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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 (doorie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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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05/14
 

가을엔 따뜻한 생각만 하고 살랍니다

2009.09.15 02:54 | 아메리카 | 요팡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941 주소복사

어제 아침, 일요일이라 늦잠을 좀 자고, 일어나 반 바지를 입었다가 바로 긴 바지로 갈아입었다. ‘쌀쌀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올 들어 처음이다. 고장난 에어컨 걱정이 순식간에 히터 걱정으로 바뀐다. '저거 빨리 갈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9월중순이 되어서야 계절이 바뀌었음을 몸으로 알았다. 두달째 끊겨있는 TV 덕이다.

첨엔 답답해서 죽겠더니 시간이 좀 지나니까 토요일 일요일이 굉장히 길어져서 참 좋다. 주말의 이틀이 이렇게 긴 시간인줄 새삼 알았다. 부지런히 뭔가를 한동안 했는데도 아직 점심 전이고, 부지런히 일을 했는데도 아직 해가 중천이다. 덕분에 햇볕도 많이 쬐고 몸도 많이 움직이니 몸뚱아리에 좋겠다. TV가 다시 연결되어도, 주말엔 중요한 풋볼경기만 딱 보고 다른 건 아예 보지말아야겠다. TV에서 벗어나면 이렇게 시간이 풍성하니 말이다.

가을입니다.
코스모스의 계절입니다. 


'친구'만큼이나 '적'도 생기는 민감한 얘기들은 안할랍니다. 가끔 야후가 제 그런 글을 홈페이지로 퍼가서 사람을 고달프게 하네요.. 심한 욕이라는 핑계로 나쁜 댓글을 골라서 지우는 거 사실 불공평하고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고.. 띠바.

그런 얘길 아예 안해야 됩니다.
가을엔 따뜻한 생각만 하고 살랍니다. 

 

Korea is gay.. 뒤틀린 애국심과 열등감

2009.09.10 01:25 | 한국얘기 | 요팡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940 주소복사

유난스런 애국심과 자긍심 - 중국인들의 독배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과정,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란들이 있었다. 중국의 인권을 문제삼는 외국인들의 시위와 그에 대항하는 중국인들의 반대시위, 특히 한국에선 중국인들이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했었다. 전 국민이 아연실색 했었지만 우리정부는 외교문제로 비화될까 쉬쉬하며 그냥 덮었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의 뇌리엔 ‘무례한 짱깨새끼덜’이라는 인식이 다시 한번 깊숙이 새겨졌다. 


중국인들은 왜 그런 짓들을 했을까? 남의 나라 한복판에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그 짓을 했다. 술 쳐먹고 미쳐서? 원체 무식한 놈들이라? 아니다. 그건 그들의 불타는 애국심이었다. 중국인들의 애국심과 자긍심은 가공할만하다. 중국인구 전체가 중국정부의 대변인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그들의 나라사랑은 ‘묻지마’ 수준이다.

제 3자들이 자기나라의 일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거북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하려던 거였을 거다. 그런데 거기서 폭력을 행사했다. 상대방 국가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린 거다. 그들이 그렇게 한국땅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다름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하는데 왜 무식한 오랑캐새끼들(한국인)이 떠들어?’였다. 이게 바로 그들 골수에 뿌리박힌 중화사상이다.

남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중국인들의 역겨움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자기네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문화민족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무식한 오랑캐라는 생각. 물론 중국인들이 모두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지성있는 중국인들은 이 시대착오적인 중화사상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아직은 중화사상에 찌들어있는 중국인들이 절대다수다. ‘중국의 것’은 모두 범접못할 자긍이고 그것을 비판하면 모두 쳐 죽여야 할 오랑캐다. 폐쇄와 배타의 초절정이다. 그래서 잘못하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툭하면 남들과 싸운다.

그래서 중국인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더럽다. 냄새난다. 무례하다. 시끄럽다. 사기꾼이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중국인들도 많다. 그러나 전체적인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이 사실인데, 공교롭게도 이 이미지의 뿌리가 바로 그들의 유난스런 애국심과 자긍심이다. 그들의 그 끓어오르는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이 그들에겐 치명적인 독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세계에서 경멸받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유난스런 애국심과 자긍심 때문이라는 이 아이러니..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한다.


