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최소한 연애를 할 때에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타입이다.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음식점에 가면 아무거나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영화나 책이나 놀이도 함께 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신중하고 내성적이고 사려깊다는 평도 받지만, 때때로 개성도 자기 생각도 없다는 오해도 받는다. (사실 연애가 아니면 매우 독창적이고 개성만점에 자신감 넘치는 사람일수도 있다.) 주로 말하기보다는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연애할 때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연애를 할 때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매우 싫어한다. 어차피 세상의 많은 일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데 굳이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점들 때문에 당신은 연애를 아예 시작도 못하거나, 끌려다니거나, 관계를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연애를 할 때 적극적으로 상대를 리드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뜻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소극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말이나 행동의 실수가 적기 때문에 신중하다는 평도 듣는다. 연애의 기본 덕목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인데, 당신은 특별히 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가 더 쉽다. 가끔 자상하다는 오해(?)도 받고, 많은 이성 친구가 당신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한다.
당신은 적극적으로 판단을 내리거나 주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연애 상대에게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이 당신의 속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해 하는 경우가 태만이다.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애인에게 끌려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면 불만은 쌓이고 해소할 길은 없으니 답답한 상황에 빠진다.
연애를 할 때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든다면, 이후에 의사결정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장점을 살리라. 남들이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돌려주기만 해도 당신은 훌륭한 상담역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브람스 (Johannes Brahms)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1833~1897.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어머니로부터 성실한 성격을 물려 받은 브람스는 전형적인 음악 모범생이자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고된 정교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후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브람스는 1853년 세계적인 거장이었던 슈만을 만나 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게 된다. 슈만은 브람스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를 집에 초대해 한달 동안이나 머물게 했다. 슈만에겐 클라라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클라라는 남편 못지 않은 천재적 음악성에 뛰어난 피아노 연주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인생에 전부였다. 슈만은 브람스 음악 인생의 스승으로, 브람스는 스승 덕에 음악가로서 출세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 연정을 품으며 그녀를 평생 짝사랑한다. 1854년 스승 슈만이 정신병으로 투신 자살을 한 뒤로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더욱 애절해진다. 클라라는 당시 7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고, 브람스는 죽은 스승에 대한 존경과 클라라에 대한 연정으로 클라라와 그의 가족들의 생활을 평생 책임진다. 브람스는 자신보다 14살이나 연상인 클라라를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까닭에 평생 다른 여자와 교제하지도 못했으면서, 스승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클라라에게 청혼을 하지도 못하고 33년간 주변을 맴돌았다. 1986년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브람스는 "내 인생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었다"며 절망에 빠졌고, 이듬해 그도 따라 숨을 거둔다.
가우디 (Antonio Gaudi y Cornet)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 1852∼1926.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출생, 어릴 때부터 관절염을 앓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어울리기는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관찰"을 하며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는 대학 시절 돌아가셨고, 그는 이후 아버지와 여조카와 함께 살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은 가우디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남겨, 그는 이후 평생 결혼도 교제도 하지 않으며 남은 가족들과 생을 함께 한다. 1911년 열병으로 죽다 살아난 가우디는 이듬해 여조카의 죽음, 그리고 구엘을 비롯한 수많은 후원자들마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는 외부와 담을 쌓은 채 완전히 거지와 다름없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파밀리아 성당의 인부들과 함께 먹고 자고, 차림새는 오히려 인부들보다 훨씬 남루한 꼴이 돼 갔다. 그는 끝없이 일을 하다 지치면 길바닥에 누워서 잤고, 깨어나면 다시 일에 매달렸다. 그리고 1926년, 그는 한밤중에 길을 건너다 전동차에 치었으나 노숙자로 오인된 까닭에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한 채 숨졌다. (가우디가 자신의 영혼을 바쳤고, 죽어서 그의 육신이 묻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현재 세계 각국의 모금을 통해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앨런 튜링 (Alan Mathison Turing)
