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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4일
누가 복음 19장 10절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속하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감사하는 성탄절 감사예배입니다. 성탄절이란 영어로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하여는 많은 설이 있지만, 요한일서 2장 20절에 나오는 ‘기름부음 받은’(crivsma) 자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한 단어가 주격으로 사용될 때 시그마 S를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crivsms로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 단어는 동사 크리오(crivw), 기름붓다, 헌신하다, 는 뜻에서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성탄절이란 누군가가 누군가에 헌신하기 위하여 태어난 날이다, 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럼 누가 누구를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인자가 온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절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럼 누가 잃어버린 자입니까. 당신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삭개오를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삭개오를 잃어버린 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삭개오와 같은 자입니까. 본문을 통해서 삭개오를 보시고, 당신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삭개오 그는 돈이 많은 부자입니다. 자신의 직업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지만, 전체 문맥상 삭개오는 자신의 직업을 악용하거나 남용하는 자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추측컨대 직업 그 자체의 문제로 그에게는 친구도 없고, 인생의 참 만족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뭔가 1페센트가 모지라는 삶이었습니다. 먹어도 만족이 없고, 잠을 자도 만족이 없고, 돈을 벌어도 만족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예수를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19장 3절에 나오듯이, 그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했습니다. 뭔가에 끌리었습니다. 왜 보고자 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삶에 참 만족 뭔가 모지라는 뭔가의 1퍼센트를 체우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도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아 사람들 때문에 예수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정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갈 수 도 있었지만,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가 보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니, 뽕나무에 올라갈 정도로 예수가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가 말하는 잃어버린 자란, 바로 뽕나무까지 올라가서라도 예수를 꼭 보아야 겠다는 심경을 소유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가 작은 자, 직업상의 이유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자, 체면을 마다하고 뽕나무에 올라갈 용기를 가진자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당신은 어떤 뽕나무에 올라갔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내려와라, 내가 너와 함께 거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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