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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블로그를 다르게 만들어 본다고 몇장의 사진을 배너관리 난에 등록해 보았습니다. 앞서 등록한 사진들은 1977년도에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남긴 필름사진을 이번에 휴대폰(SPH-S1400)을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MP3 기능이 첨가된 것을 새롭게 구입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날로그의 사진들을 디지털(100만화소수)로 재생을 해보았으나 오히려 피사체와 색상에 있어서 원형과 원색과 같이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관계로 보는 방문객님들로서는 답답해 할 수 있음을 사전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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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전국여행 기록>
01>강원도:1994-6-10-설악산-1박2일-15만원-한계령,오수약수터,울산바위
02>강원도:1994-7-05-현리-당일-2만원-오아무개씨 동행
03>경상북도:1995-10-02-경주불국사-2박3일-10만원-감은사지.대왕암
04>부산광역시:1996-5-25-태종대-2박3일-10만원-오륙도.해운대해수욕장.영도다리
05>강원도:1996-11-02-원주치악산-2박3일-10만원-장아무개씨 동행
06>충청남도:1995-01-08-독립기념관-당일-2만원
07>충청남도:1996-04-01-독립기념관-당일-2만원
08>대구광역시:1996-09-28-달성공원-1박2일-5만원-거제도 가는 길 1박
09>충청북도:1995-07-30-속리산-2박3일-10만원-문장대.정이품송.문경새재
10>충청남도:1996-10-06-독립기념관-당일-2만원
11>경기도:1996-07-30-에버랜드-당일-5만원
12>경기도:1996-08-14-에버랜드-당일-3만원
13>강원도:1996-03-31-오죽헌-2박3일-30만원-경포대.한계령.미시령.진부령
14>경기도:1995-03-19-광릉,광릉수목원-당일-5만원
15>경기도:1995-03-13-남한산성-당일-3만원
16>경기도:1996-07-20-여주신륵사-당일-3만원-이포나루터
17>경기도:1996-07-20-용문산.용문사-당일-5만원
18>경기도:1996-03-31-임진각-당일-1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19>경기도:1996-08-02-임진각-당일-1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20>경기도:1995-08-20-임진각-당일-1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21>충청북도:1995-08-29-충주.제천-2박3일-20만원-도담삼봉.고수동굴
22>경기도:1995-04-11-한국민속촌-당일-3만원
23>경기도:1995-11-02-한국민속촌-당일-3만원
24>전라남도:1997-09-14-해남.진도.완도-2박3일-15만원-땅끝
25>경상북도:1996-05-25-불영사.불영계곡-2박3일-10만원-소백산.희방폭포
26>충청북도:1996-09-15-청룡사-당일-2만원
27>경상남도:1996-09-25-거제도-2박3일-20만원-한려해상공원.외도
28>충청남도:1995-07-25-현충사-당일-3만원-아산삽교호
29>경기도:1995-07-26-행주산성-당일-1만원
30>강화도:1995-03-11-마니산-당일-2만원-전등사
31>경기도:1997-04-15-장흥유원지-당일-1만원
32>경기도:1996-04-04-대부도-당일-1만원
33>강원도:1995-01-19-설악산-2박3일-10만원-경포대.오죽헌.한계령
34>충청북도:1995-01-20-천둥산 박달재-당일-1만5천원
35>경기도:1994-04-10-산정호수-당일-10만원
36>강화도:1998-06-14-마니산-당일-3만원-김아무개씨 동행
37>경기도:1998-06-21-임진각-당일-1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38>경기도:1998-08-22-행주산성-당일-2만원
39>경기도:1998-10-09-임진각-당일-1만5천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0>경기도:1999-01-03-임진각-당일-1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1>경기도:1999-05-21-임진각-당일-3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2>경기도:1999-07-25-임진각-당일-1만5천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3>경기도:1999-08-16-임진각-당일-3만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4>경기도:1999-09-25-임진각-당일-1만5천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5>경기도:1999-10-31-임진각-당일-1만3천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6>경기도:1999-11-14-임진각-당일-2만4천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7>경기도:2001-08-12-임진각-당일-1만5천원-오두산.도라산.제3땅굴
