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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사람들”은 영화감독이자 극본작가 장진의 작품이다. 좀 오래된 작품이지만 지금도 많이 상영되는 무대극이다.
장진, 남, 1972년2월24일생.
각본: 개같은 날의 오후(1995),기막힌 사내들(1997),간첩 리철진(1999), 동감(2000),극단적 하루(2000),킬러들의 수다(2001),화성으로 간 사나이(2003),아는 여자(2004)
감독: 기막힌 사내들(1997),간첩 리철진(1999),극단적 하루(2000),킬러들의 수다(2001),1. 3. 6(2004),아는 여자 (2004)
서툰사람들
장 진 作
((약간 겨울. 그러니까 초겨울쯤 되겠지. 유화이의 독신자 아파트. 라디오에서 '별이빛나는 밤에'가 흐른다.))
[이문세] 네--- 다음분 전화 받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벨 울리는 소리. 잠시후 누군가 받는다)
[이문세] 여보세요---
[소리] (여자다) 여보세요---
[이문세] 네, 안녕하세요. 저는 별밤지기---
[소리] 알아요. 이문세. 맞죠?
[이문세] 아--- 네 고맙습니다. 자 오늘 별밤 사연 시간에는 우연이란 소재로 얘길 꾸며가고 있는데요--- 아, 먼저 자기 소개를 좀 부탁 드립니다.
[소리] 김정순이라고 해요. 680224--- 2069611--- 경남 의창군 진덕면 와현리 2의 10
[이문세] 아--- 멀리 경남에서 전화를 주셨군요---
[소리] 아니요, 그건 본적이에요
[이문세] 아--- 네, 본적이요? 그럼 지금 살고 계신곳은---
[소리] 우편번호 130-050 서울 특별시 동대문구 회기2동 75에2번지 권풍달씨댁에 세 살고 있어요. 500에 월35--- 또 뭘 알고 싶죠?
[이문세] 아--- 아닙니다. 됐구요--- 자 사연 말씀하시기 전에 신청곡을 먼저 말하시면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소리] 솔리드에---
[이문세] 솔리드요---
[소리] 상상속의 너!
[이문세] 네? 아, 그건 노이즈의 음악아닌가요?
[소리] 왜 그거 있잖아요--- (노래한다) 이별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열대우림 속에 우린 살고 있나---
[이문세] 아--- 그건 알이에프의 이별공식이죠.
[소리] 아무튼 그거요--- 요즘 노래들은 드들 한끗 차이 같아서---
[이문세] 자, 저희가 그 음악은 준비를 하겠고요. 자 오늘 우연에 관한 어떤 사연이 있으십니까?
[소리] 그를 만난건 정말로 우연이었어요.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하고 무대에 서서히 불이 들어온다. 불이 들어오면 유화이 라디오 앞에서 열심히 진지하게 그 얘기를 듣고 있다.) 그는 술을 무척 좋아했죠? 어쩌면 그 술 때문에 우리가 만난건지도 모르죠. 정말로 우연히--- 그때도 그는 술에 만취가 돼있었어요. 그 술집에서 전 그의 옆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그가 술에 취한 나머지 오바이트를 하는거예요. 그것도 제가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말이예요. 그의 토사물 들이 튀여서 저의 바지에 묻었어요. 그때 전 똑똑히 봤어요. 그건 분명 돈까스였다구요--- (유화이 점점 속이 불편함을 느낀다) 그는 안주로 돈까스를 시킨거죠. 그 비싼걸--- 양배추도 함께 섞여 있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돈까스와 함께 섞여 나온 양배추를 오우--- 그것들이 저에게로 왔어요. 돈까스와 양배추를 제 캘빈 클라인 바지에 토하면서--- (유화이 못참겠다는 듯 구역질을 하면서 화장실로 달려간다) 전 그때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어요. 아시죠? 캘빈클라인 바지가 얼마인줄은? 그는--- (순간, 라디오에선 뚜뚜뚜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긴다)
[이문세] 여보세요--- 김정순씨? 네, 전화가 도중에 끊겼군요. 회기동의 김정순씨의 사연 돈까스는 양배추랑 함께 먹지말자라는 --- 그런 좋은 얘길 들었구요 신청곡 알이에프의 이별공식 들으면서 별밤지기 물러 나겠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쇼.
((음악이 흐르고 유화이 화장실에서 입을 헹구며 나온다. 라디오를 한번 노려 보고는 꺼버린다.))
[유화이] 우연?--- 참---
((유화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뭔가 자판을 두드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 물내려 가는소리. 그때 울리는 전화벨.))
[유화이] 여보세요. 네, 제가 유화이에요. 그런데요? 누구요? 서팔호씨요? 아~ 교감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그런데 이렇게 늦은밤에 그런일로 전화하시는건 실례 아닌가요?--- 그건 댁의 시간대죠? 전 지금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구요. 죄송합니다만 어차피 이런일은 전화로 말할일이 아니고--- 전화를 하시더라도, 날 밝을 때 다시 해주세요. (전화를 끊는다) (혼자말로) 참 별--- (유화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한다. 다시, 전화벨소리가 울리고 짜증나는 듯 수화기를 집어든다)
[유화이] 네--- 참. 이거 정말 왜이러세요? --- 글세. 절 소개해 주신건 교감선생님 이시지 제가 언제 당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까? 여자 혼자산다고 너무 편하게 생각하시나본데--- 글쎄, 나중에 만나서 얘길 하던가 아니면 내일 전화를 하세요--- 열 두시가 넘었는데 어디를 나오라는거예요. 여보세요. 참 딱도 하십니다. 반하실게 따로있지 손바닥 만한 사진 한 장에 무턱대고 이러시면 어떡하지는 거예요?--- 됐습니다. 전 아직 결혼 같은거 생각해 본적도 없고, 행여 남자를 만나더라도 이런식은 아니라구요. (전화를 끊는다) 정말로 죽겠군. 뭐 이런 따위가 다 있어. (유화이 다시 컴퓨터를 치려다가 기분이 상했는지 신경질적으로 끄고 침대로 간다. 스텐드 불을 끄고 옆의 커다란 곰인형을 껴안는다)
[유화이] 김군아. 난 너밖에 없다.
(유화이, 곰인형을 꼭 껴안으며 잠에빠진다. 잠시후, 현관 쪽에서 딸그락 딸그락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지루할 정도록 길다. 유화이 잠결에 소리를 듣고 스텐드 불을 켠다. 소리 잠시 멈춘다. 유화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불을 끈다. 그러자 딸그락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유화이 천천히 스텐드 불을 켜고 현관 쪽으로 간다.)
[유화이] (나즈막히, 조심스럽게) 누구--- 세요?
(그때 왈칵 문이 열리며, 서툰도둑 장덕배가 들어온다. 후레쉬로 실내 전등 스위치를 찾아 켠다)
[유화이] (비명) 악--- 엄 마!
[장덕배] 시끄러워. 조용히 해! (집안을 둘러본후) --- 어유. 이거--- 정말 이젠 이짓꺼리도 열통 터져 못해먹겠구만. 야! --- 너--- 그래 일단 몇 살이슈?
[유화이] (떨며) --- 네?
[장덕배] 나이가 어떻게되냐구요?
[유화이] 스--- 스물--- 다--- 섯이요. 살려주세요
[장덕배] 스물다섯--- 그래. 나보다 어리니까 말 놓을게. 야, 이멍청한 계집애야. 문을 안 잠구었으면 안잠구었다고 얘길하던가 “문 열려있음” 이라구 대문에다 써놓던가. 빌어먹을 열려 있는 문구녕에다 자물쇠만 돌렸다 뺐다 돌렸다 뺏다. 쓸데없이 추운데서 얼마를 떨은거야. 어째 이게 계속그냥 돌아가드라구.
[유화이]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제발 저에게 나쁜짓만 하지 말아주세요
[장덕배] 알아 알아. 뭔 말인지 알아.
[유화이] 제발-- 부탁이에요. 돈이며 물건이며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제발 제게 해꿎은 짓만 하지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장덕배] 알았어. 알았어 나도 바빠. 시간도 없고. 날 밝기전에 몇집 더 뛰어야 돼
[유화이] 선생님 부탁이에요. 제발--
[장덕배] (소리친다) 아, 알았다니까. 그만 좀 해. 이여자가 사람을 뭘로보고---- 내가 그렇게 나쁜놈처럼 보여. 칼들고 도둑질 하러 다닌다고, 사람 다 그렇게 보지마. 나 그래도 사나이다운 의리와 양심은 있는 놈이야--- 그리고 기본적인 도덕성은 가진 놈이란 말이야.
[유화이] (떨리는 소리로) 도--- 도덕성을--- 가지신 분이--- 이런 도둑질을--- 하신단 말이예요
[장덕배] 조용히 안해. 그런데 이여자가 겁도없이--- 이리와
[유화이] 살려주세요
[장덕배] 아, 알았으니까 이리와. 여기앉아. (유화이 조심스럽게 걸어온다) 가만히 있어 (손을 뒤로해서 묶는다)
[유화이] 이--- 러실 필요는--- 없잖아요
[장덕배] 손 아프더라도 참아. 잠깐만 이러고 있으면되니까. 그래도 명색이 도둑놈인데 주인한테 물건 챙기는거 도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거잖아.
[유화이] 보시면--- 아--- 시겠지만, 저희집은 뭐 돈 될만한 것도 없어요. 현금도 얼마없고--- 아직 미혼이라 값나가는 패물도 없고요
[장덕배] 자랑이다!
[유화이] 죄--- 죄송해요. 며칠전 봉급 탄것도 다 은행에 넣었어요. 일주일치 생활비만 빼놓고요. 그것도 삼일치는 벌써 다써버렸구요.
[장덕배] 이 여자, 참 말 많네 조용히 좀 해. 헷갈려! 이걸 어떻게 묶드라. 매듭법이 있는데 --- (장덕배 손을 묶는거에 끙끙대다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본다) 가만있자--- 여기서--- 한번 돌려가지고--- 거꾸로--- 이봐, 오른손 좀 살짝 올려봐. 됐어--- 아, 왼손은 가만히 있고--- 빌어먹을 풀렸잖아.
[유화이] 죄송해요--- 힘드시면 그냥--- 칭칭 묶으세요
[장덕배] 이거봐. 이게다 당신 안 아프라고 하느거야. 괜히 나간 다음에다 큰 처녀가 손목에 밧줄자국 나가지고 다니는게 볼꼴 사나워서--- 아까--- 집에서 할때는 잘 됐는데--- 됐다 가만히 있어. (시계를 보며) 어, 죽었나, 왜 안가--- 이런 빌어먹을 아무튼 훔쳐도 사람을 봐가면서 훔쳐야지. 그자식 진짜 로렉스라고 부들부들 떨면서 주던데 이거뭐 이틀도 못가서--- 아휴 하여간 좋은것도 훔쳐놓으면 오래 못가. (집안 이리저리 둘러본다) 자, 어디서부터 해볼까. 야∼ 정말 돈의 혜택을 전혀 못 받은 집이구만 뭐가 이리 허전해) 이거 시작부터 애를 먹었더니만--- (목이 마르는 듯) 이봐. 뭐좀 마실거 없어?
[유화이] 저기 냉장고를 열어보면 우유하고 물이 좀 있을거예요. 맥주도 있었는데--- 아까 저녁에 제가---
[장덕배] 됐어. 난 근무중엔 술 안마셔. 가만 방금 맥주라고 했어? 스물 다섯살 여자가 집에서 술까지 사다마셔? 이거 불량 학생이구만
[유화이] 스물 다섯이면 성인이예요. 더구나 전 학생이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구요.
[장덕배] 어허, 나이많은 사람이 말하는데 어디 꼬박꼬박 말대꾸야. 잠깐 당신 지금 교사라고 했어? 선생님?
