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인 즉, 용산에서 다섯살쯤된 여자아이가 버려져있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아이의 두 발이 잘려있었다는 것입니다. 발목이 잘린 채 추운 겨울 바깥에 버려져 있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살아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나이 아이답지 않게 자신을 발견한 어른들에게 "나를 업고 가면 내 발을 자른 집을 알려줄 수 있어요"라고 똑똑히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보고받은 한성부(지금으로 치면 서울시청)는 심상치않은 일이라 여겨 왕에게 알렸고, 몹시 충격을 받은 중종은 아이를 간호하여 죽지않게 하라 명하며 포도부장을 직접 불러 수사를 지시합니다.
한성부가 아뢰기를, “용산강(龍山江)의 무녀(巫女)의 집 뒤, 언덕길 옆에 5∼6세 되는 어린애가 두 발이 잘린 채 버려졌는데, 그 아이가 그때까지 죽지 않고 ‘나를 업고 가면 내 발을 자른 집을 가리켜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그 아이를 추문한 뒤 그 말에 관계된 자를 잡도록 하면, 반드시 자기가 한 소행을 깨닫고 도피할 것이니, 급히 아이와 함께 군사를 보내어 그 아이가 가리킨 집에 가서 체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그 일을 들으니 놀랍다. 그 아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신중히 간호하여 죽지 않게 하고, 속히 포도 부장을 불러 체포하게 하라.” 【조선왕조실록 중종편】 17 집 394 면
아이의 증언은 이러하였습니다. 한 어른이 자신의 손을 묶고 입에는 솜을 틀어막아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만든 다음, 칼로 자신의 발을 자르며 "죽어라, 죽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끔찍한 이야기에 중종은 원래 형조에서 처리할 일이지만, 신중히 시간을 두어 처리할 필요가 있다 여겨 용의자들을 의금부에서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아이가 발이 잘려 버려지기까지의 어이없는 사연이 밝혀지는데요.
길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를 처음 '주워'온 것은 용산강 근처에 사는 사노비 한덕(漢德)이었습니다. 아이가 없는 여자였던 한덕은 자신의 자식으로 삼을 생각으로 집에 데려왔지만, 그 주인이 더러운 아이를 데려왔다며 꾸짖어 다음날 아이를 도로 길에 버리게 됩니다. 노비의 신분으로 주인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겠지요.
이렇게 다시 길에 나앉은 아이를 이번에는 겨린(切隣, 살인범죄자의 이웃)으로 대궐에서 나와 사는 수은(水銀)이라는 자가 데려갔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또 다시 아이를 버리게 됩니다.
이를 다시 김별좌(金別坐)의 종인 연수(連守)가 거두었으나 또 다시 버리게 되고, 마지막으로 아이를 데려간 것은 용산의 무녀인 귀덕이었다는군요. 물론, 귀덕 역시 이후 아이를 버려 다시 길거리에서 발이 잘린 채 발견된 것입니다.
즉, 이 어린 여자아이는 한덕-수은-연수-귀덕 이렇게 4명의 어른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를 반복했습니다. 따뜻한 집 안에 들였다가 다시 찬 바람 부는 길로 쫓아내다니...강아지나 고양이에게도 가혹한 짓을 아이에게 한 셈이지요.
의금부는 이들 무책임한 어른들을 모두 불러 조사하였으나, 앞의 세 사람은 자신이 데리고 있을 때에는 두 발이 멀쩡하게 달려있었다고 주장했고, 마지막인 귀덕은 "동상에 걸려 발이 자연히 빠졌다"며 아이의 증언과 상반된 주장을 했습니다.
한편, 자신이 아이의 생모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역시 사노비인 중덕(仲德)이란 여인이 "이 아이는 내 딸 옥가이(玉加伊)다. 지난해 9월 29일 뜻밖에 잃어버렸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생모라는 여인도 수상쩍은 데가 있었습니다. 의금부의 보고를 받은 신하들은 "한덕과 중적의 집은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데도, 어미라는 자가 그 아이의 소재를 알지 못했으니 지금 어떻게 중덕이 생모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왕에게 중덕도 용의자로 가둘 것을 건의할 정도였지요.
