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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안 돼도 행복한 나라, 핀란드

2008.11.17 17:58 | 나라와 도시 이야기 | eg_blog

http://kr.blog.yahoo.com/eg_blog/2998 주소복사

50-60년대 헐벗고 굶주린 농업 국가였다가 50년만에 세계 최강의 첨단 과학 기술의 국가로 발전한 곳.

바로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인구 530만에 국토 면적은 유럽의 8위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인구 밀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토 전체가 수많은 호수와 숲으로 덮여 인간이 개간한 땅의 비율이 전체 면적의 10%도 되질 않습니다.


핀란드의 역사 대부분은 스웨덴의 자치구였습니다. 1809년 러시아로 편입된 뒤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기에 독립을 선언해 오늘날의 핀란드가 됩니다.

즉, 핀란드는 국가가 설립된지 100년도 되지 않은, 유럽에서 가장 어린 국가 중 하나입니다. UN에 가입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것은 1955년으로, 당시 핀란드는 전국민의 절반이 농민이었으며, 2차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들은 일자리가 없어 해외로 이주를 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핀란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안정'입니다.

70년대부터 핀란드는 교육, 의료 서비스, IT, 과학 연구 분야 등에 충격적일 정도로 과감한 개혁을 시도해 모두 성공시켰고, 이는 오늘날 핀란드를 세계에서 정치, 사회, 경제가 가장 안정된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핀란드의 국제적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에서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 시스템을 가진 국가로 선정

- 미국의 예일, 컬럼비아 대학은 자연 환경을 보호하는 지속 발전 가능 지수 순위에서 핀란드를 1위로 선정

- OECD 국가 중 연구개발비 투자 비율이 두번째로 높은 나라, 1위는 스웨덴 

- 15년 내내 세계 최고의 학생 경쟁력을 갖춘 국가

- Transparency International 조사 결과, 세계에서 가장 부패률이 낮은 국가

- 신문과 책 독서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악가를 키워내는 국가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

핀란드는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민족은 있었으나 한번도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민족의 역사 대부분을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 하에서 보냈죠. 이런 상황에서도 민족적 고유성을 잃지 않고 결국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된 것은 그들의 독특한 언어 덕분이었습니다.

핀란드는 유럽 국가로는 드물게 인도-유럽 어족이 아닌 (에스토니아 어에 가까운) 고유한 핀란드 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스웨덴어,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에 둘러싸여 살아 왔음에도 아직도 핀란드 인구의 92%는 핀란드 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2외국어로 스웨덴 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죠.

고유한 언어는 민족적 자존심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인식을 뿌리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실질적으로 핀란드 인들은 아주 오래된 단일 민족이며, 종교도 거의 동일합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모두 평등하다'라는 사고 방식을 가진 절대 다수의 핀란드 국민들은 검소하고 보수적인 소비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인구 밀도가 극히 낮음에도 주거 공간도 작은 편이고요.

핀란드에선 부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등이나 차별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핀란드 지방은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유일하게 왕이나 귀족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곳입니다. 오늘날에도 그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핀란드엔 사립 학교도, 특권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핀란드에선 특권 의식 자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자들의 사교 모임도 없으며, 사는 지역이나 경제 수준에 따른 차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겉에서 핀란드 인 개개인들의 부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 중 하나는 자동차 정도입니다.

기본적으로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편차가 심한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물려 가난하고 불행한 사회 계층을 살만하게 만든다는 이념입니다.

심지어 핀란드는 교통 범칙금도 재산에 따라 극심하게 차등화 하고 있습니다. 실례로, 핀란드 제일의 식품 가공업체 창업주 아들이 과속 운전으로 17만 유로(우리 돈으로 2억 5천만원)의 범칙금을 낸 적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 시스템은 전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대부분의 자수성가한 부자들도 이런 시스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당파 간의 정치적 견해 차도 크지 않습니다. 모두 이렇게 높은 세금으로 광범위한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자는데 뜻을 함께 하고 있어 현재의 제도가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런 관대하고 공평한 사회 문화는 사회 각 분야에 청렴 결백 성실이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정신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 수치로도 핀란드는 공무원 부패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핀란드의 발전, 그 핵심은 교육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풍족한 복지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복지의 핵심은 교육입니다. 핀란드 국민은 교육비를 평생 지불하지 않습니다. 의과대와 로스쿨 같은 고가의 특수 대학 역시 무료로 다닐 수 있습니다. 육아 시설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모두 무료이고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핀란드는 교사를 극히 엄격하게 선발하고 있습니다. 교사 지망생들은 4년제 대학 졸업 뒤 반드시 6년간의 교육 훈련을 거쳐야 하고, 모두 특정 전공 분야를 마스터 해야 합니다.