영국의 수학자,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아버지. 1912년-195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튜링은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인 학생이었으나, 서툰 말투와 추레한 옷차림 덕에 항상 외롭게 지냈으며, 선천적인 동성애자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천재 수학자였던 그는 독일군의 암호 이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를 만들어 연합군이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전쟁 후에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기초 이론 및 인공지능의 기초를 창안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발명자이자, 알려지지 않은 전쟁영웅 튜링은 그의 동성애 기질 때문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당시 영국 법에 의하면 동성애는 명백한 풍기문란 죄였다. 1951년 어느 날 우연한 사건에 의해 튜링의 동성애 기질은 경찰들에 의해 발각됐고, 튜링은 1년의 구금형을 선고 받는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자가 구금형을 받지 않으려면 약물치료로 형을 대신해야 했는데, 몸에 여성 호르몬을 주입하는 방법이었다. 동성애자의 성적 본능을 감퇴시켜 범죄의 재발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튜링은 감옥에 가지 않고 연구를 계속 하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택했지만, 여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그의 연구 및 강연 생활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튜링은 외부로부터 쏟아지는 수모와 공공연한 조롱에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았고, 결국 1954년, 자신의 집에서 독극물을 묻힌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튜링은 조국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한, 인류의 기술산업 발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영웅이었으나, 영국에선 그를 기록에 남기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아일랜드의 화가, 1909~1992. 아일랜드의 시골에서 태어나 방 심부름하는 하인, 가구 디자이너 등을 전전하다 30세가 되어서야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원래 돈 있는 중산층 집에서 태어났으나 정신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힘든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그는 선천적인 동성애자로, 16살 때 집에서 자기 누이 옷을 훔쳐 입다가 격노한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 쫓겨났다.) 얼떨결에 독립생활을 시작한 베이컨은 런던, 베를린을 전전하며 장식 미술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뒤에 노름에 미쳐 돌아다니며 몇 번의 소소한 전시를 거치다 전업작가로 전향한다. 기본적으로 베이컨은 지독히 폐쇄적인 완벽주의자로, 마음에 안 드는 그림 수백 점을 파괴했으며, 한 작품에 오랜 세월 매달리며 일부는 평생 완성시키지도 못했다. 그는 마구간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에서 1961년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청소하지 않은 채,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으며(심지어 그림 모델과 같이 있는 것도 매우 싫어했다), 자폐증 환자처럼 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작업실에 쌓이는 먼지를 방치해 먼지와 물감이 버무려져 발생하는 "특수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3일 넘게 수염을 깎지 않은 얼굴에 물감을 발라 붓 대신 쓰기도 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바닥부터 시작한 그의 그림은 무시무시한 잔혹성, 엽기적 비주얼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엄청나게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에 속하며,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 10명, 그리고 그 중 최고의 창조자로 선정됐다.
당신에겐 별다른 돈 욕심은 없다. 하지만 다른 욕심은 있다. 당신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떻게 돈이 될 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 일이 좋아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당신 때문에 등골이 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모든 성공이 결국 부와 명예를 가져 다 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신이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뜻밖의 부자가 될 수 있다.
당신의 장점은 돈에 초연하다는 점이다. 의외로 돈은 쫓아다니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없고 돈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경제적 효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니 냉정함과 일관성이 유지되고, 일관성이 있으니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장기적인 목표들은 보통 사람들이 달성하기 어려운 것들이므로 당신의 성취는 그 희소성 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 희소한 가치가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
당신의 문제점 역시 돈에 초연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신은 웬만한 주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돈과는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는 당신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당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돈에 크게 목매달지 않는 것이 좋다. 욕심이 없을수록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고 마음을 비운 사람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단지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는 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당신에게도 좋고,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다. 그리고 만약에 성공한다면 관대함을 보여주라. 자신이 번 돈을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면 당신 때문에 고생하거나 피해본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다.
리자청
1928년 생. 홍콩 이름 리카싱. 14살 무일푼의 소년 가장에서 아시아 최고의 부자이자 세계 5위의 거부가 된 사나이. 그는 자신이 번 돈에 "책임감"을 느끼는 몇 안 되는 부자였다. 그는 돈을 벌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부자가 된 뒤에는 명목상의 사회 환원이 아닌, 실제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신이 발로 뛰는 기부 사업을 펼쳤다. 그는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대군"이란 칭호와 함께 가장 위대한 부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정문술
1938년 생. 중앙 정보부에서 오랜 세월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퇴직, 이후 "창업만이 살길이다"라고 판단해 반도체 생산설비 업체인 미래산업을 설립한다. 이후 사기와 제품의 상품화 실패 등으로 큰 돈을 날리고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 오늘날 한국 반도체 설비 업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오늘날 천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갑부로, 정문술 사장은 자신의 회사를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주고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다.
