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인구 800만명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15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약 500년의 세월동안 아프리카 노예 무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비극적인 역사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대서양에서 바라본 라고스 시의 전경입니다. 석유로 창조한 아프리카 부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수백년 간 대서양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수많은 외국계 은행, 석유 기업, 컨설팅 업체, 통신 기업들이 몰려 있어 엄청난 양의 경제 활동이 일어나고 있고요.
주말 밤마다 라고스의 클럽에선 아프리카 각국의 고위 공무원, 재벌집 자녀, 스포츠 스타, 연예인들 향락의 파티가 열리고 수많은 고급 차들이 빽빽히 늘어 섭니다.
급격한 발전 덕에 라고스는 머서 컨설팅의 최근 조사 결과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30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라고스만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돈이 많이 드는 도시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고스라는 도시를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징은 기형적인 빈부 격차입니다. 나이지리아의 기형적인 발전이 낳은 기형적인 도시죠.
뉴욕 타임즈에서 보도한 라고스의 생활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이지리아 국민들이 하루 평균 1-2달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반해,
- 라고스의 보통 수준 레스토랑의 저녁 2인분은 미국 돈으로 평균 200달러.
- 칵테일 한잔에 최소 15달러.
- 슈퍼마켓에서 파는 시리얼 한 상자에 12달러.
- 하룻밤 400달러 이하 호텔 방은 거의 찾을 수가 없음.
- 1만 달러짜리 시계와 5천달러짜리 휴대폰이 수시로 팔리고, BMW, 메르세데스, 벤틀리 등의 초고가 최신 외제 차량이 시내 곳곳에 굴러 다님.
- 가장 싼 아파트 월세가 한달 3천 달러. 한달 6천에서 7천달러 사이 월세가 주류. 월세는 보통 입주시에 1-2년치를 한꺼번에 내야 함.
- 비싼 월세에 주거 환경은 세계 최악 수준: 불안한 수도/전기 공급 체계, 발전소에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하루 24시간 디젤 엔진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 한달 전기세가 백만원 단위로 나옴. (지난 시간 언급한 것처럼 석유 부국임에도 부패와 테러로 유실되는 석유가 많아 실제 주민들은 항상 에너지 부족 현상을 겪고 있음)
- 하루 종일 지독하게 막히는 세계 최악의 교통 지옥: 매일 300만명의 시민/외국인들이 중심가로 출근하는데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대부분 매일 새벽 5시에 출근. 퇴근시 역시 지독한 교통 체증 때문에 6시에 퇴근해도 밤 10시 이전에 숙소로 돌아가지 못함.
이것이 라고스의 유명한 교통 지옥 현장. 이 사이로 벤츠, 벤틀리 등 고가 차량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고.
라고스는 요트 등 해양 관광 자원으로도 유명한데, 대부분의 부두는 언제나 이렇게 쓰레기 장이라고 한다.
라고스엔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돈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근무자의 경우 연봉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의 다른 여타 지역에서처럼 여기서 생산된 부는 결코 나이지리아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독하게 만연된 부패 때문입니다.
화려한 대도시 라고스 시민 70% 이상은 비정상적인 주거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벽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철저하게 낙후된 판자집에 살면서 물도 전기도 공급받지 못하고 있죠.
이것이 라고스의 참모습입니다. 시 전체의 70% 이상이 이런 낙후되고 혼잡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전을 겪었던 나라로, 그 옛날 비아프라의 기아 참상은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이고, 또한 이곳은 노예 수출항으로도 사용되었던 Port harcort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이 덧치 로얄 쉘에 근무하고 싶어하는데 급여는 국내일반 급여의 수십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발전소를 짓고 싶어도 도둑질하는 전기가 많아 채산성도 안좋고 여건도 불안한 그런곳 입니다.
휼륭한 개념 정말 진보적이오 동지...영도자는 오직한분 수령님 뿐이지...모택동도 있고...
하여튼 박정희만 죽일놈이고...대한민국에서는 털어서 먼지나는놈은 인정 할 수 없지...
수령님은 먼지 않나는 세계에서 융,ㄹ하신 분이지...슨상님도 그렇고. 오십팔이 하여튼 애들 다버려놨어
딱 30년 전이네요.. 라고스에 부친따라 갔었지요. 한국인은 애들까지 합해서 30명이 안됐었지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뭔가 좋게 변한게 없는것 같다는 거... 정전과 단수가 일상화 되어 있었죠. 밤에 정정되면 마당에서 watchman하고 시간을 보냈었지요. 그때는 학비지원금이 적어서 아메리칸스쿨에 못가고, 현지학교엿던 코로나스쿨에 다녔는데, 한번 가고 싶네요.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말라미트는 정말 다시 한번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