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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7/09/19
 
家和萬事成입니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션-정혜영 부부, “아이들과 신발까지 맞춰 신어요”

2009.11.29 17:00 | ♡ 가정 & 和睦 | 무소유

http://kr.blog.yahoo.com/earnest3160/8302 주소복사



션-정혜영 부부, "아이들과 신발까지 맞춰 신어요"


네티즌들 "휼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부럽다"




가수 션과 탤런트 정혜영 부부가 가족이 신는 신발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슬하에 2남 1녀 하음이, 하랑이, 하율이를 두고 있다.

두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유명한 닭살 부부.

이들은 신발을 살 때도 서로 똑같이 신는 것을 좋아하는지 맞춤으로 신발을 신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 부부 가족이 신는 신발 사진이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떠돌아 눈길을 끈다.

션-정혜영 부부와 자녀인 하율이 하랑이 신발이 나란히 붙어 있어 신발까지 매우 화목(?)해 보이는 모습이다.

네티즌들은 "신발이 너무 귀엽다. 신발까지 맞춰 신는 걸 보면 정말 사이가 좋은 모양이다" "휼륭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부럽다"는 등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차상위계층이란게 쪽팔려서 울었던날...엄마 미안해요♡(펌)

2009.11.08 11:44 | ♡ 가정 & 和睦 | 무소유

http://kr.blog.yahoo.com/earnest3160/8006 주소복사



차상위계층이란게 쪽팔려서 울었던날...엄마 미안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아마 집안형편 한번쯤 어려워봤던 분들은....
저랑같은 경험해보신분들있지않을까.....( ;; 있을까요? )


중학교시절까지만 해도, 그 비싸다는 학원비를 내가며 피아노학원까지 다녔었는데...
아버지가 건강이 안좋아져 회사를 잠시 그만두셨고, 몇년의 공백기간동안 아버지께서는, 드시던 술의 양이 느셔....음주운전.... 결국 면허취소까지.....

나날이 이벤트마냥 이어지던,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매일밤 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렵고 무섭고 서러워서 울었던 날들이 참 많았어요.

그러다가, 얼떨결에 오빠가 대학을 들어갔고, 등록금을 내기위해 대출을 받고 또받고...
시간은 충분하다지만, 오빠에게 나중에 짐을 지우기싫어 엄마는 부업을 시작하셨고
아버지는 다시 힘든 몸을 일으켜 , 이전의 일보다더 힘든 일을 하는 직장을 얻으셨습니다.

그 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고등학교에 왔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보니, 경제력의차이가 이런거구나..하는 생각이 들때가 참 많았어요.

친구 누구는 과외를 몇갤다니고, 학원을 다니고...고등학교를 진학할쯤에,
미술에 관심이 생겨 미술학원을 다니고싶었지만(입시로).....
할 수없는 가정형편으로 포기해야 했던 그 당시....
그게 왜그렇게 서럽고 억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고2 초기에 담임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차상위계층' 등,
집안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종이를 부모님과 작성하여,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힘들땐, 두눈감고, 부끄러움 하나 없이 그냥 작성하여 자신에게 가져오라던 담임선생님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저는 종이를 받아드는순간 '내가작성해야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집에 가져가서도 쉽사리 엄마에게 보여주지못했습니다..

방청소를 하다가, 가방의 먼지를 털어주신다던 어머니는 제 가방속에 있는
작성종이를 결국 발견하셨고, "이거 신청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알겠어" 라고 말하면 됬을걸, " 쪽팔려서 하기싫어 ! " 라고 말했고,
잠시 침묵을 지키시던 어머니는 화를 내시며
"이런게 뭐가쪽팔려! 너그럼 학교다니기 싫니?
집에 돈없는거 뻔히 알면서 애가 왜그렇게 못되먹고 생각이없니?" 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저는 지지않으려고, 절대 써가고싶지 않다는식으로
"아 안쓴다고 난 쪽팔려 누가 못살래? 누가 이렇게 살랬냐고!
아무튼 난 쪽팔려서 안가져가 싫어 절대못해" 라고말했습니다....

