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최후의 날들’을 사상적 동지로 함께 보냈던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이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진보’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털어놓았다. 그는 진보정치가 시민공동체를 통해 재구성되어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했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은 1980년대의 치열한 사상 논쟁에서 잔뼈가 굵은 철학자다. 언론계와 학계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정홍보처장을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몇 개월 동안 함께 ‘진보의 미래’를 연구했던 사상적 동지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최근 ‘진보’를 주제로 책(<다시 진보를 생각한다>)을 내놓았다. 일정한 철학·사상적 플랫폼을 기반으로 진보정치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은 "지역정치의 강화로 진보를 재구성하자"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개월 만에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를 냈다.
지난해 캐나다에서 귀국한 이후 노 전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함께 학습하는 기회를 가졌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이 ‘성장 중심 사회’에서 ‘복지 중심 사회’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런 과정에서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때 나는 “과거에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사회에 권력을 행사했지만, 현대 국가에서는 권력 개념이 점점 더 거버넌스(국가가 권력의 일부를 시민사회에 이양해서 국가·시민사회가 협력해 통치한다는 개념)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씀드렸다. 과거처럼 국가를 중심으로 진보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런 토론을 통해 우리의 주제는 (국가의 역할에서) ‘진보의 미래’로 전환되었다. 이런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다 사고를 당하셔서 한동안 망연자실하고 있다가 불현듯 ‘안 되겠다. 책을 서둘러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책은 노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그렇다. 함께 논의한 것의 결과물인 만큼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상당 부분 계승되고 녹아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왠지 읽다보면 누군가의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 있다는 느낌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진보세력 측의 날선 비판이 그토록 억울하고 안타까웠던 걸까.
보수언론의 공격은 어차피 황당한 억지가 많았다. 그러나 진보 측의 비판은 노 전 대통령이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가장 가슴앓이 했던 것이 바로 양극화 문제였다. 양극화란 것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한 나라의 정부 처지에서는 해결하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정우 당시 대통령자문위원장도 한겨레 칼럼에서, 막상 정부에 들어가 보니까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수단이 없더라고 술회한 적이 있지 않나. 그러나 양극화가 참여정부 시기에 심화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부른 속내는, 이 문제에 만족스런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짙은 회한이다. 다만 참여정부는 양극화에 대해 복지를 늘려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물론 충분치 않았다. 그러나 진보진영이라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비판하면서 ‘야! 모두 네 책임이야’, 이렇게 툭 던지고 말 것이 아니라 함께 대안을 찾자는 생각을 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진보진영의 일원으로 간주했던 것일까.
그렇다. 그래서 “나의 실패를 진보진영 전체의 실패로 호도하지 말라”고 했던 거다. ‘나는 실패했지만 진보세력 전체의 실패나 비전 상실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진보의 미래’를 연구했던 거고.
지난 2006년 '국민과의 인터넷대화'를 통해 양극화 문제를 얘기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러나 진보세력은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해오지 않았나. 예컨대 부자 증세, 복지재정 확충, 노동시장 안정화….
글쎄. 세금이란 거, 사회적 권력관계의 총체다. 대통령이 방망이 두드린다고 증세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둘러싼 여러 세력의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진보가 다시 집권해도 부자 증세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은 없을 거다. 또한 당시 비정규직 입법(비정규 형태의 고용은 2년 뒤 자동적으로 정규직화)의 경우, 물론 기업 처지에서는 2년 되기 전에 해당 비정규 노동자를 잘라버리면 되니까, 어떻게 보면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줬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시장경제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다. 물리적 힘과 언론·대학·이데올로기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가능했을까. 당시에도 비정규직 입법이 통과되자마자 이랜드가 해당 노동자들을 일거에 해고해버리지 않았나.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일종의 사보타지였다. 분규가 일어나자 법무부 쪽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조기진압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다른 대통령 참모들은 사측의 문제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당시 법무장관이 나중에 보수언론에 ‘자신은 엄정한 법 집행을 하려고 했는데, 소수의 진보적 참모들이 막았다’고 해서 웃고 말았다. 비정규직 입법 하나로도 이토록 복잡한 사태들이 벌어진다. 우리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진보세력은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주도 세력’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당신의 논리는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양극화’라는 세계적 대세에 맞섰으나 힘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제도적 진보’는 성장과 개방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한 대통령 처지에서 경제성장이란 의제를 배제하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성장을 배제하지 않으면,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란 문제가 도출되는데, 그 동력 중 하나가 개방일 수 있었던 거다. 이걸 신자유주의로 비판하지만, 글쎄다. 문제는 ‘신자유주의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런 비판은 추상적이고 현장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자로 지칭한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인가.