그래서 중종은 아이를 생모에게 보내지 말고, 처음 아이를 거두었고 마지막에 발견된 장소인 김귀성의 집(한덕의 주인)에서 돌보도록 합니다.
“여자아이를 생모에게 보내려는 것은 아이의 발이 잘렸어도 잘 구호하면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죽을 것이므로 낳은 어미에게 보내어 성심으로 간호하게 하려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미인지 확실히 알기 어려우니 가두어 두라. 다만 아이를 보호하는 집【갑사(甲士) 김귀성】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간호하여 죽지 않게 하라.” 【조선왕조실록 중종편】 17 집 394 면
그런데, 생모라는 중덕이 김귀성의 집에서 간호받고 있는 딸 옥가이를 방문한 자리에서 의외의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쩌다 발이 잘렸냐고 묻는 중덕에게 옥가이가 옆에서 죽을 떠먹이고 있던 한덕을 가리키며 "저 여자가 내 발을 잘랐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머니를 만난 안도감에 드디어 범인을 지목한 것일까요. 하지만, 한덕은 펄쩍 뛰며 어린아이가 착각을 일으킨 것이며 자신의 짓이 아니라 주장합니다.
의금부는 중종의 명으로 용의자 선상에 오른 여인들을 모두 데려가 아이에게 "이 중에서 누가 네 발을 잘랐느냐?"고 물었고, 옥가이는 한결같이 한덕을 지목하며, "칼로 잘랐으며, 낮에 방안에서 솜으로 입을 막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는 한덕 쪽으로 혐의가 기우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의금부사 유보(柳溥)와 동지의금부사 심언경(沈彦慶)은 중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자아이가, 분명히 한덕이 발을 잘랐다고 말하니 한덕은 의당 추문해야 하지만, 4∼5세의 미욱한 아이의 말만 믿고 형추(刑推)하는 것이 사체에 어떨는지 모르겠습니다. 율(律)에도 ‘80세 이후와 10세 이전 사람의 말은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편】 17 집 395 면
철없는 아이 증언만으로 한덕을 범인이라 할 수 없다는 지적과 함께, "이 일이 긴급하거나 중요한 일도 아니고, 증언도 엇갈려 판단하기 어려우니, 그냥 용의자들을 풀어주자" 고 건의했습니다.
즉, 노비의 아이 하나 발 좀 잘린 것을 가지고, 그것도 의지할 곳은 아이 증언 뿐이라 신빙성도 없는 상황에서 의금부가 다른 사건 제쳐두고 매달려야 하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중종은 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 아이가 귀덕과 한덕에게 무슨 애증(愛憎)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겠는가. 단지 그 얼굴을 보고서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아이의 발이 칼로 잘린 것인지,귀덕의 말대로 동상으로 빠진 것인지 확인하라"고 명하고
“발을 자르는 것은 잔혹한 것으로 세상에 드문 일이다. 백성을 구휼하는 정사 중에 가장 먼저 할 일로 이같은 어린아이를 구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의원들은 아이의 발을 살펴보고 칼에 의한 절단이 명백하다는 의견을 냅니다. 상식적으로도 동상으로 발이 빠졌을 경우와 칼로 자른 경우는 뼈라든가 상처의 형태가 완전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의금부는 이제 그만 옥가이 사건 수사를 그만두고 싶어합니다. 판의금부사 김금사(金謹思)는 중종에게
"동상으로 빠진 발이나 잘라서 끊어진 것이나 비슷하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아이 발이 동상으로 빠지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젖먹이 어린아이의 말로 한덕을 추문하는 일이 사리에 어떻겠습니까? 가령 그 발이 동상에 걸려 귀덕의 집에서 빠졌다 해도 치료하지 못해서 발이 빠지게 되었다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라며 결론이 나지않는 이 사건을 이제 그만 닫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영의정 정광필도 나서서
"단지 미욱한 아이의 말만 듣고 큰 옥사를 만드는 것은 부당한 듯합니다. 의심스러운 옥사(獄事)는 끝까지 밝혀 내지 않더라도 해로울 것이 없을 듯합니다."