핀란드의 이런 교육 제도는 70년대 초반 시작된 과감한 개혁에 의한 것입니다. 당시 정치인들은 교육이야 말로 국가 개혁의 핵심으로 판단, 국가의 이념과 철학을 평등주의 교육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 핀란드의 학생들은 8학년이 되면 고등 교육을 받을 학생과 받지 못할 학생으로 나눠졌습니다. 이때 고등교육 진학에 탈락한 학생들은 평생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는 불평등한 제도였죠.

과감한 교육 개혁 뒤, 핀란드의 학생들은 9학년이 될 때까지 시험을 보지도, 우열을 가리지도, 성적을 매기지도 않습니다. 9학년을 마치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학생과 직업을 가질 학생으로 자발적으로 나뉩니다. 핀란드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 치르는 시험이라곤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 시험와 고등학교 졸업 시험 뿐입니다.

핀란드의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철저한 실용주의 교육입니다. 과학, 수학, 역사 등 핀란드 학생들은 책 안의 텍스트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생활의 사례와 연관시켜 배웁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실제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죠.


핀란드의 국가 브랜드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입니다. 이들의 테스트 점수는 전세계 어느 학생들보다도 높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은 졸업할때까지 시험을 2-3번 밖에 보지 않습니다.

70년대 초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 제도에 극렬 반대했습니다. 우파들은 정신나간 공산주의 발상이라고 매도했고요. 그러나 이 제도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성공하면서 전국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때의 교육 개혁으로 대학에 오는 학생의 질도 높아지고, 수도 늘어났으며, 대학의 경쟁력도 크게 강화됐습니다. 대학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졌고요. 수치상으로도, 핀란드 학생들은 최근 15년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면 핀란드 학생들이 2006년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에서 종합 순위 1위를 했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http://kr.blog.yahoo.com/health_blog/7844


무역국에서 첨단 기술 산업 국가로

핀란드는 냉전시대 중립을 선언, 소련과 유럽 사이의 무역으로 경제 발전을 한 국가입니다. 1975년 세계 GDP 15위로 올라섰으며, 8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진일보한 복지국가로 발돋움했죠.

그러나, 1990년에 들어 핀란드 경제는 최대 위기를 맞습니다. 핀란드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소련의 붕괴 때문이었죠. 여기에 부동산 거품 붕괴, 외국 자본 유실까지 겹쳐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았으며, 90년부터 93년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습니다. 특히 91년엔 -7%라는 기록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90년대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자국이 자력갱생할 수 있는 길은 첨단 과학 기술 뿐이라고 결정, 다른 국가들이 연구 개발비를 대폭 삭감하는 동안 핀란드는 오히려 꾸준히 늘려 나갔습니다.

오늘날에도 핀란드는 연구 개발에 가장 많은 것을 투자하는 국가입니다. 전체 국가 생산량의 3.5%를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죠.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 개발 투자률을 보이는 나라는 스웨덴으로 4.3%. 미국은 2.6%. 유럽 평균은 2%)

이때의 노력으로 탄생한 결과 중 하나가 노키아입니다. 90년대초부터 연구 개발 예산은 무선 통신 분야에 집중되었고, 노키아는 정부 기관의 소유 지분을 통해 투자를 받아 오늘날 세계 최강의 휴대폰 제조 업체로 부상했습니다. 오늘날 노키아가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은 350억 달러로 핀란드 경제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국가에서 주도하는 3개 단체로 운영되는 핀란드의 과학 연구 개발 투자는 오직 실질적인 성과를 보이는 곳에만 혜택이 돌아갑니다. 수많은 대학과 연구팀들이 국가 고위층의 연줄을 통해 연구 개발 투자에 지원했으나 실적을 내지 못해 탈락했습니다.

이때 다진 핀란드의 기초 경제 체력은 2005년 시작된 유럽의 경제 침체에도 핀란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 미래의 그늘

핀란드의 지나친 '안정'은 젊은 층의 무사 안일주의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보지 않는 핀란드의 학생들은 그 어떤 경쟁이나 스트레스에도 시달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현재 핀란드 학생들은 학비를 지불하기는커녕 학교를 다니기만 하면 55개월간의 조건없는 장학금까지 받고 있습니다. 

