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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9/29
 


매향으로 묻어둔 천년의 미륵세계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칠 때 상쾌하고 맑은 기분을 갖는다. 이렇게 사람이 좋아하는 냄새를 향내라고 하여 아득한 옛날부터 좋은 향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나, 채취하여 직접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종교의식에 향을 피우면서다. 향내는 세상을 깨끗이 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향을 피우는 풍습이 들어온 것도 불교와 함께이며 기록으로는 6세기 초 중국의 양나라로부터다. 삼국유사에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면서 향을 가지고 왔는데, 이름도 쓰임새도 몰랐다. 두루 물어보게 하였더니 묵호자란 사람이 그 이름을 알려주고, 불에 태우면 아름다운 향기가 퍼진다‘는 내용이 있다.

향의 재료는 여러 가지나 옛사람들은 흔히 나무에서 얻었다. 고급 향을 가진 대표적인 나무로는 수입나무인 침향나무와 백단나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자단(紫檀)으로도 부르는 향나무가 있다. 향은 왕실과 귀족들의 기호품으로도 사랑받으면서 이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침향은 신라 때 벌써 수입규제를 할 만큼 사치품이었고, 나중에 ‘매향’이란 새로운 우리만의 향기문화를 만든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신선의 향내, 신선의 영약 침향

침향나무는 팥꽃나무과의 ‘Aquilaria agallocha Roxb.’라는 학명을 가진 나무다. 약자로 A.A.R라 부르기도 한다. 자라는 곳은 태국, 버마,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세아이며 아름드리에 이르는 늘 푸른 나무다. 이 나무는 상처를 입거나 나무 자체의 생리적인 변화로 속의 목질부에 부분적으로 수지(樹脂)가 쌓인다. 대부분의 나무는 많든 적든 수지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침향나무의 것은 특별하다. 그래서 다른 수지와 구분하여 침향(沈香)이란 이름을 붙였다.

침향은 태우면 진기한 향기가 나고, 또 뛰어난 약효를 가진 영약으로 옛 사람들은 보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물에 가라앉아야만 고급품으로 알아준다. 침향나무만은 비중이 0.4에 불과하므로 진짜 침향은 수지의 함량이 25%를 넘어서야 한다. 색깔은 녹황색으로 진한 것이 좋고 색이 너무 연하거나 까맣게 되면 품질이 나쁘다고 한다. 침향 그대로는 어떤 냄새도 갖고 있지 않으며, 태워야만 비로소 향내를 낸다. 수지의 함량이 많을수록 연기가 적고 더욱 독특한 향내를 얻을 수 있다.

침향(沈香)의 본질인 수지는 나무에 들어있는 테르펜(terpene)과 플라본(flavone)이라는 화합물들이 서로 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썩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물질이다. 수지에는 수백 가지의 성분이 들어있으며 나무 종류마다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송진도 수지의 한 종류이며, 보석으로 쓰는 호박도 아주 옛날 식물의 수지가 땅속에 묻혀 불순물은 없어지고 순수 성분이 단단해진 것이다.

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침향나무에 상체기가 생겼을 때, 치료 목적으로 주위의 세포로부터 급격히 수지를 만들어 내면서 출발하여 수지가 굳어지는 것으로 마감한다. 그 외 나무가 나이를 먹어 지름이 커지면서 안쪽의 심재세포가 죽어버리므로, 바깥쪽의 변재세포에서 수지가 나와 안쪽에 쌓이는 과정으로도 만들어진다. 이런 경우는 오랫동안 땅속에 묻어 두어 변재를 썩혀버리고, 수지가 여기 저기 부분적으로 들어있는 심재를 ‘침향목’이라 하여 불상을 새기는 재료 등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대표적인 침향은 수지가 엉겨 붙은 세포덩어리이며, 수지가 없는 부분은 긁어내 버린다. 따라서 이런 침향은 크기와 모양이 제멋대로이고 수지의 성질에 따라 색깔도 여러 가지다.

침향은 사람이 쓰는 향료 중에는 가장 고급품으로 여겨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값비싼 기호품이었다. 지금은 향으로서 보다 귀한 약으로서 그램 단위로 사고팔며 값은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그러나 귀중하고 값비싼 것은 가짜와 유사품이 생기기 마련. 우리의 옛 기록에 보면 진짜 침향이외에 여러 가지 유사침향이 뒤섞여 있어서 혼란스럽다.