열등감과 인종차별 - 유색인종들의 독배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이 부모세대들에게 가진 불만중 1, 2위를 다투는 문제가 바로 이 인종차별에 대한 관념의 차이이다. 부모세대들은 ‘툭하면 인종차별이라고 흥분’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것들이 졸지에 자신들을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한 인종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2세들은 부모세대들의 이러한 ‘툭하면 인종차별 운운’을 열등감의 소치, 자격지심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영어가 딸려서, 문화에 익숙치 않아서 당하는 것을 무조건 인종차별이라고 엮어버리는 것, 이게 바로 스스로 열등한 한국인이라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이성적인 열등감을 자기네들만 느끼고 있으면 될 것을 왜 시끄럽게 해서 2세들에게까지 강요하느냐는거다. 그들은 부모세대들의 그런 과민반응이 한국인이 열등하다는 것을 광고하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는 아슬아슬한 화약고다. ‘인종차별’하면 유색인종들이 당하는 것이긴 하지만, 의외로 흑인들 보다는 백인들이 이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해하기도 하다. 그 인종차별이 역습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 흑인들에게 이 문제로 코를 꿰이고 그것이 공론화라도 되는 날이면 패가망신하는 걸 많이 본다. 그래서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상당히 주의한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물론 무조건 유색인종을 무시하는 꼴통 백인들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백인들은 그렇지 않다. 가능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경멸 당할 수밖에 없는 유색인종들이 있다. 바로 별거 아닌 걸로 인종차별 운운하는 재랄맞은 유색인종들이다. 이래도 인종차별, 저래도 인종차별.. 그 자격지심은 끝이 없다. 그들은 그것 때문에 더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한다. 별거 아닌 걸로 재랄을 떨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진짜로 경멸당하는 악순환이다.


애국심과 열등감 - 툭하면 미치는 개떼들
우리나라는 ‘열린’나라다. 아무리 파렴치한 전과자라도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할 수 있는 나라다. 쓰레기 같은 국회의원들이 국운을 말아먹어도 또 뽑아주는 나라다. 민주주의의 기강이 흔들리고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도 이해해 주는 나라다. 젊은이들의 80% 가까이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고 싶어하는 그런 나라다. 배불뚝 임산부들이 미국 시민권자 아이를 낳으려고 미국 비행기에 줄을 서는 그런 나라다.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잘 해야 한다고 코흘리개들을 미국으로 호주로 억지로 떠나 보내는 그런 나라다. 중 늙은이들이 딸 같은 여자애들을 돈으로 따먹고, 어린 것들은 지들끼리 떼씹을 해도 괜찮은 그런 나라다. 이 따위로 살아도 돈만 잘 벌면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되는 그런 ‘확 열린’ 나라다.

그런 열린 나라에 어떤 애가 아주 어린 나이에 돈벌러 왔다. 언어문제 문화문제로 적응을 못하던 그 애가 마음이 상해서 자기나라 친구들에게 푸념을 했다. ‘Korea is gay..’ 4년전 자기 블로그에 썼다는 이 글을 어떤 할일 없는 놈이 퍼다가는 희한스럽게 번역을 했다. ‘한국이 역겹다’. 이걸 쓰레기 언론들이 다시 또 퍼 날랐다. 그러자 그 ‘열린’ 나라의 개떼들이 총궐기를 했다. 저 매국노 개쉑히 때려잡자. 개 패듯이 치도곤을 치더니 기어이 그 애를 나라밖으로 쫓아냈다. '존만새끼.. 어디서 까불고 지랄이야..'


별의 별 쓰레기 같은 짓들을 다 용서하고 이해하던 열린 나라의 젊은애들이, 미국에서 나서 자란 애의 한마디에 광분을 했다. 그 애가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 줄도 모르면서 눈들이 뒤집혔다. 조국을 운운하고 정의를 부르짖는다. 미국시민권자 한국아이가 ‘감히’ 한국을 비하했다고 광풍이 분다. 집단최면, 집단 싸이코패스다. 정작 쳐 죽여야 할 쓰레기들은 무서워서 놔두면서 만만한 상대에게만 잔혹한 치사한 광기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이걸 애국심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은 조국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조국을 버리고 떠난 사람의 아들에게 엄격하다는 거다. 가요 아이돌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일반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공인으로서의 도덕성이 더욱 엄격히 요구된다는 거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애국심도 자긍심도 아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그저 추악한 열등감일 뿐이다. 초라한 열등감과 자격지심일 뿐이다. 악취나는 시기와 질투일 뿐이다.

미쿡에서 왔다는 아이에 대해 얽혀있던 복잡한 심경.. 신기함, 부러움, 동경, 열등감, 증오,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이 순간의 촉발로 폭발한 것이다. 암담한 조국의 현실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끝 모를 추락감에서 느끼던 복잡한 심경들이 의외의 기회에 터진 것이다. ‘만만치 않던’ 상대가 갑자기 ‘만만한’ 상대로 떨어졌다. 그러자 그간 가졌었던 자격지심이 한순간 증오로 돌변했다. 이 개색퀴.. 이 개떼들은 미녀들의 수다에서 보여주는 ‘한쿡 너무 좋아요’를 진짜로 믿었던 모양이다. 유치하게 ‘왜 한국에 오셨어요?’ 를 질문하고 ‘한쿡 너무 좋아요’라는 대답을 듣곤 좋아한다. 이렇게라도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싶은 거다. 그러던 차에 한 미국 한인이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 욕을 했다는 게 알려지자 다들 미쳤다. 이 개색휘, 백인들도 우리나라 다 좋다는 데 어디서 노란 개색퀴가.. 