48>경기도:2001-03-02-소요산-당일-3만원
49>경기도:2004-06-05-아침고요수목원-당일-2만원
*참고사항*
위 내용은 이렇게 보십시오:번호-지역-여행날짜-여행장소-여행일정-지출경비-경유(기타사항)
자동차로는 "티코SR(인천X거7X7X),프라이드(인천X거8X1X,3도어),프라이드(인천X루4X8X,5도어)" 등 3EA 가 함께 동행해 주었습니다. 위 차량들에게 평안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준 것에 대새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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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둘러보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얼마 전부터 블로그를 다르게 만들어 본다고 몇장의 사진을 배너관리 난에 등록해 보았습니다. 앞서 등록한 사진들은 1977년도에 추억을 간직하려고 남긴 기록을 이번에 휴대폰 (SPH-S1400)을 새롭게 구입하면서 디지털(100만화소수)로 재생을 해보았으나 오히려 피사체가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관계로 보는 방문객님들로서는 답답할 수 있음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흐릿한 사진들을 선명도와 현장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사진으로 정리하면서 그에 대한 사진들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하지 않을 까 싶어서 몇자의 글(코멘트)을 남깁니다. 이글은 여행안내서가 아니기에 상세한 정보는 다른 곳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최상단에 등록된 사진부터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1>남이섬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나 없었나 감감합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모회사에서 단합대회 성격으로 부부들을 초청하여 남이섬을 찾았던 기록입니다. 남겨진 흔적에는 해당년도와 날짜가 남아있지 않는 관계로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알수 가 없습니다.
그때에는 지금과 같이 배용준과 최지우가 주연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영되기 전이기에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당시 남이섬에 대한 기억은 배를 타고 들어간다.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 드넓은 잔디와 운치있는 나무가 있어서 인지 젊은이들의 M.T 장소와 기업차원에서 야유회가 많이 벌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청결하게 다듬어진 상태이고, 볼거리와 유휴(놀거리)거리가 많이 생겼다고하고, 무엇보다 겨울연가 훈풍으로 동남아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가보시면 또다른 감동을 느끼고오시기엔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남이섬을 접하는 분들의 마음여하에 달리긴 하였지만 말입니다.
<2>마니산 참성단
1995년 3월11일 경기도 마니산 참성단에 올랐을 때에 남긴 기록입니다. 강화도와 근접한 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으면서도 방문하기가 어려웠던 곳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강화도를 방문 하려면 오고가는 교통편이 좋지 못했던 시절입니다. 인천지역에서 오랫동안 적을 두며 1990년 초반에 스틱이 아닌 핸들기어로 운전면허를 취득했던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지금은 강화도를 갈수 있는 길이 제2강화대교 및 초지대교 등의 건설과 가정5거리 지하도공사 준공으로 강화도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것에 대한 공식면허로 인정받으려면 인천광역시 “가정5거리 를 거쳐 강화도와 설악산(한계령)”을 갔다 와야 한다며 입소문이 자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5거리는 신호등이 무용지물일 정도로 차량의 접촉사고가 매일 숱하게 일어나는 장소였습니다.
강화도를 가려면 이곳을 필수적으로 통과를 해야 했습니다. 그럼으로 차량을 무조건 들이미는 용기와 배짱과 함께 차량이 밀집한 곳을 빠져나가려면 운전기술도 좋아야 햇습니다. 또한 가정오거리를 벗어나면 강화도 가는 만성정체길과 만나게 되면서부터는 인간으로서 감내할 수 있는 극한 인내심을 주문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경을 다녔던 강화도였습니다.