삼국사기에 ‘진골은 수레 만드는데 침향목을 쓰지 못한다’하였고, 고려사에는 의종5년(1151) '왕이 목공에게 시켜 침향목으로 관음보살상을 조각하여 내전에 두게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때의 침향목이 동남아시아에 나는 진짜 침향이라면 상당한 굵기의 침향 통나무를 수입하였어야 하니 유사침향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같은 고려사에 문종 33년(1079) ’중국의 해남도에서 생산되는 침향을 수입하였다‘, 충선왕 원년(1308) 마팔국(인도)의 왕자 패합리가 사신을 보내 침향 5근 13냥을 바쳤다’는 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짜 침향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진짜 침향을 거래한 기록이 수 없이 많이 나온다.

임금과 귀족들만이 사용하는 진귀한 침향에 대하여 신라 고려를 거치면서 일반 백성들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고려 말이 되어 귀족들의 사치와 관리들의 부패로 백성들은 생활이 비참해지고 왜구들의 침입마저 부쩍 잦아져 온 나라가 불안 속에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더욱 종교에 빠져 들기 마련이다. 차츰 사람들은 최고의 향인 침향을 피워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왕생을 기리고, 오랫동안 민간신앙으로 굳어온 미륵세계라는 유토피아를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새 밀레니엄에 유토피아를 기다린 매향

그러나 값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운 진짜 침향을 백성들의 입장에선 구경도 할 수 없었으니 새로운 대용침향을 찾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흔히 있는 향나무를 오랫동안 땅속에 묻어두면 침향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다. 실증적인 증거로는 지금은 북한 땅이 된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에 1309년 향나무를 땅속에 묻고, 이를 기념하여 매향비(埋香碑)를 세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매향비이며 이후 1434년까지 125년 동안에, 오늘날 찾아낸 것만 13개나 된다. 삼일포 이외의 나머지 매향비는 모두 서남해안 및 섬지방에서 발견되었다.

매향은 임금이나 귀족이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일반 백성 여럿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함께 하였다. 예를 들어 고려 우왕 13년(1387)에 새운 경남 사천시의 사천매향비에는 승려와 백성 등 4천백명이 계를 모아 향나무를 묻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기를 미륵보살께 빈다’는 뜻으로 204자를 새겼다.

실제로 무슨 나무를 왜 땅속에 묻었는지 알아보자. 발견된 매향비의 내용에는 매향목 혹은 침향목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향목(香木)은 향나무를 말한다. 그러나 이익의‘성호사설’ 12권 인사문 향도(香徒)에 보면 "참나무(橡)가 물에 들어가 천년을 지나면 향이 된다고 하였다. 옛 사람 들은 약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많이 베어서 물에 넣고 비석을 세워 증거를 남겼다“는 기록이 있으니 꼭 향나무만이 아니라 참나무 등도 매향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매향을 하는 이유는 역시 성호사설의 내용으로 짐작 할 수 있는 것처럼 천년이란 긴 세월동안 묻어두면 본래 보다 품질이 더 좋은 향이 되리라고 생각한 탓이다. 또 이 향을 피우면 미륵세계가 오고 약으로 쓰면 세상의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침향과 같은 명약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온갖 정성을 쏟아 땅속에 묻은 나무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선조들이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다. 나무가 땅속에 들어가면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과정을 밟는다. 산자락이나 밭 가운데와 같은 보통의 땅에는 적당한 수분이 있어서 수많은 나무 썩히기 전문 미생물의 생활 터전이다. 이런 곳에 묻힌 나무는 굶주리던 이 녀석들이 달려들어 몇 십 년이면 모두 분해해 버린다. 반면에 일년 내내 거의 물이 들어차 땅속이 축축한 강가의 둔치나 바닷가는 나무를 썩히는 미생물이 아예 없거나 분해하는 힘이 약한 종류가 몇몇 있는 정도다. 이런 곳의 나무는 수 백년 수 천년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선조들이 매향한 곳은 모두 바닷가나 섬 지방으로서, 썩어 없어지지 않을 수 있는 환경조건을 일부러 찾아서 묻었다.

그렇다면 나무의 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복잡한 여러 가지 화합물로 이루어진 ‘향기메이커’들은 땅속에 오래있었다고 향이 더 좋아질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나무 성분의 대부분인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으로 만들어진 세포벽 속에는, 물에 녹아있던 규소나 철 이온이 스며들어 돌덩이처럼 단단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나무들은 비중이 본래 나무보다 훨씬 높아져 물속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물에 가라앉은 향나무’란 뜻으로 침향(沈香)이라 하였고, 동남아세아에서 나오는 진짜 침향과 향이나 약효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진짜 침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땅속에 오래 묻힌 향나무’일 따름이다.