잉그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1926년 생. 가정용 조립가구 회사인 이케아의 창업주. 스웨덴의 시골 농가에서 수제 가구를 판매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 그의 사업은 기존 스웨덴의 가구 사업체들의 극심한 견제로 엄청난 위기를 맞았고, 캄프라드는 이때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 해외로 진출해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상당수의 미국 기업들이 경쟁사들을 몰락시키며 성공한 것에 비해 이케아는 경쟁사들의 연합으로 망할 뻔한 보기 드문 사례임.) 소비자들에 대한 철저한 신용과 품질로 명성을 얻은 이케아는 세계 제일의 가구 생산 판매업체로 성장하며 캄프라드를 오늘날 세계 5대 부호 중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오프라 윈프리
1954년 출생.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토크 쇼 진행자가 된 인물. 오직 탁월한 방송감각과 진솔한 입담으로 토크 쇼의 여왕으로 등극,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으로 추앙 받고 있다. 그녀가 소개하는 책은 바로 다음날 베스트 셀러가 되는 등 그녀는 말 한마디로 미국 전체를 움직이는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늘날 자신의 제작사를 운영하며 직접 방송/영화 제작과 출연에 참여하고 있다.
린 아이롄
Olivia Lum. 1960년 생. 포브스가 선정한 동남아시아 40대 부자의 최연소 인물이자 유일한 여성. 부모에 의해 버려져 60대 미망인의 손에 의해 자랐으며 폐광촌에서 극도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29세에 폐수 정화처리 사업을 시작, 자신이 직접 영업하고, 용접 일에 A/S까지 담당하며 단 시간 내에 싱가폴 최대의 정화 처리 업체로 우뚝 선다.
당신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의 감정을 잘 배려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앞장서서 큰 소리를 내는 일도 없으므로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당신이 눈에 띄지 않는 건 당신이 정말로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단지 당신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당신은 공기나 물 같은 존재라서 없어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그 중요함을 깨닫지 못한다. 많은 경우 당신 같은 사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선택하는 생존 방식이 바로 위장이다. 눈에 띄지 않으면 공격 당할 일도 없다. 당신은 바로 그런 위장능력이 뛰어나다. 당신에겐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그것을 별로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걸 성급하게 표현하는 대신 대세가 올 때까지 당신은 조용히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이다. 당신은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당신이 속한 조직이나 정당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조용한 일꾼이다.
당신이 욕을 먹는다면 그것은 주로 당신의 존재감에 대한 비난이다. 당신은 하는 일도 없이 국민의 세금만 축낸다는 욕을 많이 먹는다. 남들의 눈에 띄는 일을 별로 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당신이 속한 유형의 정치인들 중에는 정말로 아무 일도 안 해서 욕을 먹는 사람도 있지만, 금방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조용히 주어진 일에 충실한 당신의 미덕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의 내면은 과격할지 몰라도 겉으로는 상당히 무난해 보이는 사람이다. 무난하게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지내되, 가끔은 눈에 띄는 일도 해주도록 노력하라. 당신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식시키면 대중은 당신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당신이야 말로 의외로 가장 생명력이 긴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래 너무 앞서지도 말고 뒤서지도 말고 중간만 가라고 하지 않던가. 당신은 바로 그 중간에 해당한다. 정치판에서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오래 살아남으면 그 연륜자체가 자산이 되어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장수하는 정치인들은 당신 같은 무색 무취의 존재감도 없던 인물인 경우가 많다. 갈등은 피하고 대세에 순응하라.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자리를 지켜라. 이 세상에서는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윤보선
1897-1990. 구한말 중추원 의관을 지낸 윤치소의 장남으로, 해방 이후 근 현대사를 대표하는 명문가의 자손이다. 여운형의 주선으로 상해 임시정부로 들어가 본격적인 독립운동가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1945년 해방과 함께 정계에 투신,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서울시장에 임명됐으며, 1949~50년 상공부장관 역임. 1952년 이승만 대통령과 결별하고 1959년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거치면서 야당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후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쿠데타 진압을 위해 병력 동원을 요구했음에도 군내 유혈 사태와 북한의 침공을 우려해 거절하는 등 쿠데타 방조에 일익을 담당한다. 그는 쿠데타에 대한 비판도 지지 성명도 발표하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다 결국 하야한다. 재미있게도, 그는 1963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 때 민정당을 결성해 후보로 출마,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적은 표차(15만)로 낙선한다. 이후에도 그는 박정희의 폭정에 맞서 단식 시위, 대통령 출마, 유신 반대 성명 발표 등 반체제 운동에 앞장 선다.