즉, 아이 말만 믿고 벌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니 꼭 해결하려고 고집하지 말고 그만 두자는 얘기지요. 좌의정 장순손도 의금부의 편을 들었으며, 우의정 한효원이
"옥가이의 말로 살펴보면 입을 막고 발을 잘랐음이 지극히 분명하여 4∼5세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능히 꾸며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형추하여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매우 온당합니다. 그러나 귀덕 등 여러 사람의 초사를 보면, 여러 차례 집을 옮겨 다녔으므로 동상이 걸린 것도 또한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런 의심스러운 옥사는 끝까지 추문하더라도 실정을 알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무고하게 죽을 폐단까지 있습니다. 더구나 동상에 걸려 발이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상께서 재결하소서."
라며 논리적으로 왕을 설득, 결국 중종은 한덕, 귀덕을 더 이상 추문하지 말라는 명을 내립니다.
결국 왕의 지극한 관심과 수사 지휘에도 불구하고 '용산 여아 발 절단 사건'은 미결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아이의 증언은 신뢰성이 떨어지며, 증언에만 의지한 처벌은 부당하다는 등의 이유에서였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 아이가 일관성 있게 한덕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범행 수법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한덕에게 혐의를 두는 것은 당연한 듯 합니다.
아이의 발이 동상으로 인해 떨어져나갔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한 귀덕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지요. 한덕과 귀덕 사이 일종의 공모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한덕(또는 귀덕 등 범인)은 어째서 아이의 발을 자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요.
주워온 아이라도 외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룻밤의 편안함과 한 끼의 먹을 것을 받고, 다시 추운 길거리로 내몰린다면,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해도 울부짖었을 것이다. 매달렸을 것이다. 버리지 말아달라고, 배고프다고, 춥다고. 그리고 발이 달렸다면 돌아왔으리라. 자기를 주워줬던 곳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주인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사람으로서는 처음의 측은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지긋지긋함과 짜증만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죽일 만한 용기는 없어도, 아이의 발은 자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게 말이다...
-<조선기담-왕조실록에서 찾은 조선 사회의 뜻밖의 사건들(이한 지음, 청아출판사)>p.70 중 발췌
그나마 이 사건으로 인해 고아, 미아에 대한 학대를 엄중히 처벌하는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중종은 버려진 아이에게 해를 가하거나 몰래 노비로 만들어버릴 경우, 중하게 처벌하게 하고 이를 널리 알리도록 명합니다.
" 영아를 잃어버리거나, 영아를 산속에 유인하여 죽이거나, 감추어 길러서 노비를 만들거나 하는 자들이 계속하여 나타나는 완악한 풍습이 매우 심하다. 이 뒤로는 부모를 잃은 아이가 있으면 즉시 부(部)에 고(告)해야지 몰래 기르면서 숨기고 소문내지 않거나 노비를 만들었을 경우, 만일 뒤에 이 사실이 발각되면 당사자와 관령(管領)을 모두 중법으로 논해야 한다. 그 절목(節目)을 마련하여 방을 걸어서 널리 알리게 하라."【조선왕조실록 중종편】 17 집 397 면
1533년 2월16일 사건을 보고받은 날부터 30일 신하들의 압박으로 수사를 종결하기까지, 중종은 거의 매일 옥가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의견을 묻고 수사 지휘를 내렸습니다.
비록 미결로 끝났지만, 왕이 가련한 노비 소녀의 처지에 얼마나 충격을 받고 관심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일이나 다 한결 같은 것은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관료 공무원들의 무사 안일, 직무 유기가 가장 큰 문제임을 밝혀 주는 군요/군왕의 명에도 거듭하여 명을 접게하는 관료들.....백섣르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살며 행세하는 자들이 그 모양이니 오늘날도 이모양이지요.....
종교는 뭔 상관이랍니까. 인간은 본래 악한자들로서, 인간이 존재 하는한 범죄는 끊이질 않을 것이고, 또한
법으로 제어 한다 해도, 법망을 피해 교묘히 저지르는 일이 빈번한 마당에.
솔직히 댁말로 따지자면 범죄자중에 목사는 없어야 됨이 마땅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죠.
도덕이라........ 그것이야 말로 ,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사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인데, 그것또한 말라 가는 시대네요.
