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의 집은 인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 드넓은 정원에는 온갖 꽃이 다양하게 피어나고, 벌 나비가 춤추며 새들이 노래했다. 갖가지 과실나무에는 철철이 탐스런 과일이 달렸다. 동네 아이들도 키다리 아저씨의 집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키다리 아저씨가 아이들을 쫓아내고는 대문을 닫아걸고 말았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와 마음대로 노는 것이 싫어진 것이었다. 아저씨가 대문을 닫고 난 뒤 집안이 한결 조용해졌고, 아저씨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4월도 지나고 5월도 다 갔건만 뜰에는 눈이 가득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저씨는 큰 키를 발돋움하고 멀리 담장 밖을 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담 밖에는 이미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아이들이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째 이런 일이? 아저씨는 무릎에 고개를 깊이 파묻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아저씨가 다음날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는 대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내가 잘못했다. 오늘부터 여기서 놀아라! 자, 선물이다.”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아저씨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당의 눈이 순식간에 녹고 꽃이 피어나더니, 벌 나비가 날고 새들이 노래하는 것 아닌가.
수십 년 전에 읽었던 동화의 내용이다. 웬 동화? 행복해지려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 아니던가.
이상도 하지. 왜 찬바람 쌩쌩 부는 추위에 입춘(立春)이라는 절기를 둔 것일까? 봄이 되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할 텐데 ... ? 가만, 다시 보니 봄을 세운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 마음에 봄을 세울 때가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춥다고 너스레나 떨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대문을 열어젖히고 떡하니 붙여 본다. ‘봄을 세우면 크게 길하고, 밝은 기운으로 채우면 좋은 일이 많으리라(立春大吉 建陽多慶).’
기다리는 사람에겐 봄은 그냥 봄일 뿐
마음에 봄을 세워야 향기 가득하리니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은 사람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것(?)을 지키려 한다. 남에게도 다 있는 것을 자기에게만 있는 걸로 착각해서 경계하는 것이다. 좀 더 살펴보면 아무 것도 없는데 괜스레 혼자서 난리다. 그러니 그 마음속 얼음을 먼저 녹여야 한다. 그리고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 보라.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하고 살만한 곳인가 말이다.
한 거사님이 얘기 중에 휴대전화기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청초하게 꽃을 피운 난(蘭) 사진이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난이란다. “난을 참 잘 키우시나 봐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집에 있는 난은 꽃이 안 피는 걸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사무실 난은 낮 동안에 쌀쌀한 베란다에 두었고, 집에 있는 난은 따뜻한 거실에 두었다는 것이다. 베란다의 난은 위기감을 느꼈기에 꽃을 피웠지만, 거실의 난은 안락함에 취해 꽃대를 올리지 않은 것이었다.
성공하고 싶으신가? 행복을 느끼고 싶으신가? 지금의 안락함에서 벗어나시라. 지금 느끼는 추위 속에 봄을 세우시라. 스스로가 희망을 세우고 세상을 포용하는 따뜻한 마음을 회복할 때, 비로소 꽃이 피고 벌 나비 나르리니.
황벽선사께서는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멋들어진 시를 선물하셨다. ‘한 번 뼈에 사무치는 추위 만나지 않고서야(不是一番寒徹骨), 어찌 코 찌르는 매화 향기 맡을 수 있으랴!(爭得梅花撲鼻香)’
향기로운 봄은 모름지기 스스로 봄을 세우는 사람의 몫일지니.
서울 개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