공양왕
1345-1394. 고려 제34국왕(재위 1389∼1392). 고려 말 이성계 일파에 의해 “등 떠밀려” 45세의 나이에 보위에 오른 고려의 마지막 왕. 우유부단한 성격에 겁도 많고 잘 우는 인물이라 이성계 일파가 만만하게 보고 허수아비처럼 추대한 왕이다. 그러나 그는 순순히 왕위를 이성계에게 물려주긴커녕 정몽주로 대표되는 이색 계열을 적극 등용하고 신임해 되려 이성계 일파를 코너에 몰아 넣었다. 그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나름의 논거를 대고, 논거가 부족하면 감성에 호소하고, 혹은 딴청을 피우며 필사적으로 버티며 무너져 가는 고려의 운명을 지탱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정몽주가 피살 당한 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성계에서 왕위를 물려주고 만다.
인조
1595-1649. 조선의 16대 국왕(재위 1623-1649). 선조의 손자로 인조반정을 통해 숙부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한 인물. 광해군의 “실리주의” 외교를 철폐하고 망해가는 명나라를 지지하는 “명분주의” 외교를 폄으로써 한반도를 다시 전란으로 몰아 넣었다.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패배한 뒤 전쟁보상금을 물고 명을 치기 위한 군을 징발 당하는 등, 결과적으로 인조의 외교는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한다. 그 후로 평생 청나라에 대한 지독한 피해망상에 시달리기 시작, 청나라로부터 신식 문물과 사상을 들여온 자신의 친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을 방조(?)했으며, 그의 부인과 처가를 몰락시키고, 소현세자의 아들들마저 제주도로 귀양 보내 죽게 만든다.
송시열
1607-1689. 호는 우암(右菴). 16-17세기 급변하는 시기에 태어나 보수파의 영수로 활동한 거물 정치인. 그는 당대 주자학 학문의 최고 권위자였을 뿐 아니라, 극도로 청렴한 생활에 부모에 극진히 효를 행했고 타인(특히 여성들)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등 주자학의 도를 몸소 실천한 도인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국력의 발전과 백성의 삶을 중시하기 보단 유교의 도와 당파의 이익을 지키는데 급급했고, 결과적으로 조정이 복지부종, 당파 싸움에 빠져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는 자신이 배운 주자학의 소신에 따라 정치를 했으나, 그 결과는 국가적 정체와 혼란을 낳았다. 그리고 그가 이끌었던 노론 세력은 조선 말까지 정권을 잡으며 국가를 쇠락하게 만드는 악덕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된다.
당신은 상황파악이 빠르고 행동도 그만큼 과감하다. 나서야 할 때, 숨어야 할 때를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안다. 당신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그건 당신의 인품이나 지도력 때문이 아니다. 그저 당신을 따르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은연중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에게 별로 책임감을 느끼진 않는다. 삶과 죽음은 운명이고 내 운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듯, 다른 사람들의 운명도 당신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황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행동을 즉시 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터는 당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환경이다.
당신은 순간의 판단에는 능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은 부족할지 모른다. 상황파악을 제대로 했더라도 그것이 단기적 이익에만 그칠 때 그런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 당신을 궁지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개인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전쟁터에서는 더욱 그런데, 궁지에 몰린다는 것이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신은 급변하는 환경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빠른 판단과 행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으라. 그곳에서 당신은 슈퍼맨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당신 곁에 모여드는 동료들을 도와주라. 장기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언제나 win-win을 추구하라. 당신이 살린 동료가 당신을 살려줄 수 있다. 당신이 비록 고수이긴 하지만, 당신보다 더 뛰어난 고수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을 찾아서 그 비결을 배우라.
이순신 1545-1598. 한반도가 낳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전설의 해군 제독. 그는 영국의 넬슨이나 일본의 도고처럼 전통적으로 발달한 해군력도 없이, 서양으로부터 전수 받은 기술력도 없이, 오직 혼자만의 천재적인 지략과 의지로 동양 최강이던 일본 수군을 섬멸했고 나라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했다. 조정의 지원이나 독려는커녕 가혹한 대접과 방해만 받으면서도 23번의 해전에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기적의 불굴의 용사.