말을하면서 두눈에서는 앞이보이지 않을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분명 입으로는, 쉴새없이 당당하게 자기표현을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선 계속 엄마에대한 미안함....쪽팔림과 미안함이 교차했고

결국, 포기한 어머니가 "너 학교다니던지 말던지 니마음대로해.
나중에후회하지마" 하고 종이를 저에게 집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눈물에 갱지였던 종이는 젖어서 찢어졌고
한동안 종이를 손에 쥐고 소리나지 않게 밤새 울었습니다...

'내가왜 이딴걸 써야되는데....' 그러곤 종이를 잘게잘게 찢어버렸습니다...

그후로 이렇게, 뒤늦게 죄송함을 느끼고 후회감을 느끼며...
어머니에겐, 필요한 문제집값....을 달라고 제대로 입밖에 내뱉지도 못합니다..

왜그땐, 그게 쪽팔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엄마잘못도 아닌데, 그 어느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왜 난,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내고 종이를 찢었는지....
눈물에 찢어버린 종이.....억울함, 한심함, 철없음을모두 담아서 찢어버렸던것이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여 보기도 하고...


엄마 !

TV를 보면, 나보다 우리집보다 더 못살고 힘든 사람들 천지인데....
왜난 그때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는지 모르겠어...
그때 내가 왜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왜그렇게 생각이 없었는지...
공부를 못하면 장학금이라도 타서 가라는 엄마의 말에
"나한테 뭘 그렇게 많은걸 바라냐?" 고 싸가지없게 대꾸했던것도 미안해..

지금에서 뒤늦게 깨닫고 열심히 공부도 해보고, 마음도 바꿔먹는데...
도저히 그날 엄마에게 했던, 행동은 잊혀지지가 않네....아마 엄마도 그렇겠지?
몸이 약하고, 감기에도 자주 걸려서 항상,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늦게 낳은 딸때문에 늦은 나이까지 고생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우리 아빠가 했던 말처럼, "우리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
내가 나중에...돈 많이 벌면, 다른 아줌마들 처럼 이쁜옷도 많이 사서 입혀줄게요.

꼭 약속할게..사랑해요 엄마 .....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항상 내곁에 있어줘요 ^^


그리고

아빠가 직장을 잃으시고, 집에 계시던 어느날,
저도 방학을 하고 아빠께서 밤에 또 술을 드시고계시길래,
오빠와 저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노래방에 간적이있어요..
아빠의 기분을 띄워드리려고...우울해계신것 같아서

그때 아빠도 노래를 부르셨는데, 선곡한곳이
'윤도현밴드의 [다시한번]' 이라는 노래였어요..

오.. 아빠가 윤도현밴드의 노래도 아나??? 하고
아빠가 부르시는 노래의 가사를 보니


네가 서 있는 이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어 모든 것들이 사라진 나는 이 곳에 서있네
숨을 쉴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해 보이지 않아 힘들고 괴로운 나날들이 우리를 너무 지치게 해
잃어버린 시간 다시 찾고 싶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고 싶어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만 오- 시작해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만 다시 시작해


술에 취해 서툰 음정이지만, 아빠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오빠와 저는 자리에 앉아
한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날이 기억이 갑자기 글을 쓰다보니 나요..

힘들게 살아왔던 나날들 동안, 엄마와 오빠 그리고 저도 많이 힘들었지만,
그동안 가장 많이 마음속으로 힘들어했을건...'아버지' 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의 젊었던 시절을 오빠와제가 다 뺏어버렸다고 생각을 하니..
차상위계층이라는 현재의 위치또한 결국 아버지가 그만큼 눈물과 땀을 더해서
이만큼이나마 가능하게 해주시도록 노력하셨던것을 생각해보면 정말..죄송해져요 ^^


아빠 !! ... 아빤 .....차마 글로 표현하지 못할정도로 많이 사랑해...!
못된짓 해도 엄마한테 할말 못할말, 가리지않고 짜증내고 화내면서 싸움걸때..
늘 저를 혼내기 보단, 달래주시며 말하지않고
늘 마음으로 아파하는 아빠 항상 미안해요..


