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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덧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헛한 인간의 한없이 부질없는 마음도 함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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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노야 (gaks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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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가지 주제
개설일 : 2005/05/15
 
안부인사 폴더에는 개인적으로 친분있는 사람들과 방문객님들에게 공개적인 자리를 통해 안부인사를 하는 폴더입니다. 고로 현재 이 폴더에 게재된 글에는 개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접했던 마음좋은 사람들에 대하여 인사를 하며 그시절을 회고해보는 자리입니다.

그럼으로 새노야블로그 방문객님들께서는 공감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청소년과 청년시절을 넘어 중년의 삶을 살면서 접하게되는 각양각색의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번 일상사의 일로 그려보면서 글로 옮기고자 합니다.

삶 그리고 절망 또다른 희망

2009.09.20 19:32 | 안부인사 | 새노야

http://kr.blog.yahoo.com/gaksitar/8088 주소복사



지난 토요일에 그를 만났다.

그와 내가 만났던 것이 지난 2006년이었으니까, 그것이 횟수로는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우연히도 귀하게도 만나긴 하지만, 기쁘게 헤어지는 것은 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늘 우리는 슬프게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뒤 늦게 소식을 알게된다. 우리는 손가락만 움직이면 서로간에 간단한 연락(이메일과 통화)을 주고받을 수 있는 최첨단의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정보화시대를 올곧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다고 하는 편이 나을것이다. 

내가 그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나눈 것은 인천의 여느 공원이었다. 당시 그는 사회에서 퇴물로 속단해 버리는 사오정세대였다. 가정도 가족도 집도 모두 공중분해된 상태에서 홀로 힘겹게 원룸을 얻어 버겁게 월세를 내는 상황으로 그야말로 그에겐 최악의 시절이었다.

당시 그도 나도 이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보다는 좀 나은 편으로 직장에서 빌붙어 입에 풀칠을 면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는 그런 상황도 못되었다. 중견기업에서 IMF도 힘겹게 버티어 냈던 그였지만.

2006년 그는 그곳에서 마지막(정년퇴직)을 맛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내 동댕이 쳐졌다. 조직생활을 벗어난 대한민국 세상은 온통 시정잡배들의 농간등이 횡행하는 약육강식의 험악한 세상이란 것을 그는 너무도 몰랐던 그였다.

그런 곳에서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했던 그사람의 모습을 내가 본 것이 2006년 추석이 가까이 오는 가을 이맘때 쯤이었다. 그리고 지난 우리는 당시 마지막으로 만나 찬바람이 부는 스산한 공원에서 쓰디쓴 소주를 나누어 마시었다.

그리고 지난 3년여 동안의 서로간의 소식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당시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끝내는 자신이 원하는 곳을 찾지 못하다가 인천의 원룸집을 내놓고 김포의 여느 고시텔로 이전한다. 무보증의 선불금 32만원 그렇게 시작한 고시텔의 생활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얻은 직업은 "대형할인마트"의 비정규직(1년=재연장)으로 주.야를 번갈아 가며 근무를 하게된다. 그러면서 그가 받았던 급여는 흔히 요즘 일반적으로 말하는 "88만원세대" 가정과 가족이 있는 사오정 중년의 그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액수였다.

그렇게 고된 고시텔과 대형마트에서의 최저의 생활을 2년이상을 했지만, 그의 수중에 남은 것은 한푼도 없었다. 매월 그는 신용카드로 50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아가며 모자란 것을 매꾸어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을 했지만 말이다.

그는 그 희망없는 곳에서의 영광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2008년 그 혼자만의 노력으로 인천 남동공단에서 또 다시 공장의 노동자로 취업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김포의 고시텔 생활과 불안정한 직업을 청산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물질적인 풍요를 갖추어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또 다시 빛을 내어 인천지역의 원룸으로 이사를 한다. 그러나 그가 구했던 직장은 노동시간에 비해 급여문제(미지급)가 너무나 열악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를 견디지 못해 일감과 재정문제가 열악한 그곳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 

그가 재 취업한 직장은 작업환경도 좋았고, 노동시간만큼 급여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쌓여가는 저금통장액수를 활용해 얼마후에는 무보증 원룸에서 백만원 보증금에 월30만원의 환경좋은 원룸으로 확장이사를 하게된다.

