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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행복한 이유

2009.07.09 15:08 | 세계각국 문화 인물 | 블로거

http://kr.blog.yahoo.com/eg_blog/3092 주소복사

책을 읽다보면, 눈이 '번쩍'하는 순간이 가끔 옵니다.

내 머릿 속에서 은근하게 떠돌아다니던 개념, 명확한 모양새는 없으나 안개나 구름처럼 뿌옇게 존재하던 생각 한 줄기를 생판 낯선 이름의 누군가가 너무나 명확한 언어로 표현해놓은 구절을 발견할 때가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대사, 또는 유행가 가사에서 이런 부분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활자화된 형태로 다가오는 이런 공감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종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며칠 전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서점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의외의 수확이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 탓에 심심풀이로 집어 든 책 한 권에서 바로 위와 같은 '번쩍'하는 부분을 발견했거든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김정운 저, 쌤앤파커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명지대 교수의 책입니다. 제목과 카피가 대단히 상업적,전략적으로 느껴집니다만, 내용은 솔직하고 명확하더군요. 다소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좀 콤팩트하게 줄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저자는 대단히 자학적 유머러스함을 갖춘 글쓰기를 합니다. 소설가 박형서씨의 단편집 이후로 서점에서 혼자 끌끌끌 웃어보긴 처음이었는데요. 일방적으로 타인을 비웃는 것이 아닌, 나를 포함한 우리 자신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측은해하는 류의 유머가 취향에 맞으시다면, 추천합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책에서 제가 발견한 '번쩍'했던 부분은 바로 "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장수하며, 상대적으로 말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경향이 강한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늙으신 부모님을 바라보며 이런 걱정을 합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신다면, 부디 아버님이 먼저 떠나시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텐데..."

주변을 둘러보면, 할머니들은 홀로 남으신 다음에도(오히려 혼자여서 더욱!) 알찬 생활을 하십니다. 수영복을 입고 아쿠아로빅을 배우고, 찜질방에 둘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떨고, 해외여행을 떠나고, 자식들에게 밑반찬을 해보내시지요.

하지만, 홀로 남으신 할아버지는?...노인정에 앉아 잠깐 바둑을 두시다가, 홀로 집에 돌아와서는 소주 한 병을 동무삼아 TV를 틀어놓고 잠이 드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같은 차이는 수명으로 나타납니다. 책에 따르면, 금실 좋은 노인 부부가 함께 지내다 할머니가 먼저 사망하면 할아버지는 평균 6개월 이내에 다 죽는다고 합니다. 반면, 할아버니가 먼저 사망하면 할머니는 평균 4년 정도는 더 산다고 하고요.



위 책의 저자는 이같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차이를 '리추얼(ritual)'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리추얼은 정서적 반응이 동반되는 습관을 뜻하는데요, 매일 아침 함께 식사를 할 때 아내가 따라주던 커피의 향과 같은 것입니다. 늘 나를 기다리던 그 커피향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아내와의 행복한 삶을 상징하니까요.

"문제는 할아버지의 리추얼은 대부분 할머니와 연관되어 있는 반면, 할머니의 리추얼은 할아버지 없이도 가능한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리추얼이 다양한 삶은 풍요롭다. 느끼는 정서의 차원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리추얼은 남성의 리추얼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중 29p)

삶에서 의미를 두는 리추얼이라고는 일 밖에 없었던 중년 남성들은 은퇴 후 사회적 지위가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리추얼을 찾아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 가족에게의 헌신(?)을 결심하게 되는데, 아내와 가족은 이미 자신들의 리추얼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아버지의 '귀환'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오히려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요.

즉, 노년에 고독과 무의미함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일찍부터 자신만의 리추얼을 만들고 인생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림그리기나 음악감상같은 취미활동이 될 수도 있고, 부부동반 여행을 정기적으로 가는 것도 리추얼이 될 수 있겠지요.

윈스턴 처칠(1874~1965)

저자는 윈스턴 처칠의 예를 듭니다. 우울증과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처칠은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하다'는 평을 예사로 들었고, 그를 견디다 못한 아내는 처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성과 오랜 불륜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처칠이 위대한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신보다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자신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져도, 그림 그리는 취미는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처칠이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끈질기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리추얼'을 가졌던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즐기고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는 리추얼을 찾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중요시하도록 만드는 교육을 받고 자란 경우에는 말이지요.