우리 정말 조금만 더 참고 견뎌요. 사랑해요 ♡



4.5톤 화물트럭 안의 부부




화물트럭 몰던 남편이 덜컥 병에 걸렸다.

아내가 운전을 배워 서울~부산을 일주일에 3번씩 함께 왕복한다.

신장병을 앓는 남편은 시속 100㎞ 트럭 속에서 하루 4번 투석을 하곤 곯아 떨어진다.




▲ 밤 11시 영동고속도로, 아내가 운전대를 잡고 남편은 신장 투석을 한다.

살기 위해, 부부는 밤낮없이 달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차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밤 11시 이은자(55)씨가 운전하는 4.5t 트럭이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여주 부근을 달린다.

트럭이 차선을 바꾸자 운전석 뒤편에 매달린 링거팩이 흔들거린다.

남편인 심원섭(53)씨가 누워서 복막 투석을 하고 있다.

시속 100㎞로 달리는 트럭 속에 서 투석은 30분 만에 끝났다.

10년 전부터 신장병을 앓고 있는 심씨는 하루 네 번씩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석을 한다.


투석을 마치자마자 심씨가 코를 골며 잠들었다.

“시끄럽지요? 하지만 저 소리가 나한테는 생명의 소리예요.”

가끔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손을 뒤쪽으로 뻗어 남편의 손을 만져 본다.

곤하게 잠든 남편, 고맙고 또 고맙다.


부부는 일주일에 세 번씩 서울과 부산을 왕 복한다.

수도권지역 공단에서 짐을 받아 부산 지역에 내려놓고,

부산에서 짐을 받아 서울로 가져온다.

원래는 남편이 혼자서 하던 일. 하지만 5년 전부터 아내가 함께 다닌다.

렌터카·택시·버스, 안 해본 운전이 없는 경력 35년 베테랑 운전사인 심씨는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뇌졸중이 나아질 무렵 다시 심장병으로 6차례 수술을 받았고, 신장병까지 겹쳤다.

사업은 망가졌고 고단한 병치레 끝에 자녀들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아들 둘, 딸 하나 가운데 막내 아들(28)을 제외하고는 연락도 하지 않는다.


“출가한 큰딸과 아들에게는 더 이상 손 벌리기가 미안해 연락도 못해요.

저희끼리 잘 살길 바랄 뿐이죠.” 아내 이씨가 한숨을 내쉰다.


운전석 옆에서 남편 수발을 들던 이씨는 2004년 아예 운전을 배웠다.

몸이 아픈 남편과 운전을 교대로 하기로 했다.

트럭이 안산공단에 들어서자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좁고 복잡한 시내길은 남편 심씨가, 고속도로 같은 쉬운 길은 아내 이씨가 운전을 한다.

낮에는 지방에서 전날 밤 싣고 온 짐을 안산·반월공단 공장을 돌며 내려놓는다.

해 질 녘이 되면 쉬지도 않고 지방으로 가져갈 물건을 싣는다.


저녁 7시쯤 경기도 안양에 있는 집에 눈 붙이러 잠시 들렀다.

남편은 집까지 걸어가기가 힘들다며 그냥 차 안에서 쉬겠다고 한다.

아내만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향한다.

이틀 만에 돌아온 집은 온통 빨랫감과 설거지감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막내 아들 뒤치다꺼리도 이씨 몫이다.

집안 청소를 마친 이씨는 무너지듯 쓰러진다.


“좀 쉬었어?” 밤 10시, 짧은 단잠을 자고 돌아온 아내에게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

무뚝뚝한 남편 앞에서 이씨는 말없이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밤 12시. 어느새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뒤에 누워 있던 남편이 눈을 뜨며 라면이라도 먹고 가자고 했다.

충북 괴산휴게소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트럭을 세워놓고, 이씨가 트럭 옆에서 라면을 끓였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끓인 라면을 먹지 못한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 특유의 입맛 때문이다.




▲ 먼 길을 달려온 부부는 남해고속도로 장유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라면을 끓여 먹으며 다시 하루를 준비한다.

라면으로 허기를 달랜 부부가 다시 트럭을 몬다.