1999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대통령 직속기구인 새천년준비위원회에서는 조상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묻은 매향 나무를 찾아 나선 적이 있다. 명확히 어디에다 묻었다는 매향비가 있으니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어도 그렇게 간단치 않다. 우선 바닷가는 지형변화가 심하여 씻겨 내려가거나 썩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자연목이 홍수 때 바다로 떠 내려와 묻힐 수도 있으니 매향목인지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결국 우리는 아직도 ‘신비의 매향’은 매향비만 있고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매향의식으로 귀중한 침향을 얻고 미륵세계를 그려온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부질없었던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먼 뒷날의 후손을 위하여 정성을 쏟아 부은 매향정신만은 다른 의미로 승화시켜서 새 밀레니엄의 우리 것으로 하고 싶다.


( 과학동아 2002년 12월호. 펌)



하늘의 향기, 침향 - 침향의 미스테리



(수동 작동 요함. 플레이 버턴 누르시면 나옵니다.)



흐르는 곡:  명상곡, 야속한 님
(영상을 보실려면, 지금 흐르는 곡은 stop 하세요.)





금강산 삼일포의 매향비
 

고려 충선왕 원년(1309년). 금강산 삼일포에 강릉도 존무사(存撫使·관찰사) 김천호를 비롯, 강릉부사 박흥수, 판관 김관보 등 동해의 지방관리들이 승려 지여(志如)와 함께 모였다. 의관 정제한 이들이 먼길 마다않고 이른 아침에 모인 것을 보면 필경 곡절이 있을 법하였다. 석수장이가 지게에 비석을 지고 다가왔다. 김천호는 아무 말없이 눈길로 배를 가리켰다. 비석이 먼저 배에 실렸다. 이어 김천호를 비롯해 박흥수 등이 차례로 배에 올랐다. 다행히 날씨는 좋았다. 지여가 “날짜 하나는 참으로 잘 잡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으나 좌중은 묵묵부답이었다. 응답할 분위기가 아닌 듯했다. 배는 삼일포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단서암에 배를 대게나.” 김천호는 단호히 말했다. 삼일포에 있는 4개의 섬 중에서 단서암(丹書岩)을 택한 것이다. 단서암을 선택한 데는 연유가 있었다.


▲ 고려말 강릉 존무사 김천호 등 지방관리와 승려 지여 등에 의해 매향비가 세워졌던 금강산 삼일포 전경.혼란스러운 시대에 민중의 서원을 담아 곳곳에 향나무를 묻고 그 내력을 기록한 매향비는 미륵의 현신을 기다리는 간절한 구원의 증표로 전해져 오다 일제 강점기 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고려 충선왕 원년, 단서암에 매향비를 세우다


신라 화랑들이 삼일포를 다녀간 기념으로 남겼다는 기록,‘영랑 일행이 남석을 다녀가다.’(永郞徒南石行)는 여섯 글자가 전해지고 있음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예로부터 미륵의 당래하생(當來下生)을 서원하면서 은밀하게 찾아들던 비밀스러운 곳임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매향비를 세우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 아닌가.“호숫물이 가로막고 미륵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니, 누군들 이 매향비를 함부로 옮기지는 못하리라.”라고 내심 확신하면서.


이상의 기록은 삼일포 매향비의 40행,369자를 풀어서 매향비 세우던 광경을 재구성해본 것이다. 당시 강원도 각 포구에 향나무를 베어 물 속에 넣은 뒤 그 증표로 삼일포에 매향비를 세웠다.


매향비가 건립된 1309년으로부터 40년이 지난 1349년 가을, 이곡(李穀)이 삼일포를 다시 찾았다.‘죽부인전’의 작가로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올라 있는 이곳은 ‘동문선’에 전해지는 동유기(東遊記)에 이렇게 썼다.‘초사흘에 일찍 일어나 삼일포에 이르렀다. 성에서 북쪽으로 5리쯤에 있는데, 배에 올라 서남쪽 조그만 섬에 이르니, 덩그런 큰 돌이 있다. 그 꼭대기에 돌벽장이 있고 석불이 있으니, 세칭 미륵당이다.’ 이곳이 찾을 당시에는 매향비는 물론 석불까지 있었고 미륵당도 현존해 이곳이 미륵신앙의 ‘메카’였음이 틀림없다. 그 뒤로도 매향비를 직접 보았다는 기록은 곳곳에 있다.