[유화이] 네--- 중학교 선생님이예요
[장덕배] 아니, 무슨 선생님이 이렇게 어려, 원래 스물다섯살에도 선생이 될 수 있는거야?
[유화이] 네. 저--- 작년에 대학 졸업하고 올 봄에 발령 받았어요.
[장덕배] 그래?--- 이거, 내 나이도 젊은게 아니구만, 난 선생님이라고 하면 죄다 40대 중반은 넘어다 선생님처럼 보이는데, 하긴, 나 학교 다닐때도 젊은 여선생들이 있긴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생이라는 여자가 혼자 살면서 술이나 사다 퍼마시고 있고, 그게 뭐 잘한 일이라고 떠들어. 그래가지고 애들한테 뭘 가르치겠어. 당신 같은 여자한테 배우는 애들이 어린 나이에 불량기는 죄다 배여 가지고, 타락의 길로 빠지는거 아냐.
[유화이] 아니--- 어---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수가 있으세요? 아무리 도둑놈이지만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실수 있는거예요?
[장덕배] 뭐--- 뭔 놈?
[유화이] 그렇잖아요. 도둑놈이면 도둑놈답게 물건이나 들고 나가면 될것이지. 나--- 남의 직업을 욕하면서 여자의 자존심을 이렇게 상하게 하실수 있는거예요. 세상에--- 도둑질 당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만 도둑놈 한테 이런 모욕을 당하는건 평생에 이번 뿐일거예요.
[장덕배] 그런데 이 여자가 말끗마다 도둑놈이네.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 내가 당신 직업에 대해 뭐라 한건 당신직업을 욕한게 아니고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의 당신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결코 당신 직업을 욕한게 아니라구. 그런데 당신은 뭐라구? 도둑놈--- ! 이봐. 이것도 어디까지나 나한테 평생 먹고 살아야 될 직업이고 내 후세한테까지 물려줄 천직이라구. 그런데 도둑놈이라니? 그렇게 따지자면 당신은 시작부터 깔아뭉게고 얘기하는거 아냐. 내가 언제 당신한테 선생년이라고 한적있어?
[유화이] 그럼, 도둑놈을--- 아니, 도둑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장덕배] 왜 못 해?
[유화이] 참--- 기가 막혀서--- 그리고 뭐요? 직업에 종사하는 내 태도에 문제가 있다구요? 이봐요 도둑--- 님씨, 요즘 맥주가 술이예요?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 한테 맥주 몇캔은 그저, 음료수라구요
[장덕배] 음 료 수?--- 허허, 맥주가 음료수라면 소주 두잔먹고 뻗는 나같은 사람은 술한잔 먹을려면 석달 열흘동안 훈련이라도 받고 마셔야 겠네
[유화이] 그거야 아저씨 체질에 문제가 있는거죠
[장덕배] 아저씨, 아저씨 하지마. 나 아직 총각이야
[유화이] 하기사, 도둑질이 천직이리는데 변변한 여자친구하나 있겠어?
[장덕배] 뭐 야? (소리친다) 야! --- (사이) (유화이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면 다시 겁먹는다) 잠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내가 지금 여기 왜 왔지--- 나참, 저여자 때문에 내가 무슨 소릴하고 있는거야. 이거 동네 반상회 온것도 아니고--- 잠깐 이거 몇시지? (죽은 시계를 본후, 이리저리 살핀다) 이놈의 집구석엔 시계도 없어? 이 봐, 시계--- 없어?
[유화이] 있어요--- 내 손목에---
[장덕배] (유화이 뒤로와 시간을 본후) 휴. 그리 오래되진 않았군.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들이키려다)
[유화이] 저기--- 컵에 따라 마셔요.
(장덕배, 머슥한 듯 컵에 따른다)
[장덕배] (물맛이 이상한 듯) 이거, 물맛이 왜이래? 이거 수돗물 아냐?
[유화이] 아니에요. 그거 약수물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갖다 주신거라구요.
[장덕배] 약수물?--- 그래서 그런가, 물에서 이상한 약냄새가 나는거 같은데---
[유화이] 왜 그러세요?--- 그거, 지하 150미터에서 나온 암반 천연수가 뭔가 하는건데 미네라라과 철분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는 초자연수에요
[장덕배] 나--- 참. 그렇게 좋은 물이라면 이런거 냅두고 맥주는 왜 마셔?
[유화이] 아닌게 아니라. 다 마셨으면 저도 한잔만 주시겠어요. 너무 놀랐더니--- 목이 타네요
[장덕배] 뭐야? 나 이거 원--- (물을 한잔 따라서 유화이 앞으로 간다.) 입에다 대주려고 하다 이--- 이봐. 어--- 빨대같은거 없어?
[유화이] 없어요
[장덕배] 나--- 참--- (입에다 물려서 먹여준다) (천천히 마시는 유화이의 표정을 귀엽게 바라본다.) 입술 쭉 내밀고 마시는게 꼭 오리새끼 같네---
[유화이] (그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 뭐--- 뭐라구요? (웃는다)
[장덕배] 아니, 입술을 쭉하니 내밀고 꼴각꼴각 마시는게 거, 뭐야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 오리새끼 있잖아---
[유화이] 도날드 덕?
[장덕배] 아. 이름은 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왜 그게 생각이 났는지--- (둘 웃는다) (사이. 어색한 침묵) 더--- 더 마실래?
[유화이] 아니--- 됐어요.
[장덕배] 아, 참. 아까 당신 아버지라고 했는데--- 이 집에 같이 사는거야?
[유화이] 아니요--- 그냥 가끔씩 새벽에 약수 뜨러 가셨다가 들리시곤 하는거예요
[장덕배] 그래?--- 좋은 아버지 둬서 좋겠구만---
[유화이] (장덕배 천천히. 보따리를 푼다.) 참 구식 도둑 같네요?
[장덕배] 뭐야?
[유화이] 아직도 그런 자루를 가지고다니는 도둑이 있어요? 요즘은 그냥, 현금이나 보석 정도만 간단히 들고 나가는줄 알았는데, 그 큰자루엔 T. V나 전축, 냉장고 뭐 그런걸 넣을 건가요?--- 그자루에 모두 채우려면 우리집 가재구들을 몽땅 넣어도 모자르겠군요. 하하하(웃는다)
[장덕배] 저 여자가 미쳤나? 아. 조용히 안해.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스타일이야. 그리고 구식도둑? 이거 왜 이래 나 이래 뵈도 몽따쥬까지 배포된 지명도 있는 도둑이란 말야. 휴, 이젠 구역도 좀 바꿔야지. 연짝으로 이동네에서만 내리 몇판을 뛰었더니 이젠 이동네 경찰들이 날 잡으려고 안달이 나있을꺼야. 몽따쥬가 이미 나돌고 있으니. 그리고, 무슨 여자가 저 모양이냐. 명색이 칼들고 들어온 도둑놈인데 처음에 잠깐 상징적으로 겁먹더니만 그다음서 부터는 무슨 친척오빠 대하듯이 하네.
[유화이] 건방졌다면 미안해요--- 전 그저 도둑질하러 들어오셨어도 그리 나쁜 분은 아닌 것 같도 또--- 저한테 해꿎은짓을 생각안하시니 그게 고마워서---
[장덕배] 참. 선생님 치고는 철이 덜들었구만. 제집 털리는 건 생각한하고---
(장덕배 이것저것 뒤진다)
[유화이] 그 까짓 가재도구나 돈 몇푼은 다시 벌면 되잖아요. 요즘 같이 흉악한 세상에 그래도 아저씨 같은 도둑을 만난건 천만다행이에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손목에 밧줄자욱 남을까봐 특별한 매듭법으로 묶질 않나, 음료수도 따라주고---
[장덕배] 저 여자가, 그런데 박약아 아냐. 왜 저렇게 들떨어진 소리만하지. 말투하며 목소리 하며--- 중학교 선생? 참, 저렇게 들떨어진 여자가 중학생을 가르쳐? 애들 말아먹지---
[유화이] 제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전 그래도---
[장덕배]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입좀 다물고 있어
(라디오 옆에 쌓여 있는 레코드 판을 집어든다) 가만있자, 이게 배--- 기스---
[유화이] 비지스요
[장덕배] 음--- 알아! 비지스. 잠깐 비지스?--- 그 홀리데이 부른 그 비지스?
[유화이] 어머 아시네요
[장덕배] 아니, 이분들이 왜 이런 집구석에 있지?
[유화이] 뭐라구요?
[장덕배] 야--- 당신--- 역시 선생님이라 달라. 이런분들을 집에다 모셔둘줄도 알구---
[유화이] --- 좋아하시나 보죠?
[장덕배] 어이구--- 좋아하다뿐인가?--- 아주 존경하지. 그때가 언제였지--- 야, 벌써 꽤 됐네. 넌 어릴때라서 잘 모를꺼야. 과거에 지강헌이란 사람이 교도소에서 탈출을 했는데--- 경찰들과 대치를 벌였지. 그런데 그 지강헌이란 사람 대단해. 그 절박한 상황에서 그러니까 경찰들 수백명이 총을 겨누고 자신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이라고 외치면서 돈있는 놈은 무죄고 돈없는 놈만 유죄라면서 이나라의 부패함을 떠들어대는거야. 그때, 그 지강헌이란 사람이 경찰들한테 틀어달라고한 음악이 바로 이 비지스 홀리데이라는거 아냐. 음악이 흐르면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은 그렇게--- 탕탕탕--- 어때? 감동깊은 얘기 아니냐?
[유화이] 그 사건 저도 알아요. 그때 텔레비전으로 봤거든요.
[장덕배] 뭐야? (순간 얼굴 허해진다) --- 아 그럼 진작에 안다고 얘길해야 할꺼 아냐! 누구 가지고 노는거야!
[유화이] 죄송해요. 너무 진지하게 얘길 하시길래.
[장덕배] 그래--- 고맙다--- 참--- (장덕배 가방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지갑을 꺼낸다) 어디 보자 6만 5천원--- 이게 일주일 생활비야?
[유화이] 미안해요. 원래는 십만원인데 삼일치는 벌써 썼어요
[장덕배]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하루에 만 오천원 정도를 쓰네. 혼자사는 여자가--- 어째서 시집갈 미천 장만해야지. 왜 이렇게 헤퍼
[유화이] 아니예요. 하루 밥값, 차비, 생활용품 이것저것--- 그정도만 절약하는 거라구요. 차비 아끼려고 가끔씩 걸어도 다니는데---
[장덕배] 어이구, 장 하 셔. 자, 이거 만원은 남겨둘게.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은행문도 안 열텐데, 밥값은 해.
[유화이] 아니, 괜찮아요. 저 비상금 있어요.
[장덕배] 거 좀 (소리친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냥 그러는가보다 하고 가만히 좀있어 무슨 여자가 말이 저렇게 많아. 이건 완전히 손만 묶여 있었지. 실권은 제가 다 장악하고 있네. 이거 어디 도둑질 할 맛이 나야 뭘 해먹지. 뭐? 비상금이 있으니까 괜찮다구? 아예 비상금 어디다 꼬불쳐 놨는지 가르쳐주지. 왜?
[유화이] 아닌게 아니라, 저 책장 맨 오른쪽 백과사전에 끼어있어요.