ㅉㅉㅉ
아무래도 귀덕과 한덕이 공모해서 자른것 같다..조선시대에 무당들이 신기를 강해게 한다고, 애들을 유괴해서 독에 가둬서 굷어죽게 하면 그 동자귀가 붙어 신기가 쎄진다는 야담이 종종 전해지기 때문이다. 주워온 아이가 5세이다 보니, 독에 가둔다고 그냥 고분고분 죽지는 않을것 같고..그래서 다리를 짤라서 가두었는데, 아이가 탈출한것 아닐까 ? 그냥 추리일 뿐이다
우리 조상들이 어이없는 삽질도 무수히 많이 했지만 이 얘기처럼 한낱 어린아이의 범죄까지 파고들었다는데에 조상의 세심함에 감사를 드린다..물론 결론은 삽질로 끝났지만..아무리 처음버린 이가 노비여서 주인안테 목숨까지 위태로워 다시는 못 찾아오게 발을 잘라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다치고 또 그걸 재상들이 덮어주려 했고 임금이 죄인에게 아량을 베풀었다 해도..그 죄악은 결코 용서되지 않는 점에서 현대인들의 눈엔 그야말로 자기네들 꼴리는데로 처리한 사건일 뿐이다..다만 배울점은 그런 범죄까지 들춰봤다는데 있다..누구야? 신경쓰라..세종인지 말종인지만 신경 쓰지 말고..
용산강 근처의 한덕의 주인은 판의 금부사 김금사의 친구인 주정래였다는 기록이 외유한담에 전해집니다.
김금사는 주정래의 청탁으로 수사를 빨리 종결시키려 하지요.
물론 이 범죄의 범인은 한덕이라는 주정래의 집 하인이 맞고요.
하지만 왕이 계속 수사를 지시하자 김금사는 급기야 영,정의정을 포섭합니다.
주정래는 성에서 알수 있듯이 친중국계...장안에 내노라 하는 갑부였습니다.
돈으로 승상을 포섭합니다.
왕에게 수사의 종결을 간언하고요.
예나 지금이나 돈으론 못하는게 없는 세상...
끝으로 애는 어떻게 되냐..?
왕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2개월 후에 그 합병증으로 세상을 버립니다.
그 덕에 애들을 보호하는 법도 생기지만....불쌍하죠..
조선시대는 너무 한심하다. 당파 싸움 아니면 수난의 역사와 불쌍한 왕들. 왜 우리는 고조선이나 고구려 같은 그 시대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고구려가 삼국의 통일을 했으면, 저 무식하고 건방진 쭝국, 사악하고 여우같은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았을텐데. 언제 우리는 고구려 시대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옛날 저 신하들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에 노비는 사람 목숨이 아니었으니
양반들 특히 대신들에게 노비 아이 하나의 발은 저희들 새끼 손가락 베인 것보다 작은 사건으로 생각했겠죠.
만약 양반 자녀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사건 처리가 좀 더 달라졌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런 반상의 신분차이는 지금도 존재하죠. 단지 양반과 상놈이라는 신분 차이가 아닌
가진자와 덜가진자라는 신분차이로 바꼈지만...........
다 같은 사건도 가진자가 당하면 큰 기사꺼리로 수사도 좀 더 빠르고 명확하게 처리되고
덜가진자가 당하면 유야무야 넘어가는 엄연한 신분의 차이는 아직도 존재하는 서글픈 현실.......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겠죠..................
조선 왕조가 왜 세계 역사상 드물게 500년이 지속된지를 알겠지요? 형사사건에서 이토록 철저하게 인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어디있습니까? 지금의 법조시스템도 이에 따르지 못할 것이오. 우리는 위대한 선조를 가졌어요. 양옴들이나 왜놈들이 쓴 사대주의 역사서를 보고 자란 사이비 얼간이 들이여 정신 차리게!
가족,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추운 날씨에 몸을 일으켜 쇼핑몰로, 시장으로 발품을 팔며 돌아다녀야 했으며, 그나마도 내가 미처 가지 못한 어느 구석 가게에 더 좋은 물건이 있을 것 같은 찝찝함을 삼켜야 했다.