농암 김창협(1651∼1708)은 1671년 여름에 금강산을 유람한 뒤 삼일포에서 배를 타고 호수의 섬으로 들어갔다가 이런 글을 남겼다.‘배를 옮겨대고 사선정 남쪽의 작은 바위 봉우리에 오르니 짤막한 비석이 있는데 마멸되어 글자를 볼 수가 없었다. 이를 세상에서 말하기를 미륵 매향비라고 한다.’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김상성 주관하에 1746년부터 1748년 사이에 그려진 시화첩 ‘관동십경’에는 매향비가 선명하게 나타나며,‘매향비 아래에서 짐짓 배를 돌리네.’라는 시구까지 확인된다.


박종(1735∼1793)은 1767년 경주 구경을 떠났다가 삼일포에 들러서 쓴 ‘동경기행(東京紀行)’에서 이 비를 침향비(沈香碑)라고 하여 향을 묻었음을 분명히 하였다.‘단서암에 올라 침향비를 보고는 배를 타고 오른쪽 언덕에 이르러 걸어서 솔숲을 빠져나와 돌아보니, 중은 노를 저어 돌아가고 있는데 풍경이 한적하기로는 그만이다.’


이처럼 삼일포 매향비는 후대인들의 인구에 회자되던 비석이었으며 금강산 순례의 필수 코스였다.20세기에는 위당 정인보 선생이 금강산을 다녀오며 기록을 남겼다.‘관동 해안에 향을 묻은 곳이 많으니, 이는 불사(佛事)라. 미륵하생할 때 같이 용화회(龍華會)에 나게 해달라는 발원이라 한다. 호수 위에 매향비가 있었는데 근재(謹齋)의 단갈사제(斷碣沙際)라는 시어가 이를 이름이다.’


●향 묻고 미륵 오기를 바란 민중들


매향비가 세워지던 충선왕 원년이면 고려가 저물어가던 때가 아닌가. 숫처녀와 내시를 공물로 바치는 등 원나라의 횡포가 자못 극심하였고, 불교의 타락상도 극에 달하고 있었다. 당대 불교가 보여주었던 그릇된 행실을 새삼 탓해서 무엇하랴. 그러한 시대에 동해의 변방에서 지방관리들에 의해 매향의례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당시 민중의 염원을 형식적으로나마 풀어주려는 노력의 일환은 아니었을까.

▲ 죽부인전을 지어 남긴 이곡이 ‘동문선’ 동유기에 ‘섬에 이르니, 덩그런 큰 돌이 있다. 그 꼭대기에 돌벽장이 있고 석불이 있으니, 세칭 미륵당이다.’라고 적어 미륵신앙의 실체와 매향비의 존재를 알렸으며, 이후 1748년에 그린 시화첩 ‘관동십경’(규장각 소장)에도 단서암 매향비(그림)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전한다.


삼일포 매향비는 1926년에 일본인 등전량책(藤田亮策)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 뒤로 매향비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탁본한 비문만이 전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어떤 경로로 이 매향비가 사라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높이 60㎝에 불과한 작은 비였으니 집어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야 손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박복한 여생을 쓸쓸히 보내고 있든가, 아니면 그 누군가가 미륵의 당래하생을 서원하면서 향을 묻듯 비 자체를 삼일포 깊은 물 속에다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서원이 담겨 있는 매향비(埋香碑)란 무엇일까. 매향비란 글자 그대로, 향을 묻고 미륵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세운 비석을 말한다. 그러나 그 실체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불교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가 하면 금석문의 숨겨진 비밀 혹은 글씨로 새겨진 비밀문서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미륵세상을 찾아가는 해법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모든 의문의 열쇠가 매향비에 있다. 나라가 좁다보니 비밀스러운 것이 별반 없는데, 매향비만큼은 우리들의 지적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해주기에 충분한 탐구 대상이 된다.


금강산 매향비문을 보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현장을 찾아 나선다면 실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삼일포 매향비문에는 삼척현 맹방촌(孟方村)에 향나무 150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맹방촌은 지금의 동해안 맹방해수욕장에 해당되며, 산봉우리가 아름답게 솟고 백사장이 좋아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삼일포 매향비에서 지적한 맹방에 가면 지금도 매향의례에 대한 촌로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그야말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매향비의 신화다.


