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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때문에
시 107:4-9
2007년 5월 27일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인생이 외롭다고 합니다.
마라톤처럼 골을 향해서 혼자서 외롭게 달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결국 나 혼자야, 라는 속삭임이 들여옵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인생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래서 괴롭고 쓸쓸하고 고독해 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통해서도, 가족을 통해서도 가시지 않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우울증으로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증상의 차이가 있을 지언즉,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이 없습니다.
그 무엇을 해도 시시 껄껄 합니다.
세상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는 현실적 사실 앞에 새삼스럽게 놀라며,
움칠 거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인생 문제, 가정 문제, 자식 문제, 부부 문제, 경제 문제, 인간관계, 직장 생활 등 현실을 둘러보면 암담한 문제뿐입니다. 이런 문제에 파묻혀 결국은 낙망하고, 절망하여 답답함을 느끼고, 걱정과 근심만이 나를 억압합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며, 참된 안식처를 얻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광야 생활, 무슨 재미가 있었겠습니까?
한때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생선도 먹고, 싱싱한 오이도 먹고, 수박도 먹었습니다.
부추와 파와 마늘이라는 인간의 먹성을 만족시키는 그런 재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엇입니까?
모래바람만이 나불거리는 이 황량한 땅에서, 그들은 인생의 재미를 잃었습니다.
아니 인생의 참된 재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참된 인생의 재미를 얻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아침저녁으로 밀려오는 고독과 외로움들에 사무쳐 허우적거리기 보다는,
그러한 고독함을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기도 없이도 마실 수 있었던 물이었습니다.
간구함이 없이도 먹을 수 있었던 고기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간구하게 하셨습니다.
너무 교만해서, 그러한 것들이 조물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도 모르고,
인생을 즐긴 자들에게, 하나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고독이란 엄살일지도 모릅니다.
참된 하나님, 내 삶을 주관하시고,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그 분 하나님을
잊고 사는 인간들의 엄살입니다.
고독이란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면서 고독은 살아집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면서 우리 삶의 우울증은 살아집니다.
사십년 동안에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한 사실(신명기8:4절)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인생의 고독보다도, 인생을 인도하시는 그 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왔던 일들이 이제는 내 눈앞에 그렇게 보여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생이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계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이 먹고 삽니다. 그렇지만 배부르다고 인간이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옷을 잘 입었다고 인간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잘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잘 산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이 해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의 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내가 지금도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어볼 가치도,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숨을 쉬며, 먹을 수 있으며, 살아갈 수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이스라엘백성은 이전에, 지금의 우리처럼 무감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내가 살수 있고, 우리 가정이 살 수 있고, 우리 교회가 살 수 있고,
우리 국가가 살 수 있고, 이 세상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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