과거의 진보적 과제는 주로 정치와 경제 부문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봤듯이 ‘불안한 식품으로부터의 해방’ ‘다양성’ ‘자신의 취향이 보호되고 방해받지 않을 권리’ 등이 부상하면서 진보의 의제가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방식으로 진보를 재단하고, 특정 가치만을 ‘유일한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진보의 특권화’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게 진보야. 다른 주장 하는 놈들은 다 신자유주의자야. 까불지 마’, 이런 태도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진보라는 이념적 명분을 세워 자신을 다른 세력으로부터 차별화하면서 현실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보세력이 ‘경제성장’이나 ‘시장’ 등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장과 개방, 성장 등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피해서도 안 된다. 성장과 시장과 자유주의를 포용하지 못하면 진보는 생존할 수 없다. 오히려 제대로 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가 아니라 진보의 가치다. 한국의 보수가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해본 적이 있는가. 자유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반공주의와 파시즘 아닌가.
하긴 한국의 보수세력은 투명한 시장주의를 하기에는 자신들끼리 지나치게 의리 있는 집단인 것 같다. 공기업 이사를 임명하는 것만 봐도 시장주의 보다 자신들의 인간관계와 연고가 먼저다.
시장의 기본 원칙, 즉 투명성이나 합리성 같은 가치를 지키지 않는 거다. 미국을 봐라. 1930년대 공황은 소수 초거대 기업의 시장독점과, 금융·산업 유착, 정경유착 때문이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부터는 독점과 연고주의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 제도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시장주의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왼쪽)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보의 미래를 함께 연구한 사상적 동지이기도 하다.
당신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아마도 ‘진보정치는 지속 가능한가’일 것이다. 참여정부가 집권 기간 내내 이런저런 사회세력에 흔들렸던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우선 의문을 던져보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 간 축적한 민주적 성과가 이토록 쉽게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진보세력이 시민공동체에 뿌리박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민공동체란 뭔가.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다. 한때 한국에서는 도시의 자영업자들이 개혁세력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여촌야도(與村野都)라고 했다. 이제 자영업자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에 이른다. 그런데 음식점이 100곳 창업하면 이 중 95개가 망하는 상황이니까 자영업자들은 생존에 격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자영업자 층이 지역주의에 골몰하고, 보수언론을 옹호하며, 개발주의에 열광한다. 이분들 처지에서는 부동산 경기라도 살아야 밥집이 되고, 옷집이 되며, 커피숍이 될 것 아닌가. 이처럼 중앙정치의 눈에 잘 포착되지 않는 지역의 기층에는, 개인들의 생활과 소통에 기반한 공동체가 있는 거다. 이런 공동체 중 상당수가 보수 쪽으로 넘어갔다. 더욱이 진보 성향의 시민은 구청이나 동의 사무 업무를 누가 어떻게 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지만 보수는 그렇지 않다. 라이온스와 골프 클럽, 부녀회와 노인회 등의 ‘공동체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시민공동체라는 실체가 존재하고, 그것이 보수의 헤게모니 아래에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진실로 중요한 것은 이런 구조를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정당 차원에서 선거 한 번 이기느냐, 지느냐는 별 것 아니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면, 설사 어떤 진보세력이 집권하더라도 항상 불안하고 단명할 수밖에 없다. 진보가 허약한 이유는 이런 공동체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시민공동체의 역관계는 그대로 지방의 정치권력에 반영된다. BBK 특검법이 논란이 되던 당시 한나라당에서 내린 동원령으로 지역 구의원, 시의원 5000여 명이 국회를 에워싼 적이 있다. 나는 한국 보수의 핵심 주체가 이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진보세력도 그동안 시민운동을 열심히 해오지 않았나.