●‘침향’은 새로운 세상에의 희구 상징


매향비는 흡사 해적들이 남긴 ‘보물지도’처럼 미륵신앙의 비밀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왜, 무슨 마음에서 그런 비의(秘儀)를 열려고 했을까. 지금까지 발견된 매향비는 모조리 바닷가, 그것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대에 자리잡고 있다. 그 비밀은 향을 바다에 묻는 침향(沈香)에 있다. 사찰에서 피우는 향은 그을음이 생기므로 해마다 불상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침향은 그을음이 없어 귀하게 치며 약재로도 쓰인다. 부적에 영험이 있다고 믿듯이, 침향의 신성성에 기대어 고급 약재로 인정되었던 것 같다.


침향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는 사리함에서 잘 드러난다. 금동으로 감싼 사리함 안에는 옥함이 있는데, 그 옥함 속 사리와 직접 닿는 부분만큼은 침향으로 만들었을 정도다. 명품이라고 부를 만한 불상 중에도 딱딱한 침향을 파서 조각한 것이 다수 있다. 침향을 예사롭지 않게 대한 옛사람의 경외심이 배어나온다.


갯펄에 묻은 향목은 침향이 되면 물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이무기가 천년이 되면 용이 되어 승천하듯, 단순한 향목도 침향이 되면 이런 ‘승천의식’을 거친다고 믿었던 것. 미륵하생을 기다리는 민중들에게 침향의 부상은 바로 새로운 세상의 떠오름이 아니었을까.


매향비는 반드시 강물과 바닷물이 합수하는 바닷가에 세워졌다. 한반도 최고의 절경으로 불리는 해금강에 연한 삼일포는 석호의 으뜸으로, 신라시대 화랑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아름다운 삼일포 안에 세워진 매향비는 미륵을 기다리며 집단적으로 서원하던 당대 민중들의 장엄, 그 자체를 웅변해준다.


미륵을 기다리는 민중의 서원은 하나의 운동 양상으로 발전하곤 하였다. 가까운 중국에서도 미륵에 의탁한 ‘동양식 천년왕국운동’이 자주 벌어졌다. 청조를 타도하고자 한 ‘백련교의 난’ 따위가 그것이다.‘천하가 난(亂)하면 미륵불이 강생한다.’,‘미륵불이 바로 천하를 지킬 것이다.’,‘천지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반란의 해, 미결(未決)의 해’ 같은 슬로건에서 새 세계의 열망과 미륵신앙과의 관련성이 잘 드러난다.

우리의 경우에도 궁예가 스스로 미륵불을 자칭하였고, 강증산도 미륵불에 의탁하였다. 불교가 시작된 이래로 미륵신앙은 하나의 운동, 미래불의 기다림 그 자체였다. 무슨 확신이 민중들로 하여금 미륵의 당래하생을 서원하게 만들었을까. 그만큼 현실의 고통이 심했다는 증거이리라.


●통일시대 오면 비밀스러운 자태 드러내려나


남쪽 사람들이 연일 금강산 관광에 나선다. 관광에 나선 남쪽사람들에게 삼일포와 해금강은 필수 코스이지만 정작 안내문에는 매향비에 관한 기록이 없다. 남한은 물론이고 북쪽의 안내자들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매향비를 설명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삼일포의 가장 신비로운 대목인 매향비의 내력을 전혀 모르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마음 속으로만 삼일포를 그리워하다가 실제로 삼일포에 갔을 때, 필자는 삼일포 호수 안의 섬들을 바라보면서 매향비 생각에 가슴이 벅차 잠시 숨이 막혔던 적이 있다. 사라진 삼일포 매향비가 혹시나 말법의 상징처럼 존재하는 분단상황이 종식되고 통일시대가 오면 비로소 그 비밀스러운 자태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을까.

 

출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비석속으로 여행… 옛 사람의 삶과 꿈을 만나다

(전남 영암·장성 '두 비석 이야기')


# 향나무를 묻어놓고 미래의 구원자를 기다리다

장마의 한가운데서 전남 영암의 ‘매향비’를 찾아나선 것은, 우연히 들르게 된 영암 월출산 입구, 한 식당 주인의 귀띔 때문이었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저녁 찾아들어간 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식당주인은 “몇해 전 포클레인 기사들로부터 향나무를 캐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내다가 오래된 나무를 캐서 불을 땠는데, 온 천지에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했다는 이야기였다. 바싹 당겨 앉아 이것저것 더 물었지만, 그가 들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아마도 인부들이 캤다는 것이 수백년 전 개흙에 묻어놓은 향나무가 오랜 세월을 지나 돌처럼 굳어진 ‘침향’이 아니었을까. 금속처럼 단단해져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고, 태우면 깊은 바다의 냄새가 난다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서남해안의 바닷가 마을에는 향나무를 묻고 미래의 세상을 구원하는 부처인 미륵을 기다리는 ‘매향’의식이 있었다. 신라의 고승 원효의 계산법에 따르면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56억7000만년이 지나 세상에 내려오기로 돼있다. 도무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아득한 시간들. 억겁이 넘어서야 도래할 미래 세상을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은 고달픈 현실 세상에서 구원자를 기다리며 향을 묻었다. 향을 묻고 천년 뒤에 향나무가 떠오르면 아름다운 향기처럼 구원자가 나타나고, 그 구원자 앞에 천년 묵은 향을 피워 올린다는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이렇게 땅속에서 수백년을 묵은 향나무가 바로 ‘침향’이다.

