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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3/09/26
 

루퍼트 쉘드레이크(Rupert Sheldrake)라는 양반이 있습니다.

영국의 생물학자라는데 자세한 건 모르고요, 정상적인 과학자임에도 전혀 과학자스럽지 않은 가설을 주장해 굉장히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 양반 주장이 대충 이렇습니다:

미로 찾기를 하는 실험쥐가 있다. 최근 50년간 전세계의 미로 찾기 실험쥐의 기록을 분석해 봤더니, 미로 찾는데 걸린 시간이 놀라울 정도로 짧아졌더라. 실험쥐는 수명이 2년, 언어로 미로 찾기에 대한 힌트를 남기지 못한다. 그리고 50년간 실험실에서 쓰인 미로는 거의 동일하다. 무슨 말이냐면 최근 50년간 쥐 종족 전체의 미로 찾기 능력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전세계의" 실험쥐 미로 찾기 기록이라는 겁니다. 이 기록이 50년간 향상된 겁니다. 미로 찾기 경험이 있는 쥐도 아니고, 과거와 동일한 개체도 아니고, 같은 실험실에 사는 쥐도 아니고, 심지어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실험쥐인데 미로 찾기 기록이 더 좋아졌다는 겁니다.

대체 왜???

기존의 주류 생물학자들은 "원래 종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능력치가 향상되긴 해..."라고 대답을 하겠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죠. 실험쥐들의 다른 능력치가 향상되었냐면은 그건 또 아니거든요.

그래서 쉘드레이크 이 양반이 나선 겁니다. 내가 속시원히 설명해주께라면서.

이 양반의 설명은 대충 이렇습니다.

같은 종끼리는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거대한 장(field)이 있다. 영국의 어느 실험쥐가 미로 찾기를 X빠지게 하다 보면 그 경험과 기억이 쥐라는 생물종 전체가 공유하는 거대한 장에 저장되고, 이 정보가 호주 실험쥐에게도 공유돼 그의 미로 찾기 능력치가 향상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 칼루이스가 올림픽 한번 더 나갈라고 죽자사자 100m 달리기 연습을 한다고 치자. 그의 100m 달리기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인간 종이 공유하는 장에 쌓이고, 전세계 인류의 100m 달리기 능력치를 향상시켜 준다. 부산 초등학교에서 체력장 100m 달리기를 하는 여학생도 그 때문에 달리기 기록이 좋아진다, 그래서 인류의 100m 달리기 기록은 계속적으로 갱신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이 양반의 이른바 "종족 기억장" 이론은 엄청나게 다양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실험쥐랑 100m 달리기 기록이랑 무슨 뭐 우유병을 따는 비둘기로부터 해서... 뭐 암튼 엄청 많던데.

이 양반이 근거 중 하나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문화 예술 역사를 보면 이 "종족 기억장" 이론은 상당히 그럴 듯 합니다.

가장 유명한게 불과 한 200년 전 유럽을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현대 연주자들은 파가니니가 현대에 되살아나면 중급 수준의 연주자도 못될 거라 확신합니다. 그때와 지금과는 연주자들의 기량이 비교도 안되게 향상됐다는거죠.

역시 비슷한 수준의 경이적 연주자 프란츠 리스트 역시 지금 살아오면 아마 음악 잡지에 이름도 못 올릴 거란 얘기도 있고요, "지고이네르바이젠"으로 유명한 사라사테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사라사테는 죽은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지난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주는 처음 초연 당시 지금 연주의 70%도 안되는 속도로 연주됐다고 합니다. 주법이 너무 어려워 아주 천천히 갈수 밖에 없었단 거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롤린 협주곡도 당시엔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었고요.

다시 설명하자면 누군가 파가니니의 곡을 연주하려고 존나게 바이올린 연습을 하면 그게 전인류의 바이올린 연주 능력치를 상승시켜 준다는 겁니다. 그게 누구건 간에! 왜냐면 같은 종은 모두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니까!!

이 참으로 홍익인간스러운 주장은 아직 아마추어 생물학계에 전설처럼 구전되고 있는데요. 문학예술계에선 상당히 흥미롭고도 진지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술적 기교는 그동안 정말 무한대로 늘었거든요. 인간의 100m 달리기 기록이 10초대를 깨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보기좋게 꺾인 것처럼, 예술계에서도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교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쉽게 현실화됐습니다. 음악은 물론 미술계에서도 말이죠. 

단순히 머리수가 늘어나서 그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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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모런(thomas moran).