[장덕배] (소리친다) 조용히 안해! 야 이, 계집애야. 나도 자존심이 있는 도둑놈이야. 스물다섯살짜리 코묻은 돈 도둑질 하는것도 양심에 찔리는데 뭐? 비상금까지 털어가라구? 고놈의 주둥아리에 냉장고를 물려놓기 전에 입닥치고 있어. (유화이 화난 듯, 조용해 진다) (장덕배도 기분 나쁜투로 담배를 꺼내피운다)
[유화이] 집안에 냄새 배여요. 창문을 좀 열어요
[장덕배] (창문을 조금 연다) (--- 어색한 침묵) (거리소음 자동차 멀리 지나가는 소리) 어 휴.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건지--- 어째, 이 동네 방범들 초소에서 화투치고 있을 때 알아봤어. 얼마나 비리비리 한 동네면--- 아파트 수위는 코골며 자고 있질않나, 가로등도 두 개중에 하나는 나가 있고, 개들도 주인 보다 깊이 잠들었지 하나 짖는 놈도 없고--- 얼마나 훔쳐갈게 없으면, 문열어 놓고 자질 않나, 주인 이라는 여자 입에선 또라이 같은 소리만 나오고--- (유화이, 아무말 없자, 장덕배, 유화이 눈치를 슬쩍본다) 이 봐--- 정말 화난거야. 저기--- 알았어. 미안해.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다면--- 도둑질 하는것도 미안한데, 괜히 마음 상처까지 내는 것 같아서 그래. 기분 풀어--- 아. 당신이 자꾸 그렇게 있으니까 내가 불편해서--- 물건 하나 제대로 담지도 못하겠잖아. 정말이지. 내가 원래 말을 좀 막하는 성격이고--- 험하게 자라서 그래. 도둑놈인데 오죽 하겠어. --- 아까--- 거--- 주둥이에다 냉장고 물린다는 말은 농담이야. 그냥 겁줄려고--- 알잖아? 도둑놈들이 원래--- 허풍이 좀 심하고, 무식하다는거---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 비상금도 가져가서--- 고맙게 쓸게 그만 화풀어. (그때 유화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린다) 뭐--- 뭐야?--- 뻥이였어? 일부러 삐진체 한거야?
[유화이] 하하하--- 세상에, 당신처럼 귀여운 도둑놈은 처음봐요. 하하하
[장덕배] 뭐가--- 어째?
[유화이] 부탁인데요. 돈 열심히 벌어놓을테니, 6개월에 한번정도 씩 훔치러와요. 하하하하
[장덕배] 뭐, 저런 계집애가 다있어? 이런, 빌어 먹을--- 아, 그만 웃어 (장덕배 신경질적으로 물건 이것 저것을 자루에 담는다) (그러다가 옷장 서랍을 여는 순간)
[유화이] (갑자기) 어, 거긴 안돼요
[장덕배] 이크. (열었다가 안을 본 후 금방 닫아 버린다) 미안--- 미안. (겸연쩍다)
(장덕배 다른 곳을 뒤지다가 킥킥대며 웃는다)
[유화이] (부끄러운 듯) 뭘 그렇게 웃어요?
[장덕배] 색깔을 참 다양하게 입는군. 하하하하하
[유화이] 뭐요?--- 여자 속옷 훔쳐보는게 뭐 그리 잘한 일이라구 웃어요?
[장덕배] 내가 뭐 알고 그랬나--- 아니, 그리고 도둑놈이 그런거 따지면서 훔치는거 봤어. 나나 됐으니까 그래도 얼른 닫았지. (장덕배 훔치는걸 잠시 중단하고) 휴, 잠깐 쉬었다가 하자. 이거. 저녁을 안먹었더니만 배가 고픈데--- 잠도 오고--
[유화이] (비꼬듯이) 라면이라도 끓여 드려요?
[장덕배] 누가 당신한테 밥달래?
[유화이] 거기 탁자 밑에 과일있어요. 그거라도 드세요
[장덕배] --- 그럴까--- (사과하나를 집어서 먹는다)
[유화이] 칼, 있어요. 깍아드세요
[장덕배] 칼은 나도 있어. --- 거 책에서 보니까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고 하더구만
[유화이]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시나 봐요
[장덕배] 건강이 최고야. 아프면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는 거라구.
[유화이] 그러는 분이 남들 다 자는 밤에 몸 축나게 이러고 다녀요.
[장덕배] 건강할 때, 하나라도 더 훔쳐 놔야지. 나이 먹으면 이 짓거리도 못해.
(옆 테이블 위에 액자를 보며) 학교 다닐땐가?
[유화이] 대학교 1학년때에요
[장덕배] 어-- 역시, 어렸을 때가 예뻐. 크면 때가 너무 많이 묻어.
[유화이] 때라뇨?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거예요?
[장덕배] 아니, 그러니까, 점점 커가고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말야. 세상의 때에 찌든단 말야
[유화이] 그럼 지금 제가 세상에 찌들데로 찌들었단 말씀이세요? 그렇게 보여요?
[장덕배] 아니, 뭐 그렇다는건 아니고--- (사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는 참--- 예뼜다.
[유화이] 고맙군요--- 왜요?--- 그것도 가져가시게요?
[장덕배] 내가 왜 이런걸 가져가? 돈 한푼 안되는걸---
[유화이] 추억이잖아요? '아 언젠가 초겨울, 난 이렇게 생긴 고주망태 여선생의 독신자 아파트를 털었다'
[장덕배] 참, 거 손뒤로 묶인채, 부단히도 계속 떠드는구만---
[유화이] 아닌게 아니라, 팔이 저려서 죽겠어요. 이걸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장덕배] 좀만 참어. 거진 다 털었어
[유화이] 우리집 같이 별볼일 없는 집에서도 훔쳐 갈게 있긴 있는 모양이죠?
[장덕배] 참--- 내가 당신 맘 아플까봐. 안 말했지만 아닌게 아니라--- 진짜 내용없다.
[유화이] 네?
[장덕배] A. B. C로 등급을 매긴다면 완전C급 이라구. 요즘 이런 T. V가 어딨어? 냉장고며 전축도 죄다 구닥다리고--- 내가 나중에 괜찮은거 하나 건지면 보내 줄게
[유화이] 안그래도 조만간에 가전제품을 장만 하려던 참이었다구요
[장덕배] 바꿀려면 조금 일찍바꾸지.
[유화이] 누구 좋으라고--- 그러면, 저것들은 안가져 갈건가요?
[장덕배] 야, 저런 고물 가져가서 어따 쓰라고 가져 가냐? 이런건 어디다 팔아먹지도 못해. 괜히 가져가면 짐만 되고---
[유화이] --- 은근히 기분 나쁘네요
[장덕배] 뭐가?
[유화이] 그렇잖아요. 아무리 없이 살지만 도둑놈 한테까지 이렇게 무시당할줄은 몰랐어요.
[장덕배] 참--- 별--- (이때,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순간, 둘다 시선이 전화기로 간다) 야, 이밤중에 전화올 때 있어?
[유화이] 아니--- 어--- 없어요. 누구지?
[장덕배] 어떻게 하지?
[유화이] 만약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같이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안받으면 뭔가 의심할지도 모를텐데요
[장덕배] (한참을 생각에 젖다가) 거 벨소리 드럽게 크네. 받아봐. 어떻게 말하는줄 알지. (밧줄을 풀어주려 가는데 유화이, 그냥 스스로 풀고, 나온다.) 아니 어떻게?
[유화이] 그냥 힘을 주니까 풀리던데요. (장덕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첩을 본다. 그리곤 칼을 들고 유화이에게 댄다) (수화기를 들며) 여--- 여보세요. 누--- 누구--- 또 당신이에요. 정말로 왜이러세요? 어머 이젠 술까지 먹었나봐. 이봐요 계속 이런식으로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꺼예요. 글쎄, 난 당신같은 사람 만날일도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으니까. 집에 가서 발딱고 잠이나 자요.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장덕배] 누구야?
[유화이] 아니예요. 모르는 사람이예요
[장덕배]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를 그렇게 받아?--- 경찰--- 아니지?
[유화이] (혼자말) 참. 자기가 뭐 그리 대단한 도둑놈 이라구--- 어떤 남잔데--- 자꾸 전화해서 만나자느니, 날 좋아한다느니--- 귀찮게 하는 사람이에요
[장덕배] 휴, 여자가 얼마나 하고 다니는 행실이 변변치 못하면 남자들이 이런 시간에 전화를 해.
[유화이] 뭐라고요? 난 이남자 본적도 없다구요. 학교 교감선생님 아는 제잔데 그냥 사진만 한번 보여준걸로 반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며 이러는 거라구요.
[장덕배] 뭘 잘했다구 큰소리야! 선생이라는 여자가 오밤중에 보지도 못한 남자가 술먹고 전화해서 걸떡되게 만들어놓구---
[유화이] 뭐--- 뭐요?
[장덕배] 그래, 내 당신 같은 여자들을 알아. 겉으로는 뭐, 남자가 필요없다느니, 사귀는게 귀찮다느니, 콧대만 높았지, 속으로는 자기를 좋아해주고 관심같는걸 즐기는--- 솔직히 이런 전화올때마다 맘속으로 즐거워 비명을 지르고 있잖아--- 삼풍이 왜 무너졌는데, 그렇게 당하고도 요새 여자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유화이]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요?
[장덕배] 다 똑같은 얘기야. 한강 다리가 왜 무너졌겠어!
[유화이] 아니--- 그게 지금 내가 그랬다는거에요?
[장덕배] 그럼--- 당신 지금 내가 그랬다는거야!
[유화이] 누가 당신이 그랬--- 아니, 지금 이런 얘길 왜 하구 있는거예요?
[장덕배] 당신 행실이 완전히 무너져 있으니까 하는 얘기 아냐! 사진만 보고 반했다구?--- 얼마나 사진에 색기가 들어 있었으면--- 뽸뽸---
[유화이] (거의 울상이 되어) 나가요!
[장덕배] 뭐!
[유화이] (울먹이며) 내 집에서 당장나가라구요!
[장덕배] 그래, 나가지 말래도 간다. 참, 드러워서--- (장덕배 나가려다 순간 멈칫한다.) 잠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야?--- - 난 지금 도둑질 하러 온거고--- 저 여잔--- 나, 이거 저 여자 때문에 나까지 또라이가 돼가잖아. (칼을 들이대고) 입 다물고, 저기로 가!
[유화이] (그제야 자신도 상황을 파악한 듯) 저--- 저기--- 아--- 알았어요. 그--- 칼 좀 치우고 얘기해요.
[장덕배] 얘기는 무슨 얘길해? 빨리 거기 앉아?
[유화이] 다시--- 팔을 묶을 건가요. 아파서 죽겠어요. 그엉터리 매듭법 때문에---
[장덕배] 조용시 해. 당신은 손을 묶기전에--- 아닌게 아니라 냉장고로 입부터 막아 놔야겠어. 정말이지 무슨 여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내 도둑질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당신같은 여자는 처음 봐. 뭐 그리 할 말이 많고, 따질게 많아? 아. 그런건 당신 친구나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나 하란 말이야. 왜 죄없는 도둑놈한테 죄다 짓걸여서 나만 개념없는 도둑놈 만들어? 이거 완전히 정신 산만해서--- 뭘 훔쳐야 될지, 어느 물건이 얼마나 나갈지 감을 못잡겠잖아. 당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해봐. 내가 들어와서 당신하고 지금껏 떠든 얘기들이 도둑놈과 집주인이 나눌만한 대화인가를--- 괜히, 시간만 허비하고--- 아 게다 당신 수다때문이잖아. 훔쳐갈거나 많다면 이해나하겠어. 뭐 쥐뿔도 들고 갈만한것도 없는 집주인이 뭐가 그렇게 대견 하다고 떠들어대. 그리고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애들이 조금 떠들어도 시끄럽다고 두들겨 패지? 안봐도 훤해!
[유화이] 댁도--- 참--- 말이--- 많네요
[장덕배] 뭐가 어째?--- 저 놈의 주둥이! --- (유화이 겁을먹는다) 조금만 더 털면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입좀 다물고 조용히--- 조용히--- 책이라도 보던가--- 그래, 먼저 자라. 나 그냥 대충 털다간 안 깨우고--- 그래, 내가 어지른거 정리도 해주고 갈테니까---
[유화이] (참던 웃음을 터뜨린다)
[장덕배] (어이가 없듯) 우--- 웃어?