어렵사리 찾아낸 전남 영암 채지리의 매향비는 한 문중의 무덤군 사이에 초라하게 서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글은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에 이곳에서 200보 떨어진 곳에 향나무를 심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지만, 비바람에 씻겨나가 겨우 몇자만 판독될 뿐이었다. 지난 5월에 영암군이 비석 앞에 팻말을 세워놓기도 했지만, 동네 주민들은 그저 무심할 뿐이다.

# 간절하게 미륵세상을 기다리던 사람들

“오래된 독(돌)을 뭔 일이 있어 보러왔소. 뭐 보물이 숨겨진 곳을 써놓았다는 얘기도 있습디다만, 이끼도 끼고 바람에 깎여서 뭐라 썼는지 알 수가 없어 이곳 사람들은 그냥 ‘독바위’라고 부르지라.”

마을 주민 김종식(72)씨는 매향비의 유래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웃 마을인 호포리에 사는 문호(60)씨도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예전 간척 전에 바닷물이 여기까정 들어왔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향나무를 묻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몇차례에 걸친 영산강 간척사업으로 이제 바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내륙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매향비는 이미 오래전 마을 주민들로부터 잊힌 것이다.

지금까지 서남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매향비는 20개 남짓.‘매향’의식이 사람들에게서 잊히면서 어떤 것은 배의 닻줄을 매어놓는 기둥으로 쓰이고, 또 어떤 것은 아예 내다버려지기도 했다. 30여년 전에는 전남 영광 입암리에서 촌로가 지하수를 파다가 향나무를 캐냈지만, 그것이 침향인지도 모른 채 하룻밤 모깃불로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초기까지 이른바 ‘정권교체기’에 헐벗고 핍박받던 민중들이 눈물겹게 기다렸던 미래세상에 대한 기대의 표식으로 매향비는 서있다. 이제 그들이 묻어 놓은 향나무는 땅속에서 700년을 보냈고, 미륵은 아직 오지않았다. 1000년을 마저 채우면 그때는 미륵이 올까. 그들이 바라던 미래세상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매향비 앞에 서면, 영산강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멀찌감치 물러난 해남만과 남산포를 바라보면서 역사도 아니고 종교도 아닌, 그저 수백년 전에 이 땅에 이름 없이 살던 사람들의 팍팍했을 삶과 간절한 기원을 헤아려볼 일이다.

# 글자 한 자 없는 백비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의 마을 길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길 끝에서 노송이 우거진 오솔길을 만난다. 그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박수량 선생의 묘를 만날 수 있다. 이 묘가 눈길을 끄는 것은 묘 앞에 세워진, 단 한 글자도 씌어있지 않은 흰 비석 때문이다.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잘 다듬어진 비석이 그저 무덤 앞에 덩그러니 무심하게 세워져 있다.

정혜공 박수량. 그가 거쳐간 벼슬을 꼽자면 한이 없다. 이곳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무장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고, 스물 셋의 나이에는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스물 다섯 나이에 벼슬길에 들어서 예순네 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39년간을 예조, 형조, 호조, 병조 판서와 한성판윤, 평양·전라감사, 좌찬성지중추부사 등 요직을 두루지냈다. 이쯤이면 세도를 휘두르며 떵떵거리고 살았을 법하건만, 그는 사사로이 재물을 탐하지 않고 더없이 청렴한 삶을 살았다. 비가 새는 지붕 아래서 우비도 없이 갓을 쓰고 지냈다는 그는 말년에 병석에 눕자 후손들에게 “고향에서 장사를 지내되 묘를 너무 크게 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세상을 등진 그가 남긴 유품이라고는 술잔 하나와 갓끈 한 타래가 고작이었다.