살라딘(Saladin) 1138-1193. 아랍어 본명은 살라 아드-딘 유수프 이븐 아유브. 젊은 시절 이집트, 예멘,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의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고 아유브 왕조를 창시한 술탄. 야만적인 십자군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영웅이자 이교도와 침략자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위대한 정복자.
아라비아의 로렌스 T E Lawrence. 1889-1935. 영국의 고고학자, 작가, 군인. 우리에게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전투, 학문, 문학, 예술, 운동, 전투 등 모든 분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인물. 그는 도덕적으로도 완벽했던 인물로 아랍 민족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쳤으며, 이후 세속적 명성을 피해 속세에서 고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 기원전 247-183. 북 아프리카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카르타고의 흑인 장군. 카르타고가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뒤, 총지휘관으로 2차 포에니 전쟁을 이끌었다.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대패 시킨 최초의 이민족으로 역사적인 전쟁 영웅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본토가 로마에게 침략당하고 이를 돕기 위해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와 격전을 벌였으나 분패, 시리아 등지로 피신했다가 자살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 기원전 356-323. 본명은 알렉산드로스 트리토스 호 마케돈. 나폴레옹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일컬어지는 전쟁의 천재. 사상 처음으로 그리스 반도를 통일하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최강의 정복자였으며, 정치 문화적으로도 매우 성숙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모든 나라와 민족에 한없는 관용을 베풀었다. 대제국의 왕이 된 그는 모든 속국민들을 평등하게 대우했으며, 모든 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해 주었다.
칭기스칸 1162-1227. 본명은 테무진. 몽골의 군인이자 정복자. 1206년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칸이 돼 중앙 아시아, 중국, 러시아, 서남 아시아, 동유럽까지 정벌하고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다. 그가 이끈 몽골 기마대는 의심할 나위 없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였으며, 또한 가장 잔혹했던 군대이기도 했다. 손자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세운 후 원의 태조로 추대됨.
도요토미 히데요시 1536-1598. 중세 일본의 군인이자 전국시대를 마무리 한 통일 군주. 16세기 오다 노부나가가 시작한 일본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고양된 국력을 바탕으로 대륙 정벌을 감행한다. (바로 임진왜란.) 그는 천재적인 군인이자 지략가, 그리고 정치가로 일본 내 최고의 실력자로 군림했으나, 무모하게 조선을 침략했다가 엄청난 수의 군대를 잃었고 그의 사후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1821. Naopleon Bonaparte.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가장 천재적인 군인이었던 프랑스 장군이자 유럽의 정복자. 전쟁에 있어선 완벽할 정도로 뛰어났으나, 정치적으로는 미성숙한 인물이었다. 허영과 욕심에 휩싸여 타인들을 배려할 줄 몰랐으며, 승리에 도취돼 여러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당신은 현실적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 또한 당신은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닌, 성장을 위한 변화를 추구한다. 무모함은 당신과 가장 거리가 먼 형용사이고, 주도면밀이 당신을 가장 잘 묘사하는 단어이다. 당신은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모험을 걸기 보다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한다. 고집을 부리기 보다는 세상에 순응하고 거기에 맞춰서 변화하려고 한다. 이런 당신에게 어울리는 브랜드 이미지는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실속은 다 챙기고, 게다가 오래 살기까지 하는 거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만의 가치를 위해서 기업을 운영하지도 않고 혈기를 못 이겨서 무모한 도전을 하지도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시장에서 당신의 기업이 살아 남고 이윤을 실현하고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안다. 당신은 세상이 무서운 줄 안다. 당신은 안정을 추구하지만 시장이 원할 때면 남들보다 반 발짝 늦게 변화를 추구할 줄도 안다. 급변하는 시장 앞에서 변하지 않으려는 것도 교만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산 앞에서 겸손해지는 전문 산악인처럼, 시장 앞에서 마음을 비울 줄 아는 당신은 전문 경영인이다.
