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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명한 '여성 철학자'의 이름을 대어보라는 질문에, 혹시 대답할 수 있으십니까?
철학에 제법 관심이 있는 경우라도 썩 시원하게 답이 나오는 질문은 아닐겁니다. 겨우 떠올린다해도 한나 아렌트나 시몬 드 보부와르, 로자 룩셈부르크 등 20세기 여성 학자들에 머물러 있지요.
근대 이전에는 남성들만 교육과 정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사회적 권리에서 여성의 소외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에도, 학식과 총명함을 인정받고 철학사에 (살짝) 이름을 남긴 인물이 있었습니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작가이자 철학자 플루타르크는 아스파시아에 대해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성적인 여성"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나에게 변론술을 가르쳐준 여선생은 많은 탁월한 연설가들을 길러냈다네...나는 그분에게서 직접 배웠고, 내가 잘 잊는다고 해서 매를 맞을 뻔한 일도 있었지.(소크라테스, 메넥세노스와의 대화 중)"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기록한 책 중 <메넥세노스(Menexenos)>편에는 이 유명한 철학자에게 변론술을 가르친 여스승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스파시아(Aspasia of Miletus).
소크라테스식 대화술을 만들어냈으며 수사학 전문가였던 그녀는 학자로서보다 그리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와의 로맨스로 유명하지요.
BC 460~70년 사이 아나톨리아의 밀레토스(Miletus)에서 태어난 아스파시아는 부유하고 학식있는 집안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스로 시집가는 언니를 따라 밀레토스를 떠났다는 설이 있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습니다.
아테네에서 아스파시아는 고급창녀인 헤타이라(hetaera)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헤타이라는 조선시대 황진이같은 기생과 흡사한데, 학식을 갖추고 고위층 남성들과 교류하는 역할을 했다는군요.
아스파시아가 실제로는 헤타이라가 아니었다는 설도 있는데, 어쨌거나 그녀가 집에 살롱을 열어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아르키메데스, 소포클레스와 같은 학자들과 정치가들의 토론과 교류의 장을 만든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 살롱에서 아스파시아는 고위층 가문의 딸과 며느리들을 모아 교양 교육을 하기도 했고, 이들의 남편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합니다.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
그녀가 그리스 민주정치의 기반을 닦은 지도자 페리클레스를 만난 것은 BC 445년경. 전처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던 페리클레스는 아스파시아의 총명함과 품성에 반했고, 두 사람은 페리클레스가 죽을 때(BC 429년)까지 함께 살았다네요.
아스파시아가 페리클레스보다 무려 30살 가까이 연하였는데도, 또 당시 그리스에서 여성은 참정권을 가질 수 없는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페리클레스는 아스파시아에게 모든 일을 의논했고 함께 정치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페리클레스가 펠레폰네소스전쟁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했던 유명한 추도 연설도 "사실은 아스파시아가 지은 것 같다"는 구절이 <메넥세노스>에 나올 정도였지요.
짐작할 수 있듯이, 이들을 보는 그리스인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습니다. 아스파시아가 외국인이었기에 당시 법률에 따라 두 사람은 결혼할 수가 없었지요. 어쩔 수 없이 동거관계에 머물 수 밖에 없었지만,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음란하다고 여겼고 아스파시아가 페리클레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페리클레스를 부추겨 스파르타와 전쟁을 벌이게 했다는 둥,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둥 툭하면 모함하는 이들(페리클레스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까지도)이 나타나 재판을 받아야 했던 적도 여러 번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대중들의 오락거리였던 연극 무대에서 아스파시아는 공공연히 '마녀', '창녀'로 언급되며 비웃음을 들어야했지요.
또 그녀는 "소크라테스 패거리(Socratic)"라는 평도 들어야했는데, 흥미롭게도 당시에는 이 말이 절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에게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아스파시아의 이름이 새겨진 상
BC 429년 페리클레스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뒤에는 아스파시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이후 아테네 장군인 리시클레스(Lysicles)와 결혼했다는 설이 있는데 리시클레스도 BC 427년경 사망했다는군요. 아스파시아는 BC 401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나보다 지식이 많은 그녀는 모든 문제를 설명해준다"고 말했던 여성 아스파시아.
배타적인 고대 아테네 사회에서 외국인이자 여성이었던, 철저한 비주류 아웃사이더였을 그녀가 당당하게 사랑하고 가르치며 살았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그녀의 행적에 대해 남겨진 기록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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