이는 핀란드의 젊은층들을 심리적으로 약화시켰습니다. 핀란드의 젊은이들은 경쟁심이 약해지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모험심, 야망, 꿈, 포부 등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즉, 핀란드의 장래엔 기업가 정신의 실종으로 경제에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핀란드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편하고 쉬운 삶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학생들로부터 최소한의 대학 학비라도 받아야, 이들이 받고 있는 복지 혜택에 눈을 뜨고 감사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안일한 심리 상태는 핀란드 전국민에게 전염된 상태입니다. 현재의 상태에 지나치게 만족하고 핀란드의 국민들은 국가의 심리적인 발전 가능성을 점차 줄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핀란드의 출산률이 너무 낮아져 복지 제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란 예상입니다. 인구는 늘어나지 않는데 불구하고, 첨단 기술 산업은 크게 발전했지만, 재래식 산업이 크게 위축돼 일자리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현재 핀란드의 전체 인구 7%가 실직 상태이며, 세계 경제 위기를 맞은 2009년에 이 수치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해가 짦은 핀란드의 겨울 한낮 풍경입니다.
경쟁보다는 평등을, 특권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핀란드는 많은 모험을 해 왔습니다.
이런 사회주의 모험은 기적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과연 이 성공이 세대가 바뀐 뒤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요?

참고자료: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8/05/AR2005080502015.html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7/13/AR2005071302227.html
http://en.wikipedia.org/wiki/Finland
http://www.iht.com/articles/1992/01/22/fin_.php
http://www.iht.com/articles/2006/01/08/news/finland.php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29214


나라와 도시 이야기 전편들

6편: 한 인간의 꿈이 기적을 일구다, 두바이의 신화

5편: 행복은 석유 매장량 순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4편: 저주받은 석유 부국의 대도시, 라고스

3편: 저주받은 석유의 나라, 나이지리아

2편: 경제 대신 환경보호 택한 행복의 나라, 부탄

1편: 거품 경제에 무너진 "세계 최고"의 자부심, 아이슬란드

한 인간의 꿈이 기적을 일구다, 두바이의 신화

2008.11.10 16:58 | 나라와 도시 이야기 | eg_blog

http://kr.blog.yahoo.com/eg_blog/2994 주소복사



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입니다.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영내 도시지만, 중앙 정부와 독립돼 수많은 자치권을 부여 받은 대도시입니다.

대도시라곤 하지만 인구는 100만명 남짓입니다. 인구가 100만명 남짓이라곤 하지만 연간 경제 규모는 370억 달러에 달합니다. 우리 돈으로 40조원에 달하는 규모죠. (참고로 5천만 인구의 한국 연간 경제 규모는 약 8000억 달러.)

최고의 중동 경제 관문으로서 두바이는 무역, 관광, 쇼핑, 건설, 부동산 업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으며, 석유가 가스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전체 경제에 6%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 한해 방문하는 관광객은 인도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보다 더 많으며, 

싱가폴보다 더 많은 선박이 입출입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1인당 쇼핑몰 수를 자랑하고 있으며.  

유럽 대다수 나라보다 더 많은 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중국의 2배에 달하는 경제 성장률(16%)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990대 두바이 시내 사진(上), 같은 시내를 2003년에 찍은 사진(下)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텔, 버즈 알 아랍 호텔.


2009년 9월에 완공 예정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버즈 두바이.


2012년 완공 예정인,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아치 다리


2010년 완공 예정인 두바이 다이내믹 타워. 층마다 회전이 가능한 빌딩이다.


두바이에 건설된, 혹은 건설 예정인 인공섬들.
인공 섬을 건설해 두바이는 주거 인구를 늘리고 상업/관광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두바이에 최근 개장한 인공 스키장.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이 스키장은 두바이의 여러 '기적' 중 하나다.

두바이가 이런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은 50년 만의 일입니다. 50년 전의 두바이는 페르시아 만 연안의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석유의 힘으로 사회 변혁을 이룬 것에 비해 두바이는 석유의 힘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인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어떻게 한 걸까요?


"석유는 곧 바닥난다" 아랍의 위대한 선각자

두바이의 기적은 어느 위대한 선각자 한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됐습니다.


라시드 빈 사에드 알 마크툼. (1912 - 1990)

라시드는 두바이에 살던 셰이크(수장)로, 아랍 에미레이트 총리였으며, 두바이의 종신 지배자였습니다. 

그가 살던 두바이는 진주잡이 잠수부와 어부, 상인, 헐어 빠진 어선과 범선 밖에 없던 어촌이었습니다. 이 가난한 어촌을 바라보며 라시드는 생각했습니다.

'이 곳이 중동 제일의 경제 관문이 될 것이다.'


1960년 두바이의 풍경.

라시드는 중동의 석유는 금방 떨어져 버리고 말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비관론자였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할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다녔고, 내 아버지도 낙타를 타고 다녔다. 나는 벤츠를 몰고 다니고 내 아들은 랜드로버를 몰고 다닌다. 그러나 내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다."

석유는 오래지 않아 바닥이 날 것이고, 석유에 의존하다간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라는 경각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시드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두바이에 말이죠.

1959년 라시드는 쿠웨이트에서 수백만 달러를 빌려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수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부두와 창고, 도로, 학교, 주택 등을 거침없이 건설하거나 건설 계획했습니다.  