새벽 2시쯤 경부고속도로 칠곡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 한쪽에 차를 주차시킨 뒤 남편이 운전석 뒤편 남은 공간에 전기장판을 깔고 눕는다.


아내는 운전석에 나무합판을 깐 뒤 잠을 청한다.

뒤쪽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하고 편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 누워도 몸을 뒤척일 수 없을 만큼 좁다.

“이렇게라도 함께 잘 수 있어 좋습니다.

꼭 신혼 단칸방 같지 않나요?” 남편 심씨가 애써 웃는다.

새벽 4시, 캄캄한 어둠 속에 트럭이 다시 출발했다.

새벽 6시 전에 톨게이트를 통과해야만 통행료 50%를 할인받을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에서 구마고속도로로 바뀐다.

심씨 부부가 이틀 동안 10여 차례 고속도로를 바꿔 타며 돌아다닌 거리는 1200여㎞.

한 달 수입은 기름값, 통행료 제외하고 350만원 정도다.

일감이 없는 날도 많다. 트럭 할부금으로 매달 180만원, 심씨 약값으로 50만원이 들어간다.

정부에서 6개월마다 기름값 보조금 명목으로 150만원이 나오지만

남은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


“그래도 약값이라도 나오니 다행이지요.

남편 몸이 조금 나아져 같이 다닐 수 있는 게 행복이라면 행복이고요.”

가페달을 밟는 이씨의 표정이 밝다.

“피곤해도 자동차 타고 여행 다니는 심정으로 일하지 뭐! 일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 아냐?” 남편과 아내가 손을 꼭 쥐었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펌)

2009.10.24 05:45 | ♡ 가정 & 和睦 | 무소유

http://kr.blog.yahoo.com/earnest3160/7863 주소복사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차가 50 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 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혼자 4 년간 똥오줌 받아내고,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 년간 남편품에 단 한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누실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힘들다고, 평생 이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때 집나가서 소식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 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딸 데리고 올때 소팔고 집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싶은 혼수, 사고싶은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거 몸에 안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땐 군것질거리 꼭 사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하던 속마음 얘기 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때 상차린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먹었다 방에 가있어라"하시곤

소리 안나게 살금 살금 그릇 치우고 설겆이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속엔 제가, 딸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걸...


정신 있으실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 하려고 이불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쥐어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거 사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때쯤 큰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으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번 하고 누워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슬퍼하시게

우리 우애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 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사탕을 사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 해주세요.


= 가져온 글 =

[구멍뚫린 치매노인 대책] 노인실종 신고 접수 하루 23명꼴 접수

2009.10.02 19:20 | ♡ 가정 & 和睦 | 무소유

http://kr.blog.yahoo.com/earnest3160/7702 주소복사



[구멍뚫린 치매노인 대책] 노인실종 신고 하루 23명꼴 접수


관련법령 없어 신고 지원 제각각…노인실종 막기위한 대책마련 시급





노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실종신고를 받는 경찰청 182센터에는 매일 20명이 넘는 노인 실종 신고가 접수된다.

공식 통로를 거치지 않은 노인 실종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매년 10월2일은 법정기념일인 '노인의 날'이다. 2009년 7월1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519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7%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노인인구비율이 7.2%에 이르러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에, 2026년에는 20.8%가 돼 '초(超)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고령화 사회에 맞춰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시행 1주년을 맞은 노인장기요양보험, 기초노령연금, 노인돌보미 바우처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종노인을 찾기 위한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관련 법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치매환자 실종은 ▲2005년 2886명 ▲2006년 3534명 ▲2007년 4118명 ▲2008년 4246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8년 기준 치매환자수가 13만 7431명인 것을 감안하면 환자의 3%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치매환자와 별도로 집계되는 60세 이상 노인 실종자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총 1만 6863명에 달한다. 이중 2008년 노인 실종자는 4266명으로 2006년에 비해 3년간 1.5배 증가했다.

60세 이상 노인 실종자와 치매환자 실종자를 합하면 2008년 기준으로 매일 23명의 노인이 사라진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의 대책은 미온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 문제는 후속 관리가 중요한데 복지부가 너무 손놓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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