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문제:신앙고백적 사태의 연속
올해로 해방 61주년을 맞이한다. 한국를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에 형언할 수 없는 뼈아픈 상처를 남긴 61년전의 일본침략은 여전히 우리들 가슴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잊혀질 수 없는 이 아픈 과거를 매년 더 아프게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인들이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 당시, 전쟁의 합당성과 그 전쟁의 정신적 지주였던 황국화운동은 이 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였고, 나아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전체국가 종교였다. 따라서, 신사란 단순히 정치차원또는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일본국가를 지금도 지탱하는 이데일로기적 국가종교형태이다. 올해도 여전히 일본수상을 비롯하여 차기 일본 수상이라는 자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신사참배를 강행할 모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 그리스도인의 입장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야스쿠니 신사
먼저 간단하게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란, 특별한 종교시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국가를 위해서 전쟁에서 죽은자만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그러나, 일본의 신사(神社 또는 神道)는 예로부터죽은 자를 신으로 제사하는 교리를 본래 가지고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사람이 죽으면 거의 모두가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따라서, 그들은 절(寺)에 무덤을 두고, 혼을 제사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만이 죽은자를 신으로 신격화하여 제사한다. 그것도 일본 국가를 위해서 전쟁에서 죽은 자만을 신으로 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사자들의 위패는 야스쿠니신사에도 있고, 또 그들의 출신지 절에도 있다. 즉, 전사자들의 위패는 두 곳에 있다. 전사자들을 특별대우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만이 죽은자를 제사하고 있다는 것은, 신도안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특별한 새로운 형태의 신사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는 오로지 전쟁에서 천황(국가)을 위해서 싸우다가 죽은 자만을 제사한다는 것이다. 전쟁중 자결한 자, 또는 전쟁에서 피치못할 재난으로 죽은 자, 또는 병으로 죽은자, 낙오되어 죽은 자 등등은 신사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을 위해서 전사한 자들을 신으로 제사지냄으로서, 그 영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전사를 명예화하고, 천황의 군인으로서, ‘명예의 야스쿠니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유족들을 고무 찬양하여, 조국을 위해 죽은 애국심을 후세에 전달하여, 국민의 군사적 충성을 유지해 나아가는 국가 시설이다. 한 개인의 생명을 통해서 국가를 생각하기 보다,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 소유물로서 한 개인의 생명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천황 – 일본군대 – 야스쿠니신사가 가지는 밀접한 관계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가적 사상종교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과거 침략전쟁이란 철저하게 반성하고, 아시아 국가에 대한 완전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해야하는 그런 류의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그런 일들이 일이난다면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의 체계를 부정하는 결과가 되고, 결국 천황을 전범으로 만드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묘히 과거 침략전쟁을 침략전쟁으로 정의하기 보다, 자신들의 원폭피해를 보다 앞세움으로서, 황국화할려는 선의의 전쟁이 결국 실패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저희들이 과거 침략전쟁을 유발했다는 사실, 또한 그것으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죽음과 재앙을 입혔다는 사실보다도, 그 전쟁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심한 상처와 피해를 입었다고만 생각한다. 이러한 교육적 현실은, 여전히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의 일본군국주의적 체계가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00년에서 2006년으로 이어지는 일본 황국화 전쟁의 연속
더욱이, 일본 국가 종교로서의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행위는 노골적으로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 체계가 여전히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는 좋은 예가 된다. 천황을 위해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신격화하여 미화시키고, 차별화함으로서 국민전체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칠수있도록 촉매하는 정신적 통일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야스쿠니신사를 국가중심의 이데올로기적 종교화로 발전시키는 작업의 지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작금의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전범들의 합사, 그들의 망언과 폭언(종군위안부를 상업으로 간주, 남경대학살 사건으로 날조라고 부인, 또는 창시개명을 본의의 의지라고 주장하는 등등)등은 일본국이 여전히 천황을 중심으로, 야스쿠니신사를 통하여 군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국가종교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는 전형적인 예다.
