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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야구팬들, "진정한 한국시리즈 MVP는 로페즈!"
로페즈 "한국의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서운한 마음 표출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인 우승을 한 에이스 아퀼리노 로페즈가 뿔이 났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속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1차전과 5차전에 등판해 매우 빼어난 투구로 2승을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MVP의 영광이 7차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인 나지완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로페즈는 “한국의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말하며 그라운드에서 펼쳐진 축하 파티에도 참여하지 않고 덕아웃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로페즈가 MVP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본인만이 아니었다. 7차전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을 위해 나온 사회자가 그때까지 관중석을 떠나지 않고 있던 팬들에게 “MVP는 누구?”라고 물었다. 딴에는 관중들이 “나지완”이라고 대답할 줄 알고 기분 좋게 물어본 모양인데 이게 웬걸? 관중석에 남아 있던 KIA팬들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로페즈~!!”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순간 사회자가 당황했음은 물론, 이후 나지완을 MVP로 호명하자 관중들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물음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수상자로 호명된 나지완 조차도 “로페즈에게 미안하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으니,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로페즈 본인도 알고 있었고, 나지완도 알고 있었고, 팬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MVP 선정권을 지니고 있던 기자단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61명의 기자단은 나지완에게 41표, 로페즈에게는 18표를 던졌다. 두 배가 넘는 엄청난 표 차이를 보이며 로페즈와 팬들의 꿈은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표가 갈릴 정도였는지 두 선수의 활약을 한 번 살펴보자. 로페즈는 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3실점의 좋은 투구로 승리를 따냈다.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1차전의 중요성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점에서 이 1승은 매우 귀중하다.
5차전에서는 9회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봉쇼를 펼치며 시리즈의 균형을 깨뜨리고 팀에 3승 2패의 리드를 가져다주었다. 7차전에서도 8회에 등판해 두 타자를 깔끔하게 막아내는 ‘홀드급 피칭’을 선보였다. 3경기에 등판해 17⅔이닝을 던지면서 2승과 1.53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 등판한 모든 투수들 가운데 ‘에이스’라 불릴만한 유일한 투수가 바로 로페즈였다.
나지완은 7차전을 통틀어 20타수 5안타(.250) 2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그 중에 2홈런 3타점이 바로 7차전에서 나온 것이다. 6차전까지는 16타수 3안타(.188) 1타점의 저조한 성적으로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사실 KIA가 시리즈를 힘들게 가져갔던 이유도 번번이 나지완과 장성호의 타석에서 공격의 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7차전 9회말에 극적인 끝내기 홈런 한 방을 날림으로서 나지완은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어 자동차를 부상으로 받았다. 이번 시리즈 내내 매 경기마다 시상하고 있던 ‘Man of the Match(상금 300만원)’가 아닌 한국시리즈 전체의 MVP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말 내내 각종 야구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는 이번 한국시리즈 MVP의 선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아니, 토론 보다는 일방적인 항의가 줄을 이었다. 대다수의 팬들은 기자단의 투표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며 ‘로페즈가 진정한 MVP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네티즌은 ‘로페즈가 아닌 윤석민이 그 입장이었더라도 과연 나지완을 MVP로 뽑았을까?’라며 한국 프로야구의 공공연한 비밀인 시상식에서의 외국인 선수 차별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뛰어주고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로페즈 보기가 민망하다는 팬들도 있었다. 나지완은 7차전의 ‘Man of the Match'가 되고, 시리즈 전체의 MVP는 로페즈가 되었어야 했다는 의견이 많은 팬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또, 어떤 팬들은 1984년의 예를 들며 ‘기자들의 수준이 25년 전과 똑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84년의 한국시리즈에서는 홀로 4승을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에게 우승 트로피를 안긴 최동원이 아닌, 7차전 역전 3점 홈런의 주인공인 유두열이 시리즈 MVP를 차지했었다. 당시 유두열의 시리즈 성적은 21타수 3안타(.143) 1홈런 3타점에 불과했지만, 그 3타점을 모두 7차전의 홈런 하나에 집중시켰고, 기자들은 그러한 유두열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당시의 MVP 선정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헌데, 그와 비슷한 경우가 25년이 지난 현재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나지완은 기자단의 3분의 2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2009 한국시리즈 MVP로 뽑혔지만, 정작 팬들은 3분의 2가 훨씬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로페즈 MVP론’을 주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1984년은 이만수의 타격 3관왕과 그 희생자였던 홍문종의 고의사구 논란이 일어났던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 시즌에도 박용택과 더불어 타격왕 경쟁을 하고 있던 홍성흔이 고의사구로 인해 타격의 기회조차 상실하는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9월말 당시 한국의 수많은 야구기자들이 이를 두고 ‘일부 야구인들의 의식 수준이 25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다’며 비판의 소리를 드높였다. 기사의 어조는 매우 강경했고, 25년 동안 발전이 없는 것에 대한 강한 질책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헌데, 이제는 팬들이 그러한 논리를 펴고 있다. ‘기자들의 의식 수준도 25년 전에 비해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야구팬들의 의식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각종 기록을 훤히 꿰고 있음은 물론,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야구의 여러 가지 규정들에 대해서도 매번 논란이 일 때마다 심도 있는 논의가 커뮤니티 내에서 이루어질 정도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관중들의 행태가 문제가 될 때도 있지만,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25년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언론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거기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팬들이 스스로 여론을 형성해 내고, 야구의 발전을 논하며, 때로는 공통된 목소리로 변혁을 촉구하기도 한다.
헌데, 우습게도 현장의 지도자들과 일부 선수들, 그리고 기자들의 수준은 나아진 것이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MVP 수상자가 호명되었음에도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야구팬들을 보면서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로페즈가 뿔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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