대한민국 술자리 어느 곳에서나 ‘좆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푸념이 만연한 나라에서, 그래서 기회만 된다면 젊은이의 80%가 떠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애가 대한민국 욕 한마디 했다고 꼬투리 잡혔다. 만신창이가 되어 한국을 떠난 그 아이 뒷통수에 개뗴들은 또 침을 뱉는다. 조국을 두번 버렸다고. 제발 아서라.. 그 아인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도 아니고, 한국인을 대표하는 동포도 아니었다. 그저 노래하고 춤추는 어릿광대였을 뿐이다.

개떼들.. 이건 애국심 자긍심이 아니다. 그저 열등감에서 나온 의미없는 ‘배설’이다.


어제 마침 소위 ‘바나나’ 둘이 사무실에 왔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물어봤다. ‘Korea is gay’ 가 도대체 어떤 뉘앙스냐고. 마침 그들도 이미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하더니 흥분하기 시작한다. Korea is gay 는 ‘한국 별로야’ 정도, 아무리 나쁘게 봐도 ‘한국 골때려’ 정도의 의미란다. 그런데 어떤 놈이 이걸 악의적으로 ‘한국 역겨워’로 번역을 하고, 골빈 개떼들은 그걸 퍼 날랐던 거다.

‘한국 무서워요’ 더듬더듬 한국말로 말했다. ‘한국 참 좋은데요. 이럴 때마다 정이 떨어져요’


우물안 골빈 개떼들의 열등감과 뒤틀린 애국심이 나라 밖에서 한국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 모두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당사자 박재범군은.. 넓은 아량으로 한국 어린 네티즌들의 열등감과 분노를 이해해 주고, 한국에 대해 한을 품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아마 박재범군은 한동안 극도로 한국을 혐오하며 살 것 같다.

25년전 심은선 덕에 맥주를 잘 마신줄 알았더니

2009.09.05 08:28 | 옛날얘기 | 요팡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939 주소복사

두번째 휴가쯤이었을까? 아주 짭짤한 아르바이트가 하나 있는데 나보고 하겠냐고 묻는다. 송규호다. 도대체 무슨 아르바이트길래 휴가 나온 군바리보고 그걸 하라고 하는 걸까? 1분 1초가 금쪽 같은 군바리에게 말이다. ‘가서 한시간쯤 하면 이만원 받는다’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다. 이만원이면 생맥주 500cc 마흔 잔 값이다. ‘근데 그게 뭔데?’ 라디오 교육방송에서 하는 어린이 영어프로그램인데, 영어 노래에 피아노 반주를 하는 거란다. 원래 82학번 심은선양이 하던 일인데, 그 아이 일이 있어서 내가 땜빵을 하는 거란다. 고맙다 심은선. 네 덕에 술값 벌게 생겼다.

근데 피아노 반주라.. 기타라면 모를까 내 피아노 실력은 방송에 나가서 반주할 실력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돈 이만원에 이미 내 마음은 굳었다. 군바리가 못할게 뭐가 있냐. ‘악보는 있지?’ 악보는 준댄다. 그럼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이삼십분 연습하고 가면 되겠네..

다음 날 규호가 악보를 가져왔다. ‘런던 브릿지 이즈 폴링 다운..’ 그리고 ‘아유 슬리핑 아유 슬리핑..’ 이 두곡이었다. 그런데 악보가 내가 기대하던 반주용 악보가 아니다. 달랑 멜로디와 가사만 있는 악보다. 띠바 그렇다면 소위 ‘편곡’을 내가 해야 한다. 아 띠바 일이 좀 커졌다. 이제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서클룸 피아노에 앉았다. 이 간단하디 간단한 동요의 반주를 과연 어떻게 만들 것이냐.. 멜로디는 반드시 쳐줘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왼손은 그냥 ‘도솔미솔’? 하지만 이건 너무 유치해 보일거 같다.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약간 변형을 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잘 안된다. 결국 도솔미솔을 기본으로 코드가 바뀌는 부분에서 베이스 러닝만 약간 줬었던 거 같다. 거금 이만원이 걸린 일이라 연습 많이 했다. 금쪽같은 군바리의 휴가가 몇시간 날아갔다.

