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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보다 뛰어난 능력과 사회성,적극성을 뽐내는 여성들을 '알파걸' 이라 부릅니다. 2006년 하버드대 댄 킨들러 교수가 만들어낸 신조어라는데요.

자신의 앞길을 당당히 개척하는 용기와 시대를 앞서가는 뛰어난 감각, 타인을 압도하고 이끌어나가는 리더십 등이 '알파걸'의 조건이라면, 신분제도와 남존여비 사상이 여성들의 삶을 짓누르던 200여년 전 조선시대에 이미 '알파걸 중의 알파걸'이 존재했었습니다.

김만덕(金萬德,1739∼1812)

조선의 전무후무한 자수성가 여성 상인,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제주 의녀'로 이름을 남긴 김만덕(1739∼1812).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혼자의 몸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이를 흉년에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내놓았으며, 공적을 인정받아 대궐에 초대되어 임금을 알현하고 사대부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파격적인 행보였지요.

만덕은 1739년 제주에서 아버지 김응열(金應悅), 어머니 고씨의 2남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11살 무렵 극심한 흉년과 전염병으로 부모가 사망하자, 친척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오빠들만 거둬들였고, 홀로 버려진 만덕은 인근에 사는 기녀의 도움으로 기방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밥을 먹을 수 있었지요.

기녀의 수양딸이 되었기에 자연히 기적에 이름을 올릴 수 밖에 없었고 총명함과 미모를 갖춘 관기(官妓)로 이름을 날렸지만, 만덕은 기방의 삶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번이고 관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그녀를 딱하게 여긴 제주목사가 기적에서 이름을 삭제해주었지요.

어린시절은 고생스러웠지만, 남자에게 기대어 살기보다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하는 보람을 알게 했다는 점에서 만덕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23세에 양인의 신분을 되찾은 만덕은 모은 돈을 털어 제주 건입포 일대에 객주(客主)를 차렸습니다.

객주로 많은 돈을 번 만덕. 그녀는 장사꾼들이 제 집처럼 편안히 드나들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당시 객주는 여관이자 식당이면서 육지의 생필품과 제주의 특산물을 거래하는 중개상 역할을 하는 곳이었답니다. 총기있고 계산이 빠른 그녀는 점차 늘어나는 무역 거래를 선점하기로 결심하고 육지의 쌀과 소금을 독점적으로 취급하게 됩니다. 만덕의 객주집은 금세 제주 최대의 무역거래소로 자리잡았지요.

또한, 남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의류와 장신구, 화장품 거래-제주의 양반댁 부인들에게 공급하기 위한-와 같은 틈새시장을 뚫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물가 변동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물건을 사고 팔아 엄청난 차액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과감하고 적극적인 경영법으로 기녀출신 독신여성인 만덕은 제주에서 자수성가한 갑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지요.


그녀가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된 것은 1795년. 1792년 이래 제주에는 흉년과 태풍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려야 했습니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제주목사인 심낙수(沈樂洙)는 조정에 구휼미 2만석을 요청했으나, 제주로 오던 5천 섬의 구휼미를 실은 배들이 그만 침몰하고 맙니다.

아사하는 빈민들의 모습을 본 만덕은 1천금을 내어 육지에서 쌀을 사오게 했습니다. 들여온 양곡의 10분의 1은 친척과 그동안 은혜를 입은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450석은 모두 관에 보내어 구휼미로 쓰게 했지요.

"정조 19년(1795년) 탐라에는 큰 기근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죽었다.… 만덕이 천금의 큰 돈을 내놓아 육지에서 양곡을 사오게 하여 450석을 관청에 내놓았다. 오래 굶어서 살가죽이 들떠 누렇게 된 주민들이 이 소식을 듣고 관청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관에서는 그들의 급하고 그렇지 않음을 참작하여 형편에 맞추어 쌀을 나눠주었다. 그 후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서 "우리들을 살려준 은인은 만덕"이라면서 그 은혜를 칭송하였다."    -채제공(蔡濟恭)의 증만덕(贈萬德)에서

제주민들은 '기부천사' 만덕을 칭송했고, 제주목사는 조정에 장계를 올려 그녀의 행적을 알렸습니다. 보고를 받고 감동한 정조는 친히 "무엇이건 소원을 들어주라"고 하명했습니다.

나랏님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만덕. 그러나, 그녀가 제시한 소원은 대단히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첫째,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고 싶다. 둘째, 절경이라는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일만이천봉을 구경하고 싶다."

당시 제주에는 법으로 출륙금지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남자는 허가증이 있어야 섬을 떠날 수 있었고, 제주의 여성들은 평생 바다를 건너 육지에 오를 수 없었으며 육지 사람과의 혼인도 금지되어 있었지요. 게다가 평민 여성이 입궐해 왕을 알현하는 것 역시 당시로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덕은 이 관습의 굴레들을 벗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득의 '발칙한 소원'을 전해들은 정조는 그녀의 희망을 이뤄주기로 합니다. 만덕에게 내의원 의녀반수(醫女班首,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였다함)의 벼슬을 내려 궐에 들어오게 했고, 만덕은 정조와 중전, 세자빈을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가 1796년(정조 20년) 가을, 만덕의 나이 57세였습니다.

