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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들 자기가 원하는 걸 숨기며 사는데 참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말해봐야 얻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게 무례하거나, 고마운 줄 모르거나, 의리가 없거나, 유치하거나, 쓰잘데기 없는 것 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면, 괜찮지 않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는 건 잘못인거 같아서 다 괜찮은 척 할 정도로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하라. 말하면 안 될 상황같으면 꼭 큰소리로 얘기하진 않더래도. '저 남자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걔가 살아있었으면 좋겠어''저 여자와 애를 낳는게 아니었는데..' (등등...) 뭐든지 간에, 혼자 중얼거려 보는거다. 진실은 당신을 자유롭게 풀어줄거다. (...) 당신이 어떤 삶을 살든 간에 생존한다는 건 거짓말을 한다는 거고, 거짓말은 영혼을 썩게하니까, 그러니까 일 분만 이라도 거짓말에서 좀 벗어나자는거다 (...)"
닉 혼비의 <a long way down> 에 나오는 글... 난 닉 혼비의 책들을 워낙 다 좋아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압권이었다.
성추행 스캔들로 완전히 끝장이 나버린 한 방송인이 신년 이브 밤에 자살을 하러 건물 옥상에 올라간다. 거기서 만나게 된 다른 세명의 사람들. 다들 자살을 하러 올라온 이들이다. 이 네 명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웃기지만 웃기지 않은 깊은 얘기들... 각 페이지마다 꽉꽉 차 있는 작가의 표현력 하며, 내용 자체도 너무 너무 좋았다.
제목, a long way down 은 주인공들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 심산으로 올라 갔다가 결국 (살아서) 계단으로 ('긴' 길을 택해) 내려온다는 여러 복층이 깔린 훌륭한 제목이었는데, 우리나라 번역본 제목이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로 나왔네.... 크헉, 아~~~ 분위기 확 깨는.. 이, 제목, 이거 어쩔거냐고.......... 그래도, 제목이 저모양 저꼴이래도, 책은 정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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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lothes they stood up in> 이고, 독어판으로는 모짜르트의 오페라 제목을 그대로 따 와서 Cosi fan tutte 라고 출간됐다.
작가인 앨런 버넷 Alan Bennet 은 영국의 유명한 희곡작가라는데, 소설을 읽는데도 역시 공간감이 유달리 느껴진다. 무대의 구성이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느낌?
영국의 중산층인 노년 부부가 어느날 모짜르트 오페라를 보고 돌아왔는데, 집에 도둑이 들었다. 이만저만하게 훔쳐간 게 아니고, 벽에 달린 등부터 카페트까지 싹 뜯어가서 그저 벽만 앙상하게 남겨 놓은 황당한 상황.
이 둘이 어떻게 만나서 얼마만큼 사랑하고 결혼해서 지금의 나이에 이르게 됐는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현시점은 한마디로 '굳은살'같이 단단하고 의미없고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더 작아질수록 더 좋은 사람들이다.
부와 지위가 생기면서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을지도...) 자신들 주변에 돈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걸 싫어하고, 생필품을 사는 장소도 나름대로 격을 매겨서 자신들이 들어가 물건을 구입할만한 품격이 있는곳과 없는 곳을 선명하게 구분해 두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치 인생을 싹 지워버리고 새 도화지를 내 준듯, 집이 비워지는 일이 생기고, 그 이후 (적어도) 부인은 이전에 겪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살짝살짝 굳은살을 떼어내기 시작하는 얘기..
역시! 영국의 블랙코미디는 탁월하단말야....! 책을 몇 페이지 읽고는 바로 작가가 좋아져버렸다. 다른 책두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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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어둑한 거실을 가로질러 창가에 선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다. 박인수라는 그 양반... 아직도 살아 있나 몰라. 창에 맺힌 점점點點 수증기들이 검푸른 첩첩의 산을 먹으로 얼룩 지운다. 가만히, 나는 창문을 연다. 개폐가 가능한 건 좁다란 환기창이 전부지만 불만은 없다. 습기와 빗소리, 바람과 어둠이 화선지 같은 나의 안면에 동시에 스며든다. 밤나무 숲을 누비는 바람이 보인다. 벼루 위를 맴도는 먹처럼 어둠도 숲 사이를 맴돌고 있다. 수장水葬 된 밤꽃들이 승천하는 봄밤이다. 빗줄기가 빗어내리는 어둠의 머리칼에서 나는 심한 쉰내를 맡는다.... " 박민규 <낮잠> 中 -
읽으라고 H 언니가 두고간 이상문학상 작품집 (2008) 에서 발견한 박민규의 단편. 보물을 하나 발견한거 같았다. 역쉬....... 박민규!
난 이 사람의 감수성부터, 인간을 보는 시선, 문체까지 몽~땅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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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잠못드는 밤 Schlaflos in Seoul>
한국 비방을 했다 어쨌다 해서 논란이 있었던 책. 궁금해서 사 읽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뭐 이정도 갖고 그렇게들 난리야?' 였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내 블로그에 올린글이 더 독하다 싶었다. 내가 보기엔 외국어를 남보다 조금 잘 습득하는 이십대의 지극히 평범한 여자애의 글이다. 되레 '문학 전공'이면 이거보다는 좀 더 잘 써야 되는거 아냐? 싶을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았던 게 흠이라면 흠인 책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내가 아는 독일인들에게는 한 권 사서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었다. 현재 한국이란 나라를 외국인의 시선 그대로 가감없이 써놓았다 싶어서이다.