드디어 당일, 방송국으로 갔다. 난생 처음 와보는 방송국, 처음이라 어색한데 신분이 군바리라 더 어색하다. 몇번 와봤다고 송규호는 태도가 아주 익숙하다. 스튜디오에서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자 교수님과 인사를 했는데, 반주하겠다며 나타난 게 군바리인 걸 보고 약간 놀라는 교수님의 눈빛.. 무시하고 아무튼 시작했다. 송규호 기타치면서 열심히 교수님과 노래하고, 난 구석에서 피아노 치고.

첫곡이 끝났다. 교수님이 뭐라고 말 할지 바짝 긴장했다. ‘어머 어머.. 군인 아저씨 터치가 어쩜 그렇게 예쁘고 부드러워요?’ 런던 브릿지 반주에 부드러운 게 어딨고 예쁜게 어딨나.. 그냥 하는 소리인 건 알지만 일단 교수님이 만족은 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번째 곡 아유 슬리핑.. 왼손 반주가 도솔미솔 패턴이 아니라 더 고생했었던 곡이다. 이 곡은 어떻게 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암튼 두곡을 다 무사히 마쳤다.

‘돈은 지금 바로 주냐? 아님 나중에 주냐?’ ‘잠깐 기다리래. 지금 바로 줄건가봐’ 그렇게 받은 돈이 두사람 몫으로 아마 오만원쯤이었던 것 같다. 아주 명랑하게 교수님에게 인사를 하고 방송국을 나왔다. '꽁돈도 생겼는데 어디가서 찐하게 한잔 빨자.' 동기들을 다 떼어놓고 송규호랑 나랑 단 둘이다. 송규호에게 궁금한 게 있었던 차였는데 잘됐다. 이번 기회에 물어봐야겠다.

‘띠바야.. 김태원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동기들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던 송규호였다. 근데 그날 술기운에 다 털어놨다. 그렇게 궁금하던 김태원 스토리. 얘기를 듣던 내가 분을 못 참고 울그락 불그락.. 이문규 개새끼, 김태원 xxx.. 그러자 송규호가 질겁을 한다. ‘거봐 이 띠바야. 너 이럴거 같아서 내가 얘기 안했던 건데.. 내가 보낸거야. 걘 잘못 하나도 없어. 진짜야. 니가 흥분할 일이 아냐’

휴가기간 시간이 워낙 짧아서 그냥 그렇게 마무리 하기로 했다. 군바리 워낙 바쁘니까. 아무튼 그날 심은선양 덕분에 송규호로부터 김태원 얘기도 듣고, 좋은 안주 놓고 생맥주 잘 마셨었다. 다시한번 고마웠다. 심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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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5년쯤 후, 엊그제. 시카고에 살고 있던 심은선양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25년만이다. 하니브로 카페덕에 느닷없이 이런 연결이 되기도 했다. 통화 말미에 오래전 이 얘길 했더니, 심은선양 왈
‘그거 나 아닌데요’ ^^ 

그럼 도대체 누구였어? ㅋㅋ
누구였든, 심은선 반가웠다.

곰곰히 생각해야 할 신장 떼어주기

2009.09.03 07:39 | 自然, 自然醫學 | 요팡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938 주소복사

신장을 판 한인남자
한국 국적의 한 젊은 남자가 LA의 한 병원에서 신장을 떼어 팔았다는 소식을 새벽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었다. CNN의 보도라고 한다. 조폭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써줬다가 강제로 떼인건지, 신장을 팔려고 한국에서 일부러 출장을 온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살다가 돈이 궁해서 자발적으로 떼어 판건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젊은 애가.. 가슴이 답답해지는 소식이다.

'Maybe I've made a mistake to do this, but $25,000 is a good amount of cash.'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실수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만오천불이 더 중요해요’ 정도의 한국말이었을 것이다. 과연 젊은 남자의 신장 하나가 돈 이만오천불하고 맞바꿀 정도밖에는 안되는 것일까?


장기이식은 중요한 장기들만
남의 신체기관을 떼어 내 몸에 갖다 붙이는 것, 이걸 장기이식이라고 한다. 옛날같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의학의 발달로 현실이 된 것이다. 장기이식을 하는 장기는 거의 대부분 신장 간 심장 각막 골수 폐 췌장이다. 각막과 골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장기는 모두 공교롭게도 한의학 臟腑중에서 ‘臟’으로 분류하는 간심비폐신이다. 한의학에서 장이란 인체의 정기를 보관한다는 의미이고, 부는 소화계통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즉 臟을 腑보다 약간 더 중요하게 취급했다는 느낌인 것이다. 인체의 장기중에 더 중요한게 어딨고 덜 중요한게 어딨을까만, 과거 한의학에선 분명히 臟을 좀 더 중요한 장기로 쳤었다. 이 차별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 있었음을 현대의 장기이식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유독 臟만 이식을 하고 있는 것.