그렇게 근 1년여간 열심히 근무하던 그는 얼마전에 5백 보증금에 월 25만원의 부엌과 베란다와 세면실이 별도로 있는 곳으로 확장이전 하게 된다. 그렇게 그에게 순탄하게 풀리려던 삶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얼마전부터 시작된 그에게 찾아온 불행의 첫 시발점은 이른바 묻지마 범행으로 인해 길가에 주차해둔 그의 경차를 크게 손상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로인해 차량을 수리하는 데 있어 투자된 경제적인 손실금액은  무려 35만원,

다음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오랜동안 앓던 치아문제, 상부 좌우측의 어금니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먼저 우측으로는 어금니가 깨지는 사고가, 그리고 나를 만나기 며칠전에는 좌측에 때워져 있던 어금니가 빠졌다고 한다.

그로인한 치통으로 인해 식사를 하지 못하던 그에게 이번에는 어지럼증증상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뇌졸증 초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여느 아침과 같이 월요일 이른 아침에 출근하려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방안이 빙빙도는 어지럼증 상황을 맞게된다.

당시 그는 별것 아니겠거니 하고, 얼마전에 장만한 경차를 몰고 회사에 도착에 잠시 눈을 붙여 어지럼증을 치유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그는 월요일의 늦은 근무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취침을 하고, 화요일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순간 어제보다 좀더 큰 어지러움 현상을 접하게 된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것이 뇌졸증으로 가는 현상인 것으로 판단하고, 직장에 휴직계를 문자로 제출한 후 인천지역의 여느 큰 병원으로 향한다.

해당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어지럼증은 초기에 약물치료를 그래도 진전이 없으면 뇌에 대한 CT촬영을 하여 병세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는 병원장의 심각한 진료결과를 들음과 동시에 3일치의 약을 받아온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치아치료도 병행하게된다. 

어지럼증과 치아치료를 함께 받음과 함께 애써 자리잡은 직장에서의 휴직은 그를 심정적으로 나 경제적...등등 여러모로 힘겹게 만들었다. 그렇게 치아치료와 뇌졸증 초기증세인 어지럼증과의 힘겨운 사투는 서서히 잘 마무리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오랜 만에 만나 반갑게 해후했다.

나는 그와 서로간의 건강을 생각하여 술잔을 많은 양을 깊게 기울이지는 못했지만, 지난 3년여간의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그리고 그와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나는 그의 안녕을 기원한다.

현재 그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치아의 통증과 어지럼증 증세가 말끔하게 가셔 안정된 직장생활과 평안한 가족과 가정으로 돌아가길 신에게 간절히 빌어본다.

K형 건강잃지 않도록 몸조리 잘하시오, 그래야 올 추석에는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서로 부담없이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냅시다. 가는 세월은 덧없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가는 세월만큼이나 진한 우정이 있지 않습니까?

꿈을 잃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2008.09.29 23:03 | 안부인사 | 새노야

http://kr.blog.yahoo.com/gaksitar/7651 주소복사

꿈을 잃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청춘>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공포,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돼버린다.
 
6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있는 "무선 우체국"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이 "청춘"이란 시는 미국의 시인이자, 유대교 설법사요, 철학자인 사무엘 울만이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나온 삶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에 짓눌리는 압박감속에 갇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신이 우리에게 남겨준 귀중한 삶의 의미를 퇴색시켜선 안된다고 봅니다. 꿈을 잃지 않으면 앞으로 남은 생은 무의미하며 짧게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꿈을, 즉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더 보람있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 까 합니다.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현세의 나이는 인간이 나눈 허무한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아직도 남은 청춘의 자양분이 있지않습니까, 꿈을 가지시고 천천히 정진을 하셔서 열매를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것 신의 뜻대로 되길 바랍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여름휴가 잘 보내고 계십니까

