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석학원(學園)은 제 분신이나 다름없습니다. 모교인 동국대가 맡아 잘 운영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제 저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정리하는 일에만 전념하려 합니다.”
21일 만난 학교법인 영석학원의 설립자인 안채란 이사장(84·사진)은 동국대의 상징색이 선명한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나왔다. 그는 모교 관련 행사에 참석하면 늘 잊지 않고 동국대에서 받은 이 머플러부터 챙긴다고 했다. 23일 학교법인 영석학원을 동국대에 기부하는 합의안 서명식 자리에서도 이 머플러를 두를 예정이다.
안 이사장이 동국대에 기부키로 한 영석학원은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에 있는 영석고와 의정부3동에 있는 영석빌딩 등 토지와 건물을 합친 평가액이 252억 원(공시지가 기준)에 달한다. 시가로 치면 1000억 원이 넘는다는 게 동국대의 설명이다.
안 이사장은 당뇨 등 노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많고 얼마 전 당한 교통사고로 어깨뼈를 다치는 바람에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하지만 1970년 ‘복지중학교’라는 문패를 달고 시작한 영석학원의 초창기 일화를 들려주는 순간만큼은 40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1960년대 부동산업으로 재력을 쌓은 안 이사장은 “백성이 배우지를 못해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것”이라는 부친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 고향인 의정부에서 육영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영석고 운동장 자리에 천막을 치고 제가 직접 벽돌틀에 벽돌을 찍어 학교 건물을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 12명, 전교생 140명의 작은 학교여서 저도 국어, 역사 등의 과목을 맡아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지요.”
‘복지’라는 교명은 1988년 ‘영석’으로 바뀌었다. 영석이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아호인 영석(榮錫)에서 따왔다. 영석고는 현재 17개 학급에 학생 수 600여 명, 교직원 40여 명에 현대식 건물을 갖춘 학교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난방 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1970년대에 추위 때문에 학생들의 공부가 지장을 받을까봐 그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나와 구공탄으로 학생들이 등교하기 전에 난로를 지펴놓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또렷하다고 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안 이사장이 ‘분신’ 같은 영석학원을 동국대에 기증키로 한 것은 모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이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출신(1954년 졸업)으로 행정대학원(1973년 졸업)과 교육대학원(1982년 졸업)에서 수학한 그는 12년 동안 동국대 총동창회 부회장을 지냈고 6년 동안은 학교법인 동국학원의 이사로 활동했다.
모교 후배를 위한 장학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안 이사장의 이름을 딴 ‘채란장학회’ 등을 통해 장학금을 받은 동국대 학생이 150여 명에 달한다.
“영석고 선생님들에게 ‘동국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는 안 이사장의 말에서도 모교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느껴졌다. 안 이사장이 ‘불교사상연구회’를 세울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점도 모교에 기부하기로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안 이사장은 “동국대가 남은 합병절차를 잘 마무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특히 동국대가 강점을 가진 경찰행정학과 등에서 유용하게 써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동국대 관계자는 “안 이사장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영석학원을 동국대 산하로 합병하는 법적, 행정적 절차를 연내에 마무리하고 교육과학기술부에 합병승인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국대는 안 이사장을 영석고 명예교장으로 추대하는 한편 몸이 불편한 안 이사장이 동국대 병원에서 평생 무상으로 치료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예우도 해주기로 했다.
강도가 침입해 위기에 처한 이웃을 구하려던 대학생이 격투를 벌이다 칼에 찔려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있다.
19일 오후 7시10분께 경북 상주시 낙양동의 한 원룸에서 전형찬(24ㆍ경북대 상주캠퍼스 산림자원4)씨가 이 방에 침입한 김모(39)씨와 격투를 벌이다 김씨가 휘두른 과도에 찔려 숨졌다.
앞서 혼자 이 방에 살고 있는 회사원 박모(27ㆍ여)씨는 '세를 놓는다'는 광고를 낸 상태였고, 김씨는 "세 놓은 방을 보러 왔다"며 들어와 전자충격기로 박씨를 위협, 금품을 요구했다.
전씨는 당시 학교를 마치고 귀가해 책을 읽던 중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이상해 옆집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는 전씨에게 김씨는 현관문을 살짝 열며 "부부싸움이니 그냥 가라"고 소리질렀고, 그 순간 전씨는 "강도야"라는 박씨의 소리를 듣고 김씨와 격투를 벌이다 칼에 찔렸다.
자취생인데다 내성적이던 전씨는 출퇴근 시간대가 다른 박씨와 평소 안면도 없었다.
상처가 깊었던 전씨는 간신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 신고조차 못했다.
박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어떤 남자가 강도에 칼에 찔렸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따라 119구급대를 대기시킨 채 전씨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고, 사건 발생 30여분 뒤 집주인을 불러 바로 옆집 현관을 열었다가 숨진 전씨를 발견했다.
비보를 듣고 시신이 안치된 상주적십자병원으로 달려 온 전씨의 아버지(59)는 "2대 독자인 아들이 죽어 대가 끊겼다"며 통곡하다 실신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20일 오후 전씨의 시신을 경주로 옮겼다.
전씨의 입학동기인 전태옥(24)씨는 "형찬이는 평소 내성적이고 착했지만 책임감은 누구보다 강했던 친구여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보고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 같다"며 말했다.
추태귀 경북대 부총장은 "불의에 맞서 싸우다 운명한 전씨의 명복을 빌며 의사상자 지정을 요청하는 등 전씨의 뜻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김장훈씨나 가수 션의 경우는 자신들은 여전히 월세를 살면서도 지속적으로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부가 참으로 빛납니다.....김장훈씨는 아직 차도 운전면허도 없다고 할 정도니......평소 나눔에 관심이 많은 저이지만 이런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