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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총리가 대로변에서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면. 경호원의 보호도 없이 금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한 귀가길, 단 한 명의 테러리스트가 총리를 암살했는데,
시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우왕자왕하다 범인을 놓쳤다면, 그리고 이후 1년간 수백명의 인력이 동원되었으나 검거한 이들은 무죄 판명되고, 결국 20여년이 지나도록 나라의 수장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어영부영 끝났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곳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입니다.
스벤 올로프 요하임 팔메(Sven Olof Joachim Palme, 1927~1986)
1986년 2월 28일 밤, 당시 스웨덴의 총리 스벤 올로프 요하임 팔메(Sven Olof Joachim Palme)는 부인, 아들 부부와 함께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격식 차리기를 싫어하고 털털한 성격이었던 총리는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고 외출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이날 밤도 그런 케이스였지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바깥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총리 부부는 아들 부부와 헤어져 자신들의 아파트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스톡홀름의 메인 거리(Sveavagen)를 걷던 두 사람이 공격을 당한 것은 11시 21분. 총성이 나고 팔메 총리가 쓰려졌습니다. 부인 리스벳 여사도 총을 맞았으나 다행히 부상이 깊지는 않았습니다.
인근에 있던 택시 기사가 이동무선기로 경보를 보냈고, 주차된 차에 있던 두 소녀가 쓰러진 총리를 도우러 뛰어갔습니다.
한 시민이 긴급구조대에 전화를 걸었으나, 이 신고 전화는 경찰서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신고가 경찰에 들어갔고, 현장에 도착한 앰뷸런스가 총리 내외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팔메 총리 부부가 총격을 받은 대로변
놀라운 것은 경찰의 늑장 대응이었습니다.
현장 인근을 순찰하던 경찰차들은 무슨 사건인지, 테러를 당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수색을 하라는 명령만 받았고, 도로 수색령은 12시 50분까지 발령되지 않았습니다. 공항이 폐쇄된 것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으며, 현장 수색에서 저격범의 총알 두 개를 찾은 것은 모두 지나가던 시민들이었습니다.
팔메 총리는 12시 6분,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총리 암살 소식은 새벽 1시 10분 라디오를 통해 국민에게 전해졌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만, 이후 11개월간 수백 명의 경찰이 동원되어 600만 달러 이상을 들여 수사를 벌였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 놀랍습니다.
33세의 급진우파운동가 빅터 군나손(Victor Gunnarsson)이 체포되었으나 증거가 없어 바로 풀려났습니다. 당시 스웨덴 언론이 군나손을 '33세인 자(33-aringen)'라고만 표기해 용의자의 인권을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간혹 언급되곤 합니다. 그 외 다른 용의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범행에 사용된 총알도 있고,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도 여럿이며, 피해자 중 한 명인 리스벳 여사가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증거를 확보하는데 실패했지요. CSI의 길반장이나 호반장이 봤다면 혀를 끌끌 찰 상황이었습니다.
연설 중인 팔메 전 총리
2년이 지난 뒤, 40대의 크리스터 페터슨(Christer Pettersson)이라는 마약중독, 알콜중독자이며 지능이 떨어지는 전과자가 총리 암살자로 체포됩니다.
페터슨은 말 그대로 '잡범'이었는데, 리스벳 여사가 '바로 저 남자'라고 알아본 것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지요. 그러나 ^살해에 사용된 총이 발견되지 않았고, ^마땅한 살해 동기가 없으며, ^리스벳 여사의 기억은 객관적 증거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결국 페터슨도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페터슨이 총리 암살을 자백하는 깜짝쇼가 벌어졌는데요, 2001년 스웨덴 법정은 자백만으로 사건을 다시 오픈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레스벳 여사와 아들 마르텐 등 가족들은 다시 페터슨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를 희망했으나, 결국 그렇게 마지막 용의자도 사라지게 되었지요. 페터슨은 2004년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이후 2006년 한 호수에서 건져낸 낡은 스미스 웨슨 권총이 총리 살해에 쓰인 무기로 추측되기도 했으나,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난 뒤라 증거로 인정받기는 힘들었지요.
팔메 전 총리의 추모비
지금까지도 과연 누가 팔메 총리를 죽였으며, 배후 세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온갖 설이 난무합니다.
사회민주당을 이끌었던 팔메 총리는 교육부 장관 시절, 베트남 공격을 감행한 미 존슨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해 스웨덴과 미국 관계를 험악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핵확산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전개하고 아프리카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정치적, 재정적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강대국' 위주의 세계 질서에 강한 반감을 표현하고 빈곤층과 제3세계를 대변했던 평화주의자였던 행적 때문에 극우파의 사주로 암살이 행해졌다는 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3년에는 백화점에서 쇼핑 중이던 안나 린드 스웨덴 외무부장관이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체포된 살해용의자는 스웨덴 내 신나치주의 조직 소속이었습니다.
진보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던 린드 장관은 스웨덴의 유로화 통합을 주장해왔는데, 이 때문에 극우파의 반감을 샀다는군요. 팔메 총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예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지요.
경찰의 늑장 대응과 범인 색출 실패에 대해 음모론이 제기되고, 유가족은 지금도 페터슨이 범인이라 믿고 있다지만, 어쨌거나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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