문제는 진보세력의 시민운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 즉 시민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말도 있지 않나. 그러나 그동안 의미 있는 공동체 운동이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생태, 생협, 마을, 소비자, 문화, 관심, 취미 등 삶의 요구에 기반한 부문에서 공동체 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새롭게 등장하는 사이버 공동체들이 있다. 예컨대 쌍꺼풀과 코수술한 여성들의 사이트인 ‘쌍코’, 하이힐 모임인 ‘킬힐’, 요리 모임인 ‘파리쿡닷컴’ 등 인터넷 커뮤니티가 그것인데, 이들은 촛불집회의 핵심 동력이기도 했다. 취미 때문에 모인 공동체가 정치 의제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다. 이 같은 공동체들에 시민운동과 정치적 의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지역정치와 결합되어야 안정적인 진보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지난 2003년 취임 선서를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최근 발기인 대회를 가진 국민참여당이 핵심 인사들을 내년 지방선거에 내보낸다고 들었다. 당신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이야기다.
대중들은 지난해 촛불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상황을 변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강력한 제도가 이를 가로막았다. 더욱이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으며, 촛불시위나 선거 때나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를 단지 정당으로만 바꿀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나 학생운동도 지금은 진보의 동력이 되기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대안은 생활공동체와 지역정치에서 새로운 동력을 재생시켜 제도를 바꾸는 거다.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시민공동체가 작동하는 공간이 지역정치이기 때문이다. 진보세력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주로 중앙정치만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정치는 민주화와 진보의 빈 공간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남아 있다. 정당만 만들고 부수고 한다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정치를 통해 진보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민참여당을 대표하는 스타급 인물들도 동의하는 이야기인가. 그들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할까.
시민공동체와 지역정치를 한층 더 미래지향적이고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재구성하려면 좋은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지역의 공동체운동, 시민운동, 노동계, 교육계 등에서 좋은 후보를 발굴해내야 할 것인데, 필요하다면 참여정부의 인적 자원들도 이런 ‘아래로부터의 연대’의 한 축이 되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심지어 ‘대선 후보들도 기초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참여정부 세력들 간에도 생각의 편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 자체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중요한 것은 ‘감동 있는 연대’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철저히 희생하는 정치를 통해 대중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맥락에서 몹시 의미심장하다. 노 전 대통령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전부터 봉하로 가겠다고 했다. 그 뜻을 잘 생각해보라. 중앙정치 무대가 아니라 봉하라는 시민공동체에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뜻 아니었을까. 더욱이 그는 생명을 던져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방어하려고 한 인물 아닌가. 내가 지방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털어놓았더니 노 전 대통령은 ‘참 좋은 생각이지만 쉽겠나. 그러나 잘되면 나도 뭐 김해 시의원 출마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만 그가 말한 ‘출마’라는 용어의 함의는, 구체적으로 지방선거에 나가겠다는 의사표현이라기보다 ‘내가 힘 좀 보태줄게’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10일 열릴 예정인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을 위한 무대 시설물들은 부산대 넉넉한터로 옮겨져 설치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산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무대 설치와 관련해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학 측에서 무대설치업체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공연 음향시설이 들어와야 하는데, 총학생회는 음향시설을 들여놓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8일 오후 현재 부산대 정문 등 출입구는 부산대측이 버스 등 차량으로 막아 놓았고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대 총학생회와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저녁 7시 부산대 정문 앞에서 노무현 추모공연 성사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1신: 8일 오후 1시]
무릎 꿇은 학생들 "노무현 추모공연 열게 해 주세요"
"왜 이렇게 앉아 계시는지 타당한 논리로 속시원하게 말해 보세요. 납득이 되면 물러나겠다."