따라서,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 체제의 지속적 건재는,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10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본은, 일본군국주의적 이데일로기 종교아래 얽메여 있음을 보여준다. 21세기의 일본(제국)은 그 외면상의 변화는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의 내면은 여전히 황실과 신도를 중심으로한 ‘국가신도종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침략전쟁 당시나 지금이나 그들은 여전히 ‘국가신도의 종교집단’이 중심이 된 ‘천황-일본군(정치)-야스쿠니신사 체제 상황’이다.
일본의 이러한 종교적‘체제 상황’의 지속이 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국가들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아주 커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근간(根幹)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를들어, 한국 교회가 신사참배를 마지못해 가결했던 것은 일본의 이러한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소수의 몇몇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신사참배 반대는, 이러한 체제에 항거하여, 성경적 신앙을 고수하고자 한 신앙고백적 구속 사건이다. 적어도 신사참배를 반대한 자들에게 있어, ‘천황-일본군-야스쿠니 신사 체제’에 굴복하여‘신사참배를 하느냐? 거부하느냐?’하는 선택적 상황은,‘교회가 서고 넘어짐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 (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 이 용어는 루터파에서 칭의론을 지칭할때 사용되었다) 였다. 교회에 생명이 걸린,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이러한 상황, 또는 사태를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신앙고백적 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천황-일본군-야스쿠니 신사참배 체제적 상황’은 기독교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는,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중대한 신앙고백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이러한 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한, ‘신앙고백적 사태’는 계속되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 교회는,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이상, 과거 식민지 시대에 경험했던 신앙고백적 사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앙고백적 사태: 계속되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체제
종교개혁 당시, 마르티 루터에 의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라는 슬로건을 우리는 익히 다 잘 알고 있다. 루터는‘아디아호라’(άδιάφορα, adiaphorists) 라는 신앙 자유의 이론을 통해서, 이 책을 거의 기록하고 있다.‘아디아호라’는‘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정하심과 교회가 정한 것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 했지만, 종교개혁 교회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과 교회가 정한 것은 동일하지 않으며, 후자에 의한 것은 ‘아디아호라’이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절대로 ‘아디아호라’가 될 수 없다 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디아호라’가 될 수 없는 두 가지의 상황을 종교개혁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실족케하는 사태’이다. 고린도전서8장에 전개되는 형제 자매를 실족케하는 사태는 결단코 아디아호라가 될 수없다. 예를들면, 우상의 제물은 아무런 해도없지만, 형제를 실족케한다면 그것은 아디아호라가 될 수 없다. 또 하나는 ‘신앙 고백적 사태’ 이다. 어떤 문제 그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지만, 그것이 ‘신앙 고백적 사태’가 될 때, 그것은 ‘아디아호라’의 차원을 넘어선 신앙고백적 항목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개혁 당시의 독일 루터파에서 일어난 ‘아우구스부르그 인테림’ (Augusburger Interim, 1548)에서 멜랑히톤가 ‘아디아호라’를 주장하여,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일치를 도모했지만, 마그데부르그 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마그데부르그 신앙고백’(Magdeburg Bekenntnis, 1550) 를 발표하면서, ‘실족케 하는 사태’와 ‘신앙고백 사태’에 있어서는 아디아호라가 존재할 수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상세하게 논 할수없지만, 이러한 문제는 역사속에 계속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예를들면, 독일 나치스에 많은 교회가 가담했을때, 몇몇 소수의 교회는 그 상황을 ‘신앙고백적 사태’ 로 간주하고 저항했다. 동일한 사건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일본제국주가 ‘신사참배’를 강요했을 때, 한국 교회는 총회적으로 그것을 수용했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거부한 성도’들은 그 사태를 ‘신앙고백적 사태’로 간주했다. 비록, 그들이 ‘신앙고백적 사태’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적어도 ‘신사참배를 반대한 성도들’은 신사참배는, 한국교회의 ‘서고 넘어짐’, 즉 사활이 걸린 신앙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독일 고백 교회가 ‘바르멘 선언’을 통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장로교회 의 주기철 목사는 ‘일사각오’라는 설교를 통해서 교회의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그 형태는 다르지만, 그 내용은 ‘신앙고백적 형태’였다.