장기이식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니면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만큼 그 장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장기가 다 그만큼 절박한 것은 아니다. 위(밥통)를 생각해 보자. 위 이식수술이라는 건 아예 없다. 위는 잘라내면 되지 굳이 이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위를 통째로 잘라내어도 사람은 계속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간심비폐신의 경우는 고장나면 곧바로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그래서 장기이식을 하는 것이다. 즉 장기이식을 하는 장기는 ‘굉장히’ 중요한 장기들이란 의미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앓다가 죽었을 환자들이 요즈음엔 모두들 장기이식에 희망을 건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그 희망이 비해 장기기증이 너무 적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만오천명이 넘는데 뇌사자의 장기기증은 한 해에 백건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산 사람의 장기이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여서 장기를 떼어내는 게 아니다. 산 사람에게 떼어도 되는 장기가 일부 있다. 바로 신장과 간이다. 신장은 두개가 달려있고 간은 재생이 빨라서 그렇다. 그래서 이 두가지 장기에 대한 이식수술이 가장 많다.


누가 장기를 기증하나?
근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의외의 통계수치가 있다. 한국에서 이루어진 장기이식의 90%는 가족 친지기증이 아닌 '순수기증'이라는 것이다. ‘순수기증’이라고 함은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장기를 떼어준다는 뜻이다. 의외다. 가족친지가 장기기증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 실상은 그 반대다. 왜일까?

가족친지가 사경을 헤매고 있어 장기이식이 유일한 방법인데 그 장기가 신장이거나 간인 경우, 병원에서는 가족들의 장기기증을 넌지시 떠 본다. 여기서부터 가슴 졸이는 상황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말은 이렇게 안하지만 ‘네 동생이 죽어가는데, 네 부모가 죽어가는데 장기 안 떼어줄거냐?’와 마찬가지의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안 떼어주자니 패륜아 취급을 받을 것 같고, 떼어주자니 평생 두고두고 건강에 이상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고.. 여간 난감한 상황이 아니다. 물론 죽어가는 친지를 생각하면 당장 떼어주고 싶다. 만약 그 분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수술자체가 너무 겁나기도 하고, 수술 후 남을 흉터도 보통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두고두고 일어날 건강문제.. 등등 현실적으로 걱정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양심과 현실사이에서 몇날 몇일을 고민해야 한다.


배우자의 동의가 필수
가족기증보다 순수기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런 장기기증 절차에 의외의 '보호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보호장치란 당사자가 장기기증을 결정해도 배우자 혹은 부모가 반대를 하면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 큰 성인의 결정인데 다른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다니 이상한 제도 같지만 사실 현실적으로는 아주 필요한 제도다.

이 보호장치의 의도는 억지로 주위의 시선이나 양심에 떠밀려 장기를 기증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좀 야비하게 말하자면.. 당사자는 장기 기증하겠다고 ‘폼나게’ 선언을 하고, 배우자는 그걸 결사 반대하고.. 그러다가 결국 배우자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이런 시나리오다. 배우자나 부모가 내 대신 악역을 해 주는 셈이다. 이렇게 하면 장기기증을 하지 '못한' 당사자도 용서를 받고, 장기기증을 반대한 배우자도 이해를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기기증은 '종교의 힘'으로 하는 순수기증이다. 종교의 힘이 아니고서는 내 장기를 선뜻 떼어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장기기증을 망설이는 이유
아무튼 장기기증을 결정하신 분들.. 가족에게 장기기증을 결정하고 동의한 사람들, 특히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선뜻 자기 장기를 내어주는 선의의 기증자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보통사람들이 접근 하기 어려운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천사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이런 장기기증 행위는 사랑과 희생의 숭고한 결정체다. 칭송받고 찬양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사랑과 희생의 기증이라도 때론 복잡한 심경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나이든 부모가 젊은 자식의 장기를 떼어 받아 목숨을 건진 경우다. 이 경우는 우리에게 선뜻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늙은이가 저 살겠다고 앞길이 창창한 자식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장기를 떼어주거나 잘라내면 분명히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기증을 독려하는 단체에서는 일시적으로 힘들뿐 두고두고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지 잘 한번 생각해보자.

장기이식을 하는 이유는 그 장기가 그만큼 생명유지에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뒤집어 생각해보자. 아무리 내가 건강하더라도 그 중요한 장기의 한쪽을 떼어내거나 일부를 절제한다면.. 내 건강에 진짜 문제가 없는 것일까? 신장을 예로 들어보자.


