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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비전
느헤미야1장4-11절
2006-12-10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본문의 주인공은 느헤미야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임재 장소인 예루살렘 신전을 다시 세우고자 함에 있어, 그것을 맡아서 사역을 감당할 자로 느헤미야를 택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성전 재건이라는 특별한 자신의 계획을 위해서 택함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느헤미야를 택하셨습니까? 그에게 택함 받을 만한 특별한 무엇이 있었습니까? 제가 보기엔 없었습니다. 그는 제사장도 왕족 출신도 아닙니다. 택함 받을 만한 외면적인 어떤 특별한 이유가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을 섭리하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택함을 받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지금까지 약12차례의 포로귀한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여전히 이방의 땅, 바벨론에 남아 있습니다. 왜 그는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까? 11절을 보면 그는 왕의 급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직업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생하느니, 여기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매국노라고 욕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바빌론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왜 남아있었습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미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 작전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위해 느헤미야가 선택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신전을 재 건축하고자하는 섭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인생앞에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앞으로 어떻게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그는 남았습니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은 왜 애굽에 팔여가야만 했습니까? 요셉은 왜 고향을 떠나서 애굽에 살아야만 했습니까? 에스더는 왜 페르시아 왕의 왕비가 되어 수산궁에 머물러야 했습니까? 다니엘은 바빌론에 왜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그 곳에서 이루시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당신이 왜 여기에 남아 있습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들은 교회가 싫다고 합니다. 특히 현대사람들은 교회를 싫어합니다. 성경적 신앙을 싫어합니다. 유일신 신앙을 싫어합니다. 마치 자기가 아주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모든 종교를 인정하자고 합니다. 이러한 현대의 종교적 누수현상속에, 왜 당신은 여기에 존재하고 있습니까? 그냥 나와 있습니까? 우연입니까? 운명입니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을 통해서 자신의 비전을 완성하시고자, 당신을 이곳에 있게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당신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미 뭔가를 섭리하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계획이 당신의 시간속에, 당신의 삶속에 보여 오는 순간 놓치기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느헤미야의 훌륭함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중요한 이유중 하나가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는 일견 보통 사람이었지만, 할아버지, 아버지로 부터 전해들어온 신앙을 고수하는 신앙인이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 신앙인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뜨거운 신앙인이였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전이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상태로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털석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합니다.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오열합니다. 털석 주저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게됩니다. 그런 것과 같습니다. 그가 단순히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수동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 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입니다.
다르게 표현을 하자면,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구름 조각같은 조그마한 비전을 보여주었을때, 그는 마음으로 감동받고, 영혼으로 그것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비전을 보여 주었을때, 느헤미야는 이것이다. 이것 때문에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비전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비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여기에 왜 있습니까? 왜 이 교회에 남아 있습니까?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언제나 우연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당신은 우연한 삶을 살지 않기에, 인생의 계획도 세우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아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나의 비젼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마음에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 신전을 느헤미야에게 보여주듯이, 오늘 당신에게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비전을 열정적인 눈물로 이루어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왕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비서에 해당되는 고위직입니다. 그는 유대백성으로 아주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입니다. 더 이상의 바램이 없을 만큼 만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세상적인 성공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을때, 그의 마음은 거룩한 열망으로 불탔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순간, 자신의 안락함과 편함에 안주하기 보다, 눈물로 그 비전의 성취를 바랬습니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바랬습니다. 내가 왜이렇게 성공했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위함이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머리가 알아내기 전에 늘 먼저 보는 것은 가슴이다.’ 성경은 마음이 뜨거운 자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의를 향해서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예레미야는 9장1절, 하나님 백성으로 말미암아 눈물샘이 마르도록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실때,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는가? 누가복음24장3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 져야 합니다. 마음이 냉랭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 졌을때, 그들은 무서워서 도망갔던 장소,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뜨거운 감동이 없는 머리만의 신앙은 절대로 기적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계시록3:15-16절, 미지근한 신앙,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신앙은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습니다. 학개서1장13-14절, 백성들의 마음이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게 된 것입니다. 뜨거운 감동이 강물처럼 흘러 내마음을 적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후쿠로이키타 교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성전건축이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듣는 순간 당신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듣는 순간 풀석 주저앉아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기도했습니까?
하나님 성전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자를 주님께서 지금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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