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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1/14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분기점인 보스포러스 해협

2006.11.27 16:40 | 터키여행 | 에드

http://kr.blog.yahoo.com/ekim3004/971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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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해협 유람선에서본 돌마바흐체궁전(일명:해변궁전)

보스포러스 해협 - 11월 12일 마지막날
8박 9일간의 터키 여행에서 여기온 가장큰 보람과 낭만과 역사적인 중압감과 동서양을 가르는 문명의 갈림길을 체험했던 순간은 보스 포러스 해협을 선박으로 유람했던 것일것이다.

한국 같으면 강번으로 높은 아파드를 지어 그 뒷집은 생각 하지도 않았을 곳에 2~3층 정도의 높이로
집을 지어 서로 아름다운 해변을 나누어보는 지혜가 있었고 사이사이 적절한 숲들이 숨을 쉬고 있는것이 후진속에서도 선진화를 보여주는듯 했다.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분기점인 보스포러스 해협의 길이는 31.7킬로미터이다. 보스포러스의 아시아 해안선은 길이가 35킬로미터이고, 유럽 해안선은 55킬로미터이다. 평균 바다 깊이가 50 ~100미터인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은 루멜리 히사르가 있는 지점으로써 660미터이고, 가장 넓은 곳은 흑해와 만나는 곳으로써 3.4킬로미터이다.

마치 한강 유람선을 타는것보다 약간 넓게 느껴지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평균 흐름의 속도가 시간당 3-4 킬로 미터이며 양 방향으로 강한 급류가 흐른다. 마르마라에서 흑해 쪽으로 흐르는 바다 물은 바다 표면으로 흐르고, 흑해 쪽에서 마르마라 쪽으로 흐르는 물은 60미터 깊은 바다 속으로 흐른다. 이 때문에 흑해와 마르마라해의 염도와 높이가 틀린 것이다. 물의흐름이 시간당 8-9킬로미터까지 이른다.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가려는 루마나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의 배들은 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꼭 거쳐야 하는데, 이 해협은 몬트렉스 조약(1936)에 명시된 것처럼 터키의 통제를 받는 터키의 영해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안선을 따라있는 작은 숲들, 카페, 찻집, 술집들, 그리고 식당들은 주말과 여름에는 특히 혼잡하다. 보스포러스는 네 번째 지질기에 지층이 붕괴되면서 형성되었고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은 7,500년 전이다. 이 이름은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 신은 부인 헤라 여신의 질투로부터 그의 애인인 이오를 구하기 위해, 이오를 소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헤라는 사실을 알았고, 이오를 괴롭히도록 파리를 보냈다. 이오는 이 파리를 피하기 위해 이 바다를 건넜고, 이 때부터 이 곳은 소의 문을 뜻하는 '카우 게이트’ 즉 보스포러스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보스포러스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또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려는 원정 부대가 꼭 거쳐야 할 장애물이었다. 이 곳에 놓여진 최초의 다리는 BC4세기 시티안으로 군사 원정을 가던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700,000만의 다리우스 군사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배와 뗏목을 이어 붙여서 다리를 만들었다.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스탄불을 무역 중심지로 만든 보스포러스는 비잔틴 시대에 최초로 여름 궁전이 세워지면서 그 중요성을 더하기 시작했다. 해안선을 따라 세워진 몇 개의 요새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오토만은 이 도시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보스포러스를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정복 전에 아나돌루 요새와 루멜리 요새를 건축했다. 도시를 정복한 후에는 오토만 황제들은 도시 중심에 가까운 보스포러스 지역에 거주했다.

이스탄불에 증기선이 도입되면서 그들은 여름 별장에 살기 시작했고, 조금 떨어진 해안가에도 정원과 궁전을 짓도록 명령했다. 원래 이러한 곳들은 서로 접촉이 거의 없던 어촌들이었다. 그러나 오토만 술탄들이 고위 관직자에게 상으로, 또는 그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선물로 이 지역의 땅을 주기 시작하면서 목재 빌라와 별장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보스포러스 역사의 또 하나의 전환점은 1973년때 있었다. 1973년에 최초의 보스포러스 브릿지가 개통되면서 아시아와 유럽이 최초로 연결되었고, 두 번째 다리가 1988년에 개통되었다. 매년 50,000척의 화물선, 대규모의 탱커들, 그리고 커다란 크루즈 선박들이 운행되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번잡하며 가장 위험한 바다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노대통령이 터키에서 민요 부른 까닭은?

2006.11.20 19:36 | 터키여행 | 에드

http://kr.blog.yahoo.com/ekim3004/968 주소복사

노대통령이 터키에서 민요 부른 까닭은?

우크라이나까지 그나마 순조롭게 이어져온 미 패권체제의 동방제국 봉쇄-유럽연합의 팽창라인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일단 쉼표를 찍는다. 당연하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물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곳이니까. 또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을 가르는 단절선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 터키 방문시 터키 총리와 함께 보스포러스 해협을 돌아보고 대통령이 된 후 가장 좋은 구경을 했다며 덕담을 했었다. 순수한 자연으로서의 보스포러스 해협은 그 자체로 조화로우나 인간 세상의 정치적 관계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중심으로 불협화음을 만든다.