부산대 학생들이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다시 바람이 분다)을 반대하며 정문을 가로 막고 앉은 교직원들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교직원들은 정문 안쪽에 앉아 학생들의 출입을 막았고, 학생들은 1시간 가량 호소하고 기다리다 정문 옆에 있는 작은 통로를 통해 무대 설치에 필요한 시설물을 2대의 트럭에 실어 학교 안으로 보냈다.
부산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부산지역 대학 총학생회는 오는 10일 저녁 7시 부산대 넉넉한터에서 '다시 바람이 분다'를 공연할 예정이다. 부산대 측은 계절학기 수업 방해와 외부인 출입 문제, 정치적 중립, 쓰레기 청소 등의 이유를 들어 불허했다.
▲ 부산대는 정문 앞에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과 관련해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을 설치해 놓았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8일 오전 10시30분 부산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 앞서 부산대 측은 대형 버스 2대를 정문 안쪽에 배치해 놓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했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1시간 전부터 교직원 100여명이 정문 쪽에 나와 막아 섰다.
학생들은 정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교직원들은 버텼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정문 앞에 놓인 바리케이드를 옆으로 들어낸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민환 교수(예술대)는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사용하겠다는데 막느냐"면서 "폭력시위도 아니고, 과거에는 열린음악회도 넉넉한터에서 열었으며, 가만히 두면 조용히 넘어갈 일을 학교 당국이 물리력으로 막으면서 더 문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은 "학교의 모습이 꼭 광화문을 막은 이명박정부와 같다"면서 "최소한 학생 자치권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외부인이 들어왔고, 정문 옆 대형매장(효원플로스)를 통해 외부인들이 얼마든지 학교 안에 들어오고 있다, 축구보러 보고 물건 사러 오는 것은 괜찮고 콘서트 보러 오면 안된단 말이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전에도 학교에서는 탄핵무효화와 광우병 관련 집회가 열렸다"면서 "교직원들은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철도 동의대 총학생회장은 "2009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다"면서 "부산대의 교훈이 진리, 자유, 봉사인 것으로 아는데, 정권 눈치 보는 게 진리이며 교문 폐쇄하는 게 자유이고 학생 탄압하는 게 봉사냐"고 말했다.
▲ 부산대 총학생회가 8일 오전 정문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려고 하자 교직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고 막고 있다.
지난 6월 15일 참여정부 시절 6자회담 대표이자 외무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이 CBS에서 대담을 나눴습니다 (전문 링크). 국내에 크게 어필되지는 못했지만 이 대담에서 송민순 의원은 아주 중요한 사항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즉
“아시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중국, 일본이 3각협의체를 구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 세 나라의 결정에 의존하는 주변부로 전락할 수 있다”
라는 지적을 했죠. 한마디로 현재 북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외교적 지각판이 미중일 3국 중심으로 재편이 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지나친 미일 편중 외교를 밀고 나간 우리나라는 미일의 외교적 하부구조, 즉 협상판의 주연이 아닌 판밖에서 기웃거려야 되는 액스트라 신세로 전락할 지경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한번 송민순 의원의 지적을 들어보도록 하죠.
"바깥에서 의견을 교환해서 자기 입장 반영하는 것 하고 자기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에서 자기가 빠져있는 것 하고는 엄청난 차이죠. 창밖에서 안에 들어가서 이런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하고, 자기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자기는 빠져가지고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분들에게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위기상황이 감이 오시나 모르겠습니다. 예전 김영삼 정부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돈은 돈대로 퍼주면서도 정작 판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하나도 모르는 답답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는 얘기입니다.
