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의 장 듀발. 이상의 금홍이, 代入이 가능한가, 동거와 탐익은 애욕일까, 과연 이상은 그의 원고지에 진솔한 시적 순애보가 채워질까. 다시 이상의 실존을 추적한다.
1933년 3월 7일 금홍을뒤늦게 도착한 구본웅에게 소개했다. 다음 날, 이상은 구본웅의 의견이든 조언이든 들을 의향이 처음부터 없었지만 객기가 다분이 깔린다.
"정말 그럴테야?" 하고 본웅이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그 우려에 경의를 섞어 말했다. 그렇다면 대답은 쉽다. "아무튼 내 말초신경이 당분간 그 계집의 말초신경과 떨어질 줄 모른단 말이야. 참 이거 천재희유의 사건이거든.... 커커커"라고 친구 본웅의 선의에 찬 불구자의 우정을 그는 교만하게 압도했다. 그는 배천 온천의 국향여관에서 능라정 사이를 왕래하면서 이상 금홍의 서극을 아마도 그가 처음으로 여자를 사랑해 본..... (<이상평전>, 고은, 《향연》, 2003. 12)
고은의 <이상 평전>의 '서설' 중 인용
[서설]
이상은 무엇인가. 이상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이 두 가지 물음은 이상문학이 현대 한국 문학과 만나는 큰 교차점에서 연속적은 응답을 얻울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상 문학이 실질이 해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작가의 음절은 그것 자체로서 궁극적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1910~1937년의 이상이 남겨놓은 이단자적 업적과 암울하기 짝이 없는 스캔들, 오만한 자의식의 허장성세는 바로 그것 때문에 문학사 진술에서 가장 극채색極彩色으로 도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상의 동시대에서는 그와 관련된 식민지 작가의 소수자에 의한 찬성을 둘러싼 많은 비난이 가해졌으며, 그의 문학은 일단 최초의 부정 정신에 의한 실험문학으로서 정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문단적 예외자로서만 강조된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전후, 그런 '책임의사' 이상은 처음으로 전후세대가 만날 수 있었던 가장 사실적인 전후문학의 우상으로 조급하다시피 확인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1950년대 전후세대에서, 그가 경험한 이제까지의 비동화성에 대한 보복으로서 뜨거운 동화성을 폭발시킬 만한 영향력을 제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왜 이상이 전후세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이의 없이 받을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에는 이상문학 자체로서만 해답이 가능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전후세대가 그들의 전후문학을 옹호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전시대적 전위前衛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 필요성으로부터 그들은 많은 전전권戰前圈의 문학을 공격할 권한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상이 갖추고 있는 문학적 제스처와 여러 가지 절망적인 단막의 극, 그의 인상적인 초상, 그의 짧은 생애들은 그의 문학이 보여주고 있는 도저한 미완성성, 다다적 자아의 파산들에 의해서 전후 지식인의 제 1의적인 모사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실지로 6ㆍ25사변의 전쟁을 경험한 젊은 작가들이나 대학의 문학 지망자들에게 프랑스 실존주의를 만나는 일과 비교되는 차원에서 이상은 그들이 만나는 문학 집행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에서 이상과 만나지 않은 대학생은 지진아밖에 없다는 속담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것은 단적으로 이상문학이 발휘하고 있는 관념적 억양, 의식의 굴절, 암기된 이그조티시즘, 고도의 위장술 그리고 그의 비여성적 유희와 그의 수사에 넘치는 과장된 등음騰音 사이에서 빛나는 비정한 감각, 무엇보다도 그의 모든 문학에 들어 있는 그 자신의 창조적 변절 들이 전후의 페허에 집요한 흡인력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과 딱 마주친 전후세대의 풍속이었다. 이상은 그의 시대를 정규적인 상황의식으로 의식하지 않고 그 자신의 고민을 시대에 만화처럼 투여함으로써 그가 산 시대 전부를 희극으로 몰수해 버린 예술가의 광태를 유감없이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매우 행복한 파산자였다. 따라서 그는 그가 산 시대와 상황을 근대적 낙후 현상이라는 사실판단 밖에서도 그 자신의 독특한 반어 형식으로써 모면하고 있었다. 이런 이상의 특질은 무엇보다도 그가 문화의 진화를 문화사의식으로 수확하지 않고 그 자신의 배타적인 의식 단위로서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상 이전과 방법적으로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말할 수 있다. 그의 시가 얼마나 재래적인 운율을 파괴했는가에서도 이상의 방법은 독립된다. 이런 단절은 적어도 새로운 일에 대한 명분론으로 발전하지만 사실상 그는 그런 명분을 그 자신의 사생활문학으로 대치한 것이다. 이런 문학의 사물화는 현대문학을 통해서 작가 자신의 사어私語 또는 작가 자신의 기명이 압도적으로 삽입되어서 그것이 독자에게 실록도착증實錄倒錯症의 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은 이상밖에 없다는 단정에 이르게 한다. 그는 늘 외부에 대하여 부정하는 무서운 사생아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적 에고이즘의 일차원에서 이상의 마이너스를 지적할 경우 그가 배태하고 있는 정신적 절경 역시 이상문학의 원점으로서 발굴하지 않으면 안된다. 28세 요절이라는 황홀한 일기는 이른바 19세기적인 예술가에게 맡겨진 운명을 예시함으로써 그가 이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에고이즘밖에 없다는 것도 아울러 상정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20대를 다하지 못한 단기의 연대로서는 아무리 광의의 의미 영역을 그의 고혹적인 재능으로 이끌어들인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변해辯解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화는 소모된 뒤에는 이상의 문학을 가정할 수 없는 일이 새삼스럽게 강조된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상이 우리가 문학 또는 문학사를 말할 때마다 일종의 원초 모델로 떠오르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후략)
(<이상평전>, 고은, 《향연》, 2003. 12, 9~12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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