신장은 폐수정화장치
중고등학교 커리큘럼에 기본적인 인체해부학도 없었던 우리들은 신장의 기능을 잘 모른다. 대충 ‘오줌 만드는 기관’정도로만 안다. 만약 ‘피를 걸러 노폐물을 오줌으로 내보내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면 당신은 상당히 유식한 축에 끼인다. 맞다. 신장은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필터장치, 즉 우리 몸 전체로 본다면 정화조, 폐수정화처리장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우리 몸안 모든 화학작용에서 배출되는 모든 찌꺼기들을 이 신장이 다 처리해 준다. 이 폐기물 처리가 안되면, 인체는 곧바로 생명을 잃는다.

얼마 전 타계한 김대중 대통령이 혈액투석 (血液透析 Hemodialysis)을 받고 있었다. 혈액투석? 혈액에 돌을 던지는 거? 아니다. 혈액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인공신장에서 혈액을 여과하고 다시 몸안으로 집어넣는 걸 말한다. 한번 피를 돌리는 데에 대여섯시간이 걸린다. 이걸 일주일에 세번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 귀찮은 걸 해왔던 것은 이렇게라도 폐기물 처리를 하지 않으면 바로 죽기 때문이었다.


신장은 두개
이렇듯 신장은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중요한 장기이다. 근데 이 신장이 우리 몸에 두개나 붙어 있다. 얼마나 중요하면 두개나 될까? 라고 생각해야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걸 약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여분이니 하나를 떼어내어도 하나가 남으니 사는 데에 별로 지장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몸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졌을 리가 없다.

의학을 공부하던 사람이 종교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신비함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미경을 들이대고 첨단과학을 들이대도 풀리지 않는 의문에서 사람들은 곧잘 종교에 빠지곤 한다. 그만큼 인체는 경이로운 존재다. 

경이로운 우리 몸은 생명활동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의 장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필요한 게 없지도 않고 필요 없는 게 많이 있는 법도 없다. 딱 필요한 만큼의 적절한 개수와 적당한 크기의 장기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무수한 화학반응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소우주가 바로 우리의 몸이다.


두개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장이 두개 달려 있다면 분명히 그럴 이유가 있다. 두개니까 함부로 한 개 떼어내도.. 라고 생각할 게 아니다. 물론 현대의학은 괜찮다고 주장한다. 신장의 여과조직인 네프론의 90%가 기능 정지된다고 해도 신장은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의사들도 태연히 얘기한다. 하나를 떼어내면 그동안 50% 정도 발휘하던 개개의 능력이 80% 정도로 향상되어 큰 문제는 없어요.. 라고. 그리곤 물 좀 덜 마시고 과일 좀 덜 먹고 살면 된다고 한다.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신사구체 여과율’ 같은 수치들을 근거로 그러는 것 같다. 물 덜마시고 과일 덜 먹으면 당연히 정상쪽으로 수치가 올라가는 여과율 같은 숫자따위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좋다. 까짓거 물 덜마시고 과일 덜 먹으면서 살 수도 있다고 치자.


한개 남은 신장이 다친다
신장 두개가 온몸의 혈액을 걸러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라고 한다. 그걸 신장 한 개가 한다면? 한시간에 걸쳐 혈액을 걸러내게 될 것이다. 30분에 한번씩 걸러야 할 혈액을 한시간에 한번씩 걸러낸다? 틀림없이 혈액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칠 것이다. 설사 현대의학의 말처럼 한 개의 신장이 훨씬 더 열심히 일해서 40분정도에 한번씩 혈액을 걸러낸다면 혈액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줄겠지만 그대신 다른 문제가 있다. 과부하가 걸린 신장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젊은 시절 일시적으론 신장이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개의 신장이 한평생 그렇게 과도한 부담을 갖고 지낸다면 어떨까? 신장이 점점 튼튼해져서 평생을 버텨줄까? 그렇지 않다. 많이 써서 튼튼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혹사당한 한개의 신장은 정상적인 다른 사람들의 두개의 신장보다 훨씬 빨리 노후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건강한 피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장의 이상이 아니더라도 혈액과 혈관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고, 혈액과 혈관의 문제는 곧바로 생명의 단축과 직결된다. 이 혈액과 혈관의 중요성은 얼마전 ‘돌연사’ 얘기할 때 얘기한 바 있다.


곰곰히 생각하고 결정하자
사후 장기기증은 적극 권장한다. 가능하면 많은 국민들이 사후 장기기증에 동참해야 한다. 나 역시 사후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배고프다고 덜컥 신장을 팔거나, 불쌍하다고 덜컥 신장을 떼어주지는 말자. 돈 없다고 함부로 신장 한 개를 떼어 팔거나, 가족 친지 살리겠다고 한 개를 덜컥 떼어내기 전에 반드시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내 생명과 맞바꿀 만큼 지금 생활고가 정말로 힘든건지,
내 평생건강을 줄 만큼, 내 생명단축마저 감내할 정도로 상대방이 중요한지,
또 나한테 그럴만한 희생정신이 과연 있는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고
확신이 서면.. 그때 결정하자. 그렇게 기분좋게 떼어주자.