[유화이] 알았어요. 지금부터 조용히 있을께요
[장덕배] --- 그래?--- 리모콘 T. V하나 건지면 보내줄게. 그러니까 그래--- 쉿--- (장덕배 숨을 돌리며, 터는 작업을 하려는 순간. 전화벨 울린다) (화가 치밀오른 듯) 이 놈의 집구석은 뭐좀 하려면 지랄이야. 주인 여자나 전화통이나 하나같이---
[유화이] 아--- 아까 그 사람일꺼에요
[장덕배] 그 빌어먹을 새끼는 집도 없대?
[유화이] 바--- 받아야 되나요?
[장덕배] 그럼, 아까는 받고 지금은 안 받으면 의심할거 아냐?--- 받어. 그리고 그 자식 자꾸 귀찮게 굴면 나를 바꿔죠
[유화이] (수화기를 들며) --- 여--- 여보세요? (장덕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이거 정말 왜이러세요. 당신은 집도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희집엔 지금 오빠도 와 계신단 말에요. (장덕배, 수화기를 가로챈다)
[장덕배] 이거봐. 당신 뭐야? 당신 뭔데 함부러, 여자 혼자사는 집에 전화질이나 하고 있는거야. 지금 몇시인 줄이나 알아?--- 이봐, 내가 언제 당신한테 시간 물어 봤어. 나도 로렉스시계 있어. --- 뭐--- 동생을 달라고 이봐, 애가 무슨 물건이야. 그리고 이 양반아 남자가 무슨 여자 사진 한 장에 가가지고 이래?--- 이게다, 당신 위해서 하는 소리야! 사진은 믿을게 못돼. 실제로 만나면 실망할 거라니까. 얼굴도 그렇고--- 여자가 말은 또 얼마나 많은데--- 내가 당해봐서 알어. 더럽게 조잘된다니까--- 허허, 이친구 그래도 막무가네네--- 아. 알았어. 알았어. 그래 내가 동생 줄테니가. 전화 끊어--- 아, 그렇다니까--- 그래,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 술 좀 그만 쳐먹구 나 술냄새만 맡아도 취해. 어, 그래 나중에 보자--- 응. 차조심해서 들어가(전화를 끊는다.) 미친 새끼. 드럽게 질기네.
[유화이] (노려보며)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장덕배] 뭘?
[유화이] 당신 조금전에 전화기에 뭐라고 했냐구요?
[장덕배] 그런데 이 여자가 왜 눈은 족제비눈을 해가지고 이래?
[유화이] 당신이 뭔데 맘데로 날주구 말구해요?
[장덕배] 아하--- 그거야. 저 친구가 자꾸 미친짓을 하니까. 내가 그냥 둘러댄거 아냐.
[유화이] 그냥 둘러 댔다구요?--- 만약에 당신이 가고, 내일서부터 저 사람이 넌 내꺼다 하고 행패를 부리면 그땐 어떻게 하라구요? 당신이 책임 질꺼예요?
[장덕배]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그리고 정 그렇게 나오면 만나봐. 그래서 맘에 들면 시집 가. 그러면 되지 요즘--- 스물 다섯도 늦은거야. 얘기 해 보니까, 저 친구 나쁜놈 같진 않더라구. 그리고 돈도 좀 있는거 같던데. 제가 모자랄게 없으니까 저렇게 무턱대고 나오는거 아냐
[유화이] (버럭 소리친다) 야 이 도둑놈아!
[장덕배] (놀라서) 뭐--- 뭐?
[유화이] (울면서) 네가 뭔데 그런소리를 해. 네가 뭔데 시집가라 마라 그래? 야 이. 도둑놈아. 도둑이면 도둑질이나 하고 갈것이지. 너 뭐야? 네가 우리 부모야. 네가 내 오빠야? 네가 나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그런 소릴 해. 여자가 혼자산다고 너까지 날 깔보는 거야. 그래, 난 혼자산다. 넌 뭐 그리 잘났냐? 도둑놈 주제에 도덕 선생님처럼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야. 맘에 들면 시집가라구? 네가 언제 봤다구 그런 소릴 해. 그래 난 시집가기 싫다고, 집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혼자 산다. 그렇다고 너까지 날--- 엄마! (유화이 침대에 엎드려 운다)
[장덕배] (어이없다는 듯이) 아--- 난--- (담배를 꺼내 피운다. 그러다. 창문을 연다) 내가--- 한말이--- 그렇게 나쁜--- 말이었나. 난 그저--- 좋잖아. 처녀가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는거--- 정말로--- 난--- 당신한테 무슨 상처를 주거나--- 당신을 무시한게--- 아닌데--- 이거, 오늘 정말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야. --- 저기, 이봐--- 난 정말이지--- 그래. 당신이 무슨 사연이 있나본데--- 아--- 난--- 도둑이긴 해도, 그래서 남의 물건을 훔치긴 해도--- 이런식으로 사람을 울리고 가는 놈은 아니야--- (전화기를 보며) 아, 저 미친 새끼 때문에--- 당신은 나한테 정말 잘 해줬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말이 좀 많다고 내가 흉은 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영업에 방해가 될까봐 그런거고--- 여자로써 그리 보기싫은건 아니야--- 저기 내가 사과할게--- 그렇게 울지 좀 마.
(그때, 유화이 고개를 급히 들고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유화이] 훔칠건 다 훔치셨나요?
[장덕배] 어?--- 뭐--- 대충은
[유화이] 그럼--- 이제 가보셔야죠? 몇집 더 뛰신다며---
[장덕배] 어?--- 그래--- 그래야지
[유화이] 저에게 해꿎은 짓을 안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장덕배]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보따리를 들고 천천히 걸아가며) 그럼 갈게. 아까는 정말 미안해. 난 정말---
[유화이] 가세요
[장덕배] 응? 그래, 가야지--- 저기, 문단속 잘하고 있어.
(장덕배,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그가 나가자 유화이 침대로 돌아오며 테이블 위의 어머니 사진을 잡고 흐느낀다)
[유화이] 엄--- 마---
(잠시 후, 밖에서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유화이, 고개를 들며 이상하다는 듯, 창쪽으로 가려할 때, 현관 밖에서 빠른 발소리가 들리며 곧 장덕배 들어온다)
[유화이] (놀라며) 왜--- 왜 또 오셨어요?
[장덕배] (분노한 표정으로) 난--- 난 정말 널 믿었는데
[유화이] 뭐라구요?
[장덕배] 난 정말 인간적으로 널 대했다구. 도둑질 하는 것도 미안해서. 안 다치게, 맘 아프지 않게 최대한 노력했는데---
[유화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장덕배] 계단을 채 내려가기도 전에 이럴 수 있어? 도대체, 몇군데다 전화를 한거야. 몇군데다 어떻게 얘길 했길래--- 경찰차가 수두룩 하고 소방차까지 오게 만들었나?
[유화이] 내가 뭘 어쨌단 말이예요?
[장덕배] 난--- 정말로 T. V괜찮은거 건지면 보내주려고 했단 말야. 널 울리고 가는게 미안해서--- 그런데 넌 뭐야--- 도둑 맞은게 많으면 이해나 하겠어. 쥐뿔도 돈 될만한 것 하나 제대로 없으면서--- 도대체 뭘, 얼마나 불려서 신고를 했으면 저렇게 많이와!
[유화이] 이건 오해예요. 난 신고 같은거 한 적도 없고, 아예 그런건--- 생각해봐요. 당신 말대로 뭐 도둑맞을 것도 없는 집에서 이런 일로 신고를 하겠어요--- 망신만 당하게---
[장덕배] 그럼, 저건 뭐야? 밖에 있는 저 자식들은 뭐냐구?
[유화이] (창문 밖을 내려다 보며) 나도--- 나도 모르는 일이예요
[장덕배] 그럼 저 자식들이 어떻게 알았지? --- 날 미행했나--- 으--- 이젠 끝이야. 모두 끝장이라구. 빌어먹을 어째 이 집구석에 들어올때부터 저 문고리가 열려 있을때부터 불길했어--- 이젠 어떡한담.
[유화이] 정--- 그러면--- 자수를 하세요. 정상 참작이란게 있잖아요
[장덕배] (의미 심장한 눈으로 유화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칼을 든다)
[유화이] (겁먹으며) 왜--- 왜 그러세요?--- 왜--- 자꾸--- 그--- 런 눈으로 봐요?
(장덕배 천천히 유화이에게 다가간다) 뭐--- 뭐하려는 거예요?--- 이--- 이봐요--- 이러지--- 말아요--- (유화이 뒤로 주춤주춤 도망가며 벽에 몰린다) 살--- 살려줘요--- 당신---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제발, --- 다시--- 생각해봐요--- 이러면--- 영원히 구제 못 받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장덕배 순간 멈칫하며)
[장덕배] 그래, 죽으려면 나 혼자 죽어야지. (유화이를 보며) 그래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걱정마. 아무짓도 않할테니가. (창쪽으로 가며) 결국엔 이런식으로 될 줄 알았어. 이렇게 모든게 끝날 줄 알았어. 어차피 이렇게 된거 불쌍하게 쇠고랑 차고 끌려가진 않겠어. (창뒤로 천찬히 오르며) 그래, 세상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어. 능력없는 놈들은 찌그려져야만 하는. 어떻게 해볼 엄두도 못나게 만들었어. (거의 울먹인다)
[유화이] 지금--- 뭐하는 거에요?
[장덕배] 세상에 외칠거야. 거꾸로 가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걸 다 외치고 죽겠어. 난 대한민국의 마지막--- 소설가다!
[유화이] 거기서 떨어지려는 거예요?--- 미쳤어요. 여긴 오층이예요.
(그때, 전화벨 울린다. 유화이 받는다) 여보세요, 뭐요? 호출이요?--- 호출했어요?
[장덕배]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유화이] 여기 호출한 사람 없어요. (전화를 끊는다) 이봐요 다시 생각해봐요. 당신이 뭐 그리 대단한 도둑이라고 이러는 거예요?
[장덕배] 음악을 틀어줘. 홀리데이를 틀어줘.
[유화이] 당신 미쳤어요. 어서 내려와요. 거기서 떨어지면--- 다친단 말이예요
[장덕배] 다쳐? 난 죽을꺼야. 어서 음악을 틀어. 부탁이야. 홀리데이를 틀어줘
[유화이] (덩달아 울상이 되어간다) 텐테이블이 고장나서 안 나와요.
[장덕배] 이 놈의 집구석은 뭐하나 제대로 된게 없어! 라디오라도 틀어봐. 아무거라도 좋으니까--- 음악을 틀어줘.
[유화이] 아--- 알았어요. (유화이 라디오를 튼다) (E. 지금까지 청취해 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엠. 비. 씨. 동해물과 백두산이--- )
[장덕배] 꺼! 당장 꺼! (유화이 얼른 끈다)
[유화이] 미--- 미안해요
[장덕배] 당신이라도 불러.
[유화이] 네?
[장덕배] 당신이 부르란 말야. 홀리데이 몰라?
[유화이] 제발 이러지 마요.
[장덕배] 어서 불러. (칼을 들이댄다)
[유화이] (떨며 부른다) 홀리데이 렛미 태이큐 피 어 웨이--- (음치다)
[장덕배] 그만해. 소름 끼쳐.
[유화이] 미안해요
(이때 밖에서 확성기로 떠드는 소리 들린다)
[E. ] 이봐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오! 생명이란 귀중한 거요.
[장덕배] 이게 무슨 소리야! 저 자식들이 날 설득하나 본데
[유화이] 당신이 자살한다는 걸 어떻게 알죠?
[E. ] 여보시오. 아무리 사는게 힘들어도 그렇지. 처자식까지 있는 양반이 그러시면 됩니까. 당신의 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유화이] 당신, 유부남이예요?