19세기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풍경 화가입니다. 당시 이런 류의 풍경화가들이 워낙 많이 활동해서 묻힌 탓도 있지만, 어찌됐든, 19세기 미국 미술 시장을 주름잡던 풍경 화가 중 최고의 테크닉을 자랑했던 양반입니다.



뭐 그림이 대충 이래.



현대 하이퍼리얼리즘 테크니션들과 비교해도 별루 뒤지지 않는다능.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이라 할만하지만, 한때 그림의 테크닉에 열중했던 미술학도들에겐 나름 자극적.



미국의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축복받은 자원.



내가 이 양반 그림 중 처음 본 건 이것. 그래서 난 인상주의 끝물 화가인 줄 알았음. 아무튼, 테크닉으로 따지면 지금 봐도 참 혀를 내두를 지경. 


요지는 이 정도 (엄청난) 테크닉을 지닌 애들이 요샌 너무 많다는 겁니다. 제가 따로 정리하겠지만, 인간의 예술적 테크닉은 세월이 흐를수록 발전합니다.

예전에 잉베이 맘스틴인가? 엄청난 속주 기타를 치는 양반이 있었죠. 세계에서 손이 제일 빠른 기타리스트라고 해서 흥행 깨나 했는데, 요샌 푹 죽었죠. 왜냐면 그 양반보다 더 빨리 치는 애들이 자꾸 생산되니까. (대신 "slow hand"라는 별명의 손 느리기로 소문난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은 여전히 공연 한번 하면 5만명 기본으로 모으고, 앨범 내면 10만장 기본으로 팔죠.)

예전에 모짜르트 음악 서주 중에 목관 악기 속주 부분이 자주 나오는데, 모짜르트 살아 생전엔 모짜르트가 생각한 속도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지금에야 그 스피드의 연주가 가능해졌죠. 챠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처음 작곡했을땐 아무도 그 속도로 연주를 하지 못했습니다. 요샌 16살짜리 장영주 양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소재가 됐고요.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나 베르메르 같은 테크니션들이 방귀 뿡뿡 뀌고 다녔지 지금은 그렇게 그려봐야 따라한다고 욕만 먹습니다. 왜냐면 다들 그 정도는 그리니까.

암튼, 그래서 그림은 테크닉이 중요한게 아니란 겁니다. 테크닉으로 경쟁하려다간 나이 어린 애들한테 금방 따라잡힙니다. 인간이 유전적으로 계속 우수해진다는 건 결국 테크닉입니다. 그러니까 테크닉 말고 다른 걸로 승부해야 한단 거죠. 담 시간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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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YTN에서 속 울렁거리게 생긴 팝페라 가수가 하나 나와 괴상한 말을 하더군요.

"옛날 러시아에선 사람들이 공연을 보려고 밥도 굶었다더라. 우리도 비록 밥 한끼 굶더라도 공연 한편 봐줘야 선진 문화국이 될 수 있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지만 결국 그 얘기입니다. 밥 처먹지 말고 공연 봐라. ㅋㅋㅋㅋㅋ. 하놔 이 찐따들 진짜.

물론 팝페라 가수가 단독으로 그런 말을 할리는 없겠죠. 문화관광부 산하 공연진흥공단 뭐 이딴 데에서 이런 개같은 대국민선전 찌라시를 만든거죠.

일단 옛날 러시아에서 밥을 굶고 공연을 봤다고 하는데 그런 사례가 어느 문헌에 기록돼 있는지 궁금하군요. 제가 기억하기론 푸쉬킨 나부랭이들 설치고 다닐 당시 러시아 낭만주의자 싸구려 소설에 나온 내용 본 거 같은데.

여담입니다만, 러시아 낭만주의 작가들은 전부 좀 병신들입니다. 푸쉬킨이고 뚜르게네프고 이 사람들 작품 일본하고 한국에서 유독 엄청나게 많이 번역되서 팔렸는데 참나 어이없죠. 제 장담하는데 그넘들 소설 나부랭이보다 귀여니 소설이 훨씬 더 재밌습니다. 

암튼, 문화 예술 'half' 종사자로써 말씀드리는데, 배고프면 밥 먹는게 우선입니다. 배고픈데 공연 보는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고요. 배가 든든하고 잠을 충분히 자야 문화 예술을 봐도 뭔가 느끼는게 있고 비판할 힘이 생기는 겁니다.