근데 만약 배우자나 부모님이 반대하면..
그 뜻에 따르자. 차마 돌아서기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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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하면 한국에선 원래 산등성이에 있는 가난한 마을을 일컫는 말이지만, 미국에서는 정반대다. 미국에서 산등성이의 주택가는 고급주택들만 즐비한 부촌이다. 멋진 view 때문이다. LA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태평양 바다가 보이거나 LA 다운타운 뷰가 있는 지역은 궁전 같은 집들이 떡 자리를 잡고 있다. 밀리언 단위를 가볍게 넘어서 수천만불 단위의 집들이라고 한다.

낮엔 태평양이 보이고 밤엔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이런 집들, 띠바 규모나 시설, 가격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돈이 넘쳐나 주체를 못하는 사람들이 일년에 재산세로만 수십만달러를 내면서 그런 곳에 산다. 없는 사람들은 그 돈이 없어 평생 아파트에 사는데, 있는 사람들은 웬만한 집 한채값을 매년 재산세로 낸다. LA의 산동네 부촌을 돌아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이게 궁금해진다. 저새끼들은 도대체 뭘로 돈을 벌었을까?

부자들은 점점 더 산 쪽으로 올라간다. 깎아내고 파내고 메꾸면서 그들의 궁궐을 짓는다. 낮엔 퍼시픽, 밤엔 다운타운 그리고 이젠 숲과 맑은 공기, 그리고 밤하늘 별과 은하수에까지 욕심을 낸다. 점점 더 자연 깊숙히 침투해 들어간다. 옆집이 보이는 것도 싫다. 산으로 깊숙히 치고 올라가 혼자만의 왕국을 꿈꾼다.

하지만 산동네에 사는 LA의 부자들은 늦여름이나 가을이 오면 마음 한구석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거의 매년 발생하는 산불 때문이다. 낮은 지역에 사는 보통 마을사람들은 그런 걱정 별로 안한다. 산에 가까이 사는 부자들만 그 걱정을 한다. 재작년엔 로스펠리츠, 작년엔 말리부.. (재작년이 말리부였던가?) 아무튼 2년 연속 LA 지역의 이름난 부촌들이 산불에 당했었다. 물론 주택가 전체가 홀랑 타버린 것은 아니고 뚝 떨어진 곳에 있었던 집들이 좀 탔다. 올핸 또 어디서 산불이 나려나.. 나더라도 먼데서 나야하는데..
 
이런 LA 산불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모양이다. LA에 얼마나 산불이 많았으면 옛 인디언들은 LA를 ‘연기의 계곡(Valley of the Smokes)’이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어지간히 산불이 많았었던 모양이다. 

알다시피 LA는 일년내내 해가 반짝 반짝하는 그런 사막기후다. 햇빛과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지만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지겨운 곳이다. 사막기후의 특성상 우기인 겨울 서너달을 제외하고는 일년내내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다. 정말 십개월 가까이 단 한방울의 비도 안 내린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내가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도심의 잔디와 나무들은 늘 싱싱하다. 육백마일 먼곳에서 물을 인공적으로 끌어오는 거라고 했다. 인간승리다. 사막기후에 이 거대한 도시를 세워놓고 거기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산다. 

그러나 도심을 약간만 벗어나면 사정은 다르다. 건기동안 극도의 건조상태다. 물을 주어 가꾸는 곳이 아닌 곳들은 덤불들이 온통 뒤덮고 있다. 간혹 큰 나무들도 있기는 있다. 도대체 어떤 수분으로 살아가는 지 모르겠지만 산이나 계곡에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건조한 덤불들이다. LA에 산불이 많은 것은 이 덤불들과 관계가 있다. 이 건조한 덤불은 한국 겨울산의 싸리나무보다도 더 불에 잘 탄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알 것이다. 싸리나무에 불 붙이기가 얼마나 쉬운지. 성냥 한개비와 마른 잎 한줌만 있으면 싸리나무는 불을 붙일 수 있다. 근데 LA의 덤불은 그것보다도 더 불이 잘 붙는것 같다. 이렇게 불이 잘 붙는 이유는 이 덤불들이 극도로 건조한 긴 여름을 견디기 위해 몸속에 수분대신 오일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LA의 덤불은 석유를 품고 있는 싸리나무인 셈이다. 