[장덕배] 무슨 소리야. 난 총각이야. 오리지널 숫총각이라구---
[E. ] 거. 일단 라이터는 치우고 얘기합시다. '신나'는 인화성이 강해서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온몸에 불이 번집니다.
[장덕배]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라이터는 뭐고, 신나?
[유화이] 당--- 당신이 아닌가 봐요?
[장덕배] 뭐--- 뭐야?
[유화이] 잠깐만요
[E. ] 다들 비켜. 너희들이 뭔데 왜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느거야. 내 인생은 끝났어. 난 나쁜 놈이야. 불에 타죽어도 싸단 말이야. 모두 가! 가란 말이야!
[장덕배] 이건 정말---
[유화이] 당신이 아니예요. 이 아랫집 같아요
[장덕배] 이런 빌어먹을--- 그럼 --- 난
[유화이] 어서 내려와요
[장덕배] 그럼---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거야.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아.
[유화이] 참--- 기가 막혀서--- 뭐가 어째요? 대한민국의 마지막 소설가?
[장덕배] 내가--- 뭐--- 알았나?
[유화이] 홀리데이를 틀어달라구---
[장덕배] 알았어--- 좀--- 그만 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유화이] 내가 신고를 했구요?
[장덕배] 미안해--- 그렇잖아.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싸이렌이 울리고 경찰이며 소방차며 아파트 앞에 서서 죄다들 이집쪽을 보고 뭐라 하는데--- 그나저나 이젠 어쩌지--- 저틈을 해집고 나갈수도 없고--- 옥상문 열려있나?
[유화이] 옥상이라뇨?
[장덕배] 옥상을 통해가지고 아파트 다른 입구로 나가면 될거 같애
[유화이] 답답한 소리만 하는군요
[장덕배] 뭐야?
[유화이] 우리 아파트에 옥상이 어딨어요. 기와로 된 지붕형이잖아요. 무슨 도둑놈이 훔치로 온 집 가옥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와요?
[장덕배] 아--- 그렇지--- 위가 뾰죽한--- 그게 이 아파트였군. 빌어먹을 이젠 어쩌지?
[유화이] 어쩌긴요? 그걸 나한테 묻는거예요? 집주인이 자기집에 들어온 도둑놈 도망가는 것 까지 도와줘야 돼요?
[장덕배] 누가 당신한테 도와 달랬어?
[유화이] 그냥 슬쩍 나가요. 도둑놈 아닌척하고.
[장덕배] 난 몽따쥬까지 나와 있다니까!
[유화이] 그럼 할수 없죠. 뭐. 아래층의 이 사람이 자살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자살을 하던가 해서 경찰들이 다가고 난 뒤에 갈 수 밖에---
[장덕배] 와, 이거 정말. 저 자식은 왜 하필이면 꼭 이럴 때 죽으려는 거야. 오늘이 아니더라도 죽을 날은 얼마든지 많잖아.
[유화이] 어쩜.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놓여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당신도 조금 전에 되도 않는 자살을 하려고 했잖아요. 저 사람도 저 사람 나름대로 저럴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거겠죠.
[장덕배] 아 그러게, 그게 왜 하필이면 꼭 남들 다 자는 이런 밤이냔 말이야. 밝은 대낮에 하면 좋잖아. 동네 사람들한테 피해도 안가고. 아무튼 이놈의 아파트는 당신부터 시작해서 모두 좀 모자른 사람들이 사나봐.
[유화이] 어머, 왜 우리 아파트 전부를 싸잡아서 욕을 하고 그래요? 정 그러면 아예 이쪽 말고, 잘 사는 동네는 가서 도둑질을 할 것이지---
[장덕배] --- 이봐, 당신이 밖을 한번 살짝 봐봐. 지금 어떤가.
[유화이] 참--- (유화이 천천히 창쪽으로 가서)
[장덕배] 허튼 짓은 하지마
[유화이] (장덕배를 한번 노려보고) 밖은 지금 아늑해요. 달은 반달이고 하늘엔 덮인 구름 사이로 별이 몇 개 반짝이요. 잠깐, 저게 북두칠성인가?
[장덕배] 야, 멍청아. 누가 그런 걸 보랬어?
[유화이] 뭐? 멍청이?--- 그렇게 필요하면 아쉬운 사람이 봐요.
[장덕배] (사정하며) 아--- -알았어. 미안해. 멍청이라고 그런거 사--- 사과할게. 한번만 좀 봐줘. 자---
[유화이] (못이긴 채) --- 차가--- 몇대는 갔나봐요. 경찰들은 아직도 밑에들 모여있고 동네 사람들도 모여있고. . 삼십명. . 사십명. .
[장덕배] 이거 완전히 경찰서를 털러 온 거랑 똑같군.
[유화이] (고개를 조금 더 내밀더니) 어, 밑에는 그 사람도 보여요. 창문에 걸터 앉아서--- 진짜로 몸에 뭘 부었나 봐요. 온몸이 젖어 가지고는--- 어머, 라이타를 켰다 껐다--- (그때 밖에서 소리 들린다)
[E. ] 다 소용없어. 경찰들은 가. 모두 가란 말이야. 그리고, 방송국에 빨리 연락해. 카메라 가지고 오란 말이야. 이계진 오라고 해. 기자들을 불러. 그 사람들한테 할 말이 있단 말이야.
[장덕배] 아니--- 저 자식---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카--- 카메라를 가지고 와? 기자가 뭐 어째?
[E. ] 경찰들은 필요없으니까 가서 도둑놈들이나 잡으라구--- 신문사에 연락하고 방송국 사람들 오라구 해. 이계진이 오라고 해. 할말이 있단 말야.
[장덕배] 저 미친 자식이 제가 무슨 스타야? (창문쪽으로 오자)
[유화이] 오지마요. (창문을 닫는다) 보여요! (장덕배, 오다가 움찔한다.) ---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혼잣말) 내 집에 들어온 도둑놈을 감춰주고 있다니--- (이때,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경찰의 소리가 난다. 장덕배, 유화이 깜짝 놀란다)
[E. ] 이봐요. --- 자. 우리 천천히 얘길해 봅시다. 이런 어리석은 짓은 그만 해요
[장덕배] 누--- 누구지?
[유화이] 경--- 경찰인가봐요
[장덕배] 경찰이 왜 이집으로 와. (유화이 문쪽으로 가고, 장덕배 칼을 든다) 말--- 똑바로 해
[유화이] 누--- 누구세요?
[E. ] 아니, 부인도 계십니까. 이런--- 부인은 남편을 말리지도 않고 뭐하시는 겁니까. 어서, 설득을 시키세요
[유화이] 저기, 그집은 여기가 아니고 아래층 집이예요. 집을 잘못 찾아 오셨어요
[E. ] 뭐--- 뭐라구요--- 아니, 여기가 408호 아닙니까?
[유화이] 아니에요. 여긴 508호라구요
[E. ] 아, 그렇습니까. 어쩐지 좀 많이 올라왔다 싶었지. 이거 실례했습니다.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장덕배] (한숨을 돌리더니) 아니, 당신네 동네는 경찰들까지 왜 이렇게 멍청해!
[유화이] 알았어요. 그만 좀 해요. 안 그래도 지금 이사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이 생기고 있단 말이예요. (사이)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둘은 모두 깜짝 놀란다. 장덕배 화가 치밀어 오른듯)
[장덕배] 저--- 빌어먹을 새끼 (수화기를 덜컥 들고) 야이, 미친 새끼야 넌 집도 없어! (순가 멈칫) 뭐? 선생님?--- 다--- 당신---
[유화이] 저요? (전화받는다) 네--- 아, 수정이구나. 어쩐일이니? 어--- 어딘데--- 58페이지? 잠깐만--- (영어책을 편다) 아, 여기--- (나근나근한 목소리다) 이건 관계부사의 제한적 용법과 계속적 용법을 말하는데 관계부사 when과where에도 제한적 용법과 계속적용법이 있어. 하지만 관계부사 how, why에는 계속적 용법이 없지. 그러니까, 이 문제는 보통 뒤에서부터 앞으로 해석 하는거야. 됐니? 그래. 아니야 괜찮아. 또 의문나는거 있으면 전화해. 그래 안녕---
[장덕배] 선생님은 선생님이구만. 이와중에 또 전화하라구---
[유화이] 그럼 어떡해요. 늦게까지 공부 하면서 모르는게 있어서 선생님한테 전화한건데--
[장덕배] 그나저나, 이거 정말로 경찰들이 갈때까지 이렇게 있어야 되는건가
[유화이] 뭐, 뾰족한 수라도 있나요. --- 아, 저 한테 미안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어차피, 내일은, 아니, 오늘이군요. 일요일이라 출근도 안하니까, 낮에 자면 되고 뭐 특별한 약속도 없으니까.
[장덕배] 팔자 좋구만--- 이거---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되는거지
[유화이] 이러고 있는게 정 힘들면, 여기 옆집이라고 털고 계세요.
[장덕배] 누구 놀리는 거야. 이런 빌어먹을 --- (물을 마신다) 후--- 물은 가려 마시면서 왜 도둑질 할 집은 가리지 않았을까?
[유화이] 쳇--- (소파에 가서 앉는다)
[장덕배] 으, 더워. 이 고물 아파트는 보일러만 잘 들어오는군.
(장덕배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다)
[유화이] (장덕배를 보며 조금 색다른 듯) 모자를 벗으니까, 잘 생겨 보이네요. 이제부터 벗고 다니세요--- 색다른 느낌인데요
[장덕배] (쑥스러운 듯) --- 색다른 느낌?--- 그래봤자 도둑놈이지.
[유화이] 그리고 훨씬 젊어 보여요. 서른도 안돼 보이는데--- 면도만 하면, 스물 일곱 여덟까지도 보겠는데요
[장덕배] 무--- 무슨 소리야. 내가 그렇게 늙어보여? 나, 스물 여섯밖에 안 먹었어. 그렇게 얘기하지마
[유화이] 뭐--- 뭐라구요? 스물 여섯
[장덕배] 아니, 왜--- 왜 그렇게 놀래?
[유화이] 정말이예요?
[장덕배] 그렇다니까
[유화이] 그러면--- 7--- 0년생?
[장덕배] 그렇지---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봐. 한 살이지만 당신보다 많은건 많은 거잖아.
[유화이] 참 기가 막혀서. 난 만으로 얘기한거죠. 나도 70년생. 잔나비띠라구요.
[장덕배] 뭐--- 뭐야. 아니---
[유화이] 참, 나는 또 나보다 한 대 여섯 살은 위인 줄 알았네
[장덕배] 그---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유화이] 누가 뭘 어떻게 한 대요? (혼잣말로) 동갑내기한테 이런 일을 당하고 참---
[장덕배] 뭐, 뭐야? 방금 뭐라고 했어
[유화이] 뭘요. 아무말도 안 했어요
[장덕배] (쑥스러운 듯 담배를 꺼내물려다 유화이를 보고 창문을 열려고 한다)
[유화이] 닫어요. 밖엔 아직 시끄럽고 찬바람 들어와요.
[장덕배] (혼잣말로) 언젠 또 냄새 배인다더니--- (사이, 장덕배 담배를 피우며 유화이 눈치를 보다.) 저기--- 그럼--- 놔
[유화이] 뭘요?
[장덕배] 저, 말--- 놓으라구
[유화이] 누가 꼭 그러고 싶대요?
[장덕배] 아니, 내가 불편해서 그래. 동갑인데--- 내가 도둑놈이라고--- 꼭 존대말 할 --- 필요가 있겠어
[유화이] 정말이에요?
[장덕배] 그렇다니까--- 내가--- 그런게 싫어--- 내가 꼭 도둑이고 남자라고 해서--- 또 당신을 힘없는 여자라고 해서--- 당신이 나에게 동갑인데도 존대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 요즘은--- 남녀평등 사회라던데
[유화이] 굉장한 패미니스트군요
[장덕배] 패--- 패 누구?