당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당신만의 가치와 비전, 그리고 개성이다. 보통 사람들은 당신에게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당신과 당신 기업의 잠재력을 무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세우는 가치는 너무 평범하고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평범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가치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사람을 끌어 모으고 그들의 야망에 불을 붙이기는 부족하다. 그 결과 당신이 이뤄낸 것들과 당신 기업의 가치는 뒤늦게 인정 받기 쉽고 인정 받기 전에 좌초할 가능성도 높다.
당신은 대세를 파악하고 싶어하는데, 대세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만들 수도 있다. 당신에겐 당신이 추구하는 일을 그럴 듯 하게 포장하고 팔 수 있는 홍보력이 필요하다. 당신의 강점은 지금 현재에 충실하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이다. 변화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변화할 준비가 된 자만이 변화할 수 있다. 현재 하는 일에 당장 유용한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겉보기엔 전혀 쓸데 없을 것 같은 투자도 해둬야 나중에 그것이 자산이 된다.
한국 경제를 이끈 귀족 CEO, 이병철
1910-1987. 오늘날 거대 글로벌 기업 삼성을 일으킨 기업인. 정주영과 함께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기업인 중 한 명.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안정적이고 치밀한 성품의 소유자였음.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다소 보수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뛰어난 상황 파악력에 탁월한 "환경 적응력"을 갖고 있었음. 치밀한 시장 조사와 품질 제일주의라는 두 가지 전략을 고수했으며, 상당수의 사업이 적자로 시작됐음에도 결국 매번 업계 1위를 만들고 마는 뛰어난 운영 능력을 보여줌. "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일단 쓰면 믿는다"라는 철학을 가진 용인술의 귀재이기도 했음. 그러나 현대 그룹 정주영과는 달리 직원들에게 사무적이고 차가운, 개인주의적인 취향이 강한 인물이었음.
기업 생존을 위한 교과서, 빌 게이츠 (Bill Gates)
1955년 생. 세계 최대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설립자.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이자, 최고 개발자. 보유 재산 약 47조원. 지난 10년간, 그리고 지금도 세계 최고의 부자인 사람. 개인적인 명성이나 대의명분보다는 철저하게 기업의 성공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편이었음. 특히, 컴퓨터 실력보다도 타고난 사업가 기질로 성공한 인물로, 다니던 명문대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과감성, 시장을 개척하기보다는 남이 먼저 개척하는 걸 보고 모방하는 치밀함,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파악하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었음. 빌 게이츠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혁신”보다는 “적응”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상징.
인텔의 창업자, 벤처 기업의 모델을 제시한 CEO, 밥 노이스 (Bob Noyce)
1928-1990. 세계 제일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업체인 인텔의 창립자. 뛰어난 엔지니어이기도 했던 노이스는 제품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집적회로"라는 혁명적인 기술을 창안해 인텔뿐 아니라 IT 및 전자산업의 기반을 닦게 해주었음. 자신의 회사에 전통적인 계급 구조를 없애고 전 직원에게 스톱옵션을 나눠주는 등 파격적인 인사 시스템을 도입함. 밥 노이스는 오늘날 실리콘 밸리에 과학 단지가 커갈 수 있는 기술적인 입지를 다졌을 뿐 아니라, 그곳 기업들의 경영 방식과 철학에 "뿌리"를 제공한 사람으로 인정 받고 있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존경 받을 기업인, 유일한
1895-1971.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창립자. 미국에서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귀국해, 의료 혜택 없이 죽어가는 조국의 동포들을 돕고자 개인의 사비로 유한양행을 설립했으며,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최상의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의 제약회사를 키워냄. 종업원 지주제, 전문 경영인 도입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자신의 기업을 일체의 혈연관계가 없는 경영인에게 물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언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함. 생전엔 자신의 돈을 털어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자선 단체를 만드는 등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위대한 기업가이자 박애주의자였음.
가장 존경 받는 한국의 현직 CEO, 문국현
1949년 생. "제2의 유일한"이라고 불릴 정도로 탄탄하고 윤리적인 경영으로 사회에 모범이 되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현직 CEO. 대학 졸업 후,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의 숭고한 생애에 감동해 유한양행이 출자한 유한킴벌리에 입사함. 1984년부터 20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나무심기 캠페인 주도. 1995년 CEO로 취임한 후 IMF의 위기 속에서도 업계 최초로 4조 근무제 도입, 직원들의 복지 개선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함. 현재 개인적으로 수많은 자선 및 시민 단체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유한킴벌리를 세계적인 친환경 기업으로 키워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