확실히 온라인 쇼핑은 연말 준비를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변화시켰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다양한 상점에서 파는 갖가지 물품들을 손가락 클릭 한번으로 구경하고, 가장 저렴한 가격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이른바 '화면빨'에 속아 저질의 물건을 사게 되기도 하고, 교환과 반품은 번거롭고, 특히 연말에는 배송 지연으로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명한 인터넷 쇼핑을 하기 위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주의사항들을 소개한다. 기본적인 내용들이지만, 선물을 고르고 비교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면 망각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1. 어느 사이트에서 구입하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물품이라도 평판이 좋은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것을 선택하자. 몇 백원, 몇 천원 더 비싸다해도 신뢰를 받는 사이트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한다. 처음 방문한 사이트라면 고객센터 코너, 게시판 코너가 활발한 곳을 고르고 고객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보자.
2. 아이디, 비밀번호는 다양하게 만든다 물론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사이트마다 다르게 지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용 목적에 따라 쓰는 아이디,비밀번호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메일, 온라인 계좌 등 중요한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사이트의 경우와 쇼핑몰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서로 다르게 지정할 것. 같은 아이디를 사용할 경우, 누군가 당신의 정보를 추적하여 악용할 우려가 있다.
3. 회원가입시 개인 정보는 최소한만 제공한다 쇼핑몰 가입에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물품 구입에 그 정보들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신의 정보가 제3자에게 판매될 위험이 있으므로, 요구하는 대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4. 안전한 장소에서만 결제를 진행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로 쇼핑을 하고 결제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스파이 소프트웨어가 숨어있는 공용 컴퓨터에서 쇼핑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공유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다면 쇼핑 전에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으로 꼼꼼히 체크를 하도록.
5. 쇼핑몰 피싱을 주의한다 평소 잘 가는 쇼핑 사이트의 이름으로 메일이 왔는데, 팝업이 뜨면서 계정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주의하자. 이런 경우 피싱을 위험이 높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넣게 되면, 해커가 해당 사이트에서 당신의 계정을 이용하게 된다.
타이거 우즈 사건으로 전 미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갑자기 온국민의 관심 인물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타이거 우즈의 부인, Elin Nordegren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인이 우즈를 골프채로 팼다'는 설까지 퍼지고 있는 판국에, 정작 이 부인은 그동안 대중 매체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언론에 노출된 타이거 우즈의 부인에 대한 대중적 fact는 1) 스웨덴 인이다, 2) 과거에 모델이었다, 이 두가지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근 5년간 타이거 우즈의 부인에 관한 기사는 200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지에 실린 기사 단 한건 밖에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2000년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의 부인치고는 무척 적은 편이죠.
타이거 우즈와 관계를 맺은지 벌써 8년이 지났으나 우즈의 부인이 이렇게 노출이 덜 된 것은 그녀의 극도의 절제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경기를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응원을 나갔지만 기자와 지인들이 사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엔 철저하게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우즈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도, 임신으로 합병증을 앓았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출산시에도 우즈가 US 오픈에 참가하고 있는 와중에 혼자 조용히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항상 주변인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것으로 소문나 있던 우즈의 부인은 절제력과 지성, 그리고 상냥함까지 겸비한 내조의 여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대체 이 여성은 어디서 어떻게 우즈를 만나게 됐을까요?
Elin Nordegren은 스웨덴 방송국 임원인 아버지와 스웨덴의 정부 장관까지 지낸 어머니 사이에서 일란성 쌍둥이의 (10분 먼저) 언니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그녀가 6살때 이혼을 했지만 어머니의 엄한 보살핌으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10대 때 잠깐 모델 일을 했었지만 아주 짧은 기간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Elin은 모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호기심에서 시작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커리어로 생각지는 않았던 것이죠.
Elin이 모델 시절 찍었던 수영복 사진. 이때가 고교 시절이었다는군요.
Elin은 스웨덴의 명문 룬트 대학을 졸업한 뒤에 의류 업체에 취직을 했는데, 이때 스웨덴의 유명 골프 선수 Parnevik의 아내 Mia Parnevik과 친해집니다. Elin은 Mia Parnevik 아들의 유모를 맡을 정도로 친했습니다.
