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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에게 왜 베드로가 필요한가
사도행전 10장 1-8절
2008.3.16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실 그 당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확실히 이 세상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이,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성취되어 갈지, 제자들은 궁금해 하며, 불안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안과 걱정이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를 증명하듯이, 주님께서는 자신의 방법대로 교회를 세워 나아갔습니다.
특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설립되고 성장되어갔습니다. 성령 받음으로서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그들은 성령을 받음으로서 말씀을 증거할 수 있었다. 성령받기 전에 그들은 병 고침도 할 수 있었고, 이적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기 전에 그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 앞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받는 다는 것은, 그 성령을 보내신 분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면, 힘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래서 전도는 바로 힘입니다.
이러한 설교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특히 우리는 복음 선교에 하나님께서는, 앉은뱅이와 같은 자들을 사용하시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거짓말하는 자들을 사용하시고, 동시에 또한 스데반, 사울, 바나바, 고넬료와 같은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평판이 좋은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없는 상태에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초대교회 상황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34절에 나오듯이 외모를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논리가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보다 깊은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는 것입니다.
그들의 설교가 적용되고, 그들의 전도가 효과적으로 전파되기 위하여, 때로는 주님께서 평판이 좋고, 인정받고, 유력한 자들 사용하신 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뿔)역시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그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소개 됩니다. 가이샤라는 아주 큰 도시입니다. 원래는 등대하나 밖에 없는데 헤롯이 세워서 로마황제에게 바친 도시입니다. 따라서 무역이 성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큰 도시입니다. 이런 곳에서 100부장이란 아주 신분이 높은 것을 의미합니다.(여기 군으로 번역된 것은 600명으로 편성된 부대를 말하는데, 그 가운데 백 명의 대장이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도 백부장과 관계되는 사건이 누가복음7장에 나옵니다. 특히 저자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다고,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백부장이 나옵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를 믿음으로서, 많은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신분이 높은 고넬료가 예수를 영접하는 사건을 기록합니다. 후쿠로이키타 교회에도 여러분과 같은 유력한 분들이 계심으로서, 지역사회로부터도 인정받는 교회로 성장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고넬료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경건하고,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유력한 자, 신분이 높은 자만을 사용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경건, 경외, 구제,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스데반과 일곱 집사들이 소개될 때도,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평판이 좋은 자들이었습니다.
경건이란, 예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8장에 빌립이 이 곳 가이샤라에 와서 복음을 증거했다는 증거가 나옵니다. 아마도 그 때 믿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좋아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심을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 전원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가족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니카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은 당신이 눈물로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백성을 구제했습니다. 그가 독자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이사랴 교회에 참가하여 같이 구제사역에 참여한 것입니다. 즉 교회 활동에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언제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3절에 제 구시, 오후 3시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정해놓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초대교회도 오후 3시가 되면 기도하자고 정해놓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찾기 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시편141편 2절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わたしの 祈を, み 前にささげる 薰香のようにみなし, わたしのあげる 手を, 夕べの 供え 物のようにみなしてくださ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것,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고넬료는 교회가 정한 기도시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힘들었을 것입니다. 백부장이 낮에 시간을 내어서, 교회가 정한 시간에 나온다는 것은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좋아했고, 경외했기에, 나오는 것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는 오순절 교회건축 특별기도회를 개최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사건입니다. 교회가 정한 시간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시고, 만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4절에, 하나님의 사자가 말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러한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 그를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은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제자들이 책망을 합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기억된 자였습니다. 세상 끝까지 주님께 기억되는 자의 삶을 주님은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구약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이 의미가, 이방인에게도 적용되었다는 것은 복음의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오늘 고넬료 역시, 주님께 기억된 사람입니다. 주님께 잊혀져가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우리의 삶이 행복합니다. 주님께 기억되는 자에게 주님은 축복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왜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필요합니까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라고 합니다. 오늘 설교의 마지막 포인트는 이 곳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를 청하라, 라는 것은 “너 자신을 위하여 사람을 보낸다.” 라는 뜻입니다. 내 자신을 위하여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기도와 구제와 예배뿐만 아니라, 또 한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하나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으로 볼 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천사가 고넬료에게, 당신은 정말로 구원받은 착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 순간이 아닙니까? 너는 정말로 착하구나, 예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사, I was onc e lost like you, but one day Jesus saved me.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넬료는 여전히 하나님밖에, 주님밖에 있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생각을 하면, 왜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는 기도도 잘하고, 구제도 잘하고, 하나님께 예배도 잘 드리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십니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구제와, 경외와, 예배 이상으로 뭔가를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구제와 경외와 예배만으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삶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말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접에는 나중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제를 잘한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삶의 빛이며, 진리이시며, 길이시기에, 그 분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주신 길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에 있어 나중은 없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만나야 합니다. 절박합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천사가 떠남과 동시에, 종들을 불렀습니다. 즉각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이런류의 삶을 순종의 삶이라고 합니다. 즉각적은 순종은, 삶속에 기적과 같은 사건을 일으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당신의 마음에 도전이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그것에 즉각 반응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즉각적인 순종에 기쁘하실 것이며, 그 순종에 대한 결과를 이미 허락하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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