2008.08.04 00:12 | 안부인사 | 새노야

http://kr.blog.yahoo.com/gaksitar/7620 주소복사

-= IMAGE 1 =-

여름휴가는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장마와 함께 찾아온 살인적인 폭염이 장마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기승을 더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7월31일부터 시작해서 8월초까지가 여름휴가철의 최절정기를 이룰것 갖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7월31일부터 해서 8월3일까지(목금토일) 4일간의 여름휴가를 명 받아서 오랜만에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습니다. 우선 첫째날인 7월31일에는 금융기관과 관공서(동사무소와 구청)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훌쩍 첫째날이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남들은 여름휴가 첫째날이면 오랫동안 기획하였던 오붓하게 가족들만의 휴가장소인 시원한 들과 해수욕장으로 떠날 시기인데 말입니다.
 
휴가 둘재날인 8월1일(금)에도 마찬가지로 앞서 7월31일에 미처 끝마치지 못한 행정업무를 처리함과 동시에 개인적으로 이러저러한 게으름으로 미루어두었던 개인적인일을 처리하면서 금쪽과 같은 여름휴가 이틀이 흘러갔습니다.

휴가 셋째날인 8월2일은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무척 망설여지는 날이었습니다. 남들과 같이 휴가를 떠나기엔 너무나 짧게 남은 이틀(8월2일과 8월3일)로는 가까운 산과 계곡을 찾아가기에는 엄두도 나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은 휴가기일도 기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여름휴가비로 사용할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이 그리 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 개인적으로나 개인을 알고있는 몸소 체감하고 있는 일들이라 생각합니다.
 
"스태그플래션"이란 경제적인 용어들을 신문과 방송 그리고 시사 경제잡지와 주간지 등에서 너무나 많이 접해서들 아실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를 침체시키고 있는 말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일자리가 부족하여 취업할 수 없는 상황과 함께 살인적으로 튀어오르는 물가동향입니다. 국외적으로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뛰어오르는 석유값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행복하게 돈은 있으되 소비할 수 없는 여름휴가를 맞이한 것만 해도 어쩌면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장황한 행복어린 투정만을 남기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현재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지인이나, 또는 경제적인 상황이나 주변상황이 여의치 않아 여름휴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지인들 모두가 우리들 곁에서 머물고 있는 살인적인 폭염을 건강하게 잘 견디어 내시기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은 길게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려운 현재를 잘 참고 견디어 내서,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삶의 번뇌는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2007.06.03 19:41 | 안부인사 | 새노야

http://kr.blog.yahoo.com/gaksitar/7087 주소복사

삶의 번뇌는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8개월~10개월간 어머니의 포근한 자양분을 먹고 자라나 세상에 첫발을 내놓은 한 핏덩어리가 세상과 접했을 때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때의 사랑은 무색무취한 그대로 일 것이다. 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얼굴을 들이민 한 인간
 
그리고 그때까지 몰랐던 "돈.권력.여자.술.."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유혹과 같은 것으로 철철 넘치는 험악한 세상과 접하며 자라나면서 한 인간은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본능"을 찾아 서서히 그 세상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애초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지 한번 내디딘 첫발을 뗀 순간 다른 쪽으로 쏠리는 엄청난 중량감을 맛보아야 하는 "삶의 무게"와 접하게 된다.
 
그렇게 한 인간은 세상과 한데 어우러져 길게는 100수 그보다 짧게는 60수 이상을 누리게 된다. 그러는 동안 한 인간은 수많은 동향의 동물들과 만나게 된다. 그가 세상과 접했을 때의 과정은 오늘의 현 사회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만큼 그와 유사한 동물들은 그와 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삶과 우정 그리고 이웃사랑과 공존"
 
그런 테마들이 있었기에 당시의 육체적인 곤궁함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그럼 오늘의 세상은 어떠한가를 본다. "이기주의.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돈이 최고다"로 포장되어진 세상 이런세상은 "삶.공존.사랑"은 모두다 부질없이 허공에서 일순간 흩어지는 "쾌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세상,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가 "돈과 지위"와 같은 쾌락의 잣대로만 들이대려하는 세상, 인간의 고고한 인격체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오로지 오폐수(암기.욕, 무시)로만 가득찬 그들을 늘 접하게 된다.
 