자신있게 "평생 동안 즐길, 나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개성을 지닌 리추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남들에게 휩쓸려 좋다는 영화나 가끔 보고, 베스트셀러를 좀 읽어보다 말고, 수영 좀 배워보다 말고, 결국 일과 돈 밖에 남는 것이 없다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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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kadee 2009.07.13  03:48

감사히 읽고 갑니다. 흥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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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상 2009.07.13  11:41

부모 수명이 길어지면 자식이 효도하기에 지치고 자식도 늙어서 부모 공양하기에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태어난 자리레서 자라고 농사를 이어가고, 부모 수명이 한갑을 넘기지 못하고, 20십대 초에 장가를 가던 시절에나 효를 다할수 있었지, 입시지옥, 직장업무폭주, 조기퇴직, 취업전쟁, 늙은 총각 결혼, 노후 불안사회에서 양심과 도덕성, 효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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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ungmo0448 2009.07.13  13:19

그걸 지금 말이라고 지껄입니까? 본인이 못난걸 왜 남탓,사회탓,부모탓을 합니까...부모는 평생을 공경해야할 어떤 자식한테든지 대우받아야 합니다...

you4808 2009.07.13  14:10

0448님아 흥분하지마시고요 조인상님 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편안하고 내 자신이 일을 안정적으로해야 부모효도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요세같이 어지러운 시기에 또는 옛날같이 다들 못사는시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빈부격차가 심하고 나하나 살아 남기도 힘든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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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fish 2009.07.13  15:10

오랜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들어 여러가지 병으로 의료난민을 유발하는 현실을 볼때..효자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시댁인가를 알수 있다. 고려장이 왜 생겼는지도 한번 생각해 볼일이구..그런 고려장이 되어 자식손에 죽는것 보다..스스로 꺠긋이 살다 깨긋이 가는 그런 인생관도 고려해 볼필요가 있다..나도 아이셋이 있자만...이담에 내늙어서 이 아이들과 함께 할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다..포기하고 만다..다들 자기 직장다니냐고 바쁠테구...물려준 재산이 없으니...힘들게 작은집에서 콩알콩알 살텐데..거기에 얻혀 산다는것이 그리 쉽게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어느정도 나이들어 병원문을 두드려야 할때가 되면 스스로 조용히 낚시나 하다 갈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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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eonhee 2009.07.13  16:17

저는 40대지만 요즘 너무 수명이 길어지는 걸 보면 답답하기도 합니다. 많은 재산이 있는것도 아니고 오래살다 보면 자식들이 힘들어 질텐데.. 하는 생각이요! 그리고 왜! 수명 연장에 그렇게 힘쓸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두가 다 100살까지 사는걸 원할까? 저의 시어머니께서는 80인데 친청어머니가 100세입니다. 아들이 없어서 큰딸인 저의 어머니가 바라지 하십니다. 그걸 보면서 오래사는것도 죄구나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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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7410 2009.07.13  17:49

그걸 알면서도 마음대로 안되는걸.... 목숨이 마음먹은대로 된다면야 무슨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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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tel999 2009.09.15  20:34

정답!!

신비남 2009.07.13  21:23

많이 생각캐하는글이군요 .슬픈일이지만 엄연한 사실인걸요. 사는동안 서로게 힘을줍시다. 외롭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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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an 2009.07.19  11:45

...비판도 되어지고, 측은해지기도 하지요.
리추얼, 리추얼......
책표지도 그렇고, 열어보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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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리 2009.07.21  10:13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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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dorkr 2009.07.29  10:51

입은 삐뚤어도 말은 바로 합시다~ 댓글을 보니 한심 하군요~~
애들 학원 보낼 돈은 잇으나 부모님모시고 병원가서 영양제 한번 맞힐돈이 없고 애들 휴대폰 사줄 돈은 잇으나 부모님 한테 전화할시간이 없고 애들 밥챙겨 먹이는데 혼신의힘을 다하면서 부모님한테 식사는 무엇하고 드셧는지 여쭤보기는커녕 연락올까 두려워하는 ......................등등~~ 참으로 한심하게 살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복의 기준이 어디인지를 착각하고 살아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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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ng.faith 2009.09.15  20:59

우리도 늙습니다, 한국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나이 들어선 돈이 없어 천덕구러기가 되는 것이 한국 실정 이지요 우리 나라도
만18세가 되면 독립해서 부모곁을 떠나야 합니다 한국은 너무 아이들을 오냐 오냐 키우고 늙어서 그 자식 한테서 온갖 눈치 받으면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 한국 부모님들에 인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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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l5803 2009.09.16  13:39

좋은 글...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둘 곳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때때로 그 마음 둘 곳이 없기도 하고...없어지기도 하고...거부도 당하니 문제지요...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숙제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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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참 2009.09.16  16:15

책 제목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지만 후회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더군요. 아내가 옆에 있어 고마워하는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제목(?)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중년의 친한 남자들끼리 편안하게 술 한잔하며 나누는 재미있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퇴직을 앞둔 남자분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실망하게 되실까 걱정도 됩니다. 재미있게 삽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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