[유화이] 아니요--- 그래요 뭐 당신이 불편하다면--- 나도 이게 싫진 않아요. 그럼, 이제 우리 친구가 되는 건가요?
[장덕배] 뭐--- 친--- 구?
[유화이] 그렇잖아. 동갑내기로써 서로 말도 놓고 벌써 몇시간째 같이 얘길 나누었고--- 또, 얼마동안은 같이 있어야 될텐데--- 그리고 넌 도둑놈이긴 해도 그렇게 나빠뵈진 않고--- 오히려 잘하면 괜찮은 친구가 생길 것도 같은데---
[장덕배] (쑥스러워한다) 아--- 그렇긴 해도 난--- 도둑질하러--- 여기 왔는데--- 당신은--- 주인이고---
[유화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왜, 내가 친구하기엔 맘에 안드니?
[장덕배] 아니--- 뭐 꼭--- 맘에 안 든다기 보다는---
[유화이] 그럼 됐어. 자--- 우린 이제부터 친구가 되는거야. 좋지?
[장덕배] --- 그--- 래. 뭐, 싫진 않지--- 아무리 그래도, 당신은---
[유화이] (가로막으며) 내 이름은 화이라고 해. 유화이. 친구한테 ‘당신’이 뭐니?
[장덕배] 유--- 화--- 이 좋구나--- 유화이
[유화이] 넌?
[장덕배] 뭘?
[유화이] 네 이름은 뭐야? (장덕배 대답이 없다) 걱정마. 경찰서 같은 데는 가지도 않을테니까. --- 대신, 가짜이름 말고, 진짜 이름을 말해줘.
[장덕배] 난--- 장--- 덕배--- 라고 해
[유화이] 장덕배?--- 어울리는 이름이구나. 그래, 친구가 돼서 정말로 반갑다. 장덕배 (악수하려 손을 내민다) (장덕배 쉽게 손을 못 내민다) 친구가 됐는데 악수도 안하냐?
[장덕배] 어? 어--- (어색하게 손을 내민다)
[유화이] 남자가 왜 그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니
[장덕배] 부끄럽긴? --- 누가---
[유화이] 얼굴까지 빨개졌는데
[장덕배] 그런데 이 여자가 얼굴은 누가---
[유화이] 이 여자가 뭐니--- 친구한테--
[장덕배] 어--- 미안해--- 이거 원체 여자 친구는 처음이라서---
[유화이] 정말? --- 그럼 여지껏--- 애인 하나 없었어?
[장덕배] (머쓱하게 웃으며) 애인은 무슨--- 진짜로 여자 친구 한번 없었다니까.
[유화이] 나랑 똑같네. 나도 남자 친구는 처음이야
[장덕배] 에이--- 거짓말
[유화이] 어머, 정말이라니까. 난 남자친구로 덕배 네가 처음이야.
[장덕배] 아무리--- 요즘 스물 여섯 살 먹도록 남자 친구 한 명 없는 여자가 어딨어?
[유화이] 글쎄, 얘길 하려면 사연이 좀 긴데--- 내가 일부로 피했다고 할까. 하긴, 뭐 절실하게 남자 친구가 필요했던 적도 없었고, 또 난 지금 이게 편해 자유롭고 평화롭고---
[장덕배] 그런데 난 왜?
[유화이] --- 글세 네가 맘에 들었어. 착해 뵈고. 말은 좀 험하게 하지만 정도 많은 것 같고--- 보기보단 맘도 여리고 엉뚱하기도 한 거 같고--- 재미있고
[장덕배] 그래도--- 난 도둑놈이잖아. 그것도 몽따쥬까지 배포된 넌 명색이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난 뭐하나 가진 것도 없고, 학교도 변변치 않는데 나왔는데
[유화이] (탁자로 가서 사과 하나를 깍는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면 끼리끼리 어울리는 애들이 있어. 덕배 네가 말한 것처럼--- 성적이나 집안환경 같은 걸로 자신들의 친구들을 정하면서--- 고작 중학생 아이들이 말이야. 가끔씩 생각해. 이런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어도 자신들의 주위엔 자신들과 어울리는 사람만이 있게 한다면 말이야. 사회도 어떻게 될까 하고--- 가진 사람 옆엔 언제나 가진 사람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은 언제나 많이 배운 사람과 얘길 나누겠지. (사과 반쪽을 깍아서 장덕배에게 준다. 하지만 자신이 먹는 쪽은 안깍은 껍질 그대로다) 돈 없고 못 배운 사람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미워할꺼고, 그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경멸할꺼야. 그리고 그 사회엔 온갖 벽들이 생길꺼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수없는 쇠창살이 가로 놓여질 거야--- 난 덕배 널 친구로 삼아서 정말로 기쁜데, 넌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재미있고, 듬직하고, 내가 아는 사람중에서 자물쇠도 가장 잘 따고, 또 괜찮은 TV도 선물로 받을수 있고---
[장덕배] 응, 그건 정말이야. 내가 괜찮은 거 건지자마자 하나 갔다 줄게.
[유화이] (웃는다) 아무리 그래도 훔친 물건을 선물받는다는 건 좀 그렇다. (그때, 408호의 김추락 창문을 열고 매달린 채 나타난다)
[김추락] 이것봐. (장덕배, 유화이 놀란다) 불--- 불 좀 빌려줘. 빨리
[유화이] 다--당신 뭐예요
[김추락] 빨리 라이터를 달란 말이야. 내 라이터에 가스가 다됐단 말야!
[장덕배] 아니,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올라온거요?
[김추락] 상관없어. 난 불에 타 죽어야 돼. 어서 불 좀 줘!
[장덕배] 알았어. 알았으니까 소리 좀 지르지 마슈. (장덕배 라이터를 꺼내어 주려 하다가) 그런데--- 나도 한마디 합시다. 내 당신 원하는대로 불을 주긴 주리다만 제발--- 빨리 좀 쇼부 보슈. 당신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아슈? 당신 때문에 영업에 얼마나 지장을 초래 하는지 생각이나 해봤수. (흥분한다)
[김추락] (매달리기에 힘들어 한다) 후--- 힘들어 죽겠수다. 빨리 주슈,
[장덕배] 하나 더--- 경찰들은 가서 도둑놈 잡으라는 소리는 다신 하지마슈. 당신 위해서 오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수.
[김추락] 알았수, 내 시키는대로 할테니까 제발 빨리 라이터를--
[장덕배] 마지막으로 하나
[김추락] 선생님 제발---
[장덕배] 이계진 말고도 많잖아. 김동건이나 뽀빠이 이상용도 있잖아. 이계진 그사람 눈이 작아서 싫어. 알았수?
[김추락] (바락하듯 고함친다) 김동건이나 뽀빠이도 작아! !
[장덕배] (같이 소리친다) 아무튼 싫어! !
[김추락] (거의운다) 알았어--제발--나 이러다 죽어--- (장덕배, 라이터를 준다) 고맙수--- 고마워--- (김추락 내려간다)
[유화이] 지금 뭐한 거예요?
[장덕배] 나도 심통나서 그래. 저 사람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E. ]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경찰들은 가지 말고 여기 있어. 그리고 이계진 말고 뽀빠이 이상용 오라고해! 빨리 데려와 할 말이 있단 말야!
[장덕배] 정말로 웃기는 사람이군.
[유화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어-- 어지러워. 미칠 것 같아.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커피--- 마실래?
[장덕배] --- 커피?--- 좋--- 지
[유화이] (커피 포트에 코드를 꼽으며) 커피 어떻게 마시니?
[장덕배] 응?--- 그냥 아무 컵에다 마시지, 뭐
[유화이] (웃는다) (유리잔을 들다가, 갑자기) 아! !
[장덕배] 왜 그래?
[유화이] (손가락을 감싸쥐며) 우--- 으---
[장덕배] 배었어? (손을 만지며) 이런, 깊게 배었네. (곧장 자신의 입으로 상처를 빨며)
[유화이] (울상으로) 오늘 정말 왜 이러니--- 유리잔 위가 약간 깨져 있었나 봐.
[장덕배] 퉤. (침을 뱉고는) 그런 건 갖다 버려라. 도둑놈도 안 훔쳐 가! (다시 입으로 손가락을 넣고, 주머니를 뒤척여 담배를 꺼낸다)
[유화이] 내가 뭐 그렇게 된줄 알았나.
[장덕배] (담배를 뜯어 재를 상처에 덮은후 손가락으로 누른다) 아프니?
[유화이] 응--- 그런데 이게 뭐하는 거야. 약은 저쪽에 있어.
[장덕배] 그건 나중에 소독할때나 바르는 거고, 지혈부터 해야지. (복면으로 썼던 손수건을 꺼내어 묶는다) 이러게 하면 지혈이 돼. 그리고 나중에 물로 흘려 보내듯이 씻어낸다음, 약을 발러. 금방 나을거야.
[유화이] (애정어린 눈으로) 꼭--- 의사같다.
[장덕배] 의사?
[유화이] 아빠같기도 하고---
[장덕배] --- 너희 아빠도 도둑놈이냐? 고작 이런 상처하나 치료해 준걸로?
[유화이] 고마워
[장덕배] (쑥스러운 듯) 고맙긴--- 뭘 (그때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서팔호] (밖에서) 계십니까? 화이씨---
[장덕배] 누구야? 너 아는 사람인가본데---
[유화이] 저 목소리--- 그 사람이야--- 전화
[장덕배] 뭐야? 아니 저 자식이
[유화이] 어떡해?
[장덕배] 열어줘. 내가 알아서 할게.
(유화이 머뭇거리다가 문을 연다. 서팔호 약간의 취기가 있는 모습으로 들오온다.)
[서팔호] 안녕하십니까? 밤늦게 대단히 실례가 많습니다. 누가 유화이씨--- 아, 물론 이쪽이 화이씨겠군요. 아--- 사진에서 뵌것보단 훨씬 아름다우시군요
[유화이] 아니, 당신 뭔데 여기까지 와서 행패에요?
[서팔호] 행패라니요? 전 단지 확실한 확인을 받으려고 온 것 뿐입니다.
[유화이] 확인이라뇨?
[서팔호] 오빠가 말씀 안하셨던가요? 화이씨 가족들은 벌써 대세가 기울어졌습니다.
[장덕배] 아--- 당신이 소팔어란 사람이요?
[서팔호] 저--- 소팔어가 아니고 서팔호입니다.
[장덕배] 소팔어건 개팔어건--- 당신한테 우리 동생 줄 수가 없소.
[서팔호] 아니, 형님. 아까하곤 말이 틀리지 않습니까? 아까는---
[장덕배] 생각이 달라졌소.
[서팔호] 아니, 형님.
[장덕배] 이봐 당신 몇 살이야? 몇 살인데 나더러 자꾸 형님아리는거요?
[서팔호] 그러니까 서른셋---
[장덕배] (놀란 듯) 뭐요?
[서팔호] 아니-- 미국 나이로는 서른 하나입니다.
[장덕배] 앞으로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슈. 내가 어딜 봐서 당신 형님이라는거요?
[서팔호] 형님, 아무튼 화이씨와의 결혼에 관해선 아까 생각대로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말입니다. 나쁜놈 아닙니다. 그럭저럭 돈벌이도 되고 화이씨 고생 안시키겠습니다.
[유화이] 이봐요! 당신의 뭔데---
[장덕배] 아--- 아--- 당신 직업이 뭐요!
[서팔호] 네? 아, 네. 저 자동차 세일즈를 하고 있습니다.
[장덕배] 세일--- 뭐?
[서팔호] 네, 세일즈. 그러니까 차를 파는 전문 직업입니다.
[장덕배] 그러니까 이름은 소팔어에 직업은 차팔어---
[서팔호] 네?--- 아--- 그렇군요. 하하하
[장덕배] (버럭 소리를 친다) 나가 임마!
[서팔호] (놀란다) 네?