여기까지야 집권초반부터 대북, 대중 외교를 멀리하고 대미, 대일 외교에 전력한 이명박 정부의 업보라고 보면 그만입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 최근 한 블로거가 인상깊은 주장을 펼쳐지고 있습니다. 즉 이렇게 한국이 판에서 외톨이가 된 이유가 노무현 정부시절 북핵문제에 미일과 다른 의견을 견지한 까닭이라는 것이죠. 즉 현재 한국이 졸지에 액스트라 신세가 된 것이 노무현의 설레발 때문이 란 주장입니다. 실제로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도 또한 실력도 없었는데, 괜히 노무현 정부가 워싱턴의 분위기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지레 겁을 먹고 과민 반응을 보였다는 주장이죠. 이런 과민 반응이 한미관계의 악화를 불렀고 결국 우리는 빠진채 미중일 3각협의체 구성을 불렀다는 겁니다.
그럼 부시 행정부 기간동안 정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계획이나 과연 없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시 행정부 초기에 부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인 럼스펠드를 포함해서 총 75명의 주요 행정부 및 군부 인사를 직접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Plan of Attack'이란 책을 쓴 밥 우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양반이 쓴 'Plan of Attack' 3장에 보시면 인상깊은 럼스펠드의 발언이 나옵니다.
즉 럼스펠드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북한 전쟁 계획을 가져와 보라" 고 명령을 하는 장면이 나오죠. 뜬금없는 그의 명령에 당시 준비되어있던 Op Plan 5027 을 브리핑하지만 그 작계 5027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즉 아예 총력전 수준의 전면전과 완전히 말빨로만 떼우는 수사학적 접근법이란 양극단의 선택밖에는 제시되지 않고 있었죠. 따라서 럼스펠드는 휘하는 장교들에게 좀 더 민첩하고 실현가능한 전략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리죠. 이게 2002년 5월 얘기입니다.
2002년 12월 미국 전략사령부(Stratcom)가 이 임무를 맡게 되었고 이런 실현가능한(?) 대북한 군사계획은 2003년 11월 완성이 되는데, 이름하여 CONPLAN 8022-02 입니다. 일종의 개념계획으로 볼 수 있는데 내용이 좀 심각합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이란을 대상으로 선제적(preemptive)이고 공격적(offensive)인 타격력을 확보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런 타격에 통상적인 재래식 전력외에도 소형 전술핵을 동원한 선제공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워싱턴 포스트, 윌리엄 알킨스 기자: A Global Strike Plan, With a Nuclear Option)
북한이 미국 본토를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해 공격할 징후가 있거나 (재래식 전력으로) 파괴가 어려운 목표를 파괴할 필요가 있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해서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The global strike plan holds the nuclear option in reserve if intelligence suggests an "imminent" launch of an enemy nuclear strike on the United States or if there is a need to destroy hard-to-reach targets.)
미군에는 CONPLAN 8022 외에도 다수의 개념계획들이 있습니다만,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CONPLAN 8022가 다른 개념계획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점이 있는데, 그건 CONPLAN 8022는 소규모 작전을 통해 지상전의 위험, 즉 대규모 보병전력이 희생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실현가능성이 높은 거죠. (CONPLAN 8022 is different from other war plans in that it posits a small-scale operation and no "boots on the ground." )
최종적으로 CONPLAN 8022가 실전 준비 완료가 된 것은 2004년 1월로서 미국 전략사령부 사령관인 제임스 엘리스 대장이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합니다.