한번은 마기트 어머니께서 하이델베르크 신문에 난 '한국 관련 기사'를 오려놨다가 내게 주신적이 있는데, LA 에 사는 (!) 독일 기자가 쓴 글 이었다. 거기 한인동네에서 취재를 해서 써놨나본데, '아줌마'란 단어는, 결혼을해서 애들 뒷바라지를 철저히 하며 남편이 오면 한식상을 쫙 차려내는 이렇고 저런 아름답고 강인한 한국 어머니를 말한다고 써 있어서, 읽다가 콧방귀를 픽픽 끼게 했었다. 그런 기사는 비방논란엔 휩싸이지 않겠지만, 그저 사실이 아닌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하숙집 아줌마들의 모습을 내가 아는 아줌마들 그대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이십대 문과졸업생들의 외롭고 힘빠지는 고민이나, 남의 나라에 와서 적응을 잘 하고 살다가도 문득문득 비참하게 무너지는 상황들에 대해서 쓴 부분들도 공감이 갔다.
" 이화여대 (한국어학당) 는 오랜 시간 서울에서 나를 반기며 맞아준다는 느낌을 준 유일한 장소였다. 나의 '틀린 한국어'를 '귀엽다'고 해주고 내가 이룬 작은 성공에 신나게 박수쳐주고, 수없이 많은 내 문제들을 참을성 있게 들어준 유일한 곳이었다."
(이대 도서관에서 금요일 밤, 치장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부류와 그대로 앉아서 공부와 씨름을 하고 있는 부류를 보며) "... 우울하게 피곤에 지쳐 그 곳에 남아 있는 이들 에게는 단지 몇백미터 밖에서 사람들이 마시고 노래하고 웃는다는 걸 상상하기 조차 힘들것 같았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그런 불쾌감이 피부에 와 닿았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나뿐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젊고 놀고싶은 마음과 동시에 피곤에 쩔어 무언가를 이루어내려 버거워해야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힘들었다."
"그레이스 켈리 신드롬엔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 신드롬에 걸린 사람들 (외국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는 공통적이다. 즉,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챙피해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 살면서 일상생활에 갈피를 못잡고 사는 무능력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수치스러워한다. 널리 퍼진 의견중 하나는 글로벌 시대에서는 모두가 여러곳을 다니고 mobil,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고 flexible,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못하는 사람은 지는거다. 자기가 적응 못한 타국의 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무식하고, 남을 존엄할 줄 모르며, 편협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 (남의 나라에서 적응 못하는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의견) 이십대로서의 갈등이 있고,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사는것에 대한 어려움이 나와있고,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나 경제적인 상황도 내가 아는 정도로 무리 없이 기술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 한국으로 여행을 하고픈 외국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고, 꼭 한국이 아니어도 쌩판 모르는 타국에서 장기 체류를 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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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로는 <리얼리티 쇼 Reality Show> 라는 제목으로 나온 아멜리 노통의 소설 <acide sulfurique> 에씨드랑 S 나오고 뭐 그런거 보니 황산, 이 아닐까... 추측.
리얼리티 쇼.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을 촬영해서 내 보내는 방송의 컨셉을 극단화 시켜서, 길가는 사람들을 막 잡아다가 -나치가 유태인들에게 했던 걸 모델삼아 - 가두어두고, 최악의 환경에서 일을 시키고 최소한의 음식을 주고 폭행하며 하루에 몇명씩 골라 죽이는 TV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처음엔 감시관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죽을 사람들을 뽑다가 나중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시청자가 직접 뽑도록 하는데, 정말 시청률은 미친듯이 올라간다.
아멜리 노통은 마치 회를 치듯이, 끔찍한 내용을 참 간결한 문체로 애누리 없이 쓴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일본 태생이라서 회를 친다는 은유가 떠오르나?)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기때문에 독자가 알아서 파악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그래서 해석의 범위도 넓어지는거 같다.
마크랑 한 책을 읽고 이렇게 의견이 상반됐던 적이 없었다. 감시관으로 나오는 못생기고 머리와 성격이 동시에 나쁜 여자애와, 죄수로 끌려와 있는 그림같이 이쁘고 지적인 여자애 (소설에서 둘다 스무살)에 대해 마크와 나의 감정이 참 많이 달랐던 것. 감시관인 여자애를 싸고도는 (?) 내 말에 마크는 적잖이 쇼크를 받았나보다. '이래도 얘가 인간적이란 말야? 이래도 얘가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고 생각해?' 하면서 책의 구석구석을 찾아 나한테 되읊더라만... 나는 '아니 스무살 짜리가 뭐, 그 정도 잘못 생각은 할 수도 있지, 나중에라도 달라졌으면 된거지, 왜 그리 빡빡하게 구는데?' 하면서 맞섰다. 심지어 이 책이 그 감독관 여자애의 성장소설 같다고 하는 내 말에 마크, 쓰러질라그러더만... ^^; 마크는 아무래도,,, 아무리 어리고 무지했다 하더라도 '비인간적인 가학성'을 보인 인물을 용서할 수는 없는거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두 소설이니까 이렇게 쿨하지, 실제로 그런 인간을 보면 내가 더 펄펄 뛸지도 모른다....
man ist immer schoener, wenn man einen Ausdruck, ein Wort nur fuer sich hat.(...) Sprache ist weniger praktisch als aesthetisch. (어떤 사람이든 자신만을 위한 표현이나 단어를 지니고 있으면 훨씬 더 아름다와지는거야. 언어란 실용적이기보다는 미학적인거거든)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zmk6040 등등의 아이디를 들을 때 보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말을 하면서 작가가 써 놓은 부분이다. 문맥상 뜬금없는 인용이긴 하지만, 읽다가 마음에 들어서 적어놓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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