Mia Parnevik과 Elin은 2001년 브리티시 오픈에 방문하는데 이것이 우즈와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당시 경기에 참가한 타이거 우즈는 Elin을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미국 언론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는데요) 우즈는 사실 심각한 '쑥맥'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Elin에게 말을 걸지도 못하고 친구를 시켜 '저 아가씨 좀 불러줘'라고 부탁을 했다는군요.
Elin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었죠. 반응이 "대체 뭐하는 짓인가요" 이랬다고 합니다. 당연히 거절을 했고요. 사실 Elin은 우즈가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자로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신은 사실 친구 따라 왔을 뿐 골프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요.
그러나 우즈는 끈질겼습니다. Elin이 Parnevik의 부인과 함께 온 걸 알고 Parnevik 부부를 통해 집요하게 그녀에게 접근을 했습니다.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나요? 결국 Elin도 우즈의 진득함에 관심을 보였고, 둘의 관계는 급진전, 결국 200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 유명했던 초호화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5년 뒤,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스타 부부로 알려졌던 커플이...
남편의 불륜 소문에 이어, 부인은 골프채를 휘둘러 차 유리창을 깨고, 남편이 한밤중에 몰고 나간 차는 가로수를 들이받고, 사고 신고는 부인이 아닌 동네 주민들이 하고...
극적으로 맺어진, 그토록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모범 부부에게서 벌어진 사건치고는 예상 밖이 아닐 수 없군요.
참 어이없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TV 나 봐라.
꼭 이런 것들이 한국인이 외국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면 입에 거품 물고 댓글 달지...!! 너나 인종차별, 사람 차별 하지마라.
그리고 밖에 나오지 마라. 하는짓 봐서는 어딜 가든 무시당하고 살 것 같은데...
남편이 바람을 펴서 화가나서 골프채로 차유리창을 깬것 아닌가?? 그게 순서겠지. 부인이 차유리창을 깨서 바람폈다기보단. 남편이 바람을 피니 화나서 차유리창을 깬거겄지. 배우자가 바람피는게 얼씨구나 좋다할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리고 부인이 이쁜데 왜바람피냐? 하는 분들. 남자는 본능적으로 한여자에 만족은 못합니다. 그건 부인이 이쁘건 안이쁘건 한여자엔 만족하기 힘듭니다. 바람안피는 사람은 그냥 자제하고 살뿐이지요.
이 여자는 화려하게 대중앞에 나대는것도 싫어하는 지적인 여성인데 보아하니 타이거가 여자문제로 속을 썪인지 꽤나 되는것 같더라구요,그래서 쌓인게 많은가 봅니다.다른 문제도 아니고 이런 걸로 부부싸움하다보면 감정이 극단적으로 될 수 있죠.부인이 골프채를 휘둘렀는지도 모르죠.아무튼 타이거우즈 백번 잘못한거 같아요.자기 치부 드러날까봐 경찰에 출두안하고 입 딱 닫고있는데.부인이 상처 많이 받아서 이혼한다는 뉴스 나올지도 모르겠네
"사건을 다루면서, 이 범죄자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할 지경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관심'? 충분하지 않습니다. '잔인하다'? 이것 역시 충분치 않습니다. '동정심없는'? '비인간적인'?
우리는 이번 범죄를 통해 '비인간적'이란 표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될 듯 합니다."
-미 텍사스주 타런트 카운티 검사 리처드 앨퍼트
늦은 밤, 파티에서 신나게 즐기던 20대 젊은 여성이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술과 마리화나, 엑스터시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그녀는 도로 옆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한 남성을 차로 치게 됩니다.
갑자기 차에 충돌한 남성의 몸은 차 앞 유리창에 끼었습니다. 즉, 상반신은 자동차 조수석에, 허리가 유리창에 끼여 하반신은 차 바깥쪽에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허벅지와 팔 등 여러 군데 뼈가 부러지고 내상을 심하게 입어 피를 흘리는 상황이었지만, 남자는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고를 낸 젊은 여성은 이 때 '동정심을 가진 정상적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합니다.