거슬러 올라가면 서양문명의 시발이었던 그리스 문명의 파멸을 불러올 뻔했던 크세르크세스의 침략도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서 이루어진 것이다. 서양 그리스 문명에 있어 보스포러스 해협 서쪽은 ‘우리’, 동쪽은 ‘타자’인 것이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보스포러스 해협 동쪽 오리엔트는 그리스 문명의 원류이기도 하다.

보스포러스 해협 서쪽의 그리스 도시국가 연맹이 동쪽의 트로이를 친 것은 이 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의 수천 년에 걸친 애증관계를 예고한 사건이라고 하겠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좌우의 땅에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세계 최대의 도시로 영화를 누렸으며 현재는 ‘인류문명의 옥외 박물관’으로 불린다. 유럽이 암흑시대일 때 콘스탄티노플은 동방의 영화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함께 간직하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이 간직했던 그리스-로마의 유산이 유럽에 전해짐으로 해서 유럽은 헬레니즘의 부활-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점령돼 이스탄불로 그 이름이 바뀌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후신인 터키의 수도로 남아있다.

즉 보스포러스 해협 동쪽은 유럽에 있어 그리스 문명권과 얽히고설키면서 유럽이되 유럽이 아니고, 친구이자 원수이며, 타자와 비타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애매한 긴장지점인 것이다.

폴란드, 우크라이나로 이어지는 봉쇄라인의 공통점이 한 문명권과 다른 문명권 사이에 낀 나라들이라는 점이고, 그래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터키는 더더욱 본격적으로 낀 나라다. 터키가 강할 땐 주위가 벌벌 떨었지만 약해진 지금은 터키 자신이 혼란에 빠져있다.

터키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서쪽 유럽? 동쪽 투르크 민족주의? 이슬람? 아마도 이 셋을 절충한 어딘가이리라.

유럽인의 백인-기독교적 감성으로 볼 때 터키는 순전히 남인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터키가 남일 수만은 없는 것이 동방제국과의 대결에서 터키를 동쪽으로부터 빼내는 것이 서방세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터키가 비록 애증이 교차하긴 하지만 서양과 아주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터키라는 고리를 잃으면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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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무칼레(Pamukkale)

목화성(Cotton Castle)이라 불리는 파묵칼레의 석회붕은 칼슘과 중탄산염이 함유
된 온천수가 수세기에 걸쳐 산봉우리부터 흘러내리며 계단식의 자연 수영장 모습이
되었는데, 이 모양이 솜을 쌓아놓은 것 같은 형상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터어키
의 절경 중의 하나. 멀리서 보면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것 같기도 하고, 목화송이로 뒤
덮인 것 같기도 하고, 목화송이로 뒤덮인 것 같기도 한데 현재는 과도한 개발로 인해
온천수가 줄어들어 무미건조한 하얀 석회봉만 자리하고 있다. 물이 없어 지금은 수
용복 차림으로 온천욕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온천물
은 류머티스, 심장병,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위의 어느 곳이나 목
화밭을 볼 수 있듯이 이곳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모직 산업에 종사하였고, 섬유 산업
의 중심지이기도하는데, 오늘날 세계적 관광지답게 민박, 레스토랑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석회봉 위쪽으로로마시대에 세워진 야외 원형극장을 비롯하여 교회, 공중목욕
탕, 신전 등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이 있다.

언덕 위에 있는 히에라폴리스 유적은 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의 유적으로이 시
대의 것으로는 가장 내륙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성한 도시' 란 의미
의 히에라폴리스는 비잔틴움의 스테파누스가 사원의 수가 많이 지은 이름이라고 한
다. 수세기 동안 고원으로 흘러나온 석회수에 의해 형성된 솜 같은 순백의 평원은 감
탄을 자아낼 만한 장관으로 4곳에서 염화칼슘과 이산화탄소가 함유된 35℃의 온천수
가 솟아나오고 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원형극장으로 1만 5,000명
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둥근 관객석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은 정말
압권이다. 이밖에 터어키식 증기 목욕탕이나 돌을 쌓아 만든 벽 등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야외 극장 (Roman Theatre)

15,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2세기 하드리안 황제 때 건설되고 3세기 셉티
무스 세베루스 황제 시대에 개축되었고 현재 복구 공사로 약간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앙 무대 주변의 대리석 조각이 아름답다. 전성기에는 디오니수스의 일생
을 자주 공연하였다고 전해진다. 언덕에 있는 교회로 올가가는 길에는 철망 펜스가
쳐져 있는데 중간쯤 올라가면 극장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히에라 폴리스 Hierapolis

BC 190년에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Eumenes II)에 의해 조성된 유적지이
다. 전설적인 왕국 페르가뭄의 창건자 텔레포스 왕의 아내인 히에라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건립하였고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제국에 헌납함으로 이 후 큰 기독교 사회로 발전하였다. 몇
차례의 지진으로 부서져 1334년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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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 기기묘묘한
자연 풍광이 그랜드케니언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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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코리아는 BMW 뮤직필름 'BMW meets truth'의 출연진인 임소영 브라이언을 모델로 세운 가운데 Z4 3.0 si의 신차 발표회를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가졌다. 임소영이 신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손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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