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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난주일/부활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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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
2007/04/07 오후 5:13 | 2007년 고난주일/부활절 설교

당신을 위해 부활하신 주님 (07년 부활절 설교)
2007년 4월 8일
마태복음 28장 16-20절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마태복음은 예루살렘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축복 사건을 곧 바로 갈릴리 현장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의 갈릴리는 중요합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교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복음의 선교는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제자들도 다 갈릴리에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3년 정도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지금까지 생각하여 왔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식, 천상의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3년이란 세월을 따라다니면서 배웠지만, 결국 예수님의 방식, 하나님의 방식에 의한 하나님 나라 실현에 대하여 깨닫지도 못하고, 제자들은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아 버립니다. 사랑하던 제자들이 배반하여 자신을 떠나 갈 때, 예수님의 마음은 무척 슬펐을 것입니다. 물론, 스승을 배반해야 했던 제자들 역시, 시간이 지나가면서 마음속에는 한 없이 솟아오르는 슬픔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10)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비록 배반하고,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버리지 않고 그들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만나자,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앞에 스승을 비록 일 순간 버렸지만, 그래서 너무 절망했지만, 말씀되로 다시 사셔서 자기들을 다시 찾아주시는 이 분을 만났을때 제자들으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떠나지 않으리라고, 말입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산으로 가라고 했습니까? 그냥 만난 그 곳에서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하시면 될 텐데 왜 꼭 갈릴리에 있는 지시하신 그 산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아십니까? 12명의 제자 중 가롯 유다를 빼고는 모두가 갈릴리 출신입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의 고향입니다. 그들은 이 곳 갈릴리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만났고, 예수가 좋아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쫒아갔던 곳입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 제2의 인생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갈릴리는 생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영적 고향이기도 합니다. 내 삶이 주님을 향하여 걷기 시작한 곳이 바로 갈릴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였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주어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선교가 시작된다. 따라서 다시 시작하자.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 라는 뜻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은혜의 말씀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시지 않고, 갈릴리에 있는 지시하는 ‘산’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갈릴리에 있는 산이란, 어디를 말합니까? 명확하게 본문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라 내가 거기서 너희들을 만나리라, 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복음의 인생이 처음으로 시작된 갈릴리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산으로 가야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여전히 부활하셔서,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처음으로 만난 그 곳의 ‘산’으로 가라, 고 말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이 어딥니까? 그리고 그 곳의 산이 어디입니까? 그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그곳에서여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산’이란 어디입니까? 성경에서 ‘산’이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에서 ‘산’은 두 군데 나옵니다. 그것은 5장의 산상 설교와 17장의 예수님의 산상 변화입니다.

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부근에서 사역하시다가, 산에 오르셔서 백성들에게 증거하신 메시지입니다.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건은 신약에서 이 산상 설교가 유명하지만, 사실 이것의 예언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친 율법 설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살아가야 할 기준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했습니다. 그 모세의 설교의 완성이 바로 이 예수님의 산상 설교입니다. 모세가 증거한 율법을 완성하는 예수님의 새로운 설교가 산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산을 말할 때, 그것은 바로 설교를 의미합니다. 설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제자들에게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로 되돌아 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싶으시다면 하나님의 말씀, 설교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살아계신 말씀, 그 말씀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곳에서 당신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한 곳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드로가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6일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신 것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d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께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설교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증거하시는 예수님 이 분이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산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산’이란 어디입니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며,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곳입니다.

당신이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고 싶습니까? 그럼, 주님께서 명령하신 곳에 가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곳에 가야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유명한 교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주님이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있고, 그 말씀에 의거한 고백이 있고, 순종이 있는 곳에 무엇이 일어납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참 예배는 바로 말씀과 고백과 순종으로 일어납니다. 부활의 주님이 예배되어지는 곳은, 주님께서 가라고 명하신 바로 그 말씀이 있는 ‘산’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산에서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산에서 야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만, 당신이 주님을 버리고 자신의 삶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지만, 그러나 주님은 당신을 놓치기 싫어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에게 참 생명을 주고싶어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만나기위해서 산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은 산입니다. 그 곳은 바로 말씀이 있고, 고백있고, 순종이 있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선교되어 진다면 이 곳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산에서 만났습니다. 역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후 명령, 산상 최후 설교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18-20절까지,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가라, 제자로 삼아라, 그리고 삼위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내가 끝까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가라, 삼아라, 주라, 지키라, 이 네가지의 명령이 오늘 당신과 나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신 여러분, 그 분은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제자를 삼아라, 주라, 지키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 놓길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는 명령입니다.