상하를 구분할 줄 모르는 세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중질서를 구분하지 못하는 세태, 그런 부류의 존재들만이 넘쳐나는 세상과 부딫치며 힘겨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한 인간, 그나마 그가 지금밟고 있는 그곳에서 발과 손을 떼거나 놓기만 한다면 그는 천길이상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란 강박관념이 늘 그의 가슴속을 헤집고 다닌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요즘 언제까지 이런 삶이 계속이어져야 하는지 그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이런 삶의 존재가치가 그에게 필요한 것인지 많은 자문자답을 해보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은 없다.

인천자유공원 28년만에 방문소회(1)

2006.03.30 12:28 | 안부인사 | 새노야

http://kr.blog.yahoo.com/gaksitar/3313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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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을 28년 만에 방문소회(1)

가까운 곳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과의 인연에서도 그렇습니다. 결혼상대를 고를 때에도 연분을 만나기 위하여 인터넷과 전문 중개업소들에 신상등록을 하면서 그들이 엄격한(?) 기준하에 선정한 상대배필을 만나 봅니다. 그러나 정작 만나본 당사자에 대해 이른 바 “필”이 꽂히지 않는다면 그 선정을 해준 기관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치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생각하는 사고와 전문가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꼭 사람과의 연분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물에 대해서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1978년도에 서울 청계천 7가에 있던 회사가 인천으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함께 내려와 기숙사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숙사에는 한방에 7명이 정원으로 서울에서 함께 내려온 사람들의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때에 한방에서 함께 기숙하던 동료들과는 남다른 우정을 쌓았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모두 순수하여 남을 속이거나 하는 일은 좀체 볼 수 없었습니다. 일터 안에서는 직급에 대한 존칭이 엄격했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형과 아우로써 지난시절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78년 그때에 우리들은 저녁이면 인천 앞바다를 구경한다고 하며 인천교(매립전)를 뛰어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일을 마친 늦은 시간인 밤에 인천교에서 내려보는 바다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검푸른 모습이어서, 한참을 바라보노라면 차가운 밤바다 바람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온몸으로 전달되는 검푸른 바다풍경은 소름을 끼치게 할 정도로 음습함을 느낄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천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밤바다 풍경도 좋았지만, 당시에는 멀지도 않게 느껴지던 콜롬비아군 참전 기념비까지 왕복하는 체력다지기에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사람들 대부분이 서울에서 내려와서인지 주말이면 모두들 서울에 있는 집을 찾아 무리를 지어 빠져 나갔습니다. 일요일인 다음날 기숙사에 남은 사람들은 호(號)대항별 축구와 야구 또는 농구를 하며 음료수 내기 시합을 하였습니다.

한낮의 운동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 후 저녁에는 송림동에 위치한 현대극장이나 오성극장 또는 미림극장과 문화극장등을 순회하며 무술영화를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혈기 왕성한 10대후반의 마지막 근로 청소년들과 20대 초반의 팔팔한 청년들이어서 일요일에는 기숙사에 남아 책을 읽는 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야근과 철야작업을 밥 먹듯이 했기에 휴일에는 모두들 운동이나 휴식을 취했습니다.