라시드는 투자자를 설득해 거대 공항과 항만을 건설해 오늘날 북반구 최고의 경제 허브 중 하나인 두바이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가난뱅이들이 득실대는 사막의 해안가 시골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라시드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바이 프로젝트는 크게 망할 것이라고 수군댔죠.

그러나 라시드의 신념은 확고부동했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건설 현장에 자신의 아들 모하메드를 데리고 와 두바이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두바이가 어떻게 세계 제일의 경제 허브가 될 것인지 잔뜩 들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라시드의 외로운 꿈은 마침내 그의 아들에 의해 현실화 됩니다.


위대한 선각자의 아들, 두바이의 정신


라시드의 3째 아들,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마크툼 (1949 - )

라시드가 두바이의 물질적 기반을 마련했다면, 그의 아들 모하메드는 거기에 정신적 기반까지 보탰습니다.

그 역시 아랍에미레이트의 총리 자리에 오른 모하메드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인들을 위하는 것이 두바이를 위하는 것"

두바이엔 법인세와 소득세가 없습니다. 세계 초일류 금융 시스템을 갖춰 누구나 쉽게 자금을 유통할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국적, 종교, 인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함께 살며, 사업을 하는데도 아무런 갈등이 없음. 아랍 사람들끼리는 수니파 시아파를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이스라엘 인들도 아무런 차별없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모하메드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매일 직접 차를 몰고 두바이 구석구석을 다니며 건설 현장을 시찰합니다. 작업장을 불시에 검문해 무능한 관리자를 현장에서 해고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모하메드의 능력 위주 자유 사상은 많은 성과를 낳았습니다. 그는 특히 (아랍 지역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했습니다. 1996년 아니타 메라 호메이운이란 젊은 여성을 두바이 공항 마케팅 총책임자로 임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극빈 어부의 자식이었던 모하메드 알라바는 두바이 토박이였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배경도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개 상인으로 출발해 엄청난 수익 성장을 기록했고, 곧바로 모하메드의 눈에 띄어 두바이의 경제 개발부 장관까지 승진했습니다.

알 마크툼 집안의 통치 하에 두바이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귀족이건 천민이건, 누구든 일을 잘하면 인정받는다는 성공 의식이 지배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두바이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급진적인 자유가 낳은 해악, 두바이의 그늘

두바이에는 몇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도시 거주민 중 아랍 에미레이트 국민은 1/8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두바이엔 남아시아 각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체 인구의 60%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민들이죠. 그러나,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성공의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성공은커녕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리지 못합니다.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지만 일당은 겨우 5달러. 2004년 일사병으로 사망한 두바이 외국인 노동자의 수만 9백명에 달합니다. (그래서 최근엔 낮 시간 동안 노동을 휴지시키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취업 비자 발급 대가로 브로커에게 거액의 빚을 지고 두바이에 갇혀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몇달째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임금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 노동자들이 다수입니다.

상인의 자유를 극대화 하는 바람에 각종 반인륜적 매매 행위가 극성인 것도 문제입니다. 두바이의 밤골목엔 매춘, 인도/러시아 갱단, 총기 보석 밀수업자, 인신 매매업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특히 두바이의 인신매매 실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중국, 러시아, 동유럽, 동아프리카 등지에서 성매매 목적의 여성들이 두바이로 강제로 팔려 오고 있습니다. 이중에는 미성년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음에도, 두바이의 인신매매 근절 대책은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두바이 유흥가에서 매춘을 하는 아랍 여성들.
여성이 밤거리에서, 온몸을 드러낸채, 호객 행위를 한다는 것은 다른 아랍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두바이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빨리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바이엔 전통 문화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유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의식도 점차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두바이는 다른 아랍국들의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두바이 급속한 성장을 위해 너무 많은 해외 자본을 끌어 들인 상황입니다.
세계 금융 시장이 더욱 경색될 경우 두바이는 현재 외환 보유고로도 파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고 자료: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월호 "모래 위의 기적 두바이"
http://en.wikipedia.org/wiki/Dubai
http://en.wikipedia.org/wiki/Rashid_bin_Saeed_Al_Maktoum
http://en.wikipedia.org/wiki/Mohammed_bin_Rashid_Al_Maktoum


다음 시간엔 "부자가 되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 대해 알아봅니다.


나라와 도시 이야기 전편들

5편: 행복은 석유 매장량 순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4편: 저주받은 석유 부국의 대도시, 라고스

3편: 저주받은 석유의 나라, 나이지리아

2편: 경제 대신 환경보호 택한 행복의 나라, 부탄

1편: 거품 경제에 무너진 "세계 최고"의 자부심, 아이슬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