이렇게 강한 명령조의 설교를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신앙이 없는 불신앙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선포하셨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언제나 의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서도 의심합니다.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7). 의심하십니까? 의심이란 무엇입니까? 언어적으로 보자면, 복사판 또는 이중적이란 말입니다. 두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가 의심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그 산에는 11명의 제자들만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5장6절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500여명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지금 제자들 고향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갈릴리는 다른 어떤 지방보다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관하여 들었지만, 제자들이 몰려오면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그래서 그 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만나기시기 위해서 갈릴리 산으로 가라고 하셨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여전히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도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는 자들, 믿고 듣기를 원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절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당신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늘 말씀이 있는 산으로 나와 오셨습니까? 아님, 여전히 의심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까? 믿는 자가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당신을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당신을 이 지시하신 산, 후쿠로이키타교회의 예배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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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서 고난 받으신 주님
2007/04/02 오전 9:19 | 2007년 고난주일/부활절 설교

당신을 위해서 고난받으신 주님
마태복음26장 20-30절
2007년 4월 1일


오늘부터 고난 주간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수난을 당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결국 죽음으로 이르게 되는 이 고난은 우리을 구속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말합니다.

그 분께서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를 받은 것은, 내 허물 때문이요, 내 죄악 때문이요, 보잘 것 없는 나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분은 오로지 당신 때문에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 분은 오로지 당신 때문에 징계를 입고, 심문을 당하고,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53;8).

하나님의 예언과 계획하심이 역사속에 구현되어 나타나는 것은, 한 인간의 배신으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나오는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21절) 라는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더욱이 “나를 팔리라” 라고 하는 이 용어는 16절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의 넘겨주다, 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고자 했으며, 팔고자 한 것입니다.

넘겨주는 것, 또는 파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용어는 배신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따라서 다른 성경에서는 배신하다, 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은 한 인간의 배신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는 자기가 그렇게 믿었던 가롯 유다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할 때, 그것은 참기가 아주 어려운 고난입니다.

문제는 가롯 유다가 왜 배반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3년 동안 모신 스승을 팔아 넘겼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왜 배반을 한 이유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기를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누가22:3) 라고 기록합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감으로서, 그는 사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사탄의 노예가 된 유다는 결국 사탄의 적인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럼, 왜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까? 다른 제자들도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베드로도 있습니다. 사탄은 왜 유다에게 들어가, 유다를 유혹한 것입니까? 성경은 유다에 대하여 많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 했던 사람입니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은 사탄의 도구가 됨으로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그는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왜 그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된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유다의 사상과 인간을 우리는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돈궤를 맡았던 자였습니다(요12:6). 그는 회계를 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보다는 조금 똑똑했던 것 같습니다. 회계를 맡은 자들은 아주 현실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현실이라는 것에 얽매이게 됩니다. 지금 눈앞에 얼마가 있다면, 그것이 전부인줄로만 생각합니다. 그는 현실과 예수라는 두 세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가 돈궤를 맡은 자라고, 요한이 말하는 콘텍스트를 보면,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것을 보고, 유다는 말하기를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냐, 라고 합니다. 이 유다의 발언을 보시길 바랍니다. 단적으로 들으면 너무도 그럴듯하며, 아주 멋져 보입니다. 교회가 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교회가 구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궁극적 목적이 아님을 유다는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주의, 인간 사랑주의자였다는 것입니다. 인류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따뜻한 말로 가난한 자를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차이점을 몰랐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사탄이 들어갑니다. 사탄은 조금이라도 틈새가 있는 자들 마음에 들어갑니다. 마치 눈에 보이는 가난한 자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최고의 구원이라고 착각하는 자들, 그러한 인간주의, 박애주의자들의 마음속에 사탄은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를 통한 박애야 말로, 참된 박애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기 스승을 배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세상적 지식을 가지고, 세상적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을 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에게 화가 됩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았습니다.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예수를 넘겨주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자선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세상적 지식과 판단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 하였더라면 더 좋을 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가 배반을 한 이유는, 사탄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왜 그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까? 그것은 그가 인간중심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참된 복음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럼 유다는 예수님를 누구에게 팔았습니까?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여 누구에게 넘겨주었습니까? 구체적으로 보자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파송된 자들이 칼과 몽치를 들고 예수를 잡으러 왔다(47절) 고 기록하니까 그들에게 넘겨준 셈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이들에게 넘겨준바 된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45절에,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즉,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넘겨진 것입니다. 그럼 누가 죄인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죄인입니까? 하나님앞에 당신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십니까? 죄인입니까? 만약 당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의 손에 넘겨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선 자기의 모습이 철저하게 죄인 됨을 고백할 수 없는 자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의 은혜에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는 당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자기 자신을 넘겨주십니다. 아니, 그 고백가운데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좀더 성경적으로 해석하자면, 비록 유다가 예수님을 죄인에게 넘겼지만, 그러나 예수님 그 분 자신께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죄인들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아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유다의 배반도 아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자들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죄인의 손에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죄인이라 고백하는 당신에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내어 놓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받아서 먹으라’ (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26절). 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자기 자신을 주시면서, “받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넘겨주다, 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당신에게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면서, ‘받아라’, 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받으시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주시는 예수님 자기 자신입니다. 주님은 고통가운데 자신을 내어 주시지만,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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