또 다른 한주가 마감되는 일요일에는 인천주변의 명소들을 찾아 한주일동안의 묵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에 인천의 명소였던 자유공원을 나들이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습니다. 필름 50방을 찍을 수 있는 올림푸스 카메라를 대여점에서 빌려 들고서 봄을 맞아 피어나던 꽃들을 배경으로 많은 추억을 담기도 했고, 자유공원의 구경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짜 장면으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정도 시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회사가 부도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모두들 제 살길을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 한사람이 먼저 가서 자리 잡은 후에 연락을 취하면 다음달에는 다수가 빠져 나가면서 점점 더 공장안은 썰렁해졌고, 기숙사는 비어가는 호실이 늘어났습니다. 처음 입소할 때의 기숙사인원도 7명에서 3명 이하로 줄어들어 그야말로 평안히 수면을 취할 수 넓은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그런 연유에는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빈 호실을 찾아 떠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처음에는 편안한 수면을 취해서 좋았으나, 점차적으로 주변의 텅빈 공간을 생각하며 떠나간 한 방의 동료들을 그리워하게 됐습니다. 그때에 사회에 진출한 이후 처음 느겼던 삶의 퍽퍽함 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도가 설치되어 물이 나왔지만, 수도에서 나오는 짠물에 적응이 안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왜 인천사람들이 그토록 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말이면 대부분의 기숙사 생활인들은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서울에 갔다 오는 날이면 서울의 물을 한통씩 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인천의 짠물에 적응해갈 때쯤에 모든 이들이 그렇게들 떠나갔습니다. 또한 그 시절 잘 먹지 못한 상태에서 격한 노동으로 인해 몸에 무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당시로선 거금을 들여 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지만, 당시 경제적인 형편상 수술은 엄두를 내지 못한 상태인지라, 조용히 쉬겠다는 뜻에서 자진 사표를 제출하면서 책임자에게 만 말하자, 그는 윗선에 보고를 하게 되고, 회사 측은 성금모금 공고를 내면서 모든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성금으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병원에서 한달 동안 휴식도 취했습니다. 그 당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아주었던 선한 사람들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는 회사 측과 동료들의 배려로 육체적으로 하는 생산의 일이 아니라, 경비실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처음 접했던 책이 “뿌리”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때에 본인에게 이 책을 주며 평안히 읽어볼 것을 권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후에, 갓 취업한 여성이었습니다. 그 여성은 자신이 뿌리를 읽으면서 겪었던 인간승리의 모습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그 여성의 착한 마음의 배려로 뿌리를 읽으며, 한 흑인 노예의 남성이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갖은 핍박과 차별에서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서 미국사회의 한 일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한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동료들은 나의 모습을 모두들 부러워하며 뿌리에 대한 독서를 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모습들이 모두가 흑백필름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갑니다.

1978년도 인천의 가좌동의 모 회사의 기숙사에서 함께 우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다시금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회사의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속에 담가 두었던 마음을 지금 전합니다. 그시절에 나에게 뿌리를 읽어보기를 권했던 여성을 비롯해서 지금은 모두들 40대 중반으로 들어섰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을 정말 그리운 요즘입니다.

<1>하위용 공장장님

기숙사 사감 역할까지 맞으며 어른이 되 주었던 분 이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면 그날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피로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며 모두가 한 입으로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야~호”란 고함을 치면 괜찮을 거라고 도움말과 함께 배려를 해주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저녁시간이면 우리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지르는 자장가와(?)도 같은 고함(야호)소리에 여타 호실의 남녀 기숙생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매우 고통스러워 하며 협박도 하고 함께 고함을 질렀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준 점에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김■운씨

듬직한 체력에서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강인한 리더십을 선 보이며,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 주었고, 휴일이면 자신의 집이 있던 금호동과 인접해 있던 신당동 자신의 집으로 기숙사 동료들을 초대하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대접해 주었고, 때로는 남산과 장충체육관과 장충공원 수표교로 안내하여 사진을 찍게 하여 지금까지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해주었던 참 다정다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그의 집은 철거가 되고, 그의 바로 밑 여동생은 인천의 모 공장에 취업을 한후에는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에 따른 공개수배자 생활을 하기도 하다가 좋은 연분을 만나 동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그녀의 행방을 탐문하기 위해 김■운씨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찾아와 여러모로 부담을 안겨준 공권력에 의해 김■운씨는 여러번 직장을 그만두는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알고있던 그의 여동생은 매우 순박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180도 돌변한 모습으로 그의 오빠와 내게 다가왔는지 지금도 의문에 휘싸이게 합니다. 결국은 여동생은 가정생활에 파탄을 맞았고, 이런 오빠와 언니의 불행한 모습을 본 막내 여동생은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다가, 집안 좋은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였고, 그후 막내는 오빠와 언니와는 연을 끊었다고 들었습니다.

