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9·3 개각’에서 평소 자신의 경제정책 기조를 비판해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기용한 게 단적인 예다.
촛불시위 등 집권 초기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으면서 ‘자각’을 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이명박의 변화’에는 여권 내부의 달라진 역학관계와 권력 이동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이 ‘영남에서 수도권’ ‘원로 그룹에서 소장파’ ‘보수에서 중도’로 옮겨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 변화를 추동해낸 이들로는 세 축이 꼽힌다.
정태근·권택기·김용태·조해진 의원 등 한나라당 친이 소장파,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두우 메시지기획관, 대통령 직속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대통령 직할그룹’,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와 김형준 명지대 교수 등 ‘외곽 자문단’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4일 “이명박 정부 첫 조각과 이후 국정운영에 조언을 해온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등 ‘원로 그룹’의 영향력이 전만 못하다”면서 “이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형님들’ 말을 따른 결과가 기대에 못미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6개월의 국정 경험을 통해 이 의원을 축으로 하는 원로 그룹보다는 소장파들의 노선이 국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보다 효율적이란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실제 정 전 총장을 총리로 강력하게 추천한 세력이 정태근, 권택기, 김용태 의원 등 수도권의 친이 소장파들이란 전언이다.
반면 이 의원은 정 전 총장이 아닌 다른 인물을 지원했다는 말이 여의도에서 들린다. 호남 출신 법무부 장관이 등장한데도 같은 ‘배후 역학’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이 소장파들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던 ‘젊은 참모’들이다. 이 의원의 ‘인사 개입’을 정면 비판하고, 쇄신 정국에서는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와 인적 쇄신을 주장한 세력이다. 정 전 총장이 ‘충청 총리’이면서 경제전문가·중도 이미지를 갖고 있어 수도권에서의 지지율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수도권 소장파들이 그를 민 주요 배경이다.
당내 소장파와 청와대를 연결하며 이 대통령의 변신을 주도한 ‘1등 공신’으로는 홍보기획관에서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박형준 수석이 꼽힌다. 이 대통령이 그를 정무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청와대 내 중도 소장파의 부상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붙는다.
박 수석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중도실용론을 성안했으며, 청와대 입성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를 주창해왔다. 조문 정국 이후 이 대통령의 국정 주도권 회복의 결정적 계기가 된 ‘근원적 처방’이란 화두를 만들어낸 김두우 메시지기획관도 중도실용 노선 정착의 공신이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역시 지난 3월부터 중산층 키우기 ‘휴먼뉴딜’을 제시하며 친서민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현재 추진 중인 중도실용 정책들 다수가 곽 위원장이 초대 국정기획수석 시절 채택했던 내용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김현철씨의 사조직인 ‘광화문팀’ 소속이었던 김원용 교수의 이름도 들린다. 김 교수는 대선 당시 고비마다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이명박의 칼 로브’로 꼽히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나라당의 친이 소장파들과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대통령 정책자문단의 일원인 김형준 교수도 중도실용으로 방향을 트는 데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