문화 예술 창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해야 진정한 창작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거 진짜 개소리죠. 그렇게 따지면 아프리카가 전세계 제일의 순수 미술 생산국이 되어야 겠습니다? 세계 제일의 fine art 생산국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제일의 부자 국가들입니다. (일본만 예외! ㅋㅋㅋ)

가난했을때 좋은 작품이 나온거는 작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돈 벌어서 예쁜 색시 구할라고... 이런 존나 원초적인 욕구가 원동력이 됐기 때문입니다. 밥 벌어먹을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당연한 거죠. 당시 작가들이 작품 만들어서 돈이 안된다고 칩시다. 그랬으면 그 양반들이 작품 하나라도 만들었을거 같습니까?

일단 돈이 우선이고 밥이 우선입니다. 돈하고 밥하고 여자가 있어야 작품이 나오는 겁니다. 시장이 있어야 작가들이 활동을 하는 겁니다. 아프리카의 무시무시한 미술 작품들, 중국의 경이적인 아티스트들, 전부 거대한 자본을 등에 업고 태어났습니다.

문화 예술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부산물입니다. 자본 없이는 단 한번도 제대로 문화 예술이 꽃피운 적이 없죠. 이 얘기는 무척 중요한 얘기니 다음 시간에 다시 하겠습니다.

암튼, "밥 먹지 말고 예술 관람하라"는 말 싸제끼는 놈들은 그냥 무식한 놈들입니다. 문화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도, 기본적인 교양도, 지식도, 상식도, 지능도 없는 천민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 천민들이 문화 정책을 좌우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한국의 문화 예술이 아직도 베트남 수준만도 못하다는 겁니다.

지들이 볼만한 공연을 만들면 저절로 알아서 찾아와서 봅니다. 한국애들 문화 수준 그렇게 낮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20-30대는 오히려 미국보다 높은거 같은데 말이죠.)

좋은 공연 먼저 만들 생각은 안하고 TV에 대고 멍청하게 생긴 얼굴마담 하나 데려다 놓고 "밥처먹지 말고 공연봐라"며 앵벌이를 시키고 있습니까? 거지 색희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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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낙서 화가"로 유명한 싸이 톰블리의 대표작 "가을"입니다.
위에 autonmo라고 쓴 글자를 보지 않고 이 그림 제목이 "가을 아뇨?"라고 말할 수 있으면 당신은 센스쟁이. (나 실제로 그런 사람 여러 봤다.)





아마 대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던 현대 화가 중 하나일 겁니다. 위에 같은 그림이 대표작이었으니 말이죠.



근데 이런 걸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다는 사실.
선천적인 센스일수도 있지만 저처럼 상당 기간 미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그림이 완전 정신이 없어 보이죠. 이렇게 정신 없어 보이는 그림들이 한때 뉴욕 미술 시장에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됐습니다. 대체 왜? 


좋은 그림을 판정하는 기준은 대체로 두가지입니다.

1. 얼마나 절절한 감정(혹은 사고)을 담고 있는지
2. 얼마나 쿨하게 표현했는지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잃은 부모가 수십년간 지옥같은 고통에 해메다가 늙어 죽을 때 쯤 다 되서 모든 집착과 번민을 털어버리고 자신의 자식이 그때 어떻게 죽었는가를 담담하게 이야기 해주는 그런 기분?

괜히 제가 그림을 "문학 관찰기" 폴더에서 다루는게 아닙니다. 그림이나 문학이나 기준이 같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암튼 위에 두가지 기준만으로는 맞지 않는 유명 그림도 많습니다만, 그냥 universal한 기준이 대체로 그렇단 겁니다.

사이 톰블리의 그림은 이 두가지 universal한 좋은 그림 기준에 가장 적절한 예시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죠.


뭐가 연상되십니까? 이건 훨씬 쉽죠. 꽃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뭔가 따뜻해 보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위에 May(5월)이라고 써 있네요.

봄을 보고 생각하고 곰곰히 마음속으로 되씹다가 그림을 그린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뭐 5월의 장미 몇 송이 그리겠지만, 이 양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생각하는게 워낙 특이했는데 거기에 생각까지 졸라게 많이 하다보니 이런 그림이 나온 겁니다. 얼마나 많은 걸 담은 작품인가 <-- 이걸 판단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예술 애호가의 기본 자세입니다.

그런데 생각만 많이 한다고 좋은 작품이 되질 않습니다. 다음을 보시죠.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연상되나요? 아까 "may" 그림보다는 어렵지만 꼭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바로 "겨울"입니다. 사이 톰블리의 4계절 연작 중 마지막 겨울이죠. 제일 처음에 올렸던 "가을"하고 한번 비교해 보세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다 계절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으면서도 정작 그림을 그릴 때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붓질을 했습니다.

바로 현대 미술의 중요한 키포인트 중 하나죠. 무념무상. 그림을 그리기까진 엄청난 생각을 하지만 막상 붓을 손에 쥐면 생각을 싹 비우고 그림을 그리는.

