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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검은 신체검사의 준말로 군 입영전 각 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에서 받는 신체검사와 입영 후 육군훈련소 생활 중 자체적으로 받는 신체검사 이 두가지로 요약된다
2003.3.27.목(오전 비, 오후 맑음) 내일은 28일, 금요일이다. 다시말해 부산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에서 신체검사(이하 신검) 받으러 가는 날이다. "똥구멍 벌려라"(항문검사) 등 엽기적인 검사까지 군의관이 자행한다는데 아마 이건 옛 말이겠지하고 위안해본다. 내일 신검을 앞두고 걱정이 되기도하거니와 은근히 기대도 된다. 처음이 아니던가. 어찌되었던 두고 볼 일이다. 오늘 이 문제에 관해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말씀을 드리니 걱정하지 말라, 아무 것도 아닌일이다. 당당하게 받아들여라 하신다. 우리 대학에 ---교수란 사람이 있는데 이 교수가 '나에게 취사병은 진짜 군인이 아니다'란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선 그 교수의 생각은 여지없이 틀린거라 하시며 강력히 반박하시었다. 내가 봐도 맞는 말이다. 가장 빡센 군생활 중 분명 취사병(조리병)이 있으며 운전병(수송), 행정병(행정계원)도 있다. 사회사람들이 이를 잘 모르고있거나 무조건 억측까지 하고있는데 대단히 안타까울 뿐이다. 절대 편한 보직들이나 아닌데... 엄청 엄청 힘들고 어렵기만한 군 보직이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5권 2003.3.27일자 기록(158쪽)
======================부산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 신체검사 일지=======================
2003.3.28.금(맑음) 부산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 신체검사 일지 08:30~10:45 *본지에 실린 신체검사항목에 대한 호기심은 귀하의 '직접 체험'에 맡긴다. (군사보안 규정 준수)
오늘은 나 신검 받으로 간 날이었다. 익히알다시피 신검은 '신체검사'의 준말. 새벽6시 30분. 나와 함께 갈 어머니께선 이미 일어나계셨고 덩달아 아버지께서도 앉아계셨다. 두 분 다 아들인 나 때문에 금요일날의 단잠에서 께어나신 것. 나는 적잖이 죄송스러웠으나 내색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럼 부모님께서 부담을 느끼시기 때문이다. 난 부모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 죄송스러워지니까 말이다. 우정지하도에 하차해 마침 오던 127번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노포동 지하철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내려갔다.(내려 갔다는 의미는 타고 갔다는 얘기. 흔히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왔다'는 표현을 쓰지 않던가)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그냥 이야기. 즐거운이야기였다. 당연히 신검에 관한 호기심어린 이야기가 태반이었다. 태어나서 군대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러간다? 이 생각이 더 나를 작아지게하였다. 오전 7시 30분, 부산 노포동 지하철역에 도착. 나는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나는 주로 면을 먹었고 어머니께선 자신의 뜻에 따라 우동(국물)을 주로 드셨다. 우동을 한 그릇 뚝딱 한 뒤, 지하철표 2매를 사서 부전지하철역까지 또 타고 갔다. 부산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이 부산광역시 부전동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부전역까지 가야했다. 징병검사장에 도착하니 아침 8시 10분이었다. 검사장이 보이니까 내 마음도 조금 흔들렸다. 주눅 든다고나 할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당시엔 조금 두려웠고 한편으론 검사항목에 대한 기대감도 들었다. 검사장 본관 진입 전 정문 직원(징병검사장 경비)에게 어머니께서 한가지 질문을 하셨다. "신검이 한 몇시간이면 끝납니까?" 경비가 답하길 "오전 신검 해당자이면 오전11시 이전이나 11시 정도에 다 끝날 겁니다. 오후에 신검을 받으면 오후 3~4시 정도에 끝날 것이구요." 나와 어머니는 이 경비원의 답변이 반가웠다. 당시 시간이 오전 8시 10분 경이었는데 2시간 40분만 지나면 오전 11시인데 그 전에 신검 일정이 다 마무리 된다니 말이다. 부산의 큰 시장 구경도 마음껏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육군백골부대, 군복무3년 병장 만기 전역)께선 이틀에 걸쳐 신검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던데.. 