[장덕배] 겨우 차나 팔아서 우리 동생 먹여 살리겠다는 거야? 당신같은 사람 괜히 없는 사람 꼬득여서 분수에도 안맞는 차를 사게해서 사치나 돋구고---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 교통 문제가 심각해 지느거 아니야! 차가 좀 막혀! 기름 한방울 안나는 이 척박한 땅덩어리에서 무슨 놈의 차가 이렇게 많아 청량리에서 천호동까지 갈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지 알아. 그것뿐이야! 시내 한번 나갔다 와봐! 코속이 씨커매. 매연 때문에--- 이 나라 공해 문제의 주범 바로 당신이야. 또 하나, 교통사고 왕국도 당신이 만든거야. 그덕분에 우리 작은 아버지 작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맞지 동생?
[유화이] 어?--- 어--- 그렇지--- 아마
[장덕배] (울먹이며) 당신이 죽인거야! 당신이 팔아먹은 자동차에 법없이도 살--- 평생 남의 물건에 손한번 안대어본 작은 아버지가--- 당신은 살인자야. 당신도 눈이 있으면 봐봐. 어제 시내의 교통사고 현황판을 보라구. 매일 같이 서울에서만 대여섯명씩 죽어 가고 있어. 여기가 월남이냐! 매일 같이 일개 소대 병력이 당신이 팔고 다니는 차 때문에 죽어 가고 있다! 전쟁터에서 죽으면 국립묘지에 오와열 맞춰서 묻히기라도 하지! 이건 완전 개죽음이야. 나같이 느린 놈은 비명 한번 제대로 못지르고 죽는거야. 당신 차 있어?
[서팔호] (거의 질린 얼굴로) 어--- 없습니다.
[장덕배] 비열한 자식! 다른 사람들은 죽음의 길로 몰아 넣으면서 너만 쏙 빠져 나온다 이거지!
[서팔호] (거의 울며) 아니에요. 저도--- 뽑을려고 그랬는데--- 면허시험에서 자꾸--- 해도해도 안돼요. 주행까지도 못가봤어요. 그놈의 T자에서--- 공식대로 했는데도--- 흑흑흑---
[장덕배] 핑계대지마. 어쨌든 당신은 살인자야. 이 모든게 당신같은 사람의 책임이야. 여기서 썩 꺼져 버려!
[서팔호]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네 가겠습니다. (나가다 돌아서서 울먹이며) 그런데요--- 전--- 정말이지--- 얼마 안팔았어요. 영업소 내에서도 실적이 가장 안 좋아서 조만간에 짤릴지도 몰라요
[장덕배] 나가!
(서팔호 힘없이 나간다) (사이)
[장덕배] 질긴놈---
(유화이 큰소리로 웃는다)
[유화이] 덕배, 너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니?
[장덕배] 자식--- 얘기 하다보니까 정말로 화가 나네
[유화이] 하하하--- 자, 문제가 하나 없어진거네
[장덕배] --- 네 문제는 없어졌겠지. (창문쪽을 보며) 내 문제들은 저기 바닥에 깔려 있는데--- 빌어먹을--- 오늘 완전히 공쳤군
[유화이] 참, 커피. (유화이 커피를 따른다) 여기---
[장덕배] 응--- 고마워
[유화이] 아무튼 오늘 밤은 정말로 이상한 밤이야. 도둑이 들어와서 처음엔 무지무지 겁났고--- 그리곤 그 도둑이 하는 말에 화도 많이 냈고, 도둑과 티각태각 말다툼을 하다가 도둑이 자살하는 걸 막고 지금은 또 이렇게 친구가 된 도둑과 커피를 마시고
[장덕배] 나도---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야. 한 집을 터는데 이렇게 오래 있기는--- 생각해 봤는데, 이 동네는 그렇고 이집도 그렇고 어떻게 보니 괜찮은거 같애. 개들이 있어도 안 짖어서 조용하고, 동네 사람들도 재미있고, 동네경찰들도--- 집도 크지 않아서 도둑질하기도 좋구---
[유화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만해--- 하하--- 배 아파
[장덕배] (같이 웃으며) 생각해 보니 그렇잖아. 벌써 몇시간째 자살한답시고 라이터만 켜대며 방송국에 카메라 가져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질 않나. 경찰이란 사람은 엉뚱한 집에 와서 문 두들기고 있지. 위층에선 도둑놈이 도둑질하러 와서 커피나 얻서 마시고(시종 일관 둘은 웃는다) 주인 여자는 도둑놈 앞에서 이렇게 배 터져라 웃고만 있고 무슨 동네가 이래--- (유화이 한참을 웃고 정신을 좀 가다듬는다) (사이)
[장덕배] 커피, 잘 마셨어.
[유화이] 이 직업은--- 언제까지 계속 할거니---
[장덕배] 글쎄, 군대 제대하고 얼덜결에 뛰어 들었는데--- 아까 말한데로 천직 같애. 공부를 잘하는 것도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니까. 다른 일은---
[유화이] 자물쇠를 잘 따잖아. 열쇠 수리공이라도 하지.
[장덕배] 애는--- 직장을 아무나 얻는거니?
[유화이] 왜?--- 넌 아무거나 해도 다 잘할 것 같애. 노력만 조금 하면 다른 일도 충분히 해낼텐데---
[장덕배] 이것도 생각해 보면 재미있어. 보람도 있구---
[유화이] 그래도 도둑놈은 도둑놈이야. 범법자라구. 그러면서도 무슨 보람은---
[장덕배] 어허. 너무 그런쪽으로만 생각하지마. 내가 터는 집은 그리 부자집들은 아니야. 하긴 있는 놈들이 더하다구. 부자 집을 털러가면 주인들이 거, 목숨 내걸고 덤빈대. 또 비싼 아파트는 비싼만큼 경비들도 일류급이라서 쉽지가 않고--- 그래서, 아직은 경험도 없고하니 중산층이나 그저 평범한 집들을 터는데, 별의별 일들이 많아. 어떤 집엔 들어가보니, 어른들은 없고, 애들만 울고 있잖아. 그래서 애기저귀만 갈아주고 우유 타서 입에다 물려주고 그냥 나온적도 있고, 또 한번은 들어가니까 아무도 없고, 할머니 한분만 몸이 아프신 채, 누워있더라구. 아주 위독해 보이던데---
[유화이] 그래서?
[장덕배] 뭘 그래서야? 양심이 있지, 그런집을 어떻게 터니? 그 할머니를 업고 일단 가까운 병원으로 뛰었지. 그런데 병원이 문이 닫혀있는 거야. 어떻게 하겠어? 내가 자물쇠를 따가지고 거기 원장 집까지 들어가서 할머니만 맡기고 나왔지--- 또 며칠전엔--- 참, 나 그날 생각만 하면--- 어떤 조그만 연립 주택이었는데, 괜히 잘못 들어가서, 그 집 부부싸움에 끼어든거야. 그 부부도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래도 명색이 도둑놈이 들어왔는데도, 난 안중에 없고, 서로가 잘났다고 죽일놈 살릴년하며 싸우는데 밤새도록 싸움만 말리다 왔다니까.
[유화이] 넌--- 넌 도둑과는 안 어울려
[장덕배] --- 가끔씩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하지만---
[유화이] 하지만이 아니야. 또다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거야.
[장덕배] 또 다른 가능성? --- 거꾸로만 가는 이 사회에서--
[유화이] 나--- 네가 정당하게 벌어서 산TV를 선물 받고 싶어. 도둑질한 물건이 아니구
[장덕배] (약간 괴로운 듯) 그만하자--- 창밖을 좀 봐줄래
(유화이 창쪽으로 천천히 간다)
[유화이] 아직 그대로 같아. 동네 사람들은 많이 없어졌고 시끄러운 소리도 거의 안들리는데.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이 꼭 눈이 올 것 같아. 첫눈이
[장덕배] 점점 힘들어지겠구만---
[유화이] 첫눈 오면 --- 뭐하니?
[장덕배] 뭐하긴--- 눈쓸지
[유화이] 참, 분위기 없이--- 원래 첫눈 오는 날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느거야.
[장덕배] 술?
[유화이] 아니, 뭐 음료수도 괜찮고---
[장덕배] 됐다고 그래. 도둑놈이 무슨 첫눈은---
[유화이] 야, 장떡배. 너 정말---
[장덕배] 이름 부르려면 똑바로 불러. 떡배가 아니고 덕배야.
[유화이] (삐져서) 그래. 도둑놈이 오죽하겠어. 분위기는 무슨---
(그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장덕배] 또 누구야?
[유달수] (밖에서) 애비다. 자냐.
[유화이] (다급해하며) 아버지야. 왠일이시지?
[장덕배] 뭐--- 뭐야?
[유화이] 침착해--- 네, 아버지 (문을 연다)
[유달수] (물통을 들고 들어오며) 초인종을 고쳐야겠군. (장덕배를 발견했다. 순간 충격, 허나 애써 침착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 친구니?
[유화이] 네? 아니, 아버지 무슨---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유달수] (들고온 물통을 열고 벌컥벌컥 마셔대며 밤을 진정 시킨다) 그래, 너도 성인이니까, 내 이런 문제에 대해선 깊이 관여 하진 않겠다.
[유화이] 아버지--- 그게 그러니까---
[유달수] 허나, 지금이 몇시니?--- 이보게 젊은이 지금이 몇신가?
[장덕배] (시계를 보다가) 저기--- 시계가 죽어서---
[유화이] 네시 조금 넘었어요
[유달수] 후--- 그래 다 접어두자.
[유화이] 아버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유달수] 넌 교육자야! 애비도 교편 생활 30년을 하고 있지만 교육자로서의 도덕과 가치는 있는거야. 교육자가 타락하면 국가가 망하는거야.
[유화이] 아니, 타락이라뇨? 저흰--- 그냥 친구예요.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있는거라구요
[유달수] 그냥 친구?--- 이보게 젊은이 그냥 친구끼리, 그것도 이런 늦은 시간에 남녀가 있다는게 정상인가? 여자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지금이 몇신데--- 이러고도 그냥 친군가?
[장덕배] 네--- 저--- 그레 그러니까. 그냥 친구라기 보다는--- 주인과 고객의--- 어떤 유사한 성격의 관계인데---
[유달수] 주인과 고객---
[유화이] 그러니까, 아버지--- 이 친구가 하는 얘기는---
[유달수] 넌 가만히 있어
[유화이] 아버지---
[장덕배] 넌 가만히 있어라.
[유달수] 그래, 자네도 교사인가?
[장덕배] 교--- 교사요? 아니요
[유달수] 그래? 그럼 지금 뭘하고 있나?
[장덕배] 네? 뭘하다뇨?
[유달수] 직업이 없나?
[장덕배] 직업이요?--- 그게 그러니까 뭐랄까--- 좀 특이한 직업인데---
[유달수] 특이해?
[장덕배] 네. 다른 사람은 하기 꺼려하는 직업인데 --- 그러니까 남들 다 잘 때 하기 때문에 몸이 많이 축나거든요
[유달수] 그래?
[장덕배] 네--- 지--- 그러니까. 말씀드리기는 --- 좀 뭐하지만 뭐랄까--- 과히 필요 없는 물건들을 주워가지고---
[유달수] 주워?
[장덕배] 네, 그런 물건들을 싹 쓸어 가지고 재활용 혹은 위치 이동을
[유달수] 아! 됐네--- 그만하면 충분하네. 그래 뭐 직업에 귀천이 있겠는가 젊은 친구가 사서 고생을 하는구만. 하긴, 자네 같은 친구들 덕분에 거리가 깨끗해지는거 아니겠나
[장덕배] 네? 아, 네 그렇죠
[유달수] 그나저나, 지금 이 시간이면 한참 뛸 시간일텐데 오늘은 쉬는날인가?