죽은 자식의 이야기를 하는 부모 역시 마찬가지인 겁니다. 수십년을 죽은 자식 생각에 뼈 속 깊이 곪아들고 난 뒤에 결국 거기에서 해방된 상태. 

같은 겁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글이나 이야기에는 감동을 받으면서 사이 톰블리 같은 위대한 화가의 작품에는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둘다 절절한 생각을 담고 있으면서도 쿨하고 담담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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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daum.net/culture/all/view.html?cateid=1003&newsid=20091008085111166&p=nocut&RIGHT_COMM=R9

위 기사의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려고 사람들이 6시간을 기다렸다는 내용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홍보를 대차게 한 모양이군요.

몽유도원도가 뭔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아래.


상식적으로, 몽유도원도가 뭔지 보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보면 그만이라고 말할 사람이 훨씬 많을 겁니다. 그리곤 이거 하나 보려고 6시간이나 줄선 멍청이들은 그냥 멍청이들일 뿐이다라고 하겠죠.

반대로 6시간 줄선 분들은 문화 예술이 뭔지도 모르는 밥충이 시끼 같은 발언이라고 반박하겠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유명 그림 전시회 한다고 우르르 몰려가 줄을 서는 건 좀 그다지 현명해 보이는 행동이 아닙니다. 좀 없어 보인달까요. 왜냐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문화 예술에 관심은 있으나) 문화 예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스페인 쁘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 Vermeer 특별전을 하더군요. 사람들이 죄다 코딱지 만한 Vermeer 특별 전시장에 몰려들어 아주 난장판이었습니다. 아다시피 Vermeer는 워낙 그림들을 코딱지만한게 그려서 전시장도 좁아터졌음.

덕분에 다른 전시관은 텅텅 비어 관람하기 좋았지만, 제 보기엔 좀 어이가 없었죠. 쁘라도 미술관엔 Vermeer보다 백만배 더 훌륭한 그림이 수백점이 깔려 있는데 그건 안보고 Vermeer만 볼라고 박터지게 몸싸움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뭔 소리를 하고 싶은거냐면, 지식이 부족하면 없으면 몸이 피곤하다는 겁니다. 안목이 넓으면 그깟 Vermeer 안봐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쉽게 듭니다. 아실랑가 모르겠습니다만, Vermeer처럼 너무 작은 그림은 화보로 보는게 훨씬 잘 보이고 훨씬 감동적입니다. 5-6만원 이상되는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어려운 진짜 화보여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안목이 넓으면 그깟 몽유도원도 안봐도 그만입니다. 왜냐면 리움에만 가도 몽유도원도보다 백만배 더 훌륭한 한국화들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화의 결정판은 전부 18-19세기에 탄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성 이병철 선생 확실히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 양반 소장판 거의 18-19세기 작품에 집중돼 있던데, 그거 가끔 한번씩 풀면 진짜 숨 넘어갑니다. 조선에 이런 아름다운 천재들이 있었다니 막 눈물이 날라고 합니다. (소개해 주고 싶은데 그 작품들 인터넷에도 절대 없어. 삼성한테만 있어.)

솔직히 안견을 포함해서 조선 초기 시대 그림 좋습니까? 저 위에 건 그림 마음에 듭니까? 뭐가 마음에 듭니까? 지가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니고 왕자가 그리라고 시켜서 그린 그림입니다. 제가 볼땐 남이 시켜서 그린 그림 티 팍팍 나는군요. 주제도 없고 감정도 없고. 기술적으론 색다른지 모르겠지만. 이거 보려고 6시간 줄을 섭니까? 주체성 좀 갖고 삽시다. 유명하다니까 꼭 한번 봐야지 그래야 남들한테 자랑하지 뭐 이런 심리입니까? 유명 관광지 가서 여기 갔다왔다고 사진 박는 거랑 뭐가 다를까요?

지난번 신라 유물 깔 때도 얘기했지만, 하여튼 한국에서 오래된 물건이면 무작정 떠받들고 지랄하는거 참 지랄같습니다. 아무리 오래되면 뭐합니까 암만 봐도 예술적으로 똥인데. 그러면서 정작 예술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한국 작품들은 단 한번도 소개 안해줘. 참 기막힌 병신 나라지. 유인촌 같은 병신들이 문화부 장관 계속 해처먹었는데 오죽하것어.

미술 관람하고 싶으면 내가 캥길 때 가세요. 내가 그러고 싶을때. 마케팅 문구에 혹해서 가지 말고. 그래야 서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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