지금은 제2강화대교와 초지대교등이 있어 오고가는 길이 편리해졌다곤 하지만, 지금도 강화도는 이른아침에 들어가 잽싸게 구경하고 오후이른 시간(1시이전)에 얼른 튀어나와야 무리가 없습니다. 또한 한계령을 갔다와야 한다는 얘기는 요 밑에 게재된 "한계령휴게소"에 기재된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론 강화도와 인접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갔다올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적으로 몇차례 갔다오기도 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상까지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설악산-욼산바위는 깍아지른 계곡으로 무서움만 있고, 속리산 문장대 정상을 오르는 것도 가파르긴 하지만, 마니산에 견줘 그리 힘들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한달내에 설악산.속리산.문경새재,마니산을 모두 섭렵한 장본인으로서 느낀 소회는 가장 힘이 들었던 곳은 마니산 정상 가는길이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그런지는 직접 두루두루 경험해보십시오.
<3~5>속리산 문장대와 정이품송
1995년 7월30일 속리산을 찾았습니다. 속리산 가는 초입 길에 만났던 정이품송(5번그림)을 만났고,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문장대의 정상을 향해 올랐습니다. 1994년 6월10일에 설악산 울산바위를 등정한 경험이 있었기에 문장대를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설악산의 울산바위는 정상까지 오르는데 만나는 좁은 철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에 공포감으로 덜덜덜 압도당했지만, 속리산의 문장대는 높이에 대한 공포감보다는 문장대까지 가는 길이 아주 험해서 엄청 고생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문장대 정상을 가보시면 그곳에 들렀던 기록을 증표로 간직할수 있는 메달을 제작 판매합니다. 어느해에 몇시에 누가 정상에 다녀가다 란 문구를 새겨넣어 가보(?)로 가슴에 담아 올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방문한 문경새재 제3관문까지 잘 닦여진 새재길을 접하면서 피로가 싹 가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4>천둥산 박달재
1995년 1월20일 겨울의 한파를 뚫고 그토록 노래로만 기억하던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재홍의 울고넘는 박달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도대체 박달재란 곳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박달재하면 서울시 불광동으로 넘어가는 길도 박달재로 지금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노래와 연관된 박달재는 어디에 있는가 하고, 당시 천둥산 박달재가 속해있던 특정지역에서 살았던 회사동료에게 길을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지금은 새롭게 길이 신설되면서 천둥산 박달재에 대한 영화가 그전보다는 못하다고 합니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당시 이곳을 찾아 나섰을 때, 겨울한파가 한창기승을 부리고 눈보라가 심하게 휘날리던 길을 당시엔 이정표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천둥산 박달재를 찾으려고 몇 차례나 반복하며 오고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천둥산 박달재 그곳에선 박재홍의 울고넘는 박달재가 정겹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루종일 박재홍의 울고넘는 박달재가 흘러나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천둥산 박달재를 찾아본 소감은 그렇게 고개가 가파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곳이 천둥산 박달재 구(옛길)길이 되어 있습니다. 신도로가 생기면서 그냥 휭하고 갔다 올 수있게 도로사정이 매우 좋아졌지만, 운치를 느끼려면 도로사정이 안좋은 구길을 애써 찾아보셔야 하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6>오두산 통일전망대
경기도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시로 찾는 곳입니다. 우선적으로 임진각에다 주차를 한 후에 도라산 전망대를 거쳐 제3땅굴로 견학하는 코스를 이용한 후에 최종적으로 오두산 전망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인천으로 되돌아 오곤 합니다.
이곳을 가려면 한국의 아우토반으로 불리우는 자유로를 이용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하는 일들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에는 이곳 자유로를 찾아 쌩쌩 달려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합니다.
과속단속 카메라가 곳곳에 음습하게 숨어 여러분들의 스트레스성 광란의 질주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7>한계령 휴게소
1994,1995,1996년 매년 설악산을 방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설악산은 날을 잡아서 구경을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제일명산 금강산 다음으로 설악산을 쳐주지 않습니까? 물론 설악산을 가는길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그 유명한 한계령 휴게소의 풍경을 감상하게 됩니다.