[장덕배] 아니요. 안 그래도 빨리 몇탕 더 뛰어야 하는데
[유달수] 몇탕이라니
[장덕배] 아, 그러니까 몇 구역 말입니다.
[유달수] 아하
[장덕배] 그런데 피치못할 사정 때문에
[유달수] 그래, 그런일에 관해선 내 자세히 물어 볼 성질은 못되는 일이고 아무튼 이 녀석이 남자 친구라고 보여준건 자네가 처음이네. 앞으로 어떻게 될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의 접촉은 되도록 삼가해 주게
[장덕배] 네, 그럼요. 한참 일할 시간인데요
[유화이] 그나저나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왠일이세요? 그저께 갖다 주신 약수물은 아직도 남았는데요
[유달수] 아, 그물 먹지 마라. 시에서 수질 검사를 했는데 대장균이란 오염물질이 과다하게 나왔다는구나. 그래서 이번엔 다른 약수터에서 떠왔다.
(장덕배, 속이 이상한 듯 배를 만진다)
[유화이] 그--- 그런거라면--- 그냥 전화로 하시면 얼마간 그냥 끓여서 마시면 될텐데--- 그것 때문에 오셨어요?
[유달수] (갑자기 소리친다) 그래! 적적해서 왔다! 서글퍼서--- 아무리 혼자 나와 살면서 집안에 신경을 안쓰며 산다고 해도 그렇지--- 어제가 무슨 날인지 아니?
[유화이] 어제요?--- 어제가---
[유달수] 이런 무심한 녀석 같으니--- 네 하나밖에 없는 애비의 생일이다. (고함친다) 너한테 둘이 있냐 셋이 있냐! 하나밖에 없는 네 애비다. 내가 자식이라고 둘이 있냐 셋이 있냐! 너 하나다. 네 에미 죽고 나 혼자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 생일날 이럴수 있나!
[장덕배] 아버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유달수] 생일케익 혼자 끄면서 내 얼마나 서러웠는지 생각이나 해봤나? (울먹인다) 해피버스데이투유를 부르는데 투유를 투미로 고쳐 부르며 쓸쓸히 초를 껐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촛불도 한번에 안꺼져서 두 번에 나눠껐다. --- 그 심정 아냐!
[유화이] 아버지--- 아니, 아버지 생신은 해 바뀌고 1월이시잖아요
[유달수] (고함친다) 음력만 생일이냐! --- 그래그래 (마음을 가라 앉히며 물을 드리킨다) 그래 좋다. 아무튼 다음달에 분양받은 아파트가 입주 시작이다. 서서히 짐을 옮길 준비를 해야되지 않겠니?
[유화이] 어머, 다음달이요? 원래는---
[유달수] 공사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는 모양이다.
[유화이] 그래요? 너무 빨리 지은 건물은 위험한데---
[유달수] 계집애, 말하는거 하곤 재수 없게끔--- 그게 어떤 집인데--- 내가 교편 생활해서 처음으로 갖게 되는 내 집이다.
[유화이] 알았어요. 그만하세요. 그 얘긴 입주 들어가기 전에 짐을 옮길게요
[유달수] 아니, 네 표정이 왜 그 모양이니? 애비랑 같이 사는게 싫으냐?
[유화이] 아니에요---
[유달수] --- 생각나냐?--- 애비 봉급으로 네 엄마 병원비 충당하고 단칸방에서 우리 세식구 힘들게 살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엄마는 저 세상으로 가버리고--- 에이 무심한 여편네--- 기억나지? 그 아파트 하나 분양 받으려고 너와 내가 세대를 분리해서까지 노력한걸--- 너를 내 세대 세어 분리시킬 때 이 애비의 찢어지는 가슴을 헤아릴수 있냐? 그래도 지금에서 나마 우리집을 갖을수 있는게 무엇때문인지 알지?
[유화이] 그럼요
[유달수] (감동적으로) 그래, 바로 차세대 종합 주택 적금때문이지. 월 25만원씩--- 네 이름으로 7년을 부어 1순위가 됐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이 추첨에 붙었을 때 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하늘을 보며) 여보, 임자--- 임자 있는곳엔 편히 누워 쉴 방이라도 한칸 있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내려오구려? 드디어 우리집이 생겼단 말이오. 다음달이면 대문에 유달수라는 내 이름 석자를 세긴 문패를 걸수 있게 되었단 말이오.
[유화이] 아버지, 요즘 아파트 대문에 문패 거는 사람이 있어요?
[유달수] 말리지마! 난 내이름 석자. 유달수라는 이름을 걸어 놓고 살꺼다. 이보게 젊은이!
[장덕배] (놀라며) 네?
[유달수] 자네 집이 있나?
[장덕배] 집이요?--- 아직--- 이제 장만해야죠
[유달수] 적금 붇게--- 차세대 종합 부금. 집장만 하는 지름길일세
[장덕배] 네, 명심 하겠습니다.
[유화이] 아버지, 이제 다 알았으니까요. 그만하세요
[유달수] 그래, 좋다. 애비는 그만 일어나 보겠다. 아침에 있을 세미나 준비를 해야 하거든. (일어나다가) 자네는 언제쯤 가려나?
[장덕배] 네? 아 네, 저는 좀 더 생각 할게 있어서
[유달수] 그래, 그럼 언제 우리집에서 한번 보게나. 유달수의 집. 화이야, 그럼 짐 옮길 때 연락하렴.
[유화이] 네
[유달수] (나가다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동네에 네가 사는게 불안했다. 도둑놈들도 많고 (장덕배 움찔한다) 들어오다보니, 밑에 경찰서가 와있는데 또 무슨 사고가 생겼나 보더라.
[유화이] 네, 별일 아닐거예요,
[유달수] 그래, 아무튼 애비는 간다. 이보게 미화원 친구, 또 보세
(유달수 나간다) 유달수의 집! 하하하
[장덕배] 휴--- 힘들었지만 감격적이군. 넌 또 하나의 문제가 해결된거니---
[유화이] 아버지가 저렇게도 당신만의 집을 갖고 싶어하셨는줄은 몰랐어.
[장덕배] 자기의 이름을 걸어 놓을수 있다는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수 있는 것 같아. 에휴--- 난 그놈의 몽따쥬 때문에 어디가서 제대로 내 이름도 말을 못하겠구---
[유화이] 너도 네 이름을 가지고 살어. 모든 사람한테 네 이름을 말하면서---
[장덕배] --- 그래, 언젠간--- 그렇게 될 날이 오겠지.
[유화이] 지금 당장 할수도 있어. . 그리 어려운게 아니잖아. 이 직업을 포기하고!
[장덕배] 포기하면--- ?
[유화이] 어--- 아무거라도 다른일을 해서---
[장덕배] 다른 일을 해서--- ?
[유화이] 음--- 어--- 적금 붜
[장덕배] 휴--- 지금 몇시나 됐니?
[유화이] 어머, 벌써 다섯시가 다 됐네
[장덕배] 후--- 오늘 완전히 공쳤네
[유화이] 공치긴?--- 우리 집은---
[장덕배] 야--- 저런걸 솔직히 누가 사냐. 그냥 내가 사는 창고에다 진열이나 하려고 가져가는 거지
[유화이] --- 대--- 대신에--- 넌 나를 친구로 얻었잖아.
[장덕배] 그렇게 따지면 너도 날 친구로 얻은--- 어이, 이거 되게 느끼하네
[유화이] 그래 맞다. (웃으며) 그러고 보니 우린 둘다 좋은 친구들을 하나씩 얻은 셈이내. 내가 좀 손해는 보지만---
[장덕배] 뭐?--- 하하 (둘 웃는다)
(그때, 밖에서 싸이렌 소리 울린다)
[장덕배] (몸을 움츠리며) 뭐--- 뭐지?
[유화이] (얼른 창문을 열고 보며) 경찰들이 가고 있어
[장덕배] 그 자식--- 죽었냐?
[유화이] 죽진 않은 거 같은데--- 어, 저기--- 저 차에 타고 있어. 결국 포기했나봐.
[장덕배] (창으로 가서 보고 문을 닫으며) 자식, 결국엔 저렇게 될거 괜히 밤새 헛짓꺼리만 하고--- 남 영업 방해만 하고
[유화이] 잘 됐다. 그지?
[장덕배] 저 자식. 아까 떠들어댈땐, 분명히 죽을꺼 같았는데 창틀에 앉아 있다가 졸은거 아냐
[유화이] 애도 참--- 어쨌든 정말로 다행이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건 저 사람은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긴 거겠지? (장덕배를 본다)
[장덕배] (표정이 어두워지며) 경찰들도 이젠 갔고--- 날도 밝아오겠지.
[유화이] 갈--- 거니? 지금
[장덕배] 가--- 야지. 여긴 내 집이 아니고, 난 도둑놈인걸.
[유화이] 제발--- 그 도둑놈 소리 좀 하지마
[장덕배] 그래도 난 도둑놈인걸
[유화이] 지금은 그냥 내 친구야.
[장덕배] 오늘-- 정말로 미안했어. 그리고--- 정말로 고마웠어. --- 누군가가 내게 타준 커피를 마신 건 처음이야. 고마워
[유화이] 언제고 커피는 타 줄게. (사이) 저거, 저 보따리는 안 들고가?
[장덕배] 우린 친구잖아. 친구가 친구 물건을 훔치는 것도 좀 그렇잖아.
[유화이] 잠깐만 (옷장, 속옷 서럽속에서 통장을 꺼내며) 얼마 들어있진 않지만, 겨울을 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꺼야.
[장덕배] 됐어. 이러지마. 나 기분 나빠져
[유화이] 빌려주는거야. 나중에 갚아
[장덕배] 필요하면 내가 훔칠꺼야. 괜찮아.
[유화이] 저기--- 너--- 내 이름이 기억나니? 내 이름 한번도 부른적이 없잖아?
[장덕배] 예쁜 이름이지. 유 화 이---
[유화이] (자주 가는 걸 막으며) 저기--- 너--- 그래(테이블로 가서 자신의 사진을 들고) 이건--- 내 선물이야. 이 사진속의 내가 예쁘다며--- (손에 쥐어주며) 가져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너도 이런 친구가 있다고 자랑해.
[장덕배] 고마워
[유화이] 야! 덕배야 너--- 우리집 전화번호 아니? 너--- 꼭 연락해--- (힘없이 들어와 문을 닫느다) (유화이 허탈한 듯 천천히 걷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본다. 라디오를 틀어 본다. '오성식의 생활영어'가 나온다.
[오성식] 네, 오성식의 굿모닝 째즈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녀는 외로워졌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음악 흐른다) (사이) 천천히 보따리를 풀으며 물건들을 제자리로 갖다 놓는다. 얼마가 지난 후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다.)
[유화이] (이상한 듯) 누--- 누구세요
[장덕배] (밖에서) 도둑놈이 올시다.
[유화이] (깜짝 놀란 듯이) 어머! (물을 연다) 야! (한쪽 손이 맥주 한줄을 들고 머리엔 눈이 쌓인 채 장덕배 들어온다)
[장덕배] (수줍게) 밖에--- 첫눈이--- 오더라구. 그래서--- 술 한잔 하려구
[유화이] 장덕배! (다가오며)
[장덕배] 잠깐, 새로 이사갈 집 주소좀 가르쳐 줄래?
[유화이] 뭐?
[장덕배] 다음달엔 그집을 털러 갈게
[유화이] (가슴이 벅찬 채) 덕배야!!! (둘은 뭔가의 감정에 휩싸여 천천히 서로 쳐다본다.)
(라디오에선 오성식의 멘트가 계속 나온다)
[오성식] 둘은 서로를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다가간다.
(둘, 서로 다가간다) 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둘, 서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둘의 입술이 서로 부딪히려는 순간--- (둘, 서로 키스하려는 순간)
그때 불이꺼졌다.
(둘, 라디오를 허무하게 쳐다볼 때)
(무대 암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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