“죽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갈 운상비가 없었다네. 을매나 깨깟(깨끗)하게 살었으면 그리 했겄는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선 놈의 것 안 묵고 살기가 좀 어렵지 않았을 텐디. 그라고 죽고 나니 암것도 없어 초상도 못 치르게 됐다네.” 박수량 선생의 묘를 돌보고 있는 후손 박내훈(75) 할아버지는 비석을 쓰다듬으며 백비가 세워진 내력을 풀어놓았다.

# 비석 앞에서 만나는 옛 사람들의 향기

“기가 맥힌 사정을 알게 된 명종 임금이 진짜 청백리인지 알아보려고 암행어사를 두 번이나 내려보냈는데, 백성들이 한결같이 칭송을 하더란 말이네. 그래서 임금이 장례비용을 마련해주고, 서해바다의 깨끗한 돌을 골라 비석으로 내리라고 명했다네.”

그러나 그 비석에는 단 한 글자도 새겨지지 않았다. 박수량 선생의 청빈한 삶을 구차하게 비문으로 새겨넣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작 한 줌도 안 되는 공적을 이리저리 치장해서 으리으리한 비석을 세워놓는 일쯤이야, 당시에도 있었던 것이 당연할 터. 그래서 오히려 박수량 선생의 백비는 더 돋보인다.

이렇게 남도 땅을 돌다가 만난 매향비와 백비는 저마다 뭉클한 사연들을 풀어내 보인다. 그래서 알게 된다. 수백년 동안 잊힌 채 아무렇게나 뒹굴었던 매향비가 미륵세상을 기다리던 헐벗은 백성들의 간절한 기원이었음을. 또 텅 비어있는 백비가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올여름 남도 땅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면 그 여행길에서 두 개의 비석과, 그 비석이 펼쳐보여주는 수백년 전의 삶과 만나볼 일이다.

그렇게 한다면 필시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이건 너무 무거운가?


 

- 글 출처: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침향에 대한 일반 정보



식물:
서향나무과의 높이 30m 에 이르는 상록교목입니다. 잎은 긴타원형이고 고무질입니다. 인도 동부, 월남 등 동남아열대에서 자랍니다. 이 식물의 목질부에는 수지가 없으나 상처를 입거나 썩게되면 수지가 생겨나서 상처를 보호합니다. 수지가 생겨난 나무를 베어서 흑속에 묻거나 자연적으로 썩게하여 수지가 없는 부분을 없앤 것을 침향, 침수향이라고 합니다. 즉 물에 가라앉는 향나무라고 해서 침향이라고 합니다.

성분:
침향을 알카리로 비누화하고 수증기 증류하면 정유 13%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유의 주성분은 벤질아세톤 265, P-메톡시벤질아세톤 53%, 테르펜알콜 11%이고, 히드로계피산과 P-메톡시히드로계피산이 있습니다.

작용, 응용:
동의에서는 속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는 약으로 건위약, 구토, 복통, 천식 등에 1회에 1.5~3g을 사용합니다. 나무속살을 태우면 강한 향기가 나므로 고급 선향을 만드는데 쓰입니다. 후박나무껍질은 강한 접착력이 있고 향기가 있으므로 고급향은 녹말풀로 만들지 않고 후박풀로 만듭니다.


진위감별법:

침향이란 침향나무 속에서 침향수의 수지가 오랜 세월 서서히 점착되어 생성된 덩어리이다. 침향수는 통상 1000년의 수령을 넘겨 枯死하므로 그렇게 고사한 침향수에서는 1000년의 세월에 걸쳐 형성된 침향들도 있다. 오늘날 침향수가 있고 소량이라도 침향을 생산하는 나라는 베트남뿐이다.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등에도 침향수가 2-3그루씩 있다는 설은 있으나 실제로 확인된 적은 없으며 또한 침향이 생산된 적도 없다.) 그런데 베트남은 1992년 이후 침향수와 침향을 국가적으로 강력히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국가 보물)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소량이나마 유통되고 있는 침향은 대부분 1992년 이전에 베트남으로부터 획득한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던 것들이다.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실제 물량은 지극히 적을 수 밖에 없다.

침향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영약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침향의 그러한 탁월한 약성과 각종 역사서나 종교서적 등에서 소개되고 있는 침향의 진귀성이, 현실적으로 극히 소량일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문제들이다.