남부 캘리포니아엔 가을인가 싶으면 갑자기 찾아오는 살인적인 더위가 있다. 그게 그 유명한 인디언 서머다. 100도를 넘나드는 건조한 더위가 한동안 지속된다. '덥다'라는 느낌을 넘어 '뜨겁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 '뜨겁고 건조한 인디언 서머'가 찾아 왔을 때 '기름을 가득 담은 마른 덤불'들에 눈꼽만한 '불씨'라도 튀기는 날이면.. 산과 계곡은 불구덩이로 변한다. 이게 LA 산불이다.


원래 산동네 LA 의 부자들은 자기 집에 대규모 스프링클러 시설을 해놓고 매일 아침 집 근처 널찍하게 물을 줬었다. 또 소방서에선 순찰을 돌다가 바짝 마른 풀이나 덤불을 그냥 방치하는 집이 있으면 곧바로 티켓을 발부해서 그것을 강제로 깎게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고급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엔 마른 덤불도 없으며 그리 건조하지도 않다. 근데 해마다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올해 LA시는 스프링클러 사용을 주 2회로 제한시켰다. 정해진 요일 이외에는 물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LA 산동네는 다른때보다 훨씬 더 건조했었다.

그러던 차에 LA에 갑자기 폭염이 찾아왔다. 아직 인디언 서머의 계절은 아니지만 한동안 가을날씨처럼 시원하다가 지난주부터 갑자기 더워졌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건조한 더위에 기어이 산불이 났다. LA 북쪽 소나무들이 아름답던, 그래서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같이 가서 고기를 구워먹곤 했던 그 엔젤레스 내셔널 포레스트라고 한다. 바로 앞 동네인 '라카냐다'라는 곳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그저께엔 바닷가 부촌 팔로스버디스 산등성이에서도 불이 치솟았었다. 두곳 다 알아주는 유명한 부촌이며 부자 한국사람들도 꽤 많이 사는 곳이다.


어제와 오늘은 LA 전체가 매캐한 연기와 냄새로 뒤덮였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낮게 깔린 연기로 뿌옇다. 새벽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면 밤새 가라 않았던 연기냄새가 매캐하게 코를 찌른다. 나무들이 탄 연기라 그리 역겹지는 않지만, 그 나무들이 얼마나 많이 타 없어졌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아까운 마음이다. 이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자라온 나무들인데.. 남의 일이라 쉽게 말하는 거지만.. 사람들의 집이 타버리는 것보다는 나무들이 타버리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석양무렵은 더 기이한 느낌이다. 잿빛 하늘과 그 속에 묻혀있는 해는 아름다운 석양과는 거리가 멀다. 암울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집을 잃은 주민들.. 그들이 라카냐다나 팔로스버디스의 부자이건, 간신히 내집을 마련했다가 봉변을 당한 소시민이건, 그들은 평온한 일상과 많은 추억들을 화마에 빼앗기고 모든 것을 잿더미에 묻었다. 이런 암울한 영화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이 모든 것들을 망각한다. 산불이 지나가면 곧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LA의 좋은 날씨와 풍요로움을 다시 칭송한다. 거의 매년 대형산불이 덮치는 곳인데 사람들은 화재위험이 높은 바로 그 곳의 비싼 집들을 여전히 동경한다. 언젠가는 기필코 저곳에 입성하고야 말리라.. 산불 많이 나는 달동네로 이사가는 그날까지.. 

아마 이 망각은 ‘자연을 사랑은 하지만,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걸거다. 자연을 거슬러 6백마일 멀리서 물을 끌어와 언덕을 깎고 계곡을 메워 오아시스를 건설하곤 그 천혜의 기후와 풍요로움에 파묻혔다. 사막 복판에 세운 거대도시에 살면서 인간의 위대함에 뿌듯해 한다.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심장 LA에 살면서, 늘 그랬듯 흥청망청대며 '역시 LA, 역시 세계 최고의 기후, 설마 우리동네는..' 이러면서 계속 산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끝없이 좇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전혀 없고,
그러면서 망각은 드럽게 빠르고.

자연이 그래서 우리를 깨우쳐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이 외친다. 정신차리라고.. 그 날이 머지 않았으니 제발 정신차리라고..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LA 산불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

물 안줘도 비가 많이 내려 풀과 나무들이 쑥쑥 자라고, 흙 쌓인 지붕엔 이끼들도 자라고, 여름이면 더웠다가 겨울이면 눈도 내리는 곳,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 비록 두고두고 LA의 꿈같은 기후를 그리워하며 살겠지만 늘 그 날을 꿈꾸며 산다.

100도에 육박하는 가마솥 더위에, 산불의 매캐한 연기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띠바 마침 이때 고장난 에어컨. 그리고.. 저 사는 동네는 이번에 산불 난 동네하고 굉장히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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