제가 소개해 드린 내용은 워싱턴 포스트의 윌리엄 알킨스 기자의 2005년 5월자 기사입니다만, 실제로 미국 전략사령부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준비상태와 실제 적용 가능성을 점검해 나갔고, 매년 11월 Global Lightning 훈련을 실시했죠. 실제로 2005년 11월에도 CONPLAN 8022를 포함한 Global Lightning 훈련을 성공리에 마쳤죠. (출처: 미국 전략사령부 뉴스 기사: JFCC for Space and Global Strike achieves 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 12/1/2005)
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전술핵의 선제적 이용을 명문화한 CONPLAN 8022이 폐지된 것이 2007년 7월입니다 (출처). 물론 CONPLAN 8022가 폐지가 되긴 했지만 또 다른 전략핵전쟁계획인 OPLAN 8044는 여전히 북한을 주요 전략핵공격의 타격 목표로 삼고 있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내의 한 블로거가 잘 정리된 포스팅을 한 것이 있으니 자세한 언급은 그 블로거의 글로 대체할까 합니다. (출처: 소넷: 미국 전략사령부 북한을 겨냥)
일단 간단히 요약을 해 보겠습니다. 최근 정보공개법에 의해 전략핵전쟁계획인 OPLAN 8044의 일부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상단 문서), 실제 타격목표에 대한 내용은 삭제가 된 반면에 바로 위에 보시는 사진 자료는 삭제가 되지 않은 거죠. 왼쪽의 미사일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입니다. 이걸 근거로 북한이 미국 전략사령부의 공식적인 핵공격 목표가 되었다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결국 선제 전술핵 공격계획인 CONPLAN 8022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또 다른 전략핵전쟁계획인 OPLAN 804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핵공격 목표라는 거죠. 현재 OPLAN 8044는 revision 05까지 업데이트 된 상태입니다.
결론1. 미국은 북한을 전술핵으로 선제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정리한 미국의 북한 공격계획들, 특히나 선제적으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려는 계획들이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가 되고, 실제로 현장의 작전계획으로 현실화되고 매년 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과정중에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북한에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공격을 할 계획이 없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전현직 백악관 관리들도 각종 저술 활동을 통해 실제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발표했고요. 국내에서도 이런 신문 기사나 저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은 원래부터 북한을 무력도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는데, 그런 워싱턴의 분위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노무현 정부가 지레 겁을 먹고 북한을 감싸며 미국에 대항해 무리하게 한반도에서 무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반대하다가 미국과의 관계를 해쳤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죠.
오늘 저의 포스팅을 보신다면 재래식 전력을 동원한 대규모 지상전은 몰라도 적어도 전술핵을 이용한 선제적 북한 타격 계획은 단순히 개념계획 수준을 넘어서 제법 깊숙하게 현실적으로 준비가 되었고 현재도 수행가능한 형태로 준비 되어 있다고 보시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그래도 어차피 계획일 뿐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저도 이런 반문을 해 보겠습니다.
가령 현재 북핵문제가 북한 중국이 한편이 되고 미일과 한국이 한편이 되어서 군사적 긴장이 날카롭게 치솟은 상황을 가정해 보죠. 중국이 서울을 포함한 국내 대도시들을 핵으로 선제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런 개념계획들을 중국군 전략핵사령부가 매년 반복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위기감이 어떨까요? "그냥... 개념계획일 뿐이잖아...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 "한국인의 신경은 좀 더 굵어질 필요가 있다.(출처)"라고 말하실 수 있을까요?
결론 2.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대북 군사력 사용을 적절히 견제하면서도 한미동맹을 이전 어떤 정부보다도 강하고 좋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정말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과의 관계를 해쳤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전직 백악관 관리 한분의 인터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마이클 그린이라고 노무현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이 함께했던 8번의 정상회담중에서 5번을 총괄지휘한 전 백악관 동아태 선임보좌관이 있습니다. 아마도 국내, 국외를 통털어서 당시 한미 정상간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보시면 틀림 없을 겁니다.
그가 보수지인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2008년 2월 15일 기사죠 (출처) 물론 중앙일보는 마이클 그린 전보좌관 입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폄하하는 표현을 하나라도 찾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만 정작 마이클 그린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반복적으로 하죠.
"한미동맹에 대한 그(노무현 대통령)의 기여는 (친미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그가 퇴임하는 2008년2월 현재 한미 동맹은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 "부시 대통령은 노대통령을 시라크나 슈뢰더보다 높게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노 대통령 5년을 거치면서 한미동맹은 전임자 김대중 정권 시절보다 훨씬 강하고 좋아졌다고 단언한다"
최종적인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노무현 5년 동안 참여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도발계획을 적절히 견제하면서도 한미동맹을 이전 그 어떤 정부 시절보다 훨씬 강하고 좋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