거기에 비하면 내가 신검 받는 이 시대는 매우 편해진 것 같다. 기간도 그렇고 간략해진 검사항목도 그렇고. 징병검사장 본관 진입. 그 안에 약3~40명 가량 신검 받으러 온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병무청으로부터 약속된 오전 8시 30분이 다 되어갈수록 사람 머리 수는 더 늘어갔다. 정원 90명. 다 모인 시각이 정확히 08:30분. 때는 떨리는 아침이었다. 검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검사 시작 이전, 디지털 사진을 찍고 ID인식카드를 받았다) 가장 처음에 받은 검사는 설문지와함께 배포된 ---검사. 이 설문지엔 꼭 책자처럼 만들어져있었고 총 문제수는 ---개에 달했다. 대표적인 문제의 예는 '직접 체험'에 맡긴다. --- 검사가 끝난 뒤엔 ---검사, ---(--)검사 등이 이뤄지고 차차 ---검사(--- 검사, 계단을 걸어 올라간 뒤 이름을 말하고 ---번이 찍힌 종이번호표를 받았다. 받고 줄지어 또 기다리다 "---번"이라 외치고 정식 검사를 받았다)를 받았다. 이 검사까진 --층에서. 많이 남아있는 여러 검사(최종 세부항목별 검사)를 받으로 마지막에 간 곳이 ---층. 거기서 ---/---검사, ---검사, ---검사, ---검사, ---/---검사, ---검사 등등... 검사란 검사는 다 받았다. 때는 오전 10시 45분이었다. 이제 그 많은 검사는 끝나고 단 하나만 남아있었으니 바로 판정. 나는 현역 1급 판정을 받았다.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나의 심신이 건장하고 건강함을 공식 인정한 것이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35권 2003.3.28일자 기록(159쪽~160쪽)
=============================================관련 자료(특기병 지원 일지) 엄용훈일기 제 35권 P.4 병-특기병 17회차(모집회차) 수험표 사본 부착처리 신체검사 명령: 03.3.28일 신체검사 명령 하달 엄용훈일기 제 35권 P.96 병-특기병 29회차(모집회차) 수험표 사본(사이트내 수험표원본 인쇄물) 부착처리 합격자발표: 03.5.24일 엄용훈일기 제 37권 P.54 병-특기병 34회차(모집회차) 수험표 사본(위내용과동일 ") 부착처리 합격자발표: 03.6.25일 엄용훈일기 제 37권 p.140 병-특기병 36회차(모집회차) 수험표 사본(") 부착처리 합격자발표: 03.8.29일 엄용훈일기 제 38권 p.96 병-특기병 42회차(모집회차) 수험표 사본(") 부착처리 합격자발표: 03.9.30일 엄용훈일기 제 41권 P.57 현역(지원)병 입영 통지서 사본 부착처리 <사본 주요 내용> 모이는 장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입영일시: 2004년 02월 23일 13:00 부산지방병무청장
==========================대한민국 육군 특기병 심사 최종합격==========================
2004.1.10.토(맑음) 대한민국 육군 특기병 심사 최종합격 금일 오전 11시 20분 경. 나에게 온 휴대폰 문자 메시지 1통. "육군 특기병 합격을 축하합니다" 난 정말 기뻤다. 그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종합격 소식이던가! 나도 인제 정말 군에 가는구나. 하하. 그렇다면 적어도 3개월 이후엔 가는 거네? 대학 2학년차에 휴학계 내야 되는거구나. 음.. 2학년 1학기 강의 듣지도 못하겠네.. 그럴 거 같다. 아직 정확한 입영 일자가 잡히지는 않아서 김칫국 마실 입장은 아니다만은.. 마시고 싶다. 으흐흐... 잘 된 일이지 뭐. 군인의 길로 한발짝 더 다가선 내가 자랑스럽다. 군 입대 때문에 모든게 넘 좋아진 것 같다. 모든 일이 간단명료하게 보인다. 역시 일처리는 군대 식이 짱인 것 같다.ㅋ... 하하. 이렇게 좋을 수가.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41권 2004.1.10일자 기록(52쪽)
2004.1.11.일(맑음) 어젯밤 부모님께 나의 육군 특기병 합격 소식을 알려드렸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도로연수 받는 내내 아버지로부터 군대교육+추억담을 들었다. 흥미로웠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군생활에 대한 부담감은 더 커져만갔다. 앞으로 1달(2004.2.23일 오후1시까지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 이내에 군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시원하기도하고 섭섭하기도하고.. 몹시 심난하기도하고.. 부모님께선 더 하실 게지.. 으... 괴로운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괴로운 마음에 의한 현상은 어제까지만해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라 더 혼란스럽다. *해당자료 근거: 엄용훈일기 제41권 2004.1.11일자 기록(54쪽~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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