그것은 실제로는 침향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침향에 대한 각종 자료를 임의로 만들어 내고, 또 적지 않은 수의 사기꾼들이 가짜 침향을 만들어선 그것을 소위 가침향“假沈香”이라는 또 다른 명칭으로 버젓이 약재상이나 의사들에 게 유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제약회사까지도 여러 종류의 약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이미 보편화된 현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이조 시대에 민간에서 행해진 매향의식의 진위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허위로 날조하여 퍼뜨리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과 제대로 된 지식을 갖지 못한 일부 종교인들에 의해 침향의 진실이 많이 왜곡되어 일반에게 알려 지고 있다.

원래 매향의식은 백성들이 황실에 의해 독점되어온 침향을 얻고자 하는 염원을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성취해보고자, 일반 향나무나 참나무 토막을 갯벌에 묻고 지성으로 자자손손 기원하면 1000년의 세월이 지나 진짜 침향이 되어 나타난다는 민간의 토착신앙이었던 것을, 마치 매향에 의해서 정말로 침향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뭇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침향은 理化分析이나 현미경 관찰에 의하지 않고도 자연광아래서 지극히 간단히 판별된다.


침향의 진위를 판단할 때 관찰해야 할 중요 사항:

1. 침향수 속에서 도려낸 자연상태의 침향들은 그것들이 결코 같은 모양이거나 인위적인 형태가 있을 수 없다.

2. 침향은 침향수의 목질섬유 사이에 수지가 점착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검은 색으로 보이는 수지와갈색으로 보이는 목질이 번갈아 있는 줄무늬가 있다.

3. 양질의 침향은 매우 단단하고 무거운데 약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작은 입자까지도 반드시 물에 완전히 가라앉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표면은 몇 번 문지르면 매끄럽고 윤이 난다.

4. 태우면 침향수의 수지가 타기 때문에 검은 연기를 내면서 맹렬히 타고, 불 속에서는 수지가 삼출되며, 불을 끈 후 연기의 냄새는 매우 순하고 부드러우며 편안하다.

5. 침향은 자연상태에서 일정온도(체온인 36도) 이상의 열이 가해지기 전에는 결코 향기를 발하지 않으며 또한 손상되지도 않는다.

6. 색은 크게 녹색, 황색, 흑색의 3종류이고 그 중 녹색이 비교적 양질이며 향의 맛도 좋다.

7. 性味가 맵고 쓰므로 분말이 코로 들어가면 몹시 맵다.

8. 침향중에서 가장 탁월한 것으로 가남향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침향수의 뿌리 부분에서 아주 소량 생성되며 약성과 향기가 탁월하여 침향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으로 취급 되는데, 일반침향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일반침향은 점성이 없어 뭉칠 수 없는데 반해 가남향은 점성이 강하여 칼로 베껴 뭉치면 환이 된다.

이상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진품 침향이다. 또한 특히 가남향은 침향의 진위감별에 있어서 확실한 표본이 될 수 있으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일반침향이 가남향과 다른 점은 일반침향은 점성(粘性)이 없어 뭉쳐지지 않으며, 가남향은 뭉쳐지고, 맛과 향기와 효능이 일반 침향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정보



하얀커탑 2007.02.06  13:29

안녕하세여. 블로그 잘보고갑니당 ^^
제블로그에도 놀러 오셔서 구경하시고, 댓글도 많이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늘 행복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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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05056784972 2007.02.06  14:53

잘보고 갑니다. 좋은글과 아이디어 정보글 제 블로그에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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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틴브라스 2007.02.13  00:55

유익한 정보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하얀커탑님.
방문과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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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틴브라스 2007.02.14  12:59

방문에 감사드립니다..ㅎㅎ
제가 워낙 이웃님 블로그 방문을 안하는 스탈입니다.
그점 이해를 바랍니다. t05056784972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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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아줌마 2007.02.21  19:38

감사한 정보 담아 갑니다.
애써 작성하신걸 담아가 죄송하네요.
매향에 담긴 선조들의 마음은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줍니다.
그애절함으로 그희망으로 천년시공의 침향을 만드신 분들의 마음을 이어 가고 싶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삶에 그분들의 마음에 경배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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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틴브라스 2007.03.01  02:03

침향과 매향의식이란 주제로 포스팅을 하고자 맘 먹고는
거의 사나흘 정도 이곳저곳을 방문하고 자료를 검색해서 만든 겁니다. ㅎㅎ
물론 틈틈이 시간나는대로 했지만, 제법 공을 들여서 만들었어요.
선조들의 염원이 깃든 매향의식을 다시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겁니다.
호호아줌마님에게도 이 자료가 유용한 정보가 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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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 2008.08.03  07:31

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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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틴브라스 2008.08.04  14:44

올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꺼벙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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