그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오히려 이것들이 점점 온순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느끼기엔 그렇지 않았나 봐요. 어떻게 눈을 맞추지도 않고 그걸 알 수 있었을까요? 하여간 제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저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설명할 수가 없어요. 제가 정말 그들 모두를 죽인 걸까요? 그들의 설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기억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 많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매번 손으로 그들의 목을 졸랐다는 그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저에게는 그런 힘이 없으니까요.
제 안에는 저만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일상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작은 병사들이 있다고요. 네,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불가사리들이 제게 필요한 것만큼이나 저에게 필요한 존재들이었지요. 최선을 다해 제가 고통을 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무리 혼란스러울 때에도 이성을 잃지는 않았어요. 비록 몇 번 정신을 잃었고, 그래서 깨어나 보면 제 곁에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있긴 했지만,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기억해요. 두려웠어요. 두려워서 도망쳤죠. 위안을 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매번 같았죠. 제가 가는 곳마다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죽었어요.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만두게 할 누군가가 필요했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그들을 죽인 건 제 눈에 들어 있는 이것들이었을까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작고 불쌍한 두 마리의 동물들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는 걸까요?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두 눈 속에 박혀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는데 말이에요. 더 이상 가슴이 시려올 정도로 푸르게 빛나지도 못하고, 마치 타다 남은 심지처럼 검고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것들인데 말이에요.
제 말을 믿지 않으신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부탁드려요. 저는 어쩌면 이곳을 나가지 못할지도, 그래서 다시는 대답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답니다. 선생님, 불가사리들은 죽지 않는대요. 계속해서 다시 살아날 따름이지요. 그렇다면 저는 평생 이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저는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알고 싶어요. 다시 한 번만 제 눈을 들여다봐 주실 순 없나요? 이것들이 정말 그렇게 끔찍한 존재인지, 제가 이것들을 키우고 있었던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는지 한 번만 더 보고 말씀해 주세요. 그래 주실 순 없나요?
<끝>
출처: 조인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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