한계령휴게소를 접하기 이전에는 빼어난 주변풍광을 감상하면서 가파르고 굽은 고갯길을 수십 차례에 걸쳐서 곡예운전을 해야 하는 쾌감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후에 만나는 한계령휴게소의 빼어난 풍경을 감상하면서 맛보는 따뜻한 커피한잔의 상쾌함은 말로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접한바로는 미시령이 굽이길은 덜했지만 제일 가파렀고, 한계령은 굽이굽이 고갯길과 접하는 아름다움 풍경이, 마지막으로 험하거나 굽은 길이 없는 진부령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다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설악산을 다시한번 방문해서 좋은 그림들을 담고 싶어집니다.
이 그림을 보면 "가시나무새"로 유명한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씨가 작사작곡한 것을 양희은씨가 청아한 목소리가 담긴 "한계령"을 읇조리게 됩니다 . 한계령휴게소에 대한 절경은 아침안개에 포근히 묻혀 있거나 또는 비가 부슬부슬 촉촉히 내릴 때의 절경을 느낄수 있다하고, 그런 분위기에 취해
구수하고 따끈한 커피를 한모금 입에넣고 맛을 음미하면서 한계령노래를 듣는 감흥은 글말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이곳에 한번 갔다오면 운전실력이 꽤 좋아집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수시로 기어변속과 핸들을 돌려되는 맛은 정말 그만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조심은 하셔야 합니다. 여차하면 낭더러지로 다이빙 할 수도 있습니다.
<8>설악산 흔들바위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그냥 손가락만 까딱하면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릴 것만 같습니까? 실제로 그런지는 여러분들이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일생에 한번 접할 수 있을지 모를 여러분들에게 흔들바위를 제대로 흔들기 위한 요령은 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갉고 터득한 지식(초등~고등~대학)을 다 동원해서 그중에서 이거다 생각될만한 잔머리를 써야 합니다. 요즘은 하도 공짜로 지식을 탐구하는 세상이라, 남의 체험한 경험을 제 경험으로 함부로 가로채 아는것처럼 깐죽거리는 얌체족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특히 그런 성향의 사람들에게 흔들바위를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가볍게(?) 떼굴 떼굴 구르게 해보라고 강력 추천합니다. 자! 지금 당장 설악산으로 떠나 보십시오.
<9>고성 통일 전망대
1997년 4월20일 대한민국의 땅끝이 아닌 땅위의 고성 통일 전망대를 찾았던 기록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두 종교의 공생과 화합으로 북한을 향해 화해와 자비의 손을 펼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추억으로 담은 사진입니다.
요즘은 많이 다를 것이지만, 당시에는 이곳을 가는 길에 대한 이정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관계로 초행길에 나선 방문객들은 쉽게 길을 놓치면서 샛길로 빠져 해매이기 십상이던 시절에 대한민국 땅끝이 있다면 땅위도 있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찾아 나섰던 곳입니다.
이런 곳을 가려면 한 1박1일정도는 예상을 하고 가셔야 합니다. 통제소에서 절차를 밟은 다음 차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차로 차가 없는사람은 버스로 이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방에 일정시간이 있기에 시간대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지금은 이곳에 육로가 개방되어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북한의 금강산을 구경하고 올수도 있으며, 또한 이곳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가톨릭의 성모마리아상과 불교의 부처의 동상이 북녘을 향해 한민족의 평화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고성 통일전망대만이 아니라 이글을 읽는 당신이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또는 강화도 애기봉 전망대와 도라산전망대를 둘러보면 함께해야 할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최첨단 무기를 상대를 향해있는 것을 몸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세대만이 아니라 기성세대들 중에서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민족이 갈라져서 북녘에는 굶주려가는 동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식으로 개방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북녘동포들이 개방을하면 국제사회만이 아니라 남쪽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남을 도와줄때에는 성서에도 나왔듯이 반드시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이는 받는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남쪽에선 제각각의 풍요에 취해 같은 동족을 남의 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녘동포만이 아닙니다. 독거노인,조손가정,노숙자,결식아동의 문제에서도 남의일 보듯이 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인들의 자화상입니다. 이런 민족성을 가지고 옛고구려의 영화를 재현하겠다고 하는 것을 참 웃기는 얘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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