그러나, ‘바르멘 선언’과 ‘일사각오’의 신앙고백적 성격은, 교회의 신앙고백적 사태를 전형적으로 표현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교회는 그 당시의 상황은 교회의 사활이 걸린 ‘신앙고백적 사태’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럴 신앙적 신학적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신사 참배 강요로 이어지는 일본의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 체제’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철저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한 일본교회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하여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일본정부가 아직도 이 전쟁문제에 대한 완전하고 철저한 인식과 해결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적은 소수이지만,‘야스쿠니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 교회의 모습을 지지한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교회가 ‘천황-일본군-신사참배의 체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적 입장
이러한 신앙고백적 사태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문제라고도 볼 수있다. 세상적 권력을 잡은 국가가 교회의 참 신앙을 유린할때 어떤 모습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성경은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특히, 다니엘서, 사도행전, 요한복음 그리고 묵시록등에서 그 전형적인 예를 발견한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5장 29절에서 성경기자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사람의 가르침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교회와 국가의 건전한 관계는 이처럼 하나님 중심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은, 종교개혁기의 신앙고백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1530년의 아우그스부르그 신앙고백의 제16항에, ‘그리스도인은 관헌에 복종하여, 죄를 짓지 않는 범위안에서 모든 일체를 행하고, 그 명령과 율법에 복종해야만 한다. 즉, 관헌의 명령이, 죄를 범하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경우, 사람에 복종하기 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도행전5장29절)’ 라고 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란, 하나님을 중심으로한 신앙 자세를 말한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란, 어떤 운동이나, 논리,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고 하는 믿음의 자세이다. 이 세상의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믿음의 생활이 바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참된 모습이 된다. 이것은, 다른게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에 거역하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 참된 증인의 삶을 사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은 헛되고 추상된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가 야스쿠니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과거 역사의 연속성 문제이고, 교회의 공회적(Catholicity) 문제이다. 일본은 여전히 ‘천황-일본군-야스쿠니신사 체제’를 그대로 연속하고 있고, 그 결과 한국교회나 일본교회 역시 그러한 체제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나 일본교회는 신사참배강요에 대하여 무릎을 꿇은 교회이다. 그러한 ‘강요’가 지금도 일본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의해서 재현되고 있다는 작금의 신앙고백적 사태를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일본 기독교회만이 짊어지고 갈 십자가가 아니라, 아시아 국가,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전체적(Catholicity)으로 기도하고 해결해야 할 신앙적 과제이다.
일본교회만이 신사참배 강요에 희생된 교회가 아니다. 한국교회역시 신사참배를 강행한 교회이다. 우리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몇몇 분들의 신앙 모습때문에 한국 전체 교회가 신사참배를 반대했다고 무지중에 착각한다. 이제, 신사참배강요에 대하여 하나님앞에서 반대할 수 있는 신앙적 신학적 성숙이 우리 교회안에 존재하는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한국 교회는 깨어서 경성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 신앙과 믿음이, 성장중심주의와 물질적 배금주의 신앙으로 무지중에 함몰되어가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신앙고백적 사태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 고백적 자세 확립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마지막으로 2004년4월7일, 코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후쿠오카 지방 법원은 위헌 판결은 이러한 ‘신앙고백적 사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전쟁전, 야스쿠니 신사는 사실상 국가신도에 의한 국교적 지위를 가지고, 그것으로 신앙이 강요되고 박해되었다. 그 반성으로, 신도를 염두에 두고, 종교의 자유와 그것을 확립함에 있어 정교분리가 규정되었다. …… 오늘날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법인이다. …… 수상의 참배는 祭神의 영령에 대하여 외경(畏敬)숭배의 심정을 나타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종교에 관계됨을 부정할수없다. 피고 고이즈미는 장래에도 계속적으로 총리대신으로 참배할 강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사회적 의례로서의 참배로 볼 수 없다’. 특별히 판결문에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언급이 있다. ‘재일 한국인은,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로 말미암아,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하에 받은 피해를 상기하고, 일본인과 한국인과의 장래 관계에 우려를 느끼고 있다, 는 사실이 인정된다’. 한 일본의 재판관의 판결문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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