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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의학 상식으로 그는 2년 전에 죽었어야 했다. 테이-삭스(Tay-Sachs)라는 유전병의 일종이라는데, 뇌 안에 지나치게 많은 독성 단백질이 쌓여 뇌세포가 한꺼번에 괴사하는 중이었다. 병원에서 예상한 바로는, 오래 전 코로 뇌수와 피가 섞인 진물을 쏟으며, 두개골이 텅텅 비어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보다 더 건강해 졌다. 덤으로 전에 좀처럼 짓지 않던 미소까지 얻었다.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혼자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도, 걸어 가면서도,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 돈을 떨어뜨렸을 때도 그는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친 것 같지는 않았다. 머리 속에 항상 즐거운 기억이 떠오르는 듯,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미소였다.
그의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세포가 죽어갔던 것처럼,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세포가 재생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이었다. 인간의 기억은 뇌 안의 정해진 세포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대뇌 피질 전체에 걸쳐 부분적으로 기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량의 뇌 세포가 괴사했다면 그에 따라 전체적인 기억 역시 희미해 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오히려 그 명암이 뚜렷해진 상태였다.
몇 년 전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어 보았다.
"그때 제 옆자리에 있던 사람이 밥을 좀 많이 먹었던 모양이더라고요. 과식을 하면 안 되는 환자였는데… 경련을 일으키더라고요. 눈을 허옇게 뒤집고… 구토를 시작하는데… 넘어오는 음식물을 잘못 삼켰죠. 식도로 삼킨 게 아니라, 기도로 삼켰죠. 그게 숨통을 막았고… 입에서 보라색 물이 나오더라고요. 식후에 포도 주스를 먹었을 거에요, 냄새도 기억나요. 그리곤 정확히 6분 20초간 몸을 뒤틀다가 죽었어요… 시간이요? 제가 시계로 시간을 재 봤거든요. 얼마나 오래 버티나."
그는 말하는 내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병원 기록에 따르면 몇 주간 전신 마비 증상을 일으켜 음식 섭취는 물론 배설도 제대로 못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의 투약 기록을 뒤지다가 간호사와 크게 싸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제가 기억 못하는 건 아마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일 거에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절 모함하기 위해 지어낸 얘기거나. 전 기억력이 엄청나게 좋은 편이에요. 병원에서 제가 봤던 의사, 간호사, 환자… 그 사람들 귀 모양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어요. 귀를 찍은 사진만 보여주면 제가 누가 누구 건지 다 알아 맞힐 수 있거든요. 제가 기억 못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아요."
그의 기억 과정은 다분히 의식적인 것으로 보였다. 기억의 생성과 소멸, 우리가 반의지적이라고 믿었던 기억의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의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 그의 두뇌의 측두엽과 해마 조직이 수년 간의 뇌세포의 괴사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기억의 생성/소멸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가설이다.
인간 두뇌의 해마 조직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해마 조직이 손상된 사람은 평생 단기 기억에 의존해 살게 된다. 주변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지 못한채, 최장 20초 정도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해마 조직을 (마치 전기 회로의 스위치처럼) 활용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부끄러운, 하찮았던 일들은 단기 기억으로 끊어 소멸시키고, 중요한, 간직하고 싶은 일들은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켜 영원히 간직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해마 조직은 장기 기억의 recall 기능까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자신의 뇌 세포 괴사가 시작되기 전의 기억까지 소급해 차단, 혹은 증폭하고 있는 것 역시 이 해마 조직의 역할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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