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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요한복음강해 1장6-8절
오늘 본문 첫 말씀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경을 유심히 읽어보신 분은 아마 여기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지금까지“빛”에 대하여 증거하여 오다가 여기서 갑자기 “요한”에 대하여 증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절에 가서 다시 본래의 주제인 “빛”에 대한 증거로 되 돌아 옵니다.
저자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말씀”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따라서 이“말씀안에 참 생명”이 있으며, 이“생명”이야 말로 사람들의 영원한 진리의 “빛”이 된다고 주장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6절부터 저자는“세례 요한”에 대하여 증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기를 세례 요한은 먼저“하나님께로서 보냄을 받은 자”(6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러”고 온 자(7절)이며, 자신은 빛 그 자체가 아니라 “빛을 증거하는 자”(8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왜 갑자기 주제를“빛”에서 “세례요한”으로 바꾸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저자는 1장20절 이하에서 “세례요한”에 대하여 정식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때에 설명을 하면 될텐데 여기서 꼭 “요한”을 언급해야 하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당시, 새로운 가르침, 새로운 전도 방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개운동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종교개혁과 같은 혁신적 사역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3장 3절을 보면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을 전했는데,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고, 요한을 마치 메시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도행전18장 마지막 부분에서 19장 첫 부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가운데 아직도 여전히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만큼 요한의 영향력과 요한의 전도에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입었고, 또 그를 따른 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참된 메시야, 빛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과 참된 빛되신 예수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요한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요한만을 고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유명한 부흥사, 아님 설교가, 아님 종교가가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릅니다. 그 사람의 설교속에서 그리스도를 찾기보다는 “그리스도교”의 냄새를 맞고 도취되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한 인간의 말에 매료되어 있는 현대 기독교인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그 설교를 통해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까? 그 말씀들이 당신을 야훼 하나님, 유일신 하나님으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아님, 눈에 보이는 교회만을 바라보게 하고, 세상에 허접한 이야기에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그리스도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자 요한은 이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요한만을 알려고 하고, 더 이상 참된 빛 예수를 알려고 하지 않는 사실에 그는 놀란 것입니다. 저자는 세례 요한이 참된 빛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하지 않고저는 도저히 그 분에 대하여 증거할 수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세례요한 빛이 아니라, 빛을 증거하러 온자라고”확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에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있는 자는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자가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증거하는 자이지, 예수가 아닙니다. 오늘 당신이 흠모하는 설교가가 있습니까? 그 분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아시길 바랍니다. 대형교회 사역자들이 이전에 속해있던 자신들의 기존교단에서 이탈하여 자기들끼리 연합하여 연합교회를 만들어 돈 받고 목사 안수한다는 이야기를 일본에서 듣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는 기형아 형상입니다. 문제는 요한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설교가, 목회자라고 해도, 그 사람은 당신의 그리스도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요.
그럼, 그는 무엇입니까? 그는 증거하는 자입니다. 그는 나중에 오시는 자를 증거하는 였습니다.“증거”란 무엇입니까? 이 단어는 “순교”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죽도록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교회는 세상에 목표를 두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다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적과 목표는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는 증거에 있습니다.
그럼 증거하는 자는 어떤 자가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하나님께로서 보냄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보내는 자로부터 “어떤 귀중한 사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처럼 하늘로서 내려온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를 보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는 중요한 사명, 즉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예비된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이시다”라는 의미의 요한의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을 나오듯이, 아들을 얻지 못한 스가랴와 엘리사벳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또한 천사가 말하기를 누가복음1장17절에 “저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합니다.
즉, 요한은 태어나면서 부터, 엘리야와 같은 성령 충만함과 능력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백성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은 말라기4장의“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가 바로 요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1절에 나오는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고 했습니다. 이 21절의 의미는 그 당시 백성들이 생각하는 통속적인 의미의 엘리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의미에서입니까?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23절에 나오듯이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이사야 40장3절의 말씀으로 연결되는 이 말씀은, 요한은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엘리야가 아니라,“광야의 소리”또는“광야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 즉 요한이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증거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요단강 부근”의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전도할려면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는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광야에 누가 있습니까? 누가 살고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예수, 참된 메시야, 세상을 비추일 참된 빛이 도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유대와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요한으로 나아오기 위해서는 “다 나와야”했습니다.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생활, 이전의 습관, 이전의 종교, 이전의 자신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광야 전도는 새 시대, 예수 시대, 참된 생명의 빛의 시대를 예비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선택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증거자 였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보냄을 받은 자의 증거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명은 “증거”입니다. 무엇을 증거합니까? 빛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그럼 문제는 요한의 증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 예수, 참된 인생의 빛이 되신 주님을“증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증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증거, 성령 하나님의 인도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5장37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즉, 요한보다 더 위대한 증거,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그리스도를 증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의 증거가, 인간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전달됩니까?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달됩니다. 15장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는,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시지만 성령받은 자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즉, 보냄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를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이것이 보냄 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증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을 통해서 증거해야 합니다. 요한을 포함한 우리의 증거는, 어디까지나 2차적인 증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가 인간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달된다는 성경적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7절에 나와 있듯이 “모든 사람을 믿게 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증거는 전도를 목적으로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증거를,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가 증거할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게 한다는 것은, 이미 본것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을 믿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를 들었습니다. 들은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들었습니까? 듣지 못한 것을 전달하지 마십시요. 들은 것을 증거하십시요.
세례 요한은 오늘날 우리들의 선교사역의 모델이 됩니다. 암흑가운데 빛을 증거하는 모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광야에서도 증거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당신은 광야와 도시 어디를 증거의 장소로 삼겠습니까? 당신은 분명히 도시에 사람들이 많으니 도시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래야, 전도가 잘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생각입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럴때 주님께서 광야로 나가라고 한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보내신 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로 뛰쳐나갈 신앙적 용기가 있습니까?
당신의 전도 모델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신앙의 삶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당신은 빛이 아닙니다. 당신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빛을 증거하는 자임을 잊지 마십시요. 그것은 보내신 자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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