만덕이 정조를 알현하는 장면의 상상도

서울에서 만덕은 지금의 김연아 선수 못지않은(?) 유명인사가 됩니다. 당당히 재능과 실력으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인데다, 선행으로 왕가의 인정까지 받았으니 손가락질이 아닌 감탄의 대상이 된 것이지요.

채제공의 '번암집'에는 "만덕의 이름이 한양에 가득하여 공경대부와 선비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고자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6개월 정도 선혜청에 머물며 채제공, 정약용 등 고관대작들을 만나고 사대부들의 초대를 받았는데요, 체제공은 만덕의 행적을 다룬 소전(小傳)을 썼고, 박제가를 비롯한 사대부들이 그녀를 위한 시를 지어주었습니다.

이 시들을 모아 한권의 시집으로 만들었는데, 다산 정약용이 시권의 발문을 썼다니 얼마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에도 만덕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습니다.

이후 만덕은 1797년 늦은 봄에 금강산을 구경하고 제주도로 돌아갔으며, 1812년 사망했습니다.

제주 모충사에 있는 김만덕 묘비

얼마 전, 오만원권 지폐 도안에 들어갈 여성인물 후보 중 한 명으로 김만덕이 언급되기도 했었지요. 결국 2007년에 신사임당으로 결정이 되긴 했지만, 현대에 맞는 여성상을 기린다는 의미에서는 김만덕이 훨씬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나 아쉽게 느껴졌었습니다.

변방이었던 제주의 인물이라는 점, 태생이 평민이고 기생 출신이었다는 것 때문에 김만덕은 그 상징성에 비해 너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위인으로 남은 듯 합니다.

모 방송사에서 올 하반기 방영 목표로 김만덕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니('대장금 삘'이 날 듯 하지요), 그녀의 시대를 앞서간 능력이 현대의 '알파걸'들에게 귀감이 될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참고 자료:

http://www.manduk.org/ 김만덕기념사업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7622
http://h21.hani.co.kr/section-021174000/2008/07/021174000200807300721055.html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81125002877&subctg1=&subctg2=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742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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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대사 2009.05.22  00:29

현세에 이런 분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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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 2009.05.22  00:39

존경하는분중의 한분.저분의인성은 타고난듯하다.양반첩도싫다하고 기생의 천한삶을 그리 싫어해서 힘든 장사를 선택한 행동하나만으로 저분의 성품은 좀 고상했던것같다.전재산을 내놓은것도 타고난인성때문이 아닐런지.가족관계는 어떻게되었는지 알고싶다.이번드라마에는 좀 역사를왜곡하지말고 있는그대로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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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네 2009.05.22  00:46

오래전에... 아마 80년도쯤에 고두심씨가 만덕으로 나온 드라마가 있었지요. 재방송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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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 2009.05.22  12:35

요즈음 처럼 어려운 세상에 참으로 신바람 나는 여장부가 200년 전에 계셨군요. 그 용기와 지혜에 고개 숙입니다. 언제까지 살지는 몰라도 여성의 굴레 벗어놓고 모든 난관읗 헤치고 나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는 그러한 삶을 나도 그렇게 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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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털도사 2009.05.22  12:50

상득이하고 비교가 안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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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gp123 2009.05.22  14:40

김만덕은 투사다! 그녀의 삶은 언제나 위태로왔고 고난의 연속이었다.하지만 불굴의 정신으로 이겨보인것이다.
알파걸은 무엇인가 그것은 신기루다. 모든조건이 짜여진 현대의 특이한 지역에서만 나타날수 있는것이다.
나는 만덕에게서 스칼렛오하라늬 향취를 느낀다. 만약 영국의 유러도안에 비비안 리가 스칼렛오하라의 타이틀로 나온다면
우리도 가하리라! 뭐 우리쪽이 실존인물이어서 더욱 설득력이 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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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ie 2009.05.22  14:53

김만덕분도 대단하지만... 저렇게 아량과 너그러움을 고루 갖춘.. 정조대왕이 더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아... 정조대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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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a0804 2009.08.09  22:04

정말 그렇네됴.

빈라덴625 2009.05.30  01:53

현재 대한민국에서 저렇게 선행하는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정치적 논리를 사용하여 좌빨이라는 단어로 매도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명박 정부들어서 선행만 하면 무조건 빨갱이 취급 받더군요. 지금 정권에서는 타인에게 베풀면 욕 먹는 기간입니다. 무조건 때리고,불태우고,성상납을 받고, 대법원판사가 비리를 저질러야 하고, 대기업이 비자금을 챙겨야 칭찬받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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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리 2009.05.31  11:17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별반 다를바가 없으니 선조들의 덕과 지헤에 감동을 아니할수가 없네요- 참으로 알파걸의 시조입니다 ㄱㄷㄱ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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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 2009.06.06  22:39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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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d1914 2009.07.18  00:40

개인적으로 5만원권 인물이 되길 빌었습니다. 그시대에 이런 인물이 나온건 참으로 우리나라의 자랑입니다.
대단분의 일화를 소개하셨군요. 그열정 탄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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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arina66 2009.08.09  12:59

김만덕과....나중에..선덕여왕이 되는...김덕만....둘 상이에..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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