집은 재개발 로 인해 철거가 되고, 가족 모두는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함께하기 힘든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던 김■운씨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어려움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직장생활을 하며 본인과는 인연의 줄이 이어져서 꽤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어느 순간 아무 연락없이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을 알 길이 없어 참 답답하기만 합니다.

<3>간■구씨

쉬는 틈틈이 또는 일을 마친 늦은 시간에도 철학책을 끼고 살면서 인생이 어떻고 칸트가 어떻게 심히 어려운 말을 하였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늘 콧수염을 달고 다녀 주변의 어른들로부터는 “지저분하게 그게 뭐냐” 란 핀잔을 들었지만, 동료들로부터는 철학자란 칭호를 듣던 괴짜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현실에 적응하기 위하여 한때는 오성극장 영사실에서 근무한다는 소식을 지인들로부터 들었으나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오성극장은 다른 간판으로 달아 운영이 되었지만, 이마저도 얼마가지 않아 문을 닫은 횅한 모습의 오성극장 앞을 거니노라면 그 시절 걸걸한 웃음과 콧수염을 단 순진한 청년 간■구란 사람이 생각납니다.

<4>김■성씨

멀리 충청도 대전의 명문고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서도 가정형평상 돈을 벌어 잠시 접어둔 학업을 이어가겠다며 인천으로 상경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떠한 교과서적인 문제를 제기해도 뭐든지 척척박사 식으로 명쾌한 답을 내놓아 박학다식하단 소리를 들었지만, 그 정도가 좀 지나쳐서 그가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한 논쟁을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서울의 여느 회사에서 책임자급 자리에 올라 열심히 산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그의 모나고 폐쇄적인 성격상 많은 이들과의 교류를 스스로 끊어버린 상황이어서 소식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5)소■웅씨

이름과 성이 특이하여 많은 동료들로부터 늘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유쾌한 모습으로 넘겨주었던 사람, 또한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혼자 군 침낭이 편하다며 침낭예찬론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소■웅씨는 언젠가 지인의 소개로 다시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그는 동대문인지 남대문인지는 모르지만 옷가게에 옷을 건네주는 사장의 자가용을 운전해주는 일을 하다가 사정상 그만 두고 택시운전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입니다.

<6>노■섭씨

당시 인기가수였던 현숙씨가 부른 “타국에서”에 삽입된 개인의 이름이 나오는 곳을 나에게 들으란 듯이 그 노래를 자주 불러주어 나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었던 순수청년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7>김■길씨

명절 때면 서울이 고향인 나를 그의 고향인 인삼의 고장인 금산에서도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여있는 그의 집으로 나를 반 강제로 끌고 가서 고향 시골 사람들의 구수한 인심을 선뵈어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8>신■철씨

어린나이에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던 사람으로 그에게 일을 맡기면 하도 치밀하게 책임 완료를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기술력으로는 따를 자가 없다고 칭송을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여느 공장의 책임자가 되어 지금은 해당공장이 중국공장을 설립하면서 중국지사장으로 장기 출장 근무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9>뿌리를 읽게 해준 여성

참 마음이 고왔던 꽃과 같았던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녀의 이름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녀의 신분보호 차원에서 이름을 공개하진 않겠습니다. 그녀는 앞서 언급된 철학자 간■구씨와 다툼이 있었습니다.

당시 철학자 간■구씨가 그녀에게 호감이 있어 더욱더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취한 행동이었는데, 이런 행동에 대해 불쾌해 했던 그녀의 반응에 모두들 놀라 그이후로는 그녀에게 함부로 행동을 하거나 접근하는 이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후 회사를 떠나 인천의 자유공원 인근에 있었던 언니가 운영하던 음반판매점에 함께 근무했다는 것을 여느 지인들에게 소식을 들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나가길 기원합니다.

<10>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50여명 이상의 사람들.

그들 개개인을 보면 알겠지만, 이름은 기억하질 못합니다. 그들에게 본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들에게 받은 은혜를 남을 돕는 일과 나 자신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책무를 안겨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개인적으로는 멀리서 그분들 모두가 이 세상 어떠한 자리에 있든 있는 그 자리에서 신의 충만한 보호를 받으면서 평안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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