자신이 다치게 만든 남성을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피해자가 유리창에 끼어있는 상태 그대로 차의 속력을 높여 자신의 집으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집에 도착한 이 여성은 차고에 주차를 하고, 유유히 집 안으로 들어갔으며, 음식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남자친구를 불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차 앞 유리창에 몸이 매달려 신음하도록 내버려둔 채로 말이지요.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블랙코미디 영화 '스턱'의 한 장면
여자는 가끔 차고로 들어와 피해자를 살폈습니다. 그를 치료하거나 걱정해서가 아닙니다. 사망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지요. 의식이 돌아온 피해 남성은 계속해서 신음하고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전직 간호조무사였기에 피해자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며 응급처치법도 숙지하고 있었을 가해 여성은, 그러나 도움을 청하는 남성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이' 그를 지켜보기만 했지요.
마침내 그가 과다출혈로 사망하자, 여성은 자신의 남자친구와 그 사촌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차에서 빼내어 공원의 인적이 드문 장소에 유기합니다. 사체는 다음 날 발견됩니다.
지난 2001년 10월,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입니다.
당시 25세였던 샹떼 말라드(Chante Mallard)는 37세의 홈리스 그레고리 빅스(Gregory Biggs)를 차로 친 뒤 숨지게 방치했습니다.
빅스의 시신이 발견된지 4개월 뒤, 말라드는 파티에서 술에 취해 사람들에게 "내가 그 백인남자를 차로 치었다"며 웃고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수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말라드는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2003년 재판을 받을 당시의 샹떼 말라드
말라드가 범인인 것으로 밝혀지고, 텍사스 언론을 통해 “Man Stuck In Windshield Left To Die.” 라는 보도가 나오자, 그 충격적 내용에 미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는데요.
말라드 측 변호사가 "자신의 자동차에 끼인 남자를 집으로 데려와 치료하지 않고 그가 죽도록 방치했다고해서, 이를 '살인'이라 할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해 '사고'와 '방치'가 있었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되었습니다.
의료진은 "피해자 빅스가 바로 치료를 받았더라면 분명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사고 이후 몇 시간 동안 고통에 신음했을 것"이라고 확인하여 말라드의 고의성을 강조하는 증언을 했습니다.
2003년 6월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말라드의 살인죄를 인정했고 50년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검찰 측은 종신형을 주장했으나, '적극적 살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면이 고려되어 50년형으로 내려졌다는군요.
사망한 그레고리 빅스, 사고 당시 직장을 잃고 노숙자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법정 증언대에 올라 말라드는 "마약이 나와 내 가족의 삶, 나아가 다른 이들의 삶까지 파괴했다"며 피해자 빅스 가족에게 여러 차례 용서를 구했습니다.
50년형이 선고된 뒤, 빅스의 아들 브랜든(당시 20세)은 법정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말라드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녀 또한 나의 용서와 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길 바란다"며 "말라드 가족에게도 위로를 표한다"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온 탓에 아버지와 크게 유대감이 강하지는 않았다해도, 스무살의 대학생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수'를 적극적으로 용서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이후 브랜든은 '용서'의 상징처럼 여겨져 기독교 방송과 래리킹쇼 등에 출연해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는데(이 동영상을 보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네요), 글쎄요. 대단히 놀랍고 종교적인 행위이긴 한데, 저같은 보통 사람은 썩 이해가 되지 않네요.
젊은 시절 그레고리 빅스와 아들 브랜든
워낙 충격적이고 드라마틱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말라드 사건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CSI와 로앤오더(Law & Order)에서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를 방영했고, 2007년에는 스튜어트 고든 감독, 미나 수바리 주연의 영화 '스턱(stuck)이 만들어졌습니다. 올 겨울에는 인도 볼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진 'Accident On Hill Road'도 개봉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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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드라는 여자는 정신적 으로 문제가 있고 마약을 한 상황이지만, 변호사놈 말하는거 봐라 사고와 방치일뿐 살인은 아니라니
자본주의의 가장 더러운 분비물인 변호사가 아닐까 한다,우리야 몰라서 누굴 동정하거나 비판 하지만 변호사란 것들은 알면서 죄인을